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회 미쟝센 단편영화제

OFFICIAL DAILY05

한 폭의 자유로움을 그리는 감독

글 : 하예은, 유소은 / 사진 : 김동영

단편 영화만이 가지고 있는 힘을 제대로 구현한 영화. 이미지의 삽입으로 일반적인 영화 형식을 부수는 <단속 평형>이 세상에 나온 지 17년 만에 다시 관객과 만나게 된다. 신진 감독의 등용문이라 일컫는 미쟝센 단편 영화제에 이제야 초청받는다며 웃음 짓던 손광주 감독은, 인터뷰를 통해 예술의 형태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예술 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답변에 그치지 않고, 자유로이 인터뷰어에게 영화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등 자유로운 소통의 시간이었던 인터뷰를 여러분께 공유하고자 한다.

 

 

Q. 본격적으로 영화 이야기를 하기 전에, 스스로 영화와 미술을 경계를 넘나드는 사람이라고 소개했다. 미디어 아티스트로서의 감독님의 근황이 궁금하다.

 

A. 개인 작업 위주로 전시를 하고 있다. 영상작업을 주로 한다고 보면 될 것이다.

 

 

 

Q. 올해 미쟝센 단편 영화제가 20주년을 맞이했다. 부산 국제 영화제에서 수상한 감독님의 작품 <단속 평형>이 ‘Outside the 20’ 섹션에서 상영된다. 영화가 세상이 나온지 17년이 지났다. 다시 관객들과 만나는 소감이 어떤가.

 

A. 미쟝센 단편 영화제에 영화를 출품한 기억이 없다. 당시 미쟝센 단편 영화제에 대한 정보가 거의 없었고, 영화제는 부산 아니면 전주만 있는 줄 알았다. 나중에 찾아보니까 미쟝센 단편 영화제가 신인 감독의 등용문이라고. 연락을 받았을 때, ‘17년 전 작품으로 나이 오십 넘어 감독의 등용문이라 할 수 있는 영화제에 초청을 받았구나’ 재밌게 생각했다.

 

 

 

Q. <단속 평형>에 대한 소개가 듣고 싶다.

 

A. 블랙 코미디다. 외국에 오래 나갔다가 한국에 들어오게 되면 약간의 부적응이 생기는 것 같다. 그런 부분들이 웃긴다고 생각했다. 허위의식이 있을 수 있는 상황들을 영화로 표현하고 싶었다.

 

 

 

Q. 찾아보니 사전제작 지원을 위해 부득이하게 쓰인 시나리오라고 하더라. 제목의 <단속 평형>이 실제 진화 이론 중 하나인데, 영화의 출발점이 이 이론에서 시작되었는지, 연출의 시작점과 계기가 궁금하다.

 

A. 제목은 영화를 다 찍고 나중에 붙였다. 첫 작품인 <제 3언어>에서 단속 평형을 주장한 스티븐 제이 굴드의 목소리가 인서트로 들어간다. 그때부터 조금씩 관심을 가지다가, 영화 내용이 그 이론과 일치하는 느낌을 받았다. 통상적으로 감독을 하는 사람들은 머릿속에 이것저것 많은 것들이 있다. 보고 들은 것이 머릿속에 소스로 저장되어있기 때문에, 연결이 안 될 수가 없다. 머릿속에 있는 그런 원천들이 연결고리가 맞아떨어졌기 때문에 영화와 연결이 되었던 것 같다. 다른 감독님들도 다 그럴 것이다.

 

 

Q. 일반적인 영화에 비해 실험적인 시도가 두드러진다. 영화 형식이 처음 보는 관객들에게 새롭게 다가올 것 같다. 영화 중간에 다양한 이미지를 삽입하게 된 계기나 이유가 있나.

 

A. 첫 필모그래피인 <제3 언어>에서 시작된다고 볼 수 있다. 나는 미술 학교에서 영화를 배웠다. 미술 학교의 영화 작업은 개인 작업 중심이다. 또한, 주로 실험 영화에 대해 배우는데, 그런 시도들은 해외에서는 흔한 편이다. 일반적인 영화 학교에서는 팀 작업을 훈련 시킨다. 반면에, 미술 학교에서는 영화를 만드는 데 규칙이 없다고 배웠다. 자기가 하고 싶은 방식이 곧 영화 만들기가 되는 것이다. 이미지, 사운드, 텍스트 등 모든 것이 다 재료가 된다. 영화는 그 재료로 만드는 것이다. 그림 그리는 사람에게 물감이나 붓이 재료인 것과 마찬가지로 보면 된다.

 

 

 

Q. 영화는 현대극이지만, 처음으로 삽입되는 숫자가 1876이다. 찾아보니 강화도 조약이 맺어진 년도더라. 이후, 서사 중간에 1905, 1910이 삽입되고, 이후 우리나라 근현대사를 보여주는 이미지와 일련의 숫자들이 같이 병치했다. 1876이라는 숫자로 시작하게 된 이유가 특별히 있나.

 

A. 단속 평형 이론을 우리나라에 적용 시킬 수 있는 지점이라 생각했다. <단속 평형>은 급격한 근대화로 인해 잃어버린 고리를 설명하는 영화다. 어느 시대에서 갑자기 진화가 이뤄진다고 보는 이론인 단속 평형 이론을 우리나라의 급격한 근대화로 잃어버린 고리를 설명하는 데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1876으로 시작한다.

 

 

 

Q. 그러한 이미지의 삽입이 영화 중반이 되는 지점에서는 연달아 이루어진다. 절묘한 우연인지, 감독님만의 다른 의도가 있는지 궁금하다.

 

A. 영화 흐름 상의 리듬이다. 계속 갈 수도 있었지만, 이야기의 흐름 상 여기서 리듬을 주고 싶었다. 이야기는 간결하지 않나. 지루할까봐 중간에 리듬을 주고 싶었다.

 

 

 

Q. 이미지의 삽입이 잦은 편이다. 아이가 베토벤에 대해 일장연설을 하는 장면이나, 도로 판매상이 설전을 벌이는 장면에 삽입된 이미지는 선정 기준이 무엇이었나. 이미지들의 출처 또한 궁금하다.

 

A. 이미지들은 우리나라 근대화를 잘 보여주는 광고 사진이다. 그 당시 광고 사진들은 ‘부르즈아 라이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나는 70 – 80년대에 유년기를 거쳤다. 그당시 공장에서 일하는 여공들의 모습들을 피상적으로 접할 수 밖에 없었다. 그 속에 무구한 이야기가 숨겨져 있다. 그런 의미를 전달하고 싶었다.

 

 

 

Q. 영화에서 광대의 존재 의미가 궁금하다. 광대는 주인공과 같은 프레임에 위치하는 장면이 있는 만큼 비중이 있는 역할이지 않나.

 

A. 멋있게 설명해야 하는데. (웃음) 의미가 있을 거라 생각되겠지만, 많은 게 우연이다. 모든 것을 사전에 준비하기엔 당시 훈련이 덜 된 상황이었고, 그때 아마 미술팀에서 누가 가발을 갖고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괜찮네?” 라고 생각했다. 나는 감독이 의도한 바를 그대로 알아차리기보단, 수용자 입장인 관객이 나름대로 해석하고 받아들이는 작업을 좋아한다. 관객마다 이해관계가 다르기 때문이다.

 

 

Q. 서점에 들린 주인공에게 대뜸 중년 남성이 크게 시를 읊는 장면이 있다. 정작 주인공은 듣는 체도 하지 않고 떠나지만, 관객들은 주인공처럼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시를 삽입하는 남성을 통해 관객에게 다가가고자 하는 의도가 따로 있었나?

 

A. <단속 평형>은 인용이 많은 작품이다. 첫 내레이션도 인용이고, 모든 것을 다 재료로 활용한 영화다. 서점에서 음악가들의 정보를 찾으려는 주인에게 뭔가 가르치고 깨우치려는 흐름으로 삽입하지 않았을까. 그 시가 아마 고은 시인일 것이다. 지금 고은 시인이 잘 나오지 않을 것이다. 웃기다. 고은 시인도 현재에 문제가 많은 인물이니 그 장면도 영화에서 말하고자 하는 허위의식과 연결이 되는 것 같다. 다 엮기 나름인 것 같다.

 

 

 

Q. 자신을 현재를 살아가는 작가 자신의 자화상을 탐구한다고 말했다. <단속평형>도 그 당시 자신의 모습이 투영되어 있는지 궁금하다.

 

A. 그렇다. 제 작업의 전부가 어디에서 어떤 시대, 시간, 어떤 공간에 살아가고 있는 내 모습을 일기를 쓰고, 자화상을 그리듯이 하는 거라 어느 작업에도 내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사실 모델로 삼은 건 당시 학교 선배이긴 하다. 그러나 어떻게 보면 내 모습이기도 하다.

 

 

 

Q. 필모그래피 상으로 <제 3 언어>다음 작품이다. 감독님에게 <단속 평형>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A. 영화를 처음 시작할 때, 내가 시나리오를 잘 쓰는 줄 알았다. 미국으로 유학을 갔는데, 실험 영화를 가르치는 곳이라 시나리오 쓰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래도 그 학교에서 실험 영화를 찍어야 배워서 남는 게 있지 않겠냐. 실험 영화를 하고 나서 나는 실험영화와 극 영화를 둘 다 잘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서 만든 영화인 것 같다.

 

 

 

Q. 요즘에는 어떤 주제 의식을 바탕으로 작업에 임하는지도 듣고 싶다.

 

A. 항상 나는 나의 자화상을 탐구하고 있다. 나이가 들어가다 보니 조금 철학적인 주제로 가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고, 젊을 때랑 다르다. 젊을 때는 실체가 없는 밝은 미래를 위해 경쟁하며 살았다. 요즘에는 실체가 없는 미래를 위해 경쟁하는 것보다는 내 삶을 조금 더 풍성하게 만드는 작업을 자유롭게 하고 있다. 예전에는 투자받으려고 시나리오만 쓰고 있고 그랬는데, 이젠 그런 시간의 의미를 모르겠다. 개인 작업을 활발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이 미술이라 생각했고, 거기에 집중하고 있다.

 

 

 

Q. 마지막으로, 감독님에게 단편 영화란 어떤 의미인지 듣고 싶습니다.

 

A. 장편과 단편의 차이를 잘 모르겠다.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고 찍고 싶은 이야기가 짧게 나오면 단편이고, 길게 나오면 장편인 거지, 단편이어야 한다, 장편이어야 한다라는 관점에 얽매이고 싶지도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