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회 미쟝센 단편영화제

OFFICIAL DAILY05

“자신에게 온전히 집중하고 스스로 구원받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글 : 유소은, 남다현 / 사진 : 이재원

사회에서 규정하는 평범함 바깥의 일을 겪는 소녀와 사내가 있다. 주변 사람들은 두 사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편견 어린 시선으로 바라본다. 영화 <눈물>은 이러한 이야기를 통해 한 사람의 정체성과 소통의 부재로 인해 이해와 공감이 어려운 사회를 보여준다. 이에 더해 비슷한 상황을 공유하는 사람의 존재만으로 위로의 감정을 얻고 스스로 구원하는 이야기를 구현해낸다. 6월 28일, 3회차 상영과 GV를 앞두고 <눈물>을 연출한 부지영 감독과 만났다. 미쟝센 단편영화제에 작품을 출품하지 못한 아쉬움을 약 20년 만에 달래게 된 그는 기분 좋은 미소를 머금은 얼굴로 미쟝센 단편영화제에서 <눈물>을 상영하게 된 일이 신기하고 놀랍다고 말했다.

 

 

Q. 제20회 미쟝센 단편영화제에 단편영화 <눈물>이 역대 영화제에서 비록 소개하지는 못하였으나 타 영화제에서 우수성을 인정받은 단편영화 20편을 묶은 ‘Outside The 20’에 선정됐다. 초기 작품인 <눈물>로 올해 미쟝센 단편영화제에 방문하신 소감이 어떤지 궁금하다.

 

A. 이 영화를 만들고 졸업한 해에 미쟝센 단편영화제가 처음 생겼다. 졸업하면서 이 영화를 어딘가에 내고는 싶었는데, 미쟝센 단편영화제가 장르 영화를 표방하고 있지 않나. 사실 내 영화가 어떤 장르에 속하는지 잘 모르겠고, 이 영화제가 첫 회라 약간 반신반의하는 마음도 있었다. (웃음) 이 영화제에 약간 감정 상했던 것 같다. (웃음) 단편영화에 장르가 있다는 게 재밌는 발상인데, 당시에는 내 영화가 어디에도 속하는 것 같지 않아서 출품하지 못했다. 나중에 여러 영화제를 다녔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내 영화를 이 영화제에 내지 않은 게 아쉬웠다. 이렇게 20년 만에 상영하게 돼서 이게 무슨 일인가 싶다. 놀랍다, 신기하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중간에 미쟝센 단편영화제에서 심사위원을 한 적이 있었는데, 그래도 왠지 잠깐 지나가는 사람 같은 생각이 들었다. 이번에 영화 상영을 하게 돼서 영광이다.

 

 

 

Q. <눈물>은 아무런 이유 없이 계속 눈물을 흘리는 두 인물의 이야기다. 이야기의 기반에 우울감의 정서가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연출 의도에는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한 질투’라고 되어 있는데, 영화를 통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지 궁금하다.

 

A. 이 영화를 만들 때 나의 정서가 우울했을 수는 있는데, 영화를 통해 주목하고 싶었던 건 주변의 반응이었다. 전혀 울 것 같은 상황이 아닌데 눈물이 드러나는, 평범하지 않은 상황이 벌어졌을 때, 사람들은 선입견을 품고 바라본다. 눈물은 슬프고 아픈 상황에서 나와야 한다는 등 모든 인물이 각자의 생각 안에서만 반응한다. 평범하지 않은 상황을 평범함으로 묻으려고 한다. 그래서 소녀를 누가 이해해줄 수 있을까 생각했다. 연출 의도는 눈물은 슬프고 아플 때 나와야 한다는 것 같은, 눈물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이 왜 당연할까? 그런 의문을 담았던 것 같다.

 

 

 

Q. 영화의 오프닝과 엔딩에서 김현승 시인의 시 <눈물>의 구절을 인용했다. 이 시를 어떻게 사용하게 되었나.

 

A. 영화를 만들면서 찾아봤다. 시의 그 구절이 사람의 정체성 같은 느낌이었다. 영화에서 눈물도 정서나 감정을 표현하기보다 소녀의 정체성을 의미한다. 그래서 시의 그 구절이 영화에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어서 사용했다.

 

 

Q. <눈물>은 일부 장면(사내의 인터뷰, 소녀 주변 인물의 인터뷰)을 제외하고는 전반적으로 흑백 화면을 사용했는데, 흑백을 사용한 이유가 무엇인가. 더불어 흑백과 컬러를 혼용한 것에는 어떤 의도가 있는지 궁금하다.

 

A. 흑백으로 찍었던 건 아마도 허세가 아니었을까. (일동 웃음) 여기에 나의 예술혼을 집어넣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할 수 있는 걸 많이 해보자는 생각에 흑백을 사용했다. 그리고 소녀의 눈물에 집중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색깔 정보를 없애는 방식을 취했다. 영화를 만들 때 추가촬영을 본 촬영보다 많이 했다. 디지털 비디오로 촬영한 추가촬영분으로 비어있는 이야기를 채워 넣으면서 컬러를 사용했다.

 

 

 

Q. 영화는 같은 상황을 맞은 소녀와 사내의 이야기를 교차로 보여주는 구성이다. 이야기의 주인공을 소녀와 사내로 설정하고, 두 사람을 번갈아 가며 보여주는 구성을 선택한 이유가 무엇인가.

 

A. 소녀의 정체성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사람은 누구도 될 수 있고, 그런 사람이 어딘가에 존재할 거로 생각했다. 그러면 그 사람은 어떤 사람이어야 할까 고민했을 때, 그냥 쉽게 성인 남자를 떠올렸다. 어떤 정보가 보이지 않는 말간 느낌의 남자면 좋을 것 같았고, 소녀와 똑같은 고민을 하고 있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영화에서 흑백은 주로 반응을 보여주는 쪽이고, 컬러는 남자의 목소리를 들려주는 쪽으로 방향을 잡아서 번갈아 가며 보여줬다. 흑백에서 소녀의 목소리가 잘 안 들리는데, 그 소녀의 목소리를 남자의 목소리로 대체했다. 나의 정체성을 이해할 수 있는 또 다른 누군가도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을 거라는 생각으로 설정했다.

 

 

 

Q. 지금도 활발히 활동하는 이청아 배우의 초창기 모습을 보는 것이 새로웠다. 이청아 배우와는 어떻게 함께하게 됐나.

 

A. 여고생 배우를 찾으려고 수소문하다 아카데미 선배였던 조근식 감독이 <품행 제로>라는 영화를 준비하면서 고등학생 오디션을 많이 봤다는 소문을 듣고 영화사에 찾아갔다. 오디션 자료를 보고 이청아 배우가 눈에 띄어서 바로 연락했다. 딱 한 번 만나고 결정했다. 여고생인데도 에너지가 있는 점이 마음에 들어 캐스팅하게 됐다.

 

 

Q. 선생님이 소녀에게 눈물의 이유를 물어보는 장면이 기억에 남는다. 누가 괴롭힌다거나 시험 준비 때문에 힘들다거나 집에 무슨 일이 있다는 등 행동에 명확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고 소녀에게 강요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러면서 실제로 큰 관심 없이 머릿속으로는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 다른 사람의 아픔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공감하려고 하기보다는 자신의 기준에 맞추려고 하거나 무심하게 대응하는 많은 사람의 모습을 나타내는 것처럼 보였는데, 이 장면이 관객들에게 어떻게 전달되기를 바랐는지 궁금하다.

 

A. 정확히 그렇게 전달되길 원했다. (웃음) 학교 이미지를 고압적이고 권위적으로 잡았다. 아무래도 학생들에게 학교가 편한 곳은 아니다. 자신들을 누르고 억압하고 정답이 있어야 하는 곳인 것 같은 이미지를 보여주고 싶었다. 누군가를 이해하고 알려는 태도가 어렵기도 하고, 선생님이 소녀에게 질문하긴 하지만, 소녀를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아니었던 거다.

 

 

 

Q. 영화에서 간간이 정지된 이미지가 등장한다. 소녀의 친구와 선생님이 소녀와 대화를 하면서도 머릿속으로는 다른 생각을 떠올리는데, 그때 그 내면을 나타내는 방식을 정지된 이미지로 표현한 것 같다. 그렇게 표현한 이유가 궁금하다.

 

A. 한정된 시간 동안 많은 걸 담으려고 했던 것 같다. 정체성, 이해와 공감, 소통의 부재, 스스로 자신을 구원하는 문제. 누군가와 대화할 때 다른 생각을 할 때가 있는데, 이걸 영화로 구현한다면 스틸 이미지가 잠깐씩 들어오는 것으로 표현해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지금이라면 안 할 것 같은데, (웃음) 그때는 부끄럽지 않게 잘한 것 같다.

 

 

 

Q. 소녀의 눈물에 대한 주변 사람들의 반응을 인터뷰 형식으로 삽입한 게 눈에 띄었다. 페이크 다큐멘터리처럼 보이는 장면이기도 했는데, 그렇게 연출한 이유가 궁금하다.

 

A. 흑백으로 찍고 나니까 이미지에 생명력이 너무 없었다. 영화를 시작할 때, 다큐멘터리처럼 찍은 이탈리아 네오리얼리즘 영화를 좋아해서 다큐멘터리 기법으로 추가촬영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픽션이기 때문에 진짜 다큐멘터리를 찍을 수는 없지만, 페이크 다큐멘터리로 이야기의 공백을 메워보자고 생각했다. 그래서 컬러로 찍고 진짜 이미지 같은 걸 넣었다. 만약에 소녀와 같은 아이가 실제로 있다면 사람들이 어떤 반응을 할지 생각하면서 연기 디렉션을 했다. 실제로 인터뷰 장면에 등장한 학생들은 그 영화를 찍었던 학교의 학생들이었다. 그 학생들에게 “만약 이런 상황이면 어떨 것 같아?” 물어보면서 촬영했다. 살아있는 말이 필요했던 것 같다.

 

 

 

Q. 소녀와 사내가 마주치는 장면의 공간을 지하철로 설정한 이유가 무엇인가.

 

A. 버스는 앞을 바라보기 때문에 다른 사람을 신경 쓰기 힘들지만, 지하철은 서로 바라보는데도 신경 쓰지 않는다. 커뮤니케이션이 전혀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그렇지만 커뮤니케이션이 일어날 수도 있는 공간이다. 그런 점이 마음에 들었다. 그런 공간에서 소녀와 사내가 만나면 서로 바라볼 수밖에 없고, 그때 비슷한 상황을 겪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그렇게 설정했다.

 

 

 

Q. 엔딩 장면에 관해 얘기해보고 싶다. 소녀의 눈물에서 공간에 물이 가득 차는 것으로 이어지면서 소녀가 물 안에 잠겼다 떠오르는 장면이 인상 깊다. 소녀가 슬픔에 잠식되는 것 같기도 하고, 온전히 자신의 내면에서 편안히 휴식을 취하거나 치유를 받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다. 이 장면은 어떤 의도로 만들었는지 궁금하다.

 

A. 소녀가 지하철에서 자기와 비슷한 사내를 만나고 나서 맘껏 울었다고 생각했다. 그전에는 약을 먹는다거나 주변의 시선을 의식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날은 소녀가 맘껏 울었을 것이다. 눈물을 흘리는 자신에게 온전히 집중하고 스스로 구원받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사람들의 시선이 문제인 거지 별일이 아니라고 본인이 느끼는 것을 이미지로 표현하고 싶었다. 자신의 눈물에 잠겼다 떠오르는 이미지로 자기 자신을 온전히 이해하고 구원받는 것을 표현했다.

 

 

Q. 감독님께서는 다양한 여성 서사를 만들어오셨다. <지금, 이대로가 좋아요>, <카트>, <시선 너머>의 <니마> 등 여성 연대, 여성 공동체 형성 등을 계속해서 이야기했다. 이전 인터뷰에서 어렸을 때 여성으로만 이루어진 가족에서 오래 살았고, 어머니와 이모들, 할머니와 이모할머니들이 서로 어울려 있는 모습이 익숙해서 영화에 그런 여성 간의 유대를 담아내는 게 좋다고 밝혔다. 감독님에게 여성 영화란 어떤 의미인지 궁금하다.

 

A.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게 아닐까. 어떤 목적의식이 있다기보다는 내가 잘 알고 관심 있는 이야기다. 여성이 모이면 어떤 힘이 느껴지기도 한다. <카트>도 그랬듯이, 어떤 문제가 발생하고 해결하는 과정이 폭력적이지 않고 대등한 것 같다. 여자들이 모여있는 공동체에서 좋은 것을 많이 보고 경험해서 그런 걸 얘기하고 싶어 하는 것 같다.

 

 

 

Q. 앞으로의 활동 계획을 들어보고 싶다. 과거 인터뷰를 통해 노동하면서 자기 실존을 찾아가는 여성이 작품에 계속 등장할 것 같다고 밝힌 적이 있다. 계속해서 그런 이야기를 구상하고 있는지, 혹은 최근 새롭게 관심 있거나 만들어보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지 궁금하다.

 

A. 일단 코앞에 닥친 것만 하느라 (웃음) 새로운 이야기를 생각할 겨를은 없다. 지금 쓰고 있는 차기작도 여자들이 꽤 많이 나오긴 하지만, 여자들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여자들이 일하고 있으면 훨씬 다양한 면모를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단순히 성별로 보이는 게 아니라, 그가 잘하는 게 무엇인지, 일하는 방식과 태도, 계층 등을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인물을 바라보는 게 좋고, 그래서 늘 내 이야기 속에 여자들이 일하고 있는 거지 특별하게 일하는 여자로 이야기를 만드는 건 아니다.

 

 

 

Q. 끝으로 감독님에게 단편영화란?

 

A. 개봉하고서도 단편영화를 세 편 찍었다. 그때 단편영화가 정말 자유롭고 숨통이 트이는 매체라고 느꼈다. 장편영화를 하다 단편영화를 하니 훨씬 즐겁게 작업할 수 있는 길이의 영화라고 생각했다. 마음 맞는 사람들과 하고 싶은 이야기를 짧은 길이 안에 집중력 있게 만드는 작업이다. 단편영화를 만드는 경험은 늘 좋았다. 많이 보지 않아서 그렇지. (웃음) 더 보람 있고 되게 즐거운 작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