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표정한 보육교사는 오늘도 능숙한 얼굴로 아이들을 감싸 안는다. 연이은 사건들로 인해 보육이 갖는 의미가 과연 무엇일지 의문을 갖게 하는 요즘, <보육교사>의 김믿음 감독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Q. 미쟝센 단편영화제 본선 진출을 축하 드린다. 소감을 듣고 싶다.
소식을 듣자마자 정말 기뻤다. 다른 영화제와 달리 미쟝센 단편영화제의 경우 이미 업계에 진출한 감독들이 선택한다는 점에서 유난히 의미가 컸다. 동료가 되고 싶은 사람들에 의해 채택 된다는 게 남다르기도 하고. 일차적인 목표는 관객들을 만나 보는 것이었지만 미쟝센 단편영화제 만의 특징과 장점들이 여러 만족감을 주었던 것 같다.
Q. <보육교사>는 무서운 장면 없이 무서웠던 영화였다. 어떠한 주제를 갖고 있는 영화인가?
사회적 문제들이 연이어 있었던 만큼 아동학대가 단순히 영화적 소재로 이용되는 것은 원치 않았다. 여러가지 고민을 한 끝에 육아 시스템에 대한 문제를 이야기 해보자 생각했다. 아이를 기른다는 것 자체가 예전처럼 단순히 모성에 의지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기에 시스템이 갖춰져 있지만 그 안에 헐거운 것들은 분명 존재한다. 그 헐거움에 대한 공포감이 보육교사로 일하시는 분들은 물론 부모님들에게도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직업 의식에서 한 발자국 멀어지는 순간 아주 헐거운 고리가 아이들의 공포로 이어질 것이고. 그런 의미에서 다른 것 보다 아이를 기르는 그 시스템에 대해 천천히 돌아봐야 하지 않을까. 단순 공포 영화로 머무르고 싶지는 않았다. 공포를 다루고 있기는 하지만 육아라는 주제 중에서도 육아를 실패 했을 때 우리가 어떻게 잘 가꿔나갈 것인가 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Q. 안드로메다를 비롯해 요셉 하이든의 음악까지. 영화 속 음악이 영화의 분위기를 한껏 강조했다. 음악 선정의 이유가 있었는가?
시나리오 단계 때부터 개발을 하며 음악 선택과 삽입에 대한 생각을 했다. 보육교사 일을 하고 있지만 아이라는 원시성을 가진 존재로 인해 자신의 어떤 자유로움이 억압 당할 것이고 그 충동을 조금씩 표출해 나가는 수단으로 음악을 사용하게 됐다.
클래식의 경우 대비를 나타내기 위해 선택을 했다. 첫 장면에 사용 된 하이든의 곡은 종교적인 의미가 담겨있다. 나름대로 농담을 했다고 생각했는데, 노래는 가상칠언에 대한 이야기였다. 예수가 십자가에서 한 마지막 일곱 말 중 “보소서 아들이나이다” 라는 구절을 포함한 해당 노래가 부모가 보육교사에게 아이를 맡기러 가는 장면에 흘러 나온다.
셀럽파이브의 곡은 실제 그 노래에 맞춰 아이들이 춤을 많이 추더라. 단순히 나오게 하고 싶지는 않았고 보육교사가 무언가를 표출해내는 춤으로 나타내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마지막에 등장하는 노래가 이 영화를 만들 때 가장 먼저 선택됐다. 그 음악과 춤추는 모습이 우연히 교차 된 적 있었는데 순간 아 이렇게 연출해야겠다 싶었다.
Q. 어딘가 서늘함을 풍기는 지은 역의 김강희 배우가 매우 인상적이었다. 지은을 캐스팅 할 때 중점에 두었던 부분이 무엇인가?
우선 지은의 이미지 자체는 양면적이길 바랬다. 기본적으로 깔고 있는 따뜻함이 보이지만 서도 어딘가 막혀있던 것을 분출할 때 나오는 광기를 담을 얼굴이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여러 배우 분들을 만나봤지만 강희 씨가 제일 맞겠다 싶어 캐스팅을 하게 되었다.
Q. 지은과 슬기가 수영장에서 대담하는 씬 속 지은의 독백이 강렬했다. 배우에게 특별히 디렉팅 했던 부분이 있는가?
단편영화 속 현장의 시간은 짧으니 그 전에 배우들과 한 달 정도를 계속 만났던 것 같다. 현장에서는 연기에 대한 디렉팅보다 기술적인 부분들에 대한 이야기를 더 나눴다. 일정 부분 안에서 시선을 움직여 달라는 식의 디렉팅 말이다.
해당 장면은 대화가 아니라 독백이라고 생각을 해야했다. 혼자 대뇌이면서도 앞에 앉아있는 이가 자신의 과거처럼 보일 수 있을 것 같아야 하고. 지은이라는 인물이 슬기를 한심하게 바라보며 그녀가 전문적이지 않다고 생각하는 거만함을 가져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인물이 비춰지는 방식 자체는 나와 촬영 감독님에게 달렸으니 적어도 배우에게는 그 인물에 대한 확신이 있길 바랬다. 그러한 부분에서 광기가 제대로 드러나지 않으면 그저 범죄를 저지르는 한 사람을 보여주는 것에서 그치게 되니 말이다. 보육교사라는 사람들이 어떠한 시스템 안에서 제대로 가꿔지지 않으면 마음 속에 억압 같은 게 생기는 거구나 같은 것들의 느낌까지 주는, 질문 섞인 톤으로 만들기 위해 그 지점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드렸던 것 같다.
Q. 독립영화 <박화영>의 미술조감독을 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사혈침을 비롯해 여러 소품들에 유난히 눈이 가는데 소품 구비에 가장 신경 썼던 부분이 있다면?
등장하는 소품들에 모두 관여를 하긴 했다. 그냥 구할 수도 있었겠지만 어쨌든 영화는 시각적으로 스토리텔링을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중요했다. 지은이 흔드는 항아리가 별 거 아닌 것처럼 지나가지만 그 장면에 나오는 색은 어떤 것이 가장 잘 맞을 것인가 같은 고민을 통해 나온 소품이다. 사혈 침의 경우도 띠지를 따로 두른 것이다. 띠지의 디자인을 미술감독에게 요청을 하고 예시 안을 보고 선택을 하고. 프레임 안에 들어오는 것들은 모두 그림처럼 구성이 되야 안심을 하는 스타일이다. 사소하지만 아이들의 활동 장면에서 나오는 교구들도 끊임 없이 찾아보다가 실을 연결해 노는 독특한 교구가 있다고 하여 한 번 써보자고 했다. 클로즈업이 된 장면은 따로 없어서 미안했다.
Q. ‘통제’ 의 장치로 카세트 테이프의 내용이 쓰인 것 같다. 이는 쌍둥이를 내려다보는 승현의 행동으로까지 이어지는데. 영화를 통해 보여주고자 한 것이 있는가?
보통 모성 하면 신화적으로 생각하는 지점이 분명 존재하는 것 같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보았을 때 특정 시기의 아이는 그저 함께 시간을 보내는 이의 영향을 받는다. 그런 이야기들을 짧은 시간 안에 어떻게 상징적으로 표현할 수 있을 까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다.
아이들이 어린이집에 가는 시기가 언어 발달의 시기라고 알고 있다. 함께 시간을 보내는 교사가 어떻게 행동하는지에 따라 언어 입력이 결정되는 것이다. 이 것은 일종의 관계이기도 하지만 권력으로 볼 수도 있다. 보육교사가 말을 주는 입장이라고 생각을 하니 책임감이 적은 직업이란 생각은 안들더라. 하지만 보육 시스템은 확실히 현대적인 것이고 각자의 역할이 잘 맞물리면 좋은 시스템이 되지만 하나가 엇나가면 바로 잡을 새 없이 망가지기 시작한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유명한 영화가 있는데 지금 현재 활동하는 감독님들 중 가장 존경하는 분의 작품이다.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의 <송곳니> 라는 작품이고, 그 속에 한 장면을 꼭 넣고 싶었다. 어느 정도 오마주 했다고도 볼 수 있다. 해당 영화의 초반부를 보면 성인이 된 자식들이 언어 장난을 하는 장면이 나온다. 하지만 알고 보면 주어와 술어들이 전혀 맞지 않는 기묘함을 주는 그런 장면인데, 이를 통해 말이라는 것이 인간에게 있어서 권력이라는 상징을 갖게 된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 장면을 거의 차용하다시피 하여 해당 씬을 만들어낸 것 같다.
그 장면을 찍을 때 촬영 감독님이 정말 괜찮냐고 여러 번 물으시더라. 스텝 그리고 배우들과 충분히 의논할 수도 있었지만 그럼에도 꼭 가져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장면이었다. 배우가 좀 멀리서 보여지긴 하지만 배우 분께 꼭 렌즈를, 카메라를 봐달라고 요구했었다. 자신이 가져다 놓은 카메라처럼 보이면 영화와 엄청 이질적인 장면이 연출 될 것 같았다. 딱 음악 이랑 이상하게 교차되는 지점이기도 하고. 그리고 지점들이 하나의 섬을 만들어 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그렇게 묘사를 했다.
Q. <보육교사>는 절대악몽 섹션에서 공개되었다. 좋아하는 장르가 있는가?
장르에 있어서는 스릴러를 가장 즐긴다. 텐션이 있어야 영화의 흥미를 느낄 수 있다고 생각 하기에 스릴러를 좋아하는 것 같다. 기본적으로 나 역시 절대악몽 섹션에 관심이 많았고.
애초에 기획 자체는 보육교사의 시점이 아닌 아이의 시점으로 시작을 했었다. 크리쳐가 나오는 공포 시나리오였다. 하지만 개발 되다 보니 여러 군데가 바뀌게 되더라. 하지만 시작점은 역시 공포였다.
Q. 차기 작의 계획이 있다면?
대학원 때부터 시나리오를 전공해 써놓은 것이 있었지만 현재는 시놉시스부터 다시 쓰고 있다. VR의 발달로 원격 연애가 발달되고, 출산율이 낮아져 정부가 그 기계를 강제로 투입시키는 이야기부터 직업이 사라지는 시대에 실직 위기에 처한 전문직업인이 깡통 전세 아파트를 지키기 위해 부자 노인을 납치한다는 이야기까지. 워낙 시나리오 쓰는 일이 쉽지가 않아 여러 편을 염두해두며 장편 위주로 글을 쓰고 있다.
Q. 단편 영화란?
40분을 넘지 않은 짧은 영화라고 생각한다. 일단 장편 영화의 축소판은 결코 아니다. 찍는 것은 어느 현장이건 비슷한 느낌을 갖고 있으니 스토리텔링 위주로 말해보자면, 이야기 서술이나 영화 그 자체가 줄 수 있는 파동은 단편이 더 큰 것 같다. 단편이 어떻게 보면 더 짧기에 도발을 할 수 있고 한 방을 던질 수 있지 않은가. 그런 하나의 장르인 것 같다.
사회의 크고 작은 단면들을 담고 있는 단편 영화들은 어느새 하나의 장르로 우뚝 자리하게 되었다. 카메라 너머를 응시하며 알 수 없는 몸부림을 치던 지은처럼 어쩌면 알아차리지 못한 곳에서 발버둥 치는 이가 존재할 지 모른다. 과연 우리는 지은이 될까 아님 방관자가 될까. 날카롭게 던져지는 물음 속에 <보육교사>는 수면 아래의 진실을 마주하라 이야기 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