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회 미쟝센 단편영화제

OFFICIAL DAILY07

살만한 사회를 보여주는 영화, 처음과 끝을 장식한 이상근 감독과의 만남

글 : 유소은, 남다현, 한지나, 황정민 / 사진 : 김동영, 이재원

빗소리가 멎고 어둠이 찾아온 6월 30일 저녁. 미쟝센 단편영화제의 마지막을 장식한 4회차 상영이 끝난 후, <감상과 이해, 청산별곡>의 이상근 감독이 참석한 GV가 진행됐다. 이상근 감독은 준비위원회 부집행위원장으로 제20회 미쟝센 단편영화제를 이끌었으며, 개막작과 마지막 상영 및 GV로 처음과 끝을 함께했다. 그는 약 17년 전에 만든 작품을 다시 마주한 소회를 밝히며 솔직하고 유쾌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M: 관객분들께 인사 말씀과 오랜만에 영화 보신 소감 말씀 부탁드립니다.

 

이상근 감독: 안녕하세요. 이상근입니다. <감상과 이해, 청산별곡>을 17년 전에, 2003년도에 만들었던 것 같아요. 오랜만에 필름으로 다시 보니까 너무 오래전에 영화를 찍은 것 같아서 제가 오래된 사람 같은 느낌이 들더라고요. 제가 찰리 채플린 시대의 영화를 보는 기분을 지금 세대 여러분이 느끼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고요. 미쟝센 단편영화제 폐막인데, 마지막까지 상영까지 함께해주시고 영화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M: 사실 2004년 작품이니까 그렇게 오래된 작품은 아닌데, 16mm 상영이라서 그런 느낌이 강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16mm라는 포맷에 대해 먼저 질문드리고 싶어요. 16mm 작업하셨을 때, 어떤 경험 하셨는지 자세하게 들어보고 싶습니다. 색감이나 느낌이 이 매체가 아니라면 낼 수 없는 개성이 있는 것 같아요. 그런 매력에 관해서도 얘기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상근 감독: 2003년, 제가 20대 중반을 넘겼을 때 만든 영화예요. 당시에 영화과는 16mm를 해야 쳐주는 분위기였거든요. 비슷한 수준의 영화라도 16mm나 35mm로 찍으면 암묵적으로 우선 발탁되는 경우가 있었어요. 그래서 저도 16mm로 해보고 싶어서 돈을 구해서 열심히 찍었어요. 당시에 6mm가 나올 때고, HD는 아직 등장하지 않았던 거로 기억하는데요. 16mm로 하면 돈도 많이 들고 과정이 복잡하고 까다롭거든요. 보시다시피 사운드가 열악하잖아요. 모노 사운드인데, 필름 옆에 마그네틱테이프 같은 게 입혀져 나오다 보니까 아까 신재인 감독님 영화는 너무 많이 틀어서 소실된 것 같아요. 당시에는 여러모로 힘들게 찍었던 기억이 있고요. 영화를 제대로 찍어보자 해서 16mm로 찍었고, 추격자 찍으신 촬영 감독님이 데뷔하시기 전에 모르는 사이인데 가서 찍어달라고 해서 찍었어요. 힘들게 찍긴 했는데, 당시에 여기저기서 많이 불러주셔서 괜찮은 성과를 냈던 기억이 있습니다.

 

 

 

M: 이번에 이 포맷을 그대로 가져와서 상영한 미쟝센 단편영화제 측의 의도가 분명히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래서 필름 매체만의 매력을 더 느끼신 게 있다면.

 

이상근 감독: 요새도 필름 카메라로 사진 찍으시는 분이 많더라고요. 아날로그만의 룩이 있거든요. 색의 개조라든지 빛을 표현하는 스펙트럼 자체가 디지털이 따라잡았다고 하지만, 옵티컬이 주는 고유의 색감은 따라잡지 못할 것 같아요. 그래서 당시에 ‘필름이 아니면 영화가 아니다’, ‘필름이 아니면 죽음을’ 이런 분들도 계셨는데요. 물론 지금은 디지털로 다 열심히 찍고 계시지만, 그러던 시절이 있었고요. 16:9가 아니라 4:3 아카데미 사이즈 1.66:1로 하다 보니까 지금이랑 다른, 웨스 앤더슨 영화 같잖아요. 지금 와서는 생경해 보일 수도 있는데, 당시에는 정형화된 포맷이었고, 오히려 그때는 16:9에 매력을 많이 느꼈던 것 같아요. 어쨌든 다시 보니까 눅눅했던 빛의 질감을 확 잡아당겨서 그 순간을 기억하게 만드는 저장 매체인 건 분명한 것 같아요. 그런데 옵티컬이라는 방식은 어쩔 수 없이 사장될 수밖에 없었겠다고 하는 반증이 됐던 자리인 것 같기도 해요.

 

 

 

M: 궁리출판 제작이라고 KMDb 사이트에 기록돼 있는데, 궁리출판은 어떤 곳인지.

 

이상근 감독: 이거 때문에 골치가 아픈데요. 삼촌 출판사인데, 당시에 600만 원 정도 지원받아서 제작에 삼촌 출판사 이름을 올렸어요. 근데 이번에 상영하려고 하다 보니까 저작권자가 그쪽으로 되어 있어서 골치가 아프더라고요. 삼촌의 후원으로 만든 영화라 궁리출판의 이름을 올렸습니다.

 

 

M: 작품에 관한 질문을 드려보고 싶은데요. 청산별곡이라는 거 자체가 흥미로웠습니다. 부조리답기도 했고 텍스트가 극 내용과 잘 맞아떨어진 것 같기도 하고요. 이 작품을 어떻게 시작하셨는지, 왜 청산별곡이었는지 궁금합니다.

 

이상근 감독: 당시 단편영화계의 기조나 분위기가 엄숙주의라고 해야 할까. 진지, 탐구, 철학적 이런 사조가 분명히 있었고요. 장르적 단편영화를 많이 소개한 게 미쟝센 단편영화제인데, 그 이전 영화는 진지하고 사유에 관한 이야기가 많았어요. 저도 당시에 깊은 사유의 결과물로 단편영화에 접근해야 하나? 이런 고찰의 시간이었던 것 같아요. 그 시절이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그럴듯하게 만들고 싶었던 치기가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까 고등학교 때 배웠던 청산별곡에서 메타포와 비유를 하다 보면 그럴듯한 그림이 나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그 당시에 어떤 의도로 했는지는 정확히 기억이 안 나서요. 아마 엔딩을 먼저 정해놓고 거기서부터 빌드업을 해나갔던 것 같아요. 내용은 교육에 대한 한 인간에 대해 철학적 사유를 하려고 하는 듯해 보이지만, 사실은 엔딩으로 달려가기 위한 빌드업일 뿐이더라고요. 당시 유행했던 분야인 반전을 위한 빌드업의 과정으로 구성했던 것 같아요.

 

 

 

M: <감상과 이해, 청산별곡>이 감독님의 첫 번째 영화인가요?

 

이상근 감독: 아니요. 그 전에 단편영화를 몇 편 찍었고, 16mm 작품으로 영화제에 처음으로 저라는 사람을 알리게 된 작품은 맞아요.

 

 

 

M: 다른 단편영화와 <엑시트>에는 유머가 많이 들어가 있다고 알고 있는데, 유머가 하나도 없다는 점에서 신기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작품 만드실 때는 지금의 감독님의 개성이라고 받아들여지는 점, 유머를 넣으실 생각은 없으셨나요?

 

이상근 감독: 16mm 포맷으로 찍겠다고 결심한 순간 돈이 너무 많이 들기 때문에 헛돈이 되면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말도 안 되는 농담을 하지 말고, 그럴듯한 걸 만들어야 한다는 압박이 있었던 것 같아요. 코미디도 좋아하고 유머도 좋아하긴 하지만, 처음으로 제대로 만드는 작품이고 더군다나 16mm 필름이라는 생각에 이상한 짓 하지 말자는 생각이 있었어요. 이후에는 작품 활동을 하면서 제가 하고 싶은 걸 확장해나갈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이 작품은 처음이라 부담이 있었어요.

 

 

 

M: 부담이 있으셨다고 하지만, 과감한 장르적 시도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캐릭터나 상황에 대한 정보가 많이 생략돼 있고 바로 제시하는 게 흥미로웠는데요. 이 이야기를 만들기 위해서 감독님이 설정해놓은 배경이 꽤 많은 것 같습니다. 어떤 배경이 있는 건지 궁금합니다.

 

이상근 감독: 그 시절의 저에게 묻고 싶은 것도 있는데요. 아마도 강도질을 하는 어떤 사람이었고 어떤 연극적인 쇼를 벌이게 됐는데, 저 사람이 정상인지도 모르겠고, 그 설정까지는 대사에 직접적으로 넣었던 것 같아요. 지금은 얕은수라는 생각도 드는데요. 여기서 제가 영화를 다시 보면서 느낀 건 ‘사기를 쳤구나’라는 생각도 들었어요. 그 당시 제가 사람들을 혼란스럽게 만들고, ‘이게 뭐지?’라는 생각을 만들어주려고 했던 것 같아요.

 

 

 

M: 영화 속 선생님 캐릭터가 중년 남성이 아니라 젊은 남성 혹은 여성으로 변주가 됐다면 영화의 분위기나 메시지가 확연히 달라졌을 것 같아요. 감독님이 처음에 이야기를 쓰실 때 혹은 배우를 캐스팅하실 때 중년 남성의 캐릭터로 설정하신 이유가 궁금합니다.

 

이상근 감독: 왜냐하면 제가 남고를 나왔고, 어쨌든 저의 인생 역경이 이 단편영화에도 표현이 된 거 같은데 제 경험에서 해결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어서 그런 경험을 풀어서 쓴 것 같아요. 고등학교 때 선생님 모델 될만한 분이 계셨고 거기에 빗대어 자신의 얘기를 전하는 학생이 아닌 어떤 남자와 그 남자에게 죽임을 당할 수 있는 상황에도 자신의 의지와 인생을 부정당하고 싶지 않은 선생님에 대한 얘기로 끝이 나는 건데 제가 봐왔던 선생님들은 거의 저런 분이셨던 것 같아요. 물론 인정하고 싶지 않은 분도 계시지만, 약간 제가 학교에 다니던 시절은 극악무도했던 시절이라서 군인 같은 인상의 이미지가 남아있는 것 같아요.

 

 

 

M: 선생님을 연기하신 배우가 홍석연 배우인데 요즘도 활발히 활동하고 계시고, 찾아보니까 87년도에 이미 데뷔를 하신 분이더라고요. 홍석연 배우를 어떻게 캐스팅하게 되었는지, 현장에서 어떤 분이셨는지 들어보고 싶습니다.

 

이상근 감독: 90년도쯤에 개봉했던 작품인 <파업전야>에서 주연을 하셨던 분이라 그 시절에 영화를 보셨던 분들은 다 아실 거예요. 그때 사실은 이미지 캐스팅이었죠. 저는 <파업전야> 작품도 몰랐고. 인터넷 사이트나 작품을 보고 연락처를 통해 캐스팅 제안을 드렸어요. 하루면 된다고 했는데 그 점에 되게 혹하셨던 것 같아요. 그런데 결론은 이틀을 찍었어요. 그 당시 제가 너무 멘붕이었거든요. 그때 아마 작품에 대한 선배님의 이해나 참여보다는 직업인으로서 접근이셨던 게 더 있었어요. 직업 연기자로서의 접근을 흔쾌히 허락해 주셔서 만나서 잘 찍었던 기억이 납니다.

 

 

M: 촬영에 대해서도 여쭤보고 싶은데요, 교실이랑 경찰들이 들어오는 복도 공간이 정말 붙어있는 공간인 건지 궁금합니다. 또 교실이라는 공간이 굉장히 단순해 보여도 찍기는 어려웠을 것 같은데 촬영 설계에 관한 얘기도 들어보고 싶습니다.

 

이상근 감독: 촬영은 나올만한 게 사실 얼굴밖에 없었어요. 바스트 샷, 미디움 샷. 풀샷이 나올만한 공간도 아니었고요. 저 당시 워크숍 이름이 실용형 워크숍인가 그랬을 거예요. 교수님께서 네거티브 스페이스에 대해서 엄청나게 말씀하셨던 기억이 나요. 인물 간의 거리, 상호작용에 있어서 어떤 프레임이나 룸을 주는 방식이 어떤가 등등. 저도 아마 긴장이 생길 때는 인물의 앞에 헤드룸을 좀 적게 주는 식으로 신을 구성했던 것 같아요. 거의 바스트 샷만 찍다 보니까 나중에는 무엇을 찍는지도 몰랐어요. 그 당시엔 컴퓨터로 현장 편집을 하는 것도 아니고 제가 16mm 카메라로 뒤를 쳐다볼 수도 없는 상황이니까 촬영 감독님을 오로지 믿고 따랐죠. 계속 얼굴만 찍다 보니까 나중엔 뭘 찍는지를 몰라서 촬영을 멈추고 2주 뒤에 편집했던 것 같아요. 그 이전에는 6mm로 교실을 똑같이 해놓고 디지털 콘티로 한 번 해봤던 기억이 있습니다.

 

 

 

M: 교실이나 복도는 실제 공간인가요?

 

이상근 감독: 네, 실제 공간입니다. 스태프 중의 한 명이 자기 고등학교에 저런 이미지가 있다고 말했었어요. 1층이어야 되고 밖에서 조명을 줘야 하니까. 조교 형의 서바이벌 동호회 분들이 오셔서 도움을 줬죠.

 

 

 

M: 영화의 마지막 부분이 뉴스 내레이션으로만 상황의 실제 정보를 알 수 있게 되어 있는데 둘의 반전을 크게 주고 싶어서 중간에 회상 장면이 나오지 않은 건지 궁금하다고 질문해 주셨습니다.

 

이상근 감독: 사실 둘의 관계는 아무것도 아니죠. 영화의 앞부분에서 삐뽀 삐뽀 소리가 들려오면서 한 남자가 교문으로 뛰어오고 있고, 갑자기 교무실의 문이 벌컥 열리면서 선생님 두 명이 있는데 소총을 들이밀면서 ‘나와!’ 하면서 교실로 끌고 들어가고 밖에서 경찰들이 들이닥쳐서 안에서 ‘들어오면 이 사람 죽인다!’라는 부분이 영화에서 생략됐을 거예요. 그다음에 한 명을 죽이고 ‘수업 한 번 해봐’ 하면서 영화가 시작된다고 보시면 될 것 같고요. 그 장면이 들어갔다면 뒷부분의 반전 요소가 전혀 사라지게 되는 구성이다 보니 어떻게 보면 앞부분을 잘라내고 뒷부분만 만들었을 때 효과라고 생각해요. 그 당시에는 갑자기 반전이 드러나는 단편영화가 많았어요. 그래서 그런 식으로 구성했던 것 같아요.

 

 

 

M: 지금 이 영화를 다시 찍으신다면 수정하고 싶은 부분이 있으신지 질문해 주셨습니다.

 

이상근 감독: 전혀 다시 찍고 싶지 않고요. (일동 웃음), 왜냐하면 당시에 제가 충분히 열심히 했다고 생각해요. 그 당시의 제 능력이 영화에서 표현되고 있는 것 같고요. 지금 바꾼다면 ‘국민학교’를 ‘초등학교’로 바꾸는 정도? 아마 더 수려해질 수는 있겠죠. 테크닉적으로. 그리고 대사가 직접적인 것보다는 관객들에게 더 혼란을 주는 느낌이거나 수려해지게 바꿀 수는 있을 것 같은데 저는 저 당시에 거칠고 ‘뭐지 저거?’ 이런 맛은 못 살릴 것 같아요.

 

 

 

M: ‘긴장감과 서스펜스가 굉장했다고 생각했는데 특히 이를 고조시키기 위해 어떤 부분에 중점을 두려고 하셨나요?’라고 질문해 주셨습니다.

 

이상근 감독: 인물 간 부딪히다 보니 리듬감이 굉장히 중요해요. 막판에 인물들의 쇼트들이 붙어가는 과정에서 정확히 멈춰있던 카메라가 나중에는 핸드헬드로 벌떡 일어나는 과정까지 이어지거든요. 카메라들이 점점 자유로워져요. 거기까지 가는 과정이 서스펜스나 빌드업 과정이 되는 것 같은데 당시에는 노리고 하진 않았던 것 같아요. 편집해보면서 이렇게 해야 긴장감이 더 살겠구나 정도였는데 지금 보니까 그래도 그 당시의 제가 나름대로 빌드업이나 리듬감을 부여하려고 했던 게 보였어요.

 

 

 

M: 저는 경찰 특공대 진압 장면을 안 보여주신 게 뛰어난 연출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상근 감독: 그건 다 아시지 않을까요? 저 당시에 그걸 찍을 수가 없으니까. 아마 복도에서 끝내자는 콘티도 있고 그랬는데 못 찍었어요.

 

 

M: 연기 디렉팅에 관한 질문도 주셨습니다. 당시 배우들의 연기를 어떻게 평가하셨는지, 그리고 <엑시트>까지 쭉 찍으시면서 연기 디렉팅에 대한 생각이 어떻게 바뀌셨는지 궁금합니다.

 

이상근 감독: 당시에 영화를 하겠다는 20대 학생이 어떤 디렉팅을 하겠어요. 대사만 주고 목의 각도까지 설명했던 것 같아요. 연극적으로 하려던 건 아닌데 대사도 워낙 길고 편집이나 연결도 안 맞다 보니까 덜컥거리는 부분이 많아요. 나름 의의를 둔다면 배우께서 열심히 하셨고 저게 괜찮다고 생각해서 오케이 컷을 내린 그 시절의 저였기 때문에 후회는 전혀 없어요. 물론 아주 수려한 연기라고 볼 수는 없죠. 그래도 그 시절의 그분들과 저는 충분히 열심히 했다고 생각해요. 데뷔를 늦게나마 하고 나서 든 생각은 ‘캐스팅 선배들이 하신 말씀이 맞구나’, ‘캐스팅이 다구나’. 좋은 배우를 캐스팅하면 끝나는 거 같아요. 감독이 연기 지도를 한다고 생각하시는데 전혀 하지 않아요. 어느 부분의 특별한 지점은 지도를 할 수 있겠지만 연기는 사실 배우들이 더 오래 연습했고 그들의 전문 분야기 때문에 대화를 많이 나누고, 이 부분의 명확한 지점에 감정 전달이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한 감독의 의견을 정확히 전달하는 것이 제일 중요한 것 같아요. 지금 와서 생각하는 건 명확한 감독의 큰 그림을 배우에게 정확히 전달할 수 있으면 좋은 연기를 끌어낼 수 있다고 생각해요.

 

 

 

M: 그리고 <엑시트>와 관련된 질문도 주셨는데요, <엑시트>를 찍기 전에 연출했던 단편들이 영향을 준 게 있는지 궁금하다고 질문해 주셨습니다.

 

이상근 감독: 영향은 분명히 있죠. 제가 좋아하는 것들이 장편영화로 가게 되면서 제가 놓지 않았던 부분은 분명히 있어요. 그런 부분들을 시그니처화 할 수 있다면 그게 이 영화판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장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고요. 마이너하고 상업 영화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지점들이 오히려 상업 장편영화로 가면 독특하게 빛날 수 있는 것 같아요. 그렇다고 너무 매니악한 지점보단 살릴 수 있는 지점을 잘 생각해서 섞는다면 충분히 빛을 발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좋아하는 것들이 계속 쌓이다 보니까 어느 순간 내가 좋아하는 톤, 유머의 리듬, 캐릭터의 방향성 이런 것들이 좀 나와서 쌓인 것 같고. 저도 다음 작품에선 이번에 발견했던 지점들을 발전시키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M: 영화의 주제에 대해서 질문을 해주신 분이 계셨습니다. ‘어른들의 무관심, 사회적 억압으로 인해 학생의 분노 감정을 행동으로 옮겨서 사건이 일어났는데 이를 무마시키기 위한 사회적 해결 방법을 이야기하자면 어떤 것이 있을지 궁금합니다.’라고 질문해 주셨네요.

 

이상근 감독: 사실 그 당시에도 생각한 건데 자신이 버림받았다고 생각한 사람이 제일 상처받았던 곳으로 돌아가서 인생의 끝을 맞이하는 이야기 자체가 대단한 사회적 이슈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그 당시에 저는 뭔가 소재적으로 이것을 내러티브로 풀어나갈 수 있을까 정도로만 얕게 생각했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고요.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저도 그냥 한 사회를 계속 살아가고 있는 구성원에서 뭐가 정도인지, 뭐가 잘못된 것인지를 알고 저뿐만 아니라 주변에서도 그런 것들을 계속 유지해나가는 것? 사회 구성원으로서 열심히 살아가는 것이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버림받은 자들과 밀접하게 만나 생활하시는 분들이라면 고민이 더 있을 수밖에 없는데, 그 부분에 대해 제가 어떤 방향을 제시할 수 있는 어른은 아닌 것 같아서 명확한 답을 드리긴 어려운 것 같습니다.

 

 

 

M: <감상과 이해, 청산별곡>, <엑시트> 작품을 놓고 봤을 때는 감독님의 사회 부조리, 그림자에 대한 발언을 끊임없이 하고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감독님은 세상을 보실 때 어떤 점에서 문제를 느끼시는지 궁금합니다.

 

이상근 감독: 상식이 통하는 세상이라고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혼란스러워하는 컨트롤 타워도 없애고 싶었고, 사고가 나면 빨리 와서 구조해주고, 열심히 움직이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싶었어요. 그래서 사회의 전반적인 시스템이 원활히 움직이는 그런 사회? 어쨌든 사고는 돌발적으로 일어날 수밖에 없지만 모든 것을 잘 해결할 수 있는 사람들과 상식이 있는 사람들이 사는 사회, 그리고 욕을 많이 하지 않는 영화 이런 느낌으로 하려고 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영화로 잔혹함을 주거나 충격적인 이야기로 사회상을 이야기하는 것보단 밝은 면에 대해 얘기를 하고 싶어요. 그런 부분에 대해서는 신랄하게 잘할 수 있는 분들이 많기 때문에. 어둡지만 그래도 밝은 면을 보면서 이 사회에 대한 매력을 느낄 수 있는, 살만한 사회라는 것을 알 수 있는 영화를 더 만들고 싶습니다.

 

 

 

M: 미쟝센 단편영화제의 마지막 발언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관객분들께 마지막 인사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요즘은 어떤 작업하고 계시는지 근황도 들려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이상근 감독: 일단 저는 시나리오는 다 썼고요. 열심히 해서 곧 만나 뵐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이제 미쟝센 단편영화제 20주년이 문을 닫는데요, 제가 2004년도에 처음 영화를 시작해서 미쟝센 단편영화제에 제 작품을 많이 선보였는데 영화제를 통해 응원도 많이 받고 영화감독의 꿈을 이어질 수 있게 해줘서 영화제가 마치 제 친구 같아요.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해 이런 식으로 아쉽게 스무 살의 생일을 맞은 게 아쉽네요. 제가 부위원장이기 때문에 선배 감독님들과 많이 만나서 예전의 영광과 재밌었던 과거 시절을 다시 느껴보자는 대화도 하고 있으니 내년에는 모든 분이 백신을 맞고 마스크를 다 벗는 날이 왔으면 좋겠어요. 재밌게 영화도 보고 맥주도 마시는 날이 내년에 오길 바라고요, 마지막 회차까지 영화를 즐겨주신 여러분께 정말 감사드리고 다시 페스티벌로 돌아올 수 있도록 저 역시 다른 감독님들과 힘내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