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회 미쟝센 단편영화제 '장르의 상상력展'

어느날 갑자기

One day 2014

2
예고편

절대악몽 2
유지영 / YU Ji-young
2014
HD / Color
00min 00sec
English Subtitle

시놉시스

여고생 호진은 진지하게 사귀던 같은 학교 선생 영호에게 갑작스럽게 이별 통보를 받는다. 한 편 호진을 좋아하는 단짝친구 용진은 호진 곁에서 맴돌며 늘상 그녀의 연락을 기다린다. 영호와의 관계로 학교생활이 시시한 호진을 가만두지 않는 열혈 체육선생은 방과 후 호진을 따로 불러 무용 연습을 시키고자 한다. 호진은 영호와 헤어지지 않기 위해 거짓말까지 하지만 영호는 문자 한통을 남긴 채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힘없이 집으로 돌아가는 길, 호진은 예상치 못한 또 하나의 이별과 마주한다.

연출의도

몇 번을 떠올려 봐도 음울하고 답답했던 나의 학창시절. 이제는 나쁜 기억이 아닌 추억으로 안고 싶은 마음에…

상영 및 수상

없음

리뷰

<어느날 갑자기>를 보면 영화감독의 카메라를 문학 작가의 만년필에 비교한 아스트뤽의 ‘카메라 만년필’이 떠오른다. 영화에는 이성복의 시 「그러나 어느날 우연히」를 낭독하는 선생님이 등장하는데, ‘어느날 갑자기 망치는 못을 박지 못하고 어느날 갑자기 벼는 잠들지 못 한다 어느날 갑자기 재벌의 아들과 고관의 딸이 결혼하고 내 아버지는 예고 없이 해고된다 ……’ 로 시작하는 이 시를 카메라로 옮긴 다면 그 결과물이 영화 <어느날 갑자기>와 유사할 것이란 상상 때문이다. 제목처럼, 주인공 여고생 호진에게는 ‘어느날 갑자기’ 일상을 뒤흔드는 일들이 몰아닥친다. 사귀던 같은 학교 선생인 영호에게 이별 통보를 받고, 친구 용진은 전화를 받지 않는다고 화를 내고, 점심시간까지 불러내 무용 연습을 시키던 체육선생은 자살한다. 전형적인 서사의 장편영화는 종종 주인공의 평범한 일상을 무너뜨리는 사건으로 시작하는데, <어느날 갑자기>가 장편영화의 도입부라면 관객은 이후 전개될 주인공의 이야기에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이 영화가 미완성 작품이라는 뜻이 아니다. <어느날 갑자기>는 고등학생 시절 누구에게나 있었을 법한 통과의례의 순간을 감각적인 촬영과 연출로 완성한 탄탄한 단편 영화다.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최우수상과 전주국제영화제 감독상의 경력을 가진 감독은 이 영화에서도 안정된 연출력을 선보인다. 이른 새벽 등굣길부터 포근한 햇살이 비치는 낮을 거쳐 주황색 노을이 진 저녁으로 이어지는 하루의 변화를 세심하게 포착하는 미장센과 롱테이크의 차분함을 파괴하지 않으면서 장면에 조심스런 역동성을 불어 넣는 트래킹 촬영 등은 이 영화의 세련됨을 보여주는 일례이다.
<어느날 갑자기>는 두꺼운 철제 교문이 스크린이 가득 채운 첫 장면으로 시작한다. 이 첫 장면처럼, 학창시절이란 하루의 대부분을 학교에 갇혀 지내고, 생각이나 행동은 어른들의 기준에 갇혀 지내야만 하는 암울한 시절이다. 하지만 지나고 보면 그런 답답한 경험들이 학창시절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 어른이 되어서도 우리는 의지와 계획보다는 어느 날 우연히 일어난 일들로 인생을 꾸려가고, 그런 가운데 만나는 당혹스럽고 우울한 경험들은 피할 길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학창 시절은 젊음과 가능성이 있기에 오히려 행복한 시기가 아니겠는가. 배경으로 배치된 초록색 이미지들, 아지트 주변의 나무와 무용연습을 하는 옥상 인조잔디는, 호진이 겪는 악몽 같은 사건들과 대조를 이루면서 학창시절의 이러한 이중성을 완성하는 미장센이다. 학창시절의 악몽 같은 하루를 그린 한 폭의 수채화. <어느날 갑자기>를 한 마디로 설명해야 한다면 이것이 적절할 듯싶다.
성진수 (영화평론가)

감독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