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회 미쟝센 단편영화제

OFFICIAL DAILY14

언제나 상상이 더 무서운 법이니까요

글 : 구민정 / 사진 : 강민수

<메리 좀 찾아줘>는 ‘4만번의 구타’ 다운 스릴러 영화의 장르적 문법을 짙게 띠지만 그 안의 이야기는 사회적 관점을 다룬 ‘비정성시’에 더욱 가깝다. 바로 이 지점이 영화를 보다 특별한 위치로 끌어올리는 기능을 한다. 영화가 보여주는 것, 그리고 그것을 보여주는 방식의 차이에서 비롯되는 온도차는 주인공 원재의 상황을 지켜보는 관객을 한층 고통스럽게 만든다. 고통의 중심에는 불안이 자리해 있다. 오프닝에서부터 강렬하게 느껴지는 불안의 기류는 영화가 진행됨에 따라 그 실체가 더욱 분명해진다. 불안이 현실이 되어가는 과정을 유독 더디게 재생시키지만 정작 실체와 마주하는 순간에는 카메라를 내려 놓음으로써 어디서도 본적 없던 새로운 결의 서스펜스를 빚어낸 오우람 감독을 만났다.

전작 <비염> 이후 오랜만의 신작이다. 이번 작품으로 미쟝센 단편영화제를 찾은 소감이 어떤가.
오랫동안 연출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영화학교 출신도 아니고, 현장 경험도 없었기 때문에 여러 가지 인프라가 충분하지 않아서 준비하는 과정이 녹록지 않았다. 이런 힘든 시기를 겪던 와중에 미쟝센 단편영화제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내가 고생한 걸 알아준 것만 같아 무척 기쁘고 감사했다. 함께 고생한 배우들, 스탭들에게도 고마운 마음이 크다.

 

<메리 좀 찾아줘>는 어떤 영화인가.
이 영화는 얼핏 자전거 도둑의 이야기처럼 보일 수 있다. 아버지가 딸의 욕망을 위해 자전거를 훔치게 되고, 그 죄는 부메랑이 되어 가족들 앞으로 돌아온다. 표면적으로는 권선징악 구조의 단순한 스토리라인을 띠지만 이야기 내부에 수많은 서브 텍스트들을 품고 있는 영화다. 눈에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가 모호하게 뒤섞여 있다.

 

처음 이 작품을 구상하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
아버지가 자식 앞에서 돌이킬 수 없는 모욕감을 경험했을 때의 감정에서 출발했다. 모욕감을 극에 달하게 만들기 위해 도덕적인 책임이 필요했고, 이때 종교적으로 선에 가까워야 될 위치에 있는 사람이 느끼는 책임의 대가가 더욱 클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야기를 구상하며 인간의 욕망이라는 원초적인 개념까지 거슬러 올라갔다. 욕망 안에는 욕심이 끼어들어 있고, 그 욕심은 우리를 고통스럽게 만든다는 관념을 토대로 이야기의 얼개가 나오기 시작했다.

시아 또래의 아이가 잃어버릴 수 있는 다양한 물건들 중에서 구체적으로 자전거를 선택한 이유가 궁금하다.
킥보드보단 낫지 않나. (웃음) 소재의 메타포를 찾을 때 자전거가 참 대중적이면서도 애매하다고 생각했다. 돈이나 귀금속을 훔치는 것은 누구나 명확하게 절도라는 것을 안다. 그렇지만 자전거에 대한 도덕적 관념은 상대적으로 가벼운 것 같다. 나도 어릴 때부터 수도 없이 자전거를 잃어버렸고, 주변에서 자전거를 훔쳐서 타는 친구들을 많이 봤다. 사람들이 가볍게 치부할 수 있는 절도라는 관념에서 자전거라는 장치를 선택했던 것 같다.

 

어둠 속에서 숨 가쁘게 뭔가를 찾아 헤매는 원재의 모습으로 영화를 시작한 이유가 있나.
영화의 전반적인 톤 자체가 스릴러이길 원했다. 충분히 드라마로 풀어낼 수 있는 스토리라인이지만 나라는 사람의 색채는 스릴러다. 그래서 오프닝부터 스릴러 느낌을 강하게 주고 싶었다. 영화의 시점상 그 장면은 원재가 자전거를 훔치기 이전의 상황이다. 딸이 꿈에서 자전거를 봤다는 장소에 직접 와본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실제로 있었던 일일 수도 있고, 아니면 상상일 수도 있다. 영화에는 나오지 않지만 에필로그로 딸이 꿈에서 본 장소에 실제로 자전거가 있었다는 내용을 찍어 두기도 했다. 그래서 만약 오프닝 장면이 실제의 일이라면 원재는 자전거를 훔치지 않았을 것이고, 그로 인한 모욕과 치욕 또한 경험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 장면을 앞부분에 붙임으로써 시점을 모호하게 두려고 했다. 욕망 앞에서 선택의 기로에 놓인 인간의 모습을 그려내고 싶었다.

 

영화에 등장하는 아이들에게서 특별한 영적인 기운이 느껴진다. 시아가 꿈에서 자전거를 볼 수 있었던 이유도 이러한 맥락에서 해석이 가능한가.
기도라는 것 자체에 애매한 지점이 있다고 생각했다. 간절히 기도해서 이루어지는 경우도 있는 반면에 때로는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그 차이가 무엇일까 고민했었다. 원재는 시아에게 열심히 기도하면 자전거를 찾을 수 있다고 말하지만 정작 본인은 기도에 대해 의심을 품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자전거를 훔치는 길을 선택한다. 반대로 시아는 순수하게 기도 자체를 믿었다. 이것은 결국 기도의 순수성 문제라고 생각한다.

 

원재는 사라진 딸을 찾던 도중 어떤 남자를 보고 홀린 듯이 따라간다. 엔딩 크레딧에도 ‘수상한 남자’라고 의문스럽게 등장하는 이 남자의 정체는 무엇인가.
원재는 자전거를 잃어버린 동네의 사람들을 색안경을 쓰고 바라본다. 카트를 끄는 남자에게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는 것 또한 편견이다. 그렇지만 그 남자는 결론적으로 딸을 찾는 계기를 만들어준다. 그를 쫓아서 옥상으로 올라갔기 때문에 시아를 발견하는 전화위복이 된 것이다. 또한 그는 초반에만 잠깐 등장하고 연기처럼 사라져 버리는데 이러한 설정을 통해 영화가 담고 있는 영적이고 미스터리한 측면을 부각시키고 싶었다. 그것이 이 영화의 주된 톤이자 내가 바라본 세상의 모습이었다.

원재는 항상 땀을 비 오듯이 흘려 그에게서는 늘 축축한 물기가 느껴진다. 캐릭터의 어떤 면을 부각시키기 위한 장치였나.
여유가 없는 사람임을 표현하고 싶었다. 원재는 착한 사람이기는 하지만 지혜롭지는 못한 인물이다. 늘 비효율적으로 일을 하기 때문에 항상 숨이 차 있고 땀을 흘리는 듯한 느낌을 주려고 했다. 그리고 영화의 톤 자체도 축축하길 원했다. 그래서 배우에게 계속해서 땀을 요청했던 것 같다.

 

원재 역할을 맡은 이성우 배우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한 건 이 영화의 또 다른 성취다. 캐스팅이 신의 한 수처럼 느껴지는데.
사실 캐스팅에 있어서 고민이 참 많았다. 원재는 무엇보다 불쌍한 사람처럼 보여야 했다. 마르고 유약하고 겉으로 봤을 때 누가 봐도 선해 보이는 그런 이미지였다. 그런데 이성우 배우는 <범죄도시>를 비롯한 전작에서 주로 악역을 맡지 않았나. 선한 역할의 레퍼런스가 없던 배우였기 때문에 이번 영화에서 클리셰한 접근 자체에 대한 편견을 깨 보고 싶었다. 그리고 이성우 배우와 실제로 이야기하다 보면 사람이 순박하고 우직한 면이 있다. 무표정일 때는 악한 인상을 풍기기도 하지만 같이 대화를 나누다 보면 순수한 눈빛이 보인다. 그런 이중적인 면이 좋았다.

 

자전거의 주인이 누구인가를 두고 여러 인물들이 실랑이하는 장면은 의도적으로 늘어뜨리는 반면 사건의 진실이 밝혀지는 순간은 보여주지 않는 방식을 택했다.
언제나 상상이 더 무서운 법이다. 이후로 어떤 상황이 펼쳐지게 될까 라는 상상이 더욱 끔찍하다고 생각했다. 평생을 같이 살아야 하는 가족인데 이건 복구가 불가능한 일이지 않나. 결론이 나지 않는 상상을 열어둠으로써 상황의 잔인성을 극대화하고 싶었다.

 

엔딩에서 카메라가 온 사력을 다해 끝까지 시아의 얼굴을 놓지 않으려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우리는 보통 어린 시절에 집안의 분위기가 이상하게 돌아간다는 것을 부모의 얼굴을 보고 눈치를 챈다. 그런데 그것은 굉장히 공포스러운 일이다. 나는 아직 상황 파악이 안됐는데 부모의 표정으로 상황이 심상치가 않음을 감지하고 공포감을 느끼는 거다. 시아는 엄마의 얼굴을 보고 상황을 직시하게 되면서 표정이 점차 일그러진다. 엔딩에서도 시아의 디렉팅에 가장 집중했다. 표정의 미묘한 흔들림으로 관객들이 짐작할 수 있도록 감정을 절제하길 원했다. 울음이 터지기 직전의 감정이 더욱 중요했기 때문에 서서히 감정을 타다가 울컥하는 순간에 바로 끊어냈다.

 

엔딩 크레딧이 흐른 뒤 카메라가 한밤중 도심의 풍경을 비추는데 곳곳의 빨간 십자가가 유독 눈에 띈다.
자세히 보면 한 쪽에는 십자가가 즐비해 있고 반대편에는 그 아래로 차들이 바삐 달리고 있다. 이성적인 현실의 삶과 보이지 않는 영적인 세상이 공존하는 것이다. 우리는 신전을 바로 옆에 두고 일상을 살아가지만 그것에 너무도 익숙해져 있다. 믿음, 소망, 사랑 이런 단어들도 그 하나하나에 담긴 의미가 굉장히 깊은데 이것들이 대중화되면서 무감각해지는 것 같다. 마지막 장면에서는 그런 무감각해짐에 대한 경고를 담고 싶었다. 신에게 단순한 욕망만 기도하지 말고 진리를 찾아서 가는 여정이 무엇인가를 묻고 싶었다.

전작 <비염>에서도 십자가가 중요한 상징으로 등장한다. 작품 속 인물들에게 계속해서 십자가가 따라다니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나는 기본적으로 불안한 사람인 것 같다. 불안을 다스리기 위해서 마음의 공부를 하다 보니 진리를 찾아가는 여정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 그리고 그 길은 신과 맞닿은 지점이 있다. 보이지 않는 세계가 나와 함께한다는 사실은 영감의 원천이 되었던 것 같다. <비염>은 그것의 무의식적인 반영이었다면 이번 영화에서는 그것을 더욱 증폭시켰다.

 

영화에서 가장 공들인 장면이 있다면.
지하 주차장 신은 연극적인 요소가 많은 장면이라 인물이 등장하고 빠지는 타이밍과 그 연결지점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카메라 앵글에 겹치지 않으려면 배우들이 정확히 어느 위치에 서야 하는지 이런 과학적인 부분까지도 세밀하게 신경 써야 했다. 촬영에 임하기 전에 머릿속으로 수없이 이미지 트레이닝을 했다. 콘티를 정말 자세히 그렸고 3D로 인물을 세워가며 앵글과 구도를 계산하기까지 했다. 그래야만 영화의 테이크를 줄일 수 있었다. 그런 디테일함이 영화 곳곳에 정말 많이 묻어 있다. 쉬운 지점이 하나도 없었다.

 

관객들에게 이 영화가 어떤 작품으로 기억되길 바라나.
‘오우람답다’ 라는 생각을 해 주셨으면 좋겠다. 앞으로도 주제와 소재는 수도 없이 바뀌겠지만 영화의 톤과 기질은 여전하구나 라는 것을 알아주셨으면 좋겠다. 나는 늘 감독이 수행자 혹은 구도자처럼 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겉으로는 단순한 이야기처럼 보일지라도 그 내면에 통찰적인 지점이 묻어나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

 

끝으로 오우람 감독님께 단편영화란?
나에게 단편영화는 ‘비긴즈’ 같다. 영화의 세계관을 확장해 나감에 있어서 하나의 비긴즈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