제 16회 미쟝센 단편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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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는 사랑스럽게, 때로는 사람스럽게. <사랑하는 사람의 아이를 낳는다> & <누렁이들> 이태경 배우 인터뷰

글 : 김서영, 박현우 / 사진 : 이승현

여기 그 깊은 눈과 쉽게 지울 수 없는 인상을 꾸준히 카메라에 담아내는 배우가 있다. 바로 재작년에 이어 올해 제16회 미쟝센 단편영화제에도 그 얼굴을 비춘 이태경 배우다. 이태경 배우는 각각 ‘비정성시(사회적 관점을 다룬 영화)’ 부문의 <누렁이들>과 ‘사랑에 관한 짧은 필름(멜로드라마)’ 부문의 <사랑하는 사람의 아이를 낳는다>에 출연했다. 두 작품이나 출연한 덕분에 보는 관객의 입장에서는 배우를 오래 볼 수 있는 반가운 소식이었다. 오늘은 2년 만에 미쟝센 단편영화제에 돌아온 이태경 배우와 햇살 가득한 날씨 아래서 인터뷰를 가져 보았다. 지금부터 이태경 배우의 목소리에 집중해보자.

이번에 <누렁이들>, <사랑하는 사람의 아이를 낳는다> 두 작품에 출연을 하세요. 작품 편수로 따지자면 미쟝센 단편영화제에서 세 번째 만남이기도 합니다. 감회가 남다를 것 같아요. 소감을 들어볼 수 있을까요?

이태경 배우: 재작년엔 <제 팬티를 드릴게요>란 작품으로 왔었어요. 우울증이 왔을 때 회복제처럼 행복하게 촬영했던 작품이 미쟝센 단편영화제에 출품돼서 좋게 기억하고 있었어요. 이번에 또 제가 애정을 크게 갖고 있는 두 작품이 영화제에 올 수 있어서 주변에서 많이 부러워하고 저도 매우 좋았습니다.

<누렁이들>부터 질문 드릴게요. 먼저 <누렁이들>에서 ‘나운’ 역에 끌린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이태경 배우: 처음에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 ‘나운’이 저와 비슷한 접점이 많다고 느꼈어요. 저도 여러 운동들 중에서 동물권을 진지하고 중요하게 생각하거든요. ‘나운’이 동물보호단체에서 일하게 된 계기가 저와 비슷할 거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제가 잘 소화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요.

<누렁이들>에서 ‘나운’은 동물보호단체에서 일하면서 ‘대표’와 동물 관련해서 갈등을 빚습니다. 분명 현실에서도 ‘대표’와 같은 사람, ‘나운’과 같은 사람들이 있어요. 그렇다면 이태경 배우는 동물과 관련해서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나요?

이태경 배우: 제가 ‘나운’과 비슷한 접점이 있다고 느꼈는데, 촬영이 진행되기 전에 혼자 분석을 하면서 함정에 걸렸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나운’은 굉장히 정의로운 인물이거든요. 굳이 따지자면 사람 편에 서는 인물이잖아요. 그런데 저는 ‘나운’처럼 못 했을 거라 생각해요. 동물권에 대해서 고집이 센 편이라서 ‘나운’의 선택에 설득당하기가 어려운 점이 있었어요. ‘나라면 이렇게 안 했을텐데.’란 생각이 강하게 들기도 했고요. 하지만 감독님과 많이 이야기하고 설명을 꾸준히 들었어요. 결국에는 할아버지가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이란 사실을 알았을 때, 힘들지만 외면하고 동물의 편에 서잖아요. 그런 부분들이 있었기 때문에 나중에는 ‘나운’의 딜레마가 충분히 이해가 되었어요.

전작들을 봤어요. <오늘의 자리>에서 비정규직 여성 교사, <사랑하는 사람의 아이를 낳는다>에서 동성애자, <누렁이들>에서 동물보호단체 직원 등 주로 사회에서 소수자로 불리는 인물 또는 그들과 가까이하는 인물을 연기했어요. 이런 캐릭터들을 연기할 때 어떤 마음가짐으로 임하셨나요?

이태경 배우: 최근에 문제가 되는 일들에 관련해서 캐릭터를 맡게 되었어요. 그런데 제가 워낙 정보가 없다 보니까 감독님들한테 의지를 많이 했어요. 질문도 많이 했고요. 감독님들은 시나리오 쓸 때까지 조사를 많이 하셨고, 평소 생각을 글로 풀어낸 거라서 그때마다 확실한 답변을 해주셨고, 그 답변에서 많이 배웠어요. 각자 인물에 대해서 그리고 세상에 얼마나 어려운 사람들이 있고 그 어려움이 무엇인지 많이 배웠습니다. 정리하면 항상 배우는 입장에서 임했던 것 같아요.

 

이력을 보면 영화는 물론 연극까지 정말 다양해요. 작품 선정할 때 나름의 기준이 있을까요?

이태경 배우: 뭔가 뚜렷하게 있는 건 아닌데, 그 느낌이 오는 게 있더라고요. 대본을 받았을 때 제가 캐릭터를 그리는 것처럼 캐릭터가 그려지는 인물들이 있어요. 그중에서도 저와 비슷하다고 느꼈던 인물들이 빨리 다가왔던 것 같아요. 연기할 때 결국은 저로부터 시작하기 때문에 저랑 비슷하다고 느끼는 인물, 정서가 비슷하다고 느끼는 인물을 빠르게 선택하는 거 같아요.

<누렁이들>을 보면 ‘나운’이 웃는 모습이 한 번도 나오질 않아요. 아무래도 ‘나운’이 동물과 인간, 양 쪽 세계에서 자신의 선의에 의해 고통을 받기 때문이 아닐까 싶은데요. 연기하면서 힘든 점이 있었을 것 같아요.

이태경 배우: 저도 감독님한테 몇 번 이야기를 했어요. ‘나운’이 웃는 장면이 없다고요. 계속 이리치이고 저리 치이면서 촬영할 때 힘들었어요. 그리고 동물보호단체에서 강아지 울음소리와 폐가의 먼지가 심리적으로 압박을 줘서 연기하기에 어려움이 조금 있었어요. 그래서인지 감독님이 계속 저한테 ‘미안해‘라고 하셨던 기억이 있어요. 자기가 너무 ‘나운’을 극한까지 밀어붙인 것 같아서 ‘나운’과와 태경 씨한테 미안하다고 지금까지도 말씀을 하세요. 저는 그럴 때 마다 힘들고 괴롭더라도 정신 차려야지 하면서 더 열심히 했던 것 같아요.

이제 <사랑하는 사람의 아이를 낳는다> 질문 드릴게요. <사랑하는 사람의 아이를 낳는다>가 ‘사랑에 관한 짧은 필름’ 경쟁 부문 진출작 중 유일한 퀴어 영화인데요. 배우로서 아직까지는 흔치 않은 경험이었을 것 같아요. 출연을 결심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이태경 배우: 제가 작년 초에 출연 제의를 받았는데, 크레딧 보시면 아시겠지만 원작이 따로 있어요. 글을 쓰신 분이 따로 있고 정지윤 감독님이 자기만의 스타일로 다르게 각색을 해서 연출하신 건데요. 그전에도 제의를 받았었어요. 3년 전에 똑같은 ‘윤성’ 역할로 제의를 받았다가 촬영이 무산이 되면서 잊고 지냈는데. 3년 만에 우연히 똑같은 역할로 제의를 받은 거예요. 수상하단 느낌이 들 정도로 우연히 받았어요. 조금 달라지긴 했는데 기본적으로 사랑하는 사람의 아이를 낳고 싶다는 인물의 욕망은 그대로였어요. 3년을 돌아와서 ‘결국 내가 해야겠구나.’ 확신이 들어서 시나리오를 훑어보고 제가 하겠다고 했어요.

 

<사랑하는 사람의 아이를 낳는다>는 회상이 많은 부분을 차지하잖아요. 그래서 오히려 결말이 더욱 돋보이는 면이 있는 것 같습니다. 관객들은 영화 초반에 둘의 관계에 대해 비관적인 생각을 품게 되지만, 결말은 그렇지 않거든요. 결말에서 두 사람의 가족계획이 정말 실행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이 비로소 드러나는데요. 결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이태경 배우: 저는 그 결말에 대해서 굉장히 호의적이에요. 감독님한테도 좋다고 말씀드렸어요. 엔딩 장면에서 잘 안 보이는데 윤성이 임신을 하고 있어요. 정말로 그 계획을 이루고 있는 단계인 거죠. 한 편으로 우리에게 쏟아질 질타가 세지 않을까라는 고민도 했었어요. 그럼에도 일단 두 사람의 새드 엔딩은 저희도 싫었고, 그렇다고 완전히 해피 엔딩이라 느껴지지도 않아서 두 사람이 하고 싶은 욕망을 최소한으로 이루고 있다 정도로 생각했어요. 개인적으로는 굉장히 만족합니다.

영화에서 환상과 회상, 현재를 동시에 넘나드는 시간대를 흡입력 있게 잘 조합한 감독님과 배우님들의 역량이 놀라웠어요. 아역을 쓰지 않고 직접 교복을 입고 연기를 하셨는데, 촬영하면서 재밌는 에피소드가 있다면요.

이태경 배우: 원래 성인 배역의 배우분이 따로 있으셨어요. 촬영도 일부분 하셨는데 감독님이 편집을 하시고 나서 굳이 그 장면이 필요치 않겠다 싶어서 뺐어요. 그리고 아무래도 계절별로 촬영하다 보니까 현재 장면을 먼저 겨울에 찍었고요. 바다에서의 장면을 봄에 찍고 여름에 결혼하는 장면과 과거 장면을 찍었는데, 스태프분들이 예비군이냐고 하더라고요. 회차가 많지는 않았는데 계절별로 나눠서 촬영하다 보니까 예비군 같다면서 그만 부르라고 했던 기억이 있어요.

상대 배우였던 안선영 배우와의 호흡은 어떠셨나요?

이태경 배우: 서로 잘 챙겨줬어요. 저희가 인물들의 몇 년을 같이 연기해야 하니까 촬영 전에 감독님이 걱정이 많았어요. 저도 그렇고 선영이도 낯을 가리는 편이었고 둘이 친해질 때 시간이 걸리는 스타일이었거든요. 그래서 감독님이 강제로 친하게 만들려고 영화관에 저와 선영이, 둘만 보내버리고 술집에도 둘만 보내고 그랬어요. 저희도 얼른 친해져야겠다 싶어서 촬영 전에 급속도로 친해졌던 것 같아요. 그리고 촬영 때는 선영이한테 많이 배웠어요. 제가 촬영 전에 불안감이 커지는 스타일인데 제가 봤을 때 선영이는 여유로운 스타일이었거든요. 선영이를 보면서 저도 조급해 하지 않아도 되겠다 하면서 많이 배웠어요. 가끔은 제가 불안하다고 느낀 부분에 대해 말하면 선영이가 공감도 해주고 정리해주면서 같이 움직여 줬어요.

연기를 하면서 참고한 영화가 있을까요?

이태경 배우: 선영이와 촬영 전에 <캐롤>를 같이 봤어요. 감독님이 강제로 영화관에 넣었을 때 영화가 <캐롤>이었어요. 영화를 봤을 때 스토리가 단순하다고 생각했거든요. 두 사람이 만나고 사랑에 빠지고 사랑을 이루어 나가는 관계를 단순하게 보여줬다고 생각했어요. 그 부분에서 많이 느꼈던 것 같아요. ‘내가 과하게 표현하지 않아도 되겠구나’, ‘내가 누구를 사랑하듯이 연기하면 되겠구나’ 생각하면서 용기를 얻었던 것 같아요.

관객분들이 <누렁이들>과 <사랑하는 사람의 아이를 낳는다>를 어떻게 봐주었으면 하나요?

이태경 배우: <사랑하는 사람의 아이를 낳는다>의 경우는 두 사람을 응원해주셨으면 좋겠어요. 이미 응원해주신 분들도 많아요. 그런데 보는 사람마다 결말이나 그들의 행동이 달갑게 보이지 않을 수도 있어서, 그분들을 나름대로 존중하지만, 똑같은 사랑이니까 응원해주셨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누렁이들>의 ‘나운’은 너무 고통받는 인물이라서 가엽다는 생각을 했었어요. 동시에 ‘나운’이 너무 오지랖처럼 보이지 않을까 걱정도 했었고요. 제가 완성본을 봤을 때 그렇게 느껴지지 않긴 했는데 보는 사람들이 연민을 가지고 보셨으면 좋겠어요.

 

앞으로 배우 일을 하면서 같이 일해보고 싶은 감독님이나 배우, 아니면 장르가 있을까요?

이태경 배우: 제가 좋아하는 감독님과 배우님들은 세계 곳곳에 퍼져있어요. 일단 한국에서는 김새벽 배우님을 굉장히 좋아해요. 전주국제영화제 때도 배우님이 출연하신 <초행>을 보았어요. 김새벽 배우님이랑 같이 연기를 해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항상 은연중에 하고 있고요. 감독님의 경우는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님 영화를 좋아해요. 그래서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님 영화에 나오는, 그런 인간의 극한까지 보여주는 파괴적이고 거친 역할 좀 해보고 싶어요. 장르로는 옛날에는 <누렁이들> 같은 영화를 선호했었는데 요즘에는 밝은 영화를 해보고 싶어요. 가족 영화나 로맨스 장르로요. 방금 말한 것과 괴리가 좀 있지만요.

현재 촬영 중인 차기작이나 앞으로의 행보를 들어보고 싶습니다.

이태경 배우: 지금 당장 촬영 중인 작품은 없고요. 오디션을 보고 있고 몇 개는 결과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는 연기 잘하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단순한 답변인데 가장 본질적인 거라 생각하거든요. 예쁜 역할들은 예쁜 배우가 하고, 저는 제가 할 수 있는 연기를 잘 하는 배우가 되는 게 목표입니다.

마지막으로 이태경 배우님께 ‘단편영화’란?

이태경 배우: 길이가 짧은 영화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많은 분들이 단편영화에서 시작하고 다시 휴식을 하러 돌아온다고 느꼈어요. 배우든 감독이든 모두 각자 목표들이 있겠지만 단편은 누구나 할 수 있고 누구나 볼 수 있는 게 매력이라 생각해요. 저도 단편영화를 하면서 쉬어가는 틈들을 없애면서 많이 위안을 받고 활동하는 원동력이 되는 것 같아요. 정리하자면 저에게 단편영화는 ‘휴식’같은 느낌이에요.

 

단순한 목표임에도 앞으로 연기 잘하는 배우가 되고 싶다는 답변엔 분명한 근거가 있었다. 맡은 캐릭터를 이해하기 위해 질문을 아끼지 않고 알려고 하는 노력을 포기하지 않기에 이태경 배우는 본인만이 할 수 있는 연기를 잘 해낼 것이다. 당장 <사랑하는 사람의 아이를 낳는다>와 <누렁이들> 속 때로는 사랑스럽게, 때로는 사람스럽게 고민하며 담아낸 연기만 보아도 알 수 있듯이. 연극에서 단편영화와 장편영화까지 앞으로도 연기 잘하는 배우, 이태경 배우를 여러 곳에서 볼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