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회 미쟝센 단편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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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준호 감독은 다 계획이 있었구나.” (1)

글 : 황정민 / 사진 : 김정은

이번 미쟝센 단편영화제의 프로그램은 크게 2개로 나뉘었다. ‘Inside the 20’와 ‘Outside the 20’이 포함된 20주년 특별부문과 바로 봉준호 감독 단편 특별전이다. 이는 2019년 <기생충>을 통해 전 세계에 영향을 끼친 봉준호 감독의 시작을 볼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구성되었다. 오늘은 봉준호 감독의 단편 영화 중 <백색인>, <프레임 속의 기억들>, <지리멸렬>, <인플루엔자>. 총 4가지 작품을 가지고 이야기해보려 한다. 이번 GV는 아쉽게도 현장 대신 사전 온라인 GV로 진행되었다. 온라인을 통해 봉준호 감독과 GV의 모더레이터인 주성철 평론가가 만났다.

 

주성철 평론가 : 미쟝센 단편영화제 20주년 기념으로 봉준호 감독님 단편 특별전이 압도적으로 매진을 기록했습니다. 특별전 단편 4편을 보면서 ‘봉준호 감독은 다 계획이 있었구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장편 작품들에서 느낄 수 있던 것이 이미 단편에서 나타났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봉준호 감독 : 가수들은 창법이 있고 소설가분들은 필체가 있듯, 저도 그런 게 있겠죠. 미쟝센 단편영화제 20주년 기념으로 제 단편이 나간다니 영광스럽기도 하고 매진까지 됐다고 하니 부담스럽기도 한데 사실 제 입장에서는 망신이에요 (웃음). 과거의 치부가 드러나는 것 같고 젊은 창작자들이 만드는 완성도 높은 작품에 비해 정말 조악하지만 단편을 엉망으로 찍어도 후에 직업 감독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을 주지 않을까 싶습니다. 창피하지만 그 당시에 최선을 다해 찍은 건 사실이니까.

 

주성철 평론가 : 감독님은 치부라고 하셨지만 오히려 이전 작품들에서 무엇을 얘기해야 하는지를 잘 알고 만들어야 한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흐름이라고 생각합니다. 작품 중 <백색인>부터 질문을 드리면 김뢰하 배우가 연기하는 주인공이 뭔가 사이코패스 적 모습을 너무 많이 드러내고 있어서 초창기부터 이런 캐릭터에 관심이 많으셨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봉준호 감독 : 맞아요. <백색인>이라는 제목도 그렇고 그 당시에 만들어진 단어 ‘여피’ 같은 인물을 묘사하기 위해 그린 건데 찍어놓고 보니까 정말 정상적인 사람이 아니더라고요 (웃음). 잘린 손가락을 귀에 걸고. 제가 24살 때 그 영화를 찍었는데 그때는 주제의식을 표현해야 한다는 조급함이 있었어요. 단편이 그런 주제적 집중력이 있어야 한다는 마음가짐도 심했고요. <백색인>을 만들 때 목표는 하나였던 것 같아요. ‘완성하는 것’. 완성하기 전까지 복잡하고 어려운 과정이 많았거든요.

 

 

<백색인>(1993)

 

주성철 평론가 : 주제의식 말씀해 주셨는데 이 작품에서 주인공이 자동차 수리를 맡긴 후 걸어서 계단을 올라가는 장면이 있는데 <기생충>에서 계단을 내려오는 사람들의 이미지하고 겹쳐져서 수직적인 계급과 상하 구조가 그때부터 보였더라고요.

 

봉준호 감독 : 듣고 보니 정말 그렇네요. 그런 로케이션에 영감을 많이 받았어요. 옛날식으로 표현하면 달동네라고 할 수 있는 곳 꼭대기부터 고층 아파트를 지은 건 93년 그 순간에만 찍을 수 있었어요. 전체가 다 고층 아파트로 재개발되지 않고 달동네 꼭대기만 된 건 지금 보면 초현실적이고 묘한 느낌이 들어요. 주인공의 집은 중산층 아파트니까 그런 동선도 생각하게 된 거고 <기생충>에서는 그 반대의 동선이 나타난 거죠.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천국과 지옥> 로케이션 느낌과 배열에서도 영감을 받았어요. 서울은 지금도 재개발이 많이 되고 주변도 빨리 변화하는 도시인데 90년대에는 더 심했잖아요. 그때 모습이 담겨있는 기록인 것 같아요.

 

주성철 평론가 : 다음으로 이야기 할 작품은 <프레임 속의 기억들>인데 이 작품은 감독님께서 언급을 하신 적이 별로 없고 러닝타임도 짧아요. 근데 또 영화의 흥미로운 지점은 <프레임 속의 기억들>에 나오는 소년 (강아지 방울이와 함께 하는)의 모습에서 소년 봉준호의 모습이 보여서 흥미롭고 자전적인 캐릭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봉준호 감독 : 제가 키웠던 강아지 이름이 방울이가 맞아요. 대구 살 때 방울이라는 개를 너무 좋아해서 키웠는데 서울로 이사를 오면서 헤어지게 됐어요. 그때 상실감도 컸고 꿈에도 나왔는데 그런 어릴 때 마음을 담은 거예요. 처음 한국영화아카데미에 입학했을 때, 다섯 컷 안에 하고 싶은 스토리를 설명해라 했고 그 과정에서 제 개인적인 이야기를 넣었습니다.

 

 

<프레임속의 기억들>(1994)

 

주성철 평론가 : 이 작품을 지금에서 보면 흥미로운 점이 데뷔작 <플란다스의 개>처럼 잃어버린 개가 등장한다는 것과 원래 감독님 작품에서는 의도적인 플래시백, 환상장면 연출이 거의 없는데 해당 작품에서는 나와서 흥미롭더라고요.

 

봉준호 감독 : 제 나름대로 뭔가를 연결시키기 위해 꿈에서 현실로 돌아오는 것을 아이의 동작과 매칭 시키려고 했는데 잘 안됐어요. 그때 배우도 확 돌면 됐었는데 아이여서 뭐라 할 수도 없었죠. 의도한 컷의 연결이 잘 안돼서 속상했던 기억은 있네요. 그래서 아이들을 영화에 자주 출연시키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과 윤가은 감독을 보면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온라인 GV는 2부에서 계속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