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회 미쟝센 단편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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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영화다

글 : 송혜령 / 사진 : 강민수

현실적인 공간을 부유하는 귀신의 존재는 허술해 보이지만 어딘가 기괴한 분위기를 풍긴다. 이 전에는 만나 볼 수 없었던 공포영화의 새로운 시각이 돋보이는 영화 <긴 밤>의 김정민 감독을 만나 보았다.

Q. 미쟝센 단편영화제 본선 진출을 축하 드린다. 소감을 듣고 싶다.
처음으로 미쟝센 단편영화제에 오게 되었다. 비록 오프라인 상영 관련으로 아쉬운 점이 있기는 하지만 온라인으로도 많은 분들이 볼 수 있기에 다른 한 편으로는 기쁘기도 하다.

 

Q. 영화는 묘한 분위기를 풍기는 두 형제의 이야기로 채워져있다. 형제를 구상하게 된 계기가 있다면?
영화 <긴 밤>은 귀신에서부터 시작하게 된 작품이다. 귀신 영화를 너무 싫어한 나머지 귀신의 등장으로 깜짝 놀라기 보다는 그가 계속 지나다니는 식의 연출을 하고 싶었다. 형제는 그 이후에 귀신의 존재를 설득시키기 위해 넣게 되었다. 그들이 정말 나쁜 짓을 하는 인물이라면 귀신이 지나다니기만 해도 뭔가 일이 벌어질 것 같은 분위기가 설정되지 않을까 싶었다.

 

Q. 여자2의 역이 남자 배우였던게 인상이 깊었다. 캐스팅에 이유가 따로 있는가?
영화에 나오는 배우분들과는 사적으로 친분이 있다. 그렇기에 따로 모집을 하진 않았고 그냥 만들기 시작했다. 본격적으로 귀신을 설정할 때는 그냥 지나다니는 것 만으로도 기괴한 느낌이 살길 바랬는데 그러다 보니 남자들이 갖고 있는 특유의 우락부락한 선에 여자 옷이 합쳐진다면 어떨까 싶었다. 실제 느낌도 좋았고 거기다 귀신 역의 배우 분이 다른 인물보다 훨씬 키가 큰 덕에 더욱 인상적이더라. 원래는 연극을 하셨던 분이라 촬영장에서 혼자 분장을 하고 계시던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

 

Q. 귀신의 등장 이후, 영화 전반에 깔린 소리가 긴장감을 준다고 생각 된다. 이 효과음에 담긴 의미가 있는가?
그 효과음은 피아노 ‘미’ 음계의 소리이다. 그것으로 대부분의 분위기를 조성했는데 여기에는 이유가 있다. 나는 일단 무서운 영화에서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전반에 까는, 그 긴장감 넘치는 음악들이 너무 스트레스였다. 내가 무서운 영화를 싫어하다 보니 영화 자체가 갖는 피곤한 순간들을 줄이고 싶었다. 공포 영화의 공식을 따르지만 피곤하게 분위기를 잡기 보다는 뚝뚝 끊으면서 하나씩 미묘한 여지를 남기고 싶더라.

 

내가 공포영화를 싫어하기에 좋아하는 이들보다 스트레스가 유발되는 지점들을 더 정확하게 인지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한 생각이 무거운 음악을 그냥 툭 나오고 툭 지나다니는 식으로 바꾸면 어떨까 까지 이어지게 되었다. 이 특징들이 누군가에게는 무서운 불편함을 좀 덜어내 줄 수 있지 않을까 기대를 해본다.

Q. 공포영화가 싫음에도 불구하고 공포영화를 만들게 된 이유가 있는지.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거나 사회적 인식이 담겨있는 영화와는 별로 친숙하지 않다. 영화는 영화일 뿐이라고 생각 하다 보니 장르적 영화들을 더욱 좋아하게 됐다. 그리고 특히 공포영화가 감각적이고 자극적인 것들을 좀 더 자유롭게 풀 수 있기에 장르 영화의 본질을 담고 있다고 생각했다. 액션도 마찬가지겠지만 잘 다뤄보지 않은 장르였고 그나마 겁은 많으니 공포를 할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어 일단은 시작을 했던 것 같다. 귀신이 나오는게 싫으니까 오히려 조금 더 무서우면서도 덜 무서운 걸 할 수 있지 않을까.

 

Q. 전자레인지에 붙여진 그림, 문의 높낮이와 같은 디테일한 지점이 눈에 띄었다. <긴 밤>을 연출할 때 유난히 신경을 썼던 부분이 있는가?
사실 그 전자레인지에 붙여져 있는 것은 카메라가 반사 될까 임시 방편으로 해놓은 것인데 뒷 배경과 꽤 잘 어울려 아직까지 붙여 놓고 있다. <긴 밤>의 주무대로 사용되는 장소는 배우 분들과 함께 쓰기 위해 구했던 공간이다. 지내지는 않고 반 사무실의 형태로 쓰려고 입주하게 되었는데 그 뒤에 기념으로 입주 작을 찍게 된 것이 <긴 밤>이다.

 

그 공간이 반 지하라 화장실도 정말 반 층 올라가야 있었다. 그 때문에 화장실에 들어가려면 수그려야 했다. 이런 지점들과 촌스러운 문 색깔을 보니 그냥 찍어도 충분히 느낌이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더라. 무언가 의도한 게 있었던 것은 아니고 그냥 장소 자체가 가진 독특한 부분들을 보고 시작했던 것 같다.

 

Q. 결말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귀신이 형을 향해 입을 벌리는 부분과 콘센트를 잡아당기는 부분이 잊혀지지 않는다. 복수나 원한에 대한 영화로 보아도 되는 것인가?
귀신이 등장하는 영화는 대부분 원한과 복수에 대한 이야기다. 어떤 집에서 누가 죽었는데 그 원한으로 새로 들어온 사람들에게 해코지를 한다는 식의 이야기 말이다. 새로 들어온 사람은 상관도 없는데. 그렇게 생각하다 보니 인과관계들을 좀 더 타이트하게 붙여준다면 좋지 않을까 싶었다.

 

연쇄 살인마와 여성 피해자, 이런 구도들에 대해서 많은 예술 영화나 장르 영화들이 다양한 접근과 해석을 하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그런 식의 거창한 생각이 있었던 것은 아니고 최대한 장르적인 독특함을 살리고 싶었다. 단순히 원한만 풀려는 귀신이 아니라 누군가한테는 도움을 주는 편이 다른 영화들과 확실히 다른 포인트가 되지 않을까.

 

마지막 부분 같은 경우에는 무서운 것을 싫어하지만 서도 장르적으로 해소가 필요하지 않을까 싶어 넣게 되었는데 편집할 때 꽤 무서웠다. 괜히 뒤도 한 번 돌아보고 그랬다.

 

Q. <긴밤> 이란 단편 영화의 관람 포인트가 있다면?
귀신이 갑자기 튀어 나와 놀래 키는 식의, 일명 점프 스퀘어 형식의 것들을 최대한 배제하며 무서운 영화를 찍어보고 싶었다. 보통 귀신이 나오는 영화라고 하면 귀신이 가져가는 동선이 아니라 그 등장에만 신경을 쓴다. 장롱을 열면 귀신이 나오는 식의 연출 말이다. 그렇게 나타난 귀신이 무섭긴 하지만 관객들은 그 이후에 귀신이 어디로 갔는지는 모른다. 그런 장르에서 귀신들이 보여주는 움직임들과는 조금 다른 움직임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냥 움직여 다니고, 걸어 다니고, 주변에서 계속 쳐다보고 있는 식의 것들 말이다.

 

좀 더 단순하게 말하면 놀래 키는게 너무 싫어서 그냥 움직이게 하고 싶었다. 조금 오버해서 꺾는 것 보단 괜히 구부리고 다닌다 던지 하는 독특함 들을 넣으며 스윽 움직이고. 그런 액션의 크기도 배우와 함께 정했던 것 같다. 일반적인 귀신의 움직임이 아닌 그냥 평범한 사람처럼 지나다니지만 또 아닌 것도 같은 그런 느낌으로.

 

Q. 명료하지만 많은 이야기들이 담겨있는 것 같다. 전작 <감자>에 이어 <긴 밤> 까지 시나리오 구상에 추구하는 부분이 있다면?
개인적으로 다른 영화들도 영화제에 출품을 했다. 거의 <긴 밤>에 비해 제작비가 몇 십 배 차이가 나는 것들이었는데 해당 영화가 이렇게 미쟝센 단편영화제에 오게 된 것을 보고 느낀 점이 있다. 제작비와 완성도에 신경을 쓸수록 좀 더 보수적이 된다는 것. 예산이 들었으니 좀 더 안전한, 혹은 많은 이들에게 어필 될 수 있는 쪽을 선택하는게 당연한 마음이니 말이다. 그러다 보니 경제적인 부분에서 벗어날수록 이야기의 전개나 컨셉이 더 도전적이고 비 관습적이 되는 것 같다. 항상 글을 쓸 때의 어떤 마음가짐을 가지는 것은 아니지만 작품의 경제적 상황에 따라 내 마음이 거기에 맞춰지는 것 같더라.

Q. 영화라는 다리를 통해 관객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가?
영화는 영화일 뿐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개개인의 태도나 취향의 차이가 분명 존재하지만 그럼에도 어려운 사람에 대한 영화를 찍는 것 보다 그 돈으로 직접 돕는게 더 낫지 않을까 싶은 조심스러운 생각이 있다. 영화라는 것이 현실 안에서 갖는 가치는 세상을 포용할 때 보다 누군가에게 잠깐의 즐거움을 줄 때 더 높아진다고 생각한다. 우리 모두 맨 처음 영화를 보았을 때 좋아하는 영화들이 있었을 것이다, <쥐라기 공원> 같은. 입문을 한 뒤에 계속 보다 보니 어려운 영화도 좋아한 것 아닐까. 근본적으로 처음 좋아했을 때를 생각해 본다면 조금 더 표면적이고 감각적인 것들에 집중을 했던 것 같다.

 

Q. 단편 영화란?
조금 더 편안할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한다. 배우 분들과 단편 영화를 많이 찍곤 하는데, 누가 하라고 스트레스를 주는 것도 아니고 좋아서 찍는 영화라 자유롭게 하게 된다. 그렇기에 더 좋은 것 아닐까. 잘 안되더라도 나와 배우들만 아쉽고 마니 더 과감할 수도 있고 말이다.

 

신나고 즐겁게, 영화 그 자체를 즐겨 달라는 말은 어느때나 반짝이는 것 같다. 무의식 중에 영화를 보며 알 수 없는 스트레스에 시달렸을 많은 이들에게 재미있으면서도 어딘가 섬뜩했던 <긴 밤>을 선물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