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회 미쟝센 단편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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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에 대한 책임을 질 것.” ‘감독 연습생’들에게 전하는 이상근 감독의 인터뷰

글 : 하예은, 한지나 / 사진 : 김동영, 김정은, 이재원

올해 20주년을 맞은 미쟝센 단편 영화제는 코로나 상황에도 멈추지 않는다. 오늘 열린 개막식에서 참석해준 많은 영화인의 버팀목 아래 미쟝센 단편 영화제는 앞으로도 신인 감독들의 등용문이자 시작점이 될 것이다. <엑시트>로 성공적인 데뷔를 치뤘지만, 단편 영화제를 변치 않고 찾아주는 한 사람이 있다. 바로 이상근 감독이다. ’미쟝센 단편 영화제수상을 시작으로 10주년 기념 다큐멘터리 제작, 준비위원회 부집행위원장에 이어 올해 20주년 개막작으로 영화제의 포부를 연 이상근 감독을 만나봤다.

 

Q. 만나게 되어 반갑다. 감독님은 특히 미쟝센 단편 영화제와 연이 깊다. 수상도 여러 번 했을 뿐만 아니라 10주년 다큐멘터리에 이어 올해 20주년 개막작도 작업했다. 본격적으로 인터뷰를 시작하기에 앞서 감독님에게 미쟝센 단편 영화제가 어떤 의미인지 듣고 싶다.

 

영화 인생의 동지 혹은 친구 같은 존재이다. 당 떨어지면 사탕도 쥐여 주고, 힘들면 힘내라고 응원도 해준다. 예를 들어, 내가 어떤 춤을 개발했다고 보여주면, ’이 춤 괜찮네’라고 말해주는 존재다.

 

 

 

 

Q. 감독님 영화 생활에 힘이 되어준 존재인 것처럼 느껴진다.

 

그렇다. 그러다가 지루해질 때, 나타나서 잘하고 있다고. 계속 열심히 해보라고 응원하는 존재다.

 

 

 

 

Q. 20주년을 맞은 올해 미쟝센 단편 영화제에서 준비위원회 부위원장을 맡아 주셨다. 개막작인 <미쟝센 웨이브>로 영화제의 포문을 열고 관객들과 처음 만나는 자리다. 감독님의 소감이 궁금하다.

 

 힘들고, 피곤하다. 내가 이걸 이렇게 공들여서 했다고? (일동 웃음) 처음엔 핸드폰으로 대충 찍어서 하려고 했던 나는 어디로 갔나. 이런 생각도 든다. 코로나 때문에 화상통화인 ’Zoom’으로 인터뷰를 했다. 그것도 나름 시대를 담는다고 생각하면 의미가 있더라. 여러 사람을 인터뷰 하다 보니 욕심이 생기고, 통찰력도 있는 것 같고, 기록할만한 가치가 있더라. 그런 생각을 발단으로 무리해서 열심히 했더니 오히려 힘들었다.

 

 

 

 

Q. 개막작이 영화제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이야기하는 다큐멘터리 형식이다. 20주년 타이틀에 적합한 것 같다. 앞 질문과 이어지는 데, 처음에는 소박하게 하려다가 의도치 않게 규모가 커진 건가.

 

그렇기보다는 분량 조절에 실패했다. 러닝타임이 정확하게 30분이다. 나름대로 30년 후의 미쟝센 영화제를 바라보며 의도한 부분이다. 지금 상황도 바깥에서 페이크 다큐멘터리를 찍을 만한 상황도 아니었다. 극 영화의 형식을 빌려다가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은 물린 것 같았다. 미쟝센 단편 영화제가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진실한 이야기를 들어보고자 했다. 의욕적으로 하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 뭐, 요새 여유롭기도 하고. (웃음)

 

 

 

 

Q. 제작 비하인드나 기억 남는 에피소드가 궁금하다.

 

인터뷰이 들과 스케줄 잡는 것이 가장 힘들었다. 아무래도 시간이 유동적이다 보니 스케줄 표 짜는 데만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많은 인터뷰이에게 같은 질문을 하다 보니 나 자신도 어느 순간 지쳐있더라. 코로나라는 한정된 상황에서 색다르지 않은 조건에서 재미를 뽑을 수 있을지 불안하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계속 무언가를 추가하려고 했다. 이렇게 가서는 안 된다는 심정으로. (웃음) 이미지도 넣고, 극영화 형식도 빌려봤다. 극영화 부분은 구상단계에서 미리 생각한 것이 있었다. 엔딩을 보면 알게 될 것이다. 이번에 이현승 감독님이랑 정극 연기도 한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웹상에서 이 데이터를 어떻게 지울 수 있을까. 이 생각만 드는 데 사람들이 안 봤으면 좋겠다. (일동 웃음)

 

 

 

 

Q. 개막작 이외에도 연출한 단편 중에 <감상과 이해, 청산별곡>이 ‘inside the 20′ 섹션에서 상영된다. 영화와 관련해 관객들과 이야기 하고 싶은 부분이나, 간단한 소개를 부탁한다.

 

대학교 때, 영화를 하겠다고 맘먹고 나름 거대 자본을 투자해서 찍었다. 기존의 작품들이 습작이라면, 이 영화를 통해 연출가로서 나의 색깔을 드러내고, 나라는 존재를 보여주고 싶었다. 그 당시에는 필름으로 영화를 찍는다는 것 자체가 굉장한 자본이 필요했다. 필름으로 영화 찍으려고 친지들에게 돈을 꾸어 열심히 찍었다. 그 당시에는 진지한 사조들의 단편 영화제가 이끌었던 시대였다. 지금 와서 이야기하지만, 내 취향과는 거리가 멀다. 내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보다는 그 시대를 보여주는 작품일 것이다. 또한, 거대 자본이라고 말했지만, 상대적으로 돈이 많이 없었기 때문에, 한 공간에서 일어나는 어떤 심리적인 실험극 같은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Q. 제작하신 단편 영화의 대부분이 수상했다. 단편 영화를 좀 아는 감독으로서 단편 영화만이 갖는 힘이란 무엇인가?

 

짧은 영화. 상대적으로 어떻게 비교하는가에 따라 다르겠지만, 장편 영화와 달리 단편 영화는 짧은 호흡을 가진다. 짧은 시간 안에 관객들의 심장을 들었다 놨다 하는 힘이 강한 영화다. 또, 자본이나 누군가의 눈치를 보지 않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는 ’무규칙의 장‘이다. 그게 단편 영화만이 갖는 힘인 것 같다. 단편 영화는 흥행 결과에 따라 투자자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 오로지 내가 감당해야 한다. 고유한 자기만의 성역 같은 실험실이다.

 

 

 

 

Q. 단편을 쭉 만들다가 2019년에 <엑시트>라는 장편을 찍었다. 개봉과 동시에 흥행을 거뒀는데, 기존에 작업했던 단편과 어떤 차이점이 있었는지.

 

다른 건 없었다.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했지만, 여러 자본이 들어가기 때문에 개인적인 것들을 버릴 수밖에 없다. 어떻게 보면 하나의 상품이기도 하니까. 그 와중에도 내가 좋아하는 것을 살리려고 최대한 노력했다. 단편에서 장편으로 넘어갈 때 그런 것을 버리려고 하면 오히려 더 안 좋다. 그런 것을 살리면서, 자신만의 색깔을 드러내는 것이 좋다. 장편은 아직 한 편 밖에 안 찍어 이렇다 저렇다 말하기엔 부족한 것 같다. 경험에 비추어 봤을 때, 자신이 좋아하는 것과 하고 싶은 것을 유지하면서 이를 어떻게 상업 영화로 구현해야 하는지 고민하는 것도 하나의 관건이다. 한때는 단편만 찍고 버틸 수 있으면 이것보다 즐거운 일은 없다고도 생각한 적도 있다.

 

 

 

 

Q. <엑시트>를 보면, 재난 상황에 집중하면서 재미를 놓치지 않은 동시에 한국 청춘들을 위로한다. 조정석이 연기한 주인공 ’용남‘에게 자신을 많이 투영했다고 알고 있다. 감독님이 영화를 통해서 관객에게 건네고 싶었던 메시지가 듣고 싶다.

 

나는 영화가 관객에게 그저 재밌게 다가갔으면 좋겠더라. 개인적으로 영화에 메시지는 오만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나도 영락없는 세상 사람들과 같이 ’용남‘이처럼 감독이 되기 위해 계속 노력했던 사람이다. 어딘가 있는 ’용남‘이 같은 사람들에게 누군가 너에게 응원을 보내고 있다는 것. 그런 것을 알아줬으면 한다. 청춘은 어떻고, 포기하면 안 되고, 이런 캐치 프라이드 같은 메시지는 이제 너무 식상하다. ‘너는 잘 될 것이다.’라는 말도 책임 없어 보인다. 이렇게 말하니 시니컬해진 것 같긴 한데 (웃음) 그냥 중요한 것은 네가 가진 가장 하찮은 능력들도 언제는 쓰이는 날이 온다고 말하고 싶었다. 병뚜껑만 잘 따는 사람이라도, 병뚜껑이 사라지는 세상이 오면 바로 영웅이 되지 않나. 그런 것들을 말하고 싶었다.

 

 

 

 

Q. 감독을 준비하던 시절을 스스로 ’감독 연습생’이라고 칭했다. 그때는 미래가 불투명한 시절이었는데, 어떻게 그 시절을 견딜 수 있었나.

 

잘 견디지 못했다. (일동 웃음) 그냥 버텼다. 지방에서 상경한 상황이 아니어서 나름 집에서 해주는 밥 먹고, 잘 잤다. 서울에 사는 메리트가 있었다. 힘들었던 부분은 눈칫밥과 스스로 오는 자괴감이었다. 하고 싶은 일을 못 하는 박탈감이 컸다. 내 인생의 꿈은 언제 이뤄질까 생각하며 초조하기도 했다. 그런 것을 잊어보려고 글도 쓰고 치열하게 알아보려고 했다. 열심히 해도 잘되지 않는 상황에서 게을러진다면 그건 정말 너무하다고 생각했다.

 

 

 

 

Q. 코로나 때문에 영화계가 전반적으로 힘들다. 감독님이 거쳤던 ‘감독 연습생’ 시절을 견디고 있는 감독 지망생분들이 많을 텐데 그들에게 건네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솔직히 잘 모르겠다. 섣불리 이야기하는 건 오히려 오만하다고 느껴진다. 나조차도 지금까지 해피 엔딩인 셈이다. 물론 앞으로도 어떻게 될지 모르고, 열심히 해야 하지만. 꿈만 가지고 아무것도 안 하는 사람도 분명 있을 것이다, 그런 사람들에 대해서는 냉소적으로 말하고 싶다. 꿈을 가지되 책임을 갖고 계단 오르듯 걸음을 떼야 한다. 꿈에 대한 행동이 따라오지 않으면 꿈꿀 때만 행복할 뿐이다. 나 또한, 꿈만 꾸던 때가 있었는데, 정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발등에 불 떨어지면 누구든 깨닫게 되겠지만. (웃음) 무조건 열심히 하라는 말이 아니다. 나도 그렇게 살지 않았기 때문에 그러라고는 말하지 못하겠다.

예전부터 선배들에게 ’언젠가 네 기회는 온다. ‘라는 말을 종종 들었다. 주위 사람들이 다 잘될 때, 속으로 나는 언제 될까 그런 생각을 하지만, 결국 각자에게 오는 봄의 시기가 다르더라. 자신의 봄날이 언제 오든 간에 그동안 햇볕을 열심히 쬐기 위해서 옥상으로 나아갈 수 있는, 그 문으로 계단을 오를 수 있는 스텝을 밟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Q. 코로나의 영향으로 단편 영화제들 축소되고 있다. 단편 영화를 많이 찍은 감독님이 보시기에 단편 영화가 지향해야 할 방향성은 무엇인가.

 

코로나 이전에도 무수히 많은 영화제가 생겼다 사라졌다, 게 중에서도 정통성 있는 영화제는 끝까지 힘을 내서 살아줬다. 앞으로 영화제는 현시대의 흐름에 맞춰 변화할 것 같다. 예를 들어 OTT 플랫폼과의 결합이나 웹에서 실행되는 영화제 등 다양한 변화를 수용해야 한다. 미쟝센 영화제의 전반적인 상황이 흔들리고 있는 것 같은데, 주적은 코로나다. 비단, 영화제만 상황이 안 좋은 게 아니라 극장 상황도 좋지 않다. 빨리 방역수칙을 잘 지키고, 백신을 맞아서 예전처럼 웃고 떠들고 침 튀기며 영화를 볼 수 있는 시기가 찾아와야 한다. 그때가 되면 예전처럼 영화제들도 마구 생길 것이다.

 

 

 

 

Q. 여러 단편을 제작하던 시기와 첫 장편으로 흥행을 얻은 현재, 영화에 임하는 태도와 방식에 있어서 달라진 것이 있거나 혹은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면 무엇인지 궁금하다.

 

우선, 달라지는 점은 거대 자본이 투자되고 공동 작업의 규모가 커진다는 것이다. 따라서, 많은 사람의 의견을 듣다 보니 영화에 대한 논의와 생각이 깊어지는 것 같다. 그다음, 배의 선장이라는 리더로서 어깨가 굉장하게 무겁다. 단편을 찍을 때는 내 돈을 투자해서 만들면 되니까, 거기에 대한 부담은 상대적으로 덜했었다. 장편이든 단편이든 내가 의도한 감정에 사람들이 반응했으면 좋겠다. 영화가 상을 받고 큰 성공을 거두는 것보단, 딱 영화가 사람들에게 기억될 정도로만의 성취면 충분한 것 같다.

영화는 활동 그 자체가 아니라 어떻게 보면 결과물로 보이는 성과이기 때문에, 장인 정신으로 항아리나 도자기를 구워 내보이는 것과 같다. 사실, 오늘 개막작도 이렇게까지 열심히 했나 싶을 정도로 열심히 편집하고 그랬다. 스스로 아티스트라 칭하긴 부끄럽지만, 창작하는 사람으로서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미친 듯이 열심히 하려는 기질이 깔려있다. 말을 많이 했는지 목이 계속 쉰다. (웃음)

 

 

 

 

Q. 자신이 재밌는 영화를 만들기 위해서 꾸준히 노력하고 있다고.

 

자기가 만들어 놓고 똑같은 부분을 백번씩 돌려보는 사람이 있다. 사실 개막작에도 그런 부분이 있다. 찌르면 아프지만 계속 찌르고 싶은 충동이 들 때가 있다. (웃음) 주로 오그라드는 부분들을 그렇게 보는 것 같다. 나는 영화를 찍을 때, 어떤 감정이나 던지는 분명한 목표가 있다. 사람들이 의도한 지점에 반응할 때, 그렇게 짜릿할 수 없다. 내가 웃기고 싶은 부분에 웃고, 울고 싶을 때 우는 관객들을 보며 스스로가 지휘자가 된 것 같다. 선율과 운율이 들어맞는 기분이랄까. 이 기분 때문에 영화를 계속하는 것 같다. 너무 멋있고, 기대 이상의 작업이다. 물론 그 과정은 무척 힘들다. 앞으로도, 사람들한테 내 이름을 알리기보단, 내가 만든 영화를 보고 같이 웃고 즐겼으면 좋겠다.

 

 

 

 

Q. 마지막 질문으로, 감독님에게 단편 영화란?

 

홈페이지에 써 놓은 게 있는데 뭐였더라. 바꾸면 안 되는데. 무규칙. 강렬한 한방 그런 것 같았는데 (웃음) 단편 영화를 많이 찍긴 했는데, ’짧다‘라는 말로 한정하기엔 무리가 있다. 재밌는 영화다. 지금껏 같이 달려왔던 내 친구. 물도 주고 과자도 주는 그런 친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