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회 미쟝센 단편영화제

OFFICIAL DAILY13

누군가에게는 횃불처럼

글 : 송혜령 / 사진 : 강민수

지난 날의 과오가 자꾸만 발목을 잡을 때 우리는 과연 어떤 선택을 내릴 수 있을 까. 삶과 죽음, 그 사이의 현실을 완벽하게 구현한 김서진 미술감독을 만나 보았다.

Q. 미술 감독이 되겠다고 다짐한 계기가 있는가?
영화과의 학부생이기에 미술감독으로 진로를 잡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전에 미술을 전공하였기에 여러 군데에서 미술감독으로 불러주시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보통 연출이 아닐 때에는 미술을 담당하게 되었다. <세이레>의 경우 이 전 작품에서 미술 감독으로 일하고 있던 차에 선배의 소개로 인연이 닿아 참여하게 되었다.

 

Q. <세이레> 시나리오를 봤을 당시부터 참여를 하기까지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
미술감독이 최종적 목표가 아니기에 작품을 선택하는 데에 있어서 시나리오를 많이 보게 되는 것 같다. 내가 연출적으로 보고 배울 수 있는 유의미 한 곳을 가고 싶었고 그런 의미에서 <세이레>를 선택할 수 있었던 것 같다.

 

Q.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의 느낌은 어땠나?
<세이레> 시나리오를 밤에 읽게 되었다. 기혁이 세영 아버지의 시신과 마주할 때 시신의 입에서 ‘응애’ 소리가 나는 부분이 정말 무섭다고 생각했다. 원래도 박강 감독님의 스타일을 알고 있었고 전작인 <매몽> 의 경우도 섬뜩하다 생각했었는데, 이번 작품은 정말 장난 없더라. 이런 영화가 잘 나오지 않다 보니 선택한 이유도 있는 것 같다.

Q. <세이레> 프로덕션 디자인의 기본 컨셉이 있었는가?
무조건적으로 감독님과 잡고 가자고 했던 것은 관의 이미지였다. 문을 비롯해 커튼까지 전체적으로 브라운 톤을 사용해 관의 이미지를 잡아주려 했다. 하지만 예산이 존재했기 때문에 해내지 못했던 부분도 있다. 감독님은 기혁의 집에서 죽음과 생명의 이미지가 동시에 부딪히길 원했다. 아기 요람을 관이라고 보자면 식물 같은 것을 근처에 걸어 두어 그 이미지가 부딪히길 원했는데 현실적인 측면에서 구현되지 못해 많이 아쉬웠다.

 

Q. <세이레>의 톤앤 매너를 설정할 때 참고한 작품이 있는가?
이경미 감독님의 <아랫집> 을 감독님이 예시로 들어 주셨다. 식물들을 무성하게 하자고 설정했던 점이 좌절되었기에 레퍼런스라고 할 수는 없게 되었지만.
그것 외에 미술적으로 제시 되었던 것은 크게 없었던 것 같다. 내가 역으로 <유전> 과 같이 아리 에스터 감독의 작품들을 감독님에게 제시했는데 현실적인 측면에서 막상 반영 되었던 건 없었다. <아랫집> 정도가 약간의 참고작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Q. 썩은 사과, 금줄과 같은 강렬한 소품들의 등장이 영화의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신경을 썼던 지점이 있다면?
영화 초반에 등장하는 썩은 사과의 경우 시나리오 상으로 보았을 때 CG로 구현될 줄 알았다. 하지만 첫 회의가 끝나고 감독님에게 물었을 때 (CG로 구현하는게) 아니라고 하시더라. 이후 사과를 작업하는 과정에서 감독님이 겉은 매끈하고 예쁜데 반으로 갈랐을 때 그 속이 썩었다는 점이 보이게 만들어 달라 요구하셨다. 감독님과 같이 김치 냉장고에 사과를 2개월 정도 묵혀 보기도 하고 오만 것들을 다 해보았는데 사과라는 것이 갈변하다 보니 까다로웠다. 현장에서 바로 만들어야 한다는 점을 생각했을 때 식용색소를 주입하는게 그나마 괜찮은 것 같아 사용하게 되었다. 그렇게 썩은 사과를 만들어내는 것이 가장 큰 도전이었던 것 같다. 사과에 이어 금줄에 대한 촬영 일화를 이야기 해보자면 기혁의 집 안에 연출 될 금줄이 굉장히 잘 부숴졌다. 사과와 금줄 같은 것들이 미리 작업을 거칠 경우 분명히 손상될 수 밖에 없기에 현장에서 작업을 했다. 저녁까지 금줄을 준비해야 한다 하면 촬영 중 미술팀은 밖에 나가서 금줄을 꿰고 나는 계속 오가며 확인을 하는 식이었다. <세이레>는 프리 프로덕션 때 소품을 만드는 것이 아닌 현장에서 만드는 것으로 대부분 진행되어 유난히 도전적이었던 것 같다.

Q. 그럼 이러한 소품들은 시나리오 상에 이미 다 녹아 있었나.
대부분 이미 시나리오에 녹아져 있는 상태였다. 다만 요람 위 모빌에 엮인 흰 띄 같은 주술적 측면을 구체화 하는 요소는 내 아이디어로 만들게 되었다.

 

Q. 아이가 있는 집과 장례식장. 두 공간 속 디테일에 눈이 간다. 현실적인 공간 구현에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단편영화 속 미술을 할 땐 우선 채워 넣은 뒤 그 이후에 디테일을 잡는 것이 답이라 생각한다. <세이레> 속 기혁의 집을 보면 빈 공간이 거의 없다. 원래도 가구가 많은 집이었지만 내 집이 텅텅 빌 정도로 많은 가구들을 들고 가 채워 넣었던 것 같다. 장례식장과 영안실 같은 경우에는 실제 로케이션 섭외가 가능했고 그 공간 속 소품들 또한 원래 있는 것을 사용했다. 실제로 사용되는 완전한 관 하나와 촬영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 소품으로 자른 관 하나를 더 준비해서 촬영을 진행했다.

Q. 미술감독은 감독의 상상을 현실로 구체화 하는 역할이다. 그런 점에서 구현 해보고픈 장르/스토리 가 있다면?
현재 졸업작품을 준비하고 있는데 장르가 SF이다. 미래의 단상을 보여주는 형식의 SF는 아니고 현재의 문제들이 미래에서 또한 제기되는 뉘앙스의 영화를 계획하고 있다. 미래를 구현하는데 있어서 현실적 이미지 그리고 이질적 이미지 사이에서 고민을 하고 있는 것 같다.

 

Q. <세이레> 속 관객들이 눈 여겨 봐줬으면 하는 특별한 지점이 있다면?
감독님이 내게 말씀해 주셨던 것처럼 사과에 대한 의미를 생각해보셨으면 한다. 본질적으로 썩어있는 것이 과연 무엇일까에 대한 고민을 같이 하면 영화를 더 즐길 수 있지 않을까 싶다.

 

Q. 김서진 감독님에게 단편 영화란?
내게 단편의 기준이 되는 영화가 하나 있다. 유은정 감독님의 <낮과 밤>이라는 작품인데 해당 작품을 항상 내가 생각하는 단편의 기준으로 삼는다. 그 많은 거장들의 작품보다 내 인생에 가장 중요한 영화는 <낮과 밤>이다. 아마 그런 가능성이 아닐까. 단편 영화는 반짝이는 빛 같은 면모가 있는 것 같다. 장편과 비교했을 때 쉽게 꺼질 수 있는 불씨이기도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횃불처럼 밝혀주게 되지 않을까 싶다.

 

김서진 감독님이 구현한 <세이레> 속 세계관처럼 우리는 요즘 삶과 죽음의 경계에 한층 가까워진 느낌이다. 그 어느 때 보다도 소중한 것에 대한 가치가 조명되고 있는 지금, 당신만의 횃불을 찾을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