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6월 14일, 흐리던 하늘이 점차 맑아져 화창한 여름빛을 띠었다. 우리네 인생사 담은 비정성시 얘기하기 딱 좋은 날씨다. 서울시 종로구 필운대로에 위치한 파움스 서울에서 미쟝센 단편영화제 비정성시 GV가 진행됐다. 파움스에 들어가자 형광핑크색 티셔츠를 입은 V-CREW들이 분주하게 GV를 준비하는 모습이 보였다. 감독과 영화제 스태프, 자원활동가가 영화 이야기를 하려고 발 디딜 틈 없이 모여 있는 모습을 보니 지금 여기가 미쟝센 단편영화제의 현장이라는 것이 새삼 느껴졌다.
오전 10시부터 저녁 6시 30분경까지 총 4차례의 GV가 이어졌다. 비정성시 섹션 1과 섹션 2 GV는 영화연구자 이민호 님이 모더레이터를 맡아 진행됐다. 섹션 1 GV에는 <김현주>의 강지효 감독 <우리의 낮과 밤>의 김소형 감독 <어제 내린 비>의 송현주 감독 <언팟>의 박희은 감독이, 섹션 2 GV는 <삼중주>의 변여빈 감독 <창문 너머에>의 양지웅 촬영감독 <스마일 클럽> 최은우 감독 <아버지의 몸값>의 장선희 감독이 함께했다.
비정성시 섹션 3과 4 GV는 영화연구자 김병규 님이 모더레이터를 맡았다. 먼저 진행된 섹션 4 GV에는 <신김치>의 이준섭 감독, <굿타임>의 강동인 감독, <작년에 봤던 새>의 이다영 감독, <언젠가 터질거야>의 서태범 감독이 모여 영화에 관해 이야기했다. 마무리를 맺은 비정성시 섹션 3 GV에는 <실>의 이나연 감독, <실버택배>의 김나연 감독, <술래>의 김도연 감독, <신도시 키드>의 김유원, 남소현 감독이 한자리에 모였다.
감독의 입을 통해 영화 얘기를 듣다 보니 더욱 느낀 건 비정성시라 해서 회색빛 이야기만 있는 건 아니라는 거다. 우리 일상이 다양한 빛을 띠듯 비정성시 섹션에서도 현실의 냄새를 풍기는 다양한 이야기와 다채로운 색들을 만나볼 수 있다. 가족. 친구. 폭력. 노동. 치매. 웃음. 결혼. 택배. 김치 등. 사회 곳곳에 있는 먼지 쌓인 단어들을 들여다보고 고유의 색으로 칠해나가는 시간들이 결코 쉽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GV는 우리가 이 영화들을 만나기까지의 지난하지만 소중한 과정들을 만나보는 시간이었다. 장면 장면 묻은 손때를 들여다보면 영화가 더욱 빛나고 사랑스러워지는 걸 느낄 수 있을 거다.
비정성시 하면 또 그 안에 숨 쉬는 인물들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비정성시를 애정 하게 되는 이유 중 하나는 우리처럼 인생을 살아가는 중인 사람들을 진솔하게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궁금하기도 사랑스럽기도 밉기도 존경스럽기도 한 인물의 이야기를 함께 하다 보면 왠지 모를 든든함이 생긴다. 비정한 도시 속에서도 우리는 우리의 이야기를 만들며 살아가고 있다는 위로와 용기가 이 영화들, 그리고 GV 안에 있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작은 공간 안에서 영화에 대한 질문과 답변이 이어졌다. 단편영화에 관한 대화엔 전과 같은 열정이 있었다. 전과 다른 게 있다면, 감독 앞에 관객이 아닌 카메라와 핑크빛 V-CREW만이 있었다는 것이다. 영화제에서 관객과 감독이 만나 신명 나게 영화를 묻고 답하는 풍경은 아니었지만 미쟝센단편영화제는 계속 관객과의 대화를 이어나갔다. 이 대화가 언젠간 관객과 만날 날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온라인에서 비정성시 속 삶과 관객의 삶이 마주칠 것을, 모니터를 넘어 감독과 관객의 마음이 맞닿을 것을 믿었기 때문이다. 2020년에도 우리 사회를 꿰뚫는 단편영화들에 대해 이야기 나누며, 어김없는 영화제의 설렘과 기쁨을 즐기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