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세영 감독의 영화 속 인물들은 언제나 시간과 동선과 규칙에 예속되어 있다. 그러나 그것들은 필연적으로 어긋나며, 바로 그 지점에서 영화의 균열이 발생한다. 정해진 루틴과 어긋나는 변수가 빚어내는 불협화음은 영화의 물리적 시간과 기본적인 박자 단위를 뒤죽박죽 헝클어 놓는다. 감독의 신작 ‘Godspeed’에서 음악 작곡을 맡음과 동시에 배우로 활약하며 영화가 품고 있는 독특한 박자 감각을 스크린에 리드미컬하게 구현해낸 만능 뮤지션 김오키를 만났다.
이번 작품으로 미쟝센 단편영화제를 찾은 소감이 어떤가.
박 감독이 잘 돼서 너무 좋다. (웃음)
박세영 감독님과 함께 작업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감독님의 전작 <캐쉬백>에 평소에 알고 지내던 배우들이 출연해서 상영회를 보러 갔었다. 거기서 감독님을 처음 소개받았다. 영화를 굉장히 인상 깊게 봐서 나중에 앨범 나오면 뮤직비디오를 찍어 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이번 작품은 박 감독이 먼저 제안했다. 재미있어 보여서 흔쾌히 수락했다.
시나리오를 맨 처음 읽어보고 어떤 느낌을 받았나.
단순한 스릴러는 아니고 진지한 느낌으로 깊게 들어가는 영화라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코미디 같다고 느껴지는 지점들도 있었다. 그리고 사실 시나리오가 눈에 잘 안 들어왔다. 영화 작업이 처음이다 보니까 콘티를 봐도 감이 잘 안 잡혀서 일단 현장에 가서 직접 부딪혀 봐야겠다는 생각이 컸다.
음악을 구상하는 과정에서 박세영 감독님과 어떤 대화를 주고받았나.
일단 영화를 계속 보면서 그 위에 기존에 가지고 있던 음악들을 입혀봤다. 그중 잘 어울리는 느낌을 찾아내는 방식으로 함께 작업했다. 감독님이 이런 느낌이 좋겠다고 주문하면 그거에 맞게 음악을 새롭게 다시 만들었다.
곡을 쓸 때 무엇을 가장 염두에 두었나.
최대한 진지하게 만들려고 했다. 스릴러적인 장면인데 음악도 그런 느낌으로 넣으면 조금 촌스럽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런 클리셰한 부분을 피해 가고 싶었다. 결국에는 느낌에 많이 의존했던 것 같다. 횟집에서의 살인 장면도 이미지에 구애받지 않고 최대한 느낌을 살리려고 노력했다.
레퍼런스로 삼은 작품이 있었나.
딱히 레퍼런스를 찾아보지 않는 편이다. 레퍼런스라고 한다면 오히려 이전에 만들었던 음악들을 전부 다시 돌려보는 정도? 나는 평소에 음악 작업을 할 때도 좀 영화처럼 만들려고 노력하는 것 같다.
음악을 영화처럼 만든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마치 영화를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랄까. 음악을 듣고 나면 한 편의 영화를 본 것 같다는 느낌을 주고 싶다.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머릿속으로 영화의 장면들을 계속해서 떠올리고 상상하게 만드는 음악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영화 초반에 직접 색소폰을 연주하는 장면이 나온다.
사실 그 음악도 현장에서 즉흥으로 만든 거다. 어떻게 하면 조금 더 웃기게 보일 수 있을까를 고민하고 연구했다. 드럼 킥 위에다 발을 올려놓기도 하면서 서커스같이 보이는 느낌을 주려고 노력했다. 롱테이크로 찍어야 하는 장면이었는데 그게 좀처럼 잘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감독님이랑 촬영감독님이 서로 티격태격하는 걸 봤다. 화내고 싸우는 장면을 보면서 이야 정말 재밌다고 생각했다. (웃음)
극중 어떤 의미를 주기 위해 삽입된 장면이라고 생각하나.
사실 영화 전체적으로 봤을 때 그 장면이 되게 튄다. 그 부분과 마지막 횟집 신을 제외하고는 인물들이 전부 걷기만 하지 않나. 그래서 약간 인트로적인 느낌을 준다고 생각했다. 상상력을 조금 더 덧붙이자면 지하 암흑에서 뭔가가 시작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현장의 스태프들이 내가 색소폰 부는 걸 보고 다들 복어 같다고 그러더라. (웃음)
설마 그래서 횟집 신에 복어가 등장한 건가.
그거는 잘 모르겠다. (웃음)
극중 대사 한 마디 없이 계속 걷기만 한다. 다소 강박적으로 느껴질 정도로 보폭이 일정했는데 이는 의도된 설정이었나.
상대 배우와 함께 걸을 때는 간격과 보폭을 꼼꼼하게 맞췄던 것 같다. 그게 은근히 합 맞추기가 힘들어서 굉장히 여러 번 찍었다. 기차가 들어오고 나가는 것도 정확하게 시간을 맞춰야 했다. 이때 감독님으로부터 목적 없이 걸어가는 느낌이었으면 좋겠다는 디렉팅을 받았다. 걷는 것과, 걸어가면서 손으로 하는 작업들이 별개로 진행됐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하셨다.
음악 작곡과 배우라는 두 가지 포지션을 동시에 수행하며 힘든 점은 없었나.
힘든 점은 전혀 없었다. 오히려 더 좋았던 것 같다. 현장에서 연기를 하며 직접 보고 들은 것들이 음악을 만들 때 도움이 많이 됐다. 어떤 느낌인지를 파악하기가 한결 수월했다.
좋아하는 영화 장르가 있나.
스릴러 영화도 좋아하고 B급 코미디도 좋아한다. 좋아하는 감독은 타란티노, 그리고 마틴 스콜세지. 장률 감독님도 정말 좋아한다. 평소에 영화를 보면서 영감을 많이 받는다.
앞으로 함께 작업해보고 싶은 감독이 있나.
장률 감독님? 아니면 박찬욱 감독님? (웃음) 그런데 사실 지금 제작 중인 영화가 있다. 내가 직접 시나리오를 쓰고 감독까지 한다. 무려 박세영 감독이 촬영감독이다. (웃음)
작업 중인 영화 얘기 조금 더 듣고 싶다.
영화 제목은 <다리 밑에 까뽀에라>다. 어떤 존재가 필요에 따라서 계속 자신의 껍데기를 바꿔가면서 살아가는 내용의 B급 코미디 스릴러다. ‘Godspeed’와도 상통하는 지점들이 있다. 두 작품의 분위기가 비슷할 수도 있겠다. 지금 열심히 편집 중이다.
영화를 촬영하게 된 계기가 있나.
어릴 때부터 영화가 너무 하고 싶었다. 그렇지만 워낙 어렵고 복합적인 작업이다 보니 엄두를 못 내고 있었다. 그런데 박세영 감독을 만나고 나니까 주변에 영화를 만들 수 있는 환경이 전부 조성되어 있더라. 박 감독이 불을 지핀 거다. (웃음)
그렇다면 이런 질문 드려보고 싶다. 감독님께 박세영 감독은 어떤 존재인가.
뭐랄까 한 마디로 러브..? (웃음) 내 인스타그램 계정에 들어가보면 하이라이트 두 개가 있다. 하나는 여자친구 거고, 다른 하나는 박세영 거다.
그럼 여기에는 소중한 존재들만 올라오는 건가.
그렇다. 하이라이트 이름은 박세영’s 맥북이다. 사실 얼마전에 영화를 편집하려고 박 감독의 맥북을 샀다. 그런데 맥북을 켤 때마다 자꾸 박세영 이름이 나온다.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하다.
요즘 영화작업에 가장 몰두하고 있다. 음악도 영화 OST 작업으로 음반을 내려고 계속 준비중이다. 앞으로 찍을 영화도 두 개 정도 더 있다. 이번 여름에 단편 찍고, 그 다음엔 장편도 찍어보려고 한다.
끝으로 김오키 감독님께 단편영화란?
단편영화는……. 굉장히 어려운 작업이다. (웃음) 장편보다 어렵다. 짧은 시간 안에 재미를 주기에는 단편의 시간이 굉장히 애매한 것 같다. 차라리 길면 좀 나을 텐데. 평소에 단편영화를 엄청 많이 보는데도 정말 재미있는 단편을 발견하는 경우는 드물다. 그렇지만 <캐쉬백> 같은 경우는 너무 재밌게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