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회 미쟝센 단편영화제 '장르의 상상력展'

트렁크

Trunk

절대악몽 3
김현철 / KIM Hyeon- cheol
2013
HD / Color
00min 00sec
English Subtitle

시놉시스

경민은 지하주차장에서 이상한 검은 차와 마주한다.
Kyeong-min comes across with a strange black car at an underground parking lot.

연출의도

참으면 병 된다.
Suppressing emotions can worsen the situation.

상영 및 수상

2013 전주국제영화제

리뷰

소설가 카프카는 “사람들은 정작 자기 집에 뭐가 있는지 잘 모른다”라는 말로 사람들이 자기 자신의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일에 서투름을 표현한 바 있다. 근대적 질서와 규범이 지배하는 공동체 사회에서 사람들은 자신보다는 타인을 더욱 의식하며 살아간다. 자신의 의지와는 관계없는 일에 의사표현을 강요받고, 때로는 자신의 의지를 스스로가 먼저 애써 말살시켜야 할 때도 있다. 그것이 공동체와 조직, 타인의 이익과 관계가 있을 경우는 물론이고, 심지어 그것이 내 자신의 이익을 위한 것일 경우에도 내 자신의 의지를 굽히는 역설로서만 달성 가능한, 이율배반적인 모순에 직면하는 일이 다반사다. 영화 <트렁크>는 무의식 속에 숨겨져 있던 자기 자신의 내면의 목소리와 대면하게 되는 한 여자를 그린다.
늦잠으로 직장에 지각하게 된 경민. 휴대전화에 ‘인간말종’으로 저장된 경민 회사의 사장은 경민에게 욕설과 폭언을 서슴지 않는다. 경민은 출근하는 길에 지하주차장에 주차된 한 차량의 트렁크가 살짝 열려 있는 것을 보게 되고, 신경이 쓰인 나머지 차 주인에게 전화까지 하게 된다. 하지만 차 주인은 점점 이상한 말을 하기 시작하고 경민은 트렁크가 열려 있는 자동차와 신경전을 벌이게 된다.
이 영화가 경민을 내면의 목소리와 대면 혹은 대치시키는 가장 기본적인 매개가 되는 감정은 ‘두려움’과 ‘호기심’이다. 일상이라는 규율 속에서 사람들이 자신의 진정한 내면의 풍경을 대할 기회란 거의 주어지지 않지만, 정작 내면의 목소리를 대면할 기회가 주어지면 그것을 두려워하며 그것과의 대면을 피하려고 한다. 이 영화는 이러한 이중심리를 영화의 스릴러 기제로 활용한다. 반쯤 열린 트렁크, 그리고 계속해서 자신을 추적해오는 이상한 자동차, 그 안에 무엇이 들어있을지를 확인하는 일은 두려움을 전제하는 일이다. 하지만 두려움은 그만큼의 호기심을 동반하게 되고, 경민은 호기심을 주체하지 못하고 결국 트렁크(자동차의 트렁크와 경민이 가지고 있는 트렁크 둘 모두를 가리키는 중의적 의미)를 열어서 그 안을 보게 된다. 내면의 목소리를 대면한 순간 경민은 곧 그에 상응하는 엄청난 대가를 치루게 된다. 이 영화에서 중요한 것은, 경민의 상황을 속속들이 알고 있으면서 계속해서 경민을 조롱하던 전화기 속 목소리가 실제로는 경민 자신의 내면으로부터의 목소리였다는 사실이 관객들에게는 설명되지만 정작 우리의 희생양 경민에게는 설명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영화는 상황을 관조하는 CCTV 카메라의 시선을 통해 트렁크에서 튀어나온 여자와 경민을 완벽한 개체로서 구분 짓는 반전을 선보인다. 트렁크에서 튀어나온 여자는 과연 경민일까. 아니면 이미 경민을 삼켜버리고 태어난 완전히 새로운 주체일까.
박진희 (영화칼럼니스트)

감독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