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름으로 상영되는 영화관이 사라지고 있는 가운데, 시네마테크 전용관 서울아트시네마에서 17년만에 관객과 마주한 영화들이 있다. 바로 <단속평형>과 <해피 버스데이>다. 두 작품 모두 17년의 시간을 넘어 관객과 소통하는 시간을 가졌다. 송효정 평론가의 진행 아래, 관객과 시간을 가진 손광주, 홍준원 감독의 GV를 공개한다.
M : 영화들은 잘 보셨는지 궁금하다. 35mm 필름을 국내에서 상영할 수 있는 관이 많이 남아있지 않은데, 시네마테크 전용관 서울 아트 시네마는 필름 본으로 관람을 할 수 있는 공간이다. 오늘 상영한 영화들이 다양하게 구심력에 저항하고, 단편 영화의 임계점을 돌파하려는 시도를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단속평형>의 손광주 감독님부터 이야기를 시작하려고 한다. 손광주 감독님은 2003년 <제 3언어>를 비롯해서, <단속평형> 등 단편 작업도 하시고, 오랫동안 미술, 설치 작업도 많이 하셔서 영화와 미술을 넘나들면서 작업을 하고 계시다, 국내외 영화제뿐만 아니라 미술관에서도 많은 전시를 하고 계시다. 감독님 본인 소개와 작품에 관한 간단한 설명을 부탁드린다.
손광주 감독 : 이 작품을 오랜만에 필름으로 보게 돼서 감회가 새롭고, ‘우리가 저런 영화를 필름으로 작업을 했구나.’라는 생각에 다시 한번 기뻤다.
M : <단속평형>이라고 하는 제목이 어렵다. 제목에 관한 이야기와 영화를 어떻게 찍었는지 궁금하다.
손광주 감독 : 단속평형은 진화론 중에 하나다. 첫 영화에서 스티븐 제이굴드의 텍스트를 인용한 적이 있다. 이 시나리오를 쓰고 나서 일제 감정기와 6.25를 겪고 급속한 경제 발전 이후에 굉장히 서구화되어 있는 상황에서 잃어버린 고리가 있다고 생각했고, 잃어버린 고리를 설명할 수 있는 것이 단속평형 이론이라 생각해서 제목을 붙이게 되었다.
M : 홍준원 감독님은 <해피 버스데이>를 연출하셨다. 이 영화는 서울독립영화제뿐만 아니라 베니스 국제 영화제 출품되기도 했고, 이후에 스토리 보드 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감독님의 소개와 <해피 버스데이>에 대한 설명 부탁드린다.
홍준원 감독 : 17년 전 대학교 졸업하고 만들었다. 필름 작업으로 했는데, 오늘 이 자리에 그때 참여했던 배우도 같이 참석했다. 감회가 새로웠고, 옛날 생각도 많이 난다.
M : <단속평형>은 한국의 근대시간을 나열하면서 문어체로 말하는 지식인이 여자를 만나러 가면서 느끼는 것들을 보여준다. 되게 실험적이고, 음악도 다양하고, 폐차장 장면으로 가면 과감한 시도들도 보인다. 감독님은 다양한 공부를 하셨는데, 어떤 계기로 영화를 하겠다는 생각을 하셨고, 초창기 영화에서는 어떤 형식의 영화를 만들고자 했는지 궁금하다.
손광주 감독 : 영화를 하고 싶은 마음은 있었지만, 용기를 내지 못했었다. 직장 다니면서 용기를 냈다. 그때가 서른 즈음이었다. 초기에 만들었던 영화의 형식은 미국 유학을 가서 만들었다. 주로 실험 영화들을 많이 보면서, <제 3언어>는 졸업 작품이었고, 글을 잘 쓴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배운 것을 접목해서 작업 하게 되었다.
M :모든 감독이 시나리오를 기반으로 시작하지 않는데, 시나리오를 기본으로 생각하는 풍조가 어떻게 다가왔나.
손광주 감독 : 그것 때문에 많이 힘들었다. 시나리오에 대해 기본도 모른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꾸준히 매년 단편 영화를 했다가. 4년 동안 시나리오만 쓰던 시절이 있다. 슬럼프를 겪고 나니 시나리오가 아니라 이미지와 사운드를 수집하고 이를 모아서 편집하는 것을 영화 만드는 방식으로 정립하고 있다.
M : 홍준원 감독님의 <해피 버스데이>는 판타지 형식의 작품이다. 동화 같기도 하고 엘레고리 같기도 하다. 어떤 발상으로 만들고자 했는지 궁금하다.
홍준원 감독 : 대학교 졸업 작품으로 시나리오를 처음 써야 하는 상황이었다. 교수님한테 시나리오를 빈번히 거절당하고 고향에 내려가 있다가, 아버지가 어렸을 적에 내 키를 재어줬던 벽지에 흔적이 남아 있더라. 부모님들은 지금도 그렇겠지만 좋은 대학교 가야지 훌륭한 사람이 된다는 생각이 있는 것 같다. 그런 지점에서 고등학교 학창시절을 생각하고, 여기에 부모님의 영향을 받은 것 같다.
M :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 장준환 감독이 있다. 이 영화와 연관 관계를 알고 싶다.
홍준원 감독 : 내가 영화과가 아니었고, 미술 전공이라 시나리오랑 영화를 만드는 방법을 아무것도 모르던 시절이었다. 장준환 감독님과 봉준호 감독님이 뮤직비디오를 만들던 시절이 있었는데, 그때 연출부였다. 그때 감독님에게 시나리오에 관해 물어봤다.
M : 이제 관객의 질문을 들어보도록 하겠다. 종이를 얼굴에 붙여서 음악가들을 표현한 이유가 있나. 그리고 엔딩에 대해 궁금하다.
손광주 감독 : 얼굴의 가면을 쓰게 된 것은, 안 그러면 그 사람이 누군지 모르게 되니까 그런 것이다. 마지막의 좋아하게 된 화가를 물어본 것이 결말이었다. 약간의 반전이었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그리고 싶었다.
M : 다음은 <해피 버스데이> 감독님에게 질문이 들어왔습니다. 당시 아버지가 만들고 있었던 인형 같은 것이 무엇이었는지 궁금하고, 아버지 배우님을 어떻게 캐스팅했는지 질문해주셨다.
홍준원 감독 : 자식도 부모 마음대로 만들 수 있다는 모티브를 두고 작업했다. 한국 작은키 모임이라고 협회가 있는데, 키 작은 분 섭외하고 싶었다고 요청했다. 당시, 사무총장을 하셨던 분이 원래 꿈이 영화 배우였다. 게시글을 보고 직접 출연해주겠다고 응해주었다.
M : <단속평형> 손광주 감독님께 질문드린다. B로 시작하는 BIG 3는 감독님이 만드신 대사인지.
손광주 감독 : 영화에 나오는 관련 지식은 클래식 게시판에서 수집했다. (웃음)
M : <해피 버스데이> 감독님에게 들어온 질문이다. 작중 아들은 감독님 개인의 이야기가 반영된 것인지, 마지막에 아이들이 “괴물이다!”라고 도망치는 장면에서 아이에게 어떤 느낌을 주고 싶었는지 궁금하다는 질문을 줬다.
홍준원 감독 : 그릇된 욕망이 끝이 없다 보니까 괴물을 만들었다. 신화와 관계없이 그런 느낌을 주고 싶었다.
M : <해피 버스데이>에서 영화가 동화적이고 연극적인 부분이 있어서 그런지 실내가 가구가 많지 않다. 책상이랑 문 정도가 있는데, 벽난로를 왜 넣으셨을까. 필요한 것만 넣었을텐데 왜 그걸 넣게 되었는지 궁금하다.
홍준원 감독 : 따뜻한 가족이라는 이야기로 시작하니까 넣게 되었다.
M : <단속
평형>이 상영되었을 때, 포스트 고다르적이 보여주는 급진적이고 도발적인 작품이라고 한 평론가가 평가했다. 해외의 반응도 궁금하다.
손광주 감독 : 서양 사람들이 좋아했던 것 같다. 왜 좋아하는지 웃기면서 궁금하기도 했다. 불일치나 착오성에서 오는 유머였던 것 같다.
M : 홍준원 감독님께 질문드리고 싶다. 영화에서 기능적인 대사만 있지 전반적으로 대사가 없다. 시나리오를 구상할 때, 다른 쪽에 중점을 두고 만들었을 것 같다.
홍준원 감독 : 첫 단편 영화다 보니까 대본 쓰는 법을 알아가는 단계였다. 당시에는 대사를 많이 안 하던 단편 영화들이 많았다.
M : 17년이라는 시간을 지나고 다시 만난 관객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부탁한다.
손광주 감독 : 필름으로 상영되니 감회가 새롭고, 언제 또 그런 기회가 있을지 궁금하다. 4편을 보면서 이때가 황금기가 아니었나 생각하게 된다.
홍준원 감독 : 감독님처럼 너무 오랜만에 상영한 것에 즐겁고, 지난 시간들을 되돌아 볼 수 있는 시간이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