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회 미쟝센 단편영화제

OFFICIAL DAILY01

결국 영화를 선택한 이유는 보이스였다

글 : 오명진 / 사진 : 홍서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한여름마냥 햇볕이 강렬했던 15일(월) 오후 5시 십분 전. 네 배우가 종로의 한 서점 ‘파움스 서울’에 모였다. 아담한 서점에 마련된 촬영 대기 장소는 배우들과 스태프 두 어명이 모여 앉을 만한 크기의 흰 테이블이었다. 이들이 테이블에 앉아 담소를 나누는 동안 그 옆에서 핑크 반팔 유니폼을 맞춰 입은 V-CREW들은 조명을 켜고, 의자를 보기 좋은 구도로 배치하며 분주히 촬영을 준비했다.

 

삼십 여분이 지났을 무렵 잠깐의 웅성거림과 함께 찰칵찰칵 사진 몇 방이 찍혔다. 그 뒤로는 약속이라도 한 듯 잡음이 착 가라앉았다. 제19회 미쟝센 단편영화제 ‘장르의 상상력展’ 경쟁 부문 <스마일클럽> 김금순, <작년에 봤던 새> 강진아, <그녀를 지우는 시간> 문혜인, <신의 딸은 춤을 춘다> 최해준 배우와의 스페셜 GV가 시작됐다.

사회는 영화연구자 남기웅 님이 모더레이터를 맡아주셨다. 대기 중 담소에 따르면 그는 GV 준비를 위해 집 거실에 가족들을 불러놓고 작은 영화제를 열었다. <스마일클럽> 후반부 장면에서 사회자의 어머니는 눈물을 흘리셨단다. 이유를 물어보니, 50대까지 삶을 이끌어온 여성이라면 설명하기 힘든 어려운 감정이라 답하시더랬다. 이에 김금순 배우는 중년 여성 관객을 대표하는 어머니의 눈물을 이렇게 해석했다. “엄마와 싸우고 하는 과정에도 아들은 해맑게 나오는 부분이 두 가지(감정)가 있었던 것 같다. ’저걸 죽여, 말어?’와 ‘그래도 다행이다. 쟤 웃고 잘 있네’처럼 안도하게 하는, 아들을 한없이 바라볼 수 있게 하는 그런 감정.”

 

두 편의 전작에서 육아, 가정 스트레스로 ‘가출’했었던 강진아 배우. 여성들이 특히 공감할 캐릭터를 자주 맡은 그는 “제 삶도 을에 놓일 때가 많았다”며 영화를 통해 사회 일원으로 소리 낼 기회가 주어진다고 했다. 연기할 때 주안점을 두는 부분이 있느냐란 질문에는 특유의 차분한 목소리로 다음과 같이 답했다. “가장 가까운 가족의 모습을 많이 생각한다. 주변에서 실제 이야기도 많이 들으려 하고. 이미 시나리오가 현실을 뛰어넘는 얘기가 아니기 때문에 그 안에서 충실해지려 한다”라고 했다. 개중 “엄마 언니를 봤을 때 엄마란 이름으로 여전히 지고 있는 것들이 있는데, 그런 걸 보면 가출이 한 번이면 안 될 것 같다”라는 답변은 현장을 갑자기 터지게 만들기도 했다.

문혜인 배우는 머리를 양 갈래로 따고 왔다. 유쾌하게 제스처를 쓰며 의견을 개진하는 그의 모습을 보니 밝음과 진중함이 스타일에 그대로 반영된 듯했다. “예술가뿐만이 아니라 내가 몰랐던 직업의 세계를 들여다보는 건 배우에게 흥미롭고 재미있는 작업 같다. (배역이 주어지면) 실제 모델을 찾아서 그분의 삶을 조사하고 관찰하는 시간을 갖는다. 직접 만나서 한 시간 이상의 귀한 얘기를 듣기도 한다.” <그녀를 지우는 시간>에서 그가 맡은 편집자는 어떻게 표현됐을지 궁금해졌던 지점이다.

 

<신의 딸은 춤을 춘다>의 최해준 배우는 본래 전문 보깅 댄서다. 그런 그가 이번에 연기를 하게 된 배경에는 군대가 있다. “현역 병사 시절 감독님이 간부였다. 군에서 많은 작업을 했는데, 나가서도 한 번 영화 해보면 좋겠다는 얘기를 나눴다.” “연기 경험이 없어서 ‘내가 감히 해도 될까?’하는 생각에 조심스러웠다. 나도 댄서로서 전문직에 대한 존중이 있기 때문에 실례일 수 있겠단 생각이 들어 고민을 많이 했다. 결국 영화를 선택한 이유는 보이스였다. 내가 이런 얘기를 할 수 있는 사람이 된다면 (하는 게 맞지 않을까 생각했다).”

 

공교롭게도 네 배우의 극 중 배역은 모두 억압으로 고통받는 ‘을’이다. 하지만 이번 GV에서 나타났듯 영화와 연기를 대하는 이들의 모습은 참으로 행복해 보였다. 김금순 배우의 말을 빌려 표현하자면 다이내믹하고 예쁘며 사랑스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