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회 미쟝센 단편영화제 상영작을 다수 봤던 관객들이라면 눈치챘을 것이다. 한 배우의 모습이 전혀 다른 사람인 양 여러 장르 여러 영화에 등장한다. 사랑에 관한 짧은 필름의 <우린같이 영화를보고 소설을읽어>, 절대악몽의 <거미>, <기로>에서 섬세한 연기를 보여준 임선우 배우이다. 절제된 연기와 눈빛은 관객을 한번에 사로잡아 영화가 끝난 후에도 잊혀지지 않게 만든다. 그 감정을 인터뷰에 담아보았다.
Q. 제18회 미쟝센 단편영화제 상영작 중 주연작이 세편이나 있어요. 감회가 남다를 것 같은데.
우선 되게 기쁘고요. 사실 작품이 미쟝센 단편영화제에 많이 온 것에 감사해요. 덕분에 다양한 섹션에 있는 다른 영화들도 볼 수 있어서 좋은 것 같아요.
Q. 이전에 작품 했던 것 중에도 미쟝센 단편영화제에 상영된 작품이 많아요. 미쟝센 단편영화제 상영에 있어서 본인의 역할이 크다고 생각하나요?
아니요. 그렇게 생각하진 않아요. 사실 미쟝센 단편영화제가 제가 처음으로 온 영화제에요. 재작년에 처음으로 영화제에 와봤기 때문에 저한테는 뜻 깊은 영화제이고, 그게 제 힘으로 왔다고는 생각안해요. 좋은 연출분들을 만난 덕분이죠.
Q. 평소 어떤 장르를 좋아하시나요?
사실 장르는 가리지 않고 보는 편이에요. 그렇지만 공포영화는 잘 못 봐요. 공포를 제외하고 나머지 장르들은 대부분 다 좋아하는데, 그 중에서는 코미디를 좋아해요. 코미디 영화 중 기억에 남는 영화는 최근에 <페니 핀처>라는 프랑스 영화를 봤어요. 되게 재밌어요. 코미디라는 게 보고 있으면 적당히 가벼우면서도 뭔가를 잊게 만들어 주잖아요. 그게 큰 힘인 것 같고, 잘 만든 코미디 영화를 볼 때 좋은 것 같아요.
Q. 맡았던 역할 말고 다른 역을 해보고 싶다면, 어떤 장르에 도전해보고 싶은지?
코미디 장르 해보고 싶고요. 언젠가는 액션에도 도전하고 싶어요. 느와르 같은거요. 재미있을 것 같아요.
Q. <거미>, <기로>, <우린같이 영화를보고 소설을읽어> 에서 각각 제일 좋아하는 장면이 있다면 소개해주세요.
<거미>에서 생각나는 건 마지막 장면에서 혜원이 거미를 발견하는 부분이요. 나중에 영화를 봤는데, 그때 처음으로 영화를 보면서 거미가 하나의 생명체로 느껴졌어요. 저를 보고 있는 모습이 진짜 거미가 눈으로 나를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더라고요. 처음으로 거미가 단순히 곤충이 아니라 하나의 생명체로서 느껴졌던 순간이 아닌가 싶어요. <기로>에서는 남자운전기사가 불운에 대해 얘기를 시작할 때, 여자가 하는 일을 멈추고 남자를 바라보는 장면이요. 터널 들어가기 전 장면인데, 여자가 남자의 말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하는 장면이라 기억에 남아요. <우린같이 영화를보고 소설을읽어>는 에피소드가 나뉘어져 있어서 뽑기가 힘든데, 박종환 배우님의 얼굴이 클로즈업되는 순간이 좋은 것 같아요.
Q. <거미>는 결혼을 앞둔 여자의 욕망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주변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이야기도 아니고, 겪어본 이야기도 아닐텐데 어떤 감정을 생각하며 연기했나요?
사실 처음에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 논리적으로 이해가 되는 감정은 아니었어요. 그냥 직관적으로 이해가 되는 느낌이었거든요. 혜원이 가지고 있는 심리가 뭔가 말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이해가 되는게 신기하다고 느꼈어요. 이 영화를 할까 고민하고 있는 시점에서도 해야겠다고 생각한 이유가 이거예요. 한 인물의 심리가 이렇게 직관적으로 이해되는 시나리오를 받아본 것이 귀한 일이라고 생각했거든요. 어떤 보편적인 감정이 분명히 있었다고 생각해요. 물론 극중 혜원 같은 경우는 좀 극단적이고 표현되는 방식들이 극적인 부분이 있긴 하지만, 결혼한 여자가 갖게 되는 미묘한 긴장이나 불안들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보편적인 감정이라고 생각했어요.
Q. <거미>에 나온 거미는 실제 거미였나요?
실제 거미예요. 타란튤라라는 종인데, 독이 있기 때문에 잘 다뤄주어야 해요. 촬영하기 몇 주 전부터 거미박물관에 가서 실제 거미를 다루는 법을 배웠어요.
Q. 무섭진 않았나요?
무서웠어요. 무서웠는데 다행히 물지는 않았어요. (웃음)
평소에 거미라는 곤충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알 기회가 없잖아요. 왠지 거미라고 하면 혐오스러운 듯한 느낌이 들고. 그렇기 때문에 이 영화의 소재로 사용한 것도 있는데, 영화를 찍으면서 거미라는 곤충에 대해서 많이 알게 됐어요. 인간의 감정으로는 혐오 당하는 곤충이지만, 사실 거미가 누군가의 혐오를 받을 대상은 아니거든요. 다만 거미가 사는 환경이 습하고 곰팡이가 많이 핀 곳에서 살고, 거미가 먹는 것들이 인간 입장에서는 두려움을 줄 수 있는 것들이기에 인간의 입장에서 무섭고, 혐오스럽다는 인식이 있어요. 거미를 다루면서 제가 잘 알지 못했던 세계를 알게 된 것 같아서 좋았어요.
Q. <기로>는 자동차 안에서 극이 진행되는데, 촬영하기 불편한 점도 있었을 것 같고 감정잡기도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어떻게 촬영이 진행되었나요?
<기로> 촬영은 부산에서 했는데 굉장히 더웠어요. 그리고 촬영적으로도 쉽지 않은 작품이었어요. 단편영화는 환경이 갖춰진 상태에서 찍을 수가 없잖아요. 도로를 통제하고 찍을 수가 없기 때문에 도로에 다른 차들이나 트럭들도 많았어요. 그런 상황에서 찍어야 했기에 쉽지 않은 촬영이었죠. 하지만 택시 안이 폐쇄적인 환경이어서 인물의 심리를 담는 데에는 도움이 된 것 같아요.
실제로 <기로>를 찍기 전에 비슷한 느낌을 받은 적이 있어요. 여성들은 그런 게 있잖아요. 밤에 택시를 타면 긴장되는 순간들이. 지방에서 촬영하고 늦게 택시를 타는 상황이었는데, 택시기사님이 모자를 눌러쓰고 말씀도 없이 과묵하시고 이상한 분위기의 노래를 틀어 놓으신 거예요. 그렇게 30분 정도를 택시를 타고 있었는데, 그런 느낌이 촬영할 때 도움이 되었죠. 이게 정말 현실적인 공포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단순히 영화적인 이야기라기보다는 <기로>는 더 현실적인 것과 닿아 있는 이야기라고 생각해요.
Q. 대학교에서는 예술경영을 전공하셨다고 들었어요. 특별히 연기를 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처음에는 배우가 되려고 연기를 시작한 건 아니었어요. 그냥 어렸을 때부터 연기가 하고 싶었고, 그런데 실제로 연기를 해보니까 재미있었고. 하지만 내가 정말 배우가 될 거라는 생각까진 못했던 것 같아요. 어느 순간 마음이 커졌고, 마음이 커지던 때에 마침 좋은 연출들을 만난 것 같아요. 그 연출들과 작업하면서 연기를 더 해보고 싶고, 이 길을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연기를 계속 하고 있습니다.
Q. 촬영에 들어가기 전 인물을 준비하는 배우님의 방법이 있다면요?
어떻게 정해진 방식이 있는 건 아니에요. 약간 서서히 스며드는 것 같아요. 이렇게 밖에 말을 못하겠어요. 그 과정에서 연출과 대화를 하는게 도움이 많이 돼요. 시나리오를 읽으면서 인물에 대해 알아가는 것도 있고, 연출과 대화를 하면서 알게 되는 것도 있고, 시간을 가지고 인물에 조금씩 다가가는 편이에요.
Q. 그럼 인물의 감정에 치중해서 준비하는 편인가요?
그렇진 않아요. 감정선은 중요하죠. 인물의 감정도 중요하지만 감정선보다는 행동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감정은 사실 행동에 의해서 따라오는 것들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인물이 어떤 말을 하는지 어떤 행동을 하는지 그것은 굉장히 구체적이잖아요. 감정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런 구체적인 것들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감정을 만들기 위해서 연기를 하는 건 아니에요. 이 말이 되게 중요하네요.
Q. 다른 인터뷰들을 봤는데, 예술 또는 연기, 영화에 대해 애착이 남다른 것 같다고 느꼈습니다. 배우님이 가진 연기철학이 있다면? 또는 배우로서의 목표가 있다면 어떤 게 있나요?
어떤 배우가 되어야 겠다 라는 목표는 가지고 있지는 않아요.
어쨌든 배우라는 것은 인간을 연기하는 거잖아요. 하나의 인격체를 연기하는 것인데 가능한 그 인간을 잘 살려내고 싶고, 다만 내가 맡은 인물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게 저희가 하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영화에 나오는 인물이라는 게 단순히 극의 전개를 위해서 필요한 인물이 아니라 하나의 인간들이잖아요. 비록 허구의 세계를 살고 있긴 하지만. 내가 맡은 인간을 가능한 살아 숨 쉴 수 있는 한 명의 인간으로 보이게 만드는 것이 현재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부분입니다.
Q. 미쟝센 단편영화제 응원의 한마디 해주세요!
미쟝센은 저한테 정말로 배우로서 좋은 기회를 준 영화제예요. 그래서 고맙고 앞으로도 영화제를 통해서 좋은 감독과 배우들이 배출될 수 있는 영화제로 남아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저도 열심히 할게요. (웃음)
우리가 평소 허구의 생명이라고 생각했던 대상을 보듬고 이해할 줄 아는 임선우 배우는 인간적이기도, 멋져 보이기도 했다.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본인만의 세계를 구축할 줄 알기에, 앞으로의 행보가 기다려지는 배우이다. 내년 미쟝센 단편영화제에서는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지 기대해보며 본 인터뷰를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