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시에서 그녀가 피할 수 없는 것들>로 많은 이들에게 호평을 받고 공감을 자아냈으며, <낙타들>로 부산 국제영화제와 4대 애니메이션 페스티벌 및 해외 많은 영화제를 매료시킨 박지연 감독이 신작 <피부와 마음>으로 미쟝센 단편영화제를 찾았다.
6월 29일 CGV용산아이파크몰 6층 엔젤리너스 카페에서 애니메이션의 센세이션을 일으킨 박지연 감독을 만나보았다.

Q : 지난 7회 미쟝센 단편영화제에서 <도시에서 그녀가 피할 수 없는 것들> 로 미쟝센 단편영화제 심사위원 특별상을 수상하시고, 이번 제17회 미쟝센 단편영화제에 다시 한번 참가하시게 됐는데, 그 소감이 어떠하신지 궁금합니다. 덧붙여서, 이번에 혹시 수상을 기대하시는지 궁금합니다.
A : 이번에 수상은 전혀 기대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물론 그때도 수상을 기대한 건 아니었습니다. (웃음) <도시에서 그녀가 피할 수 없는 것들> 후에 <낙타들>이라는 작품을 했지만, 그 작품은 미쟝센 단편영화제에는 나오지 않았고, 이번에 10년만에 <피부의 마음>으로 미쟝센 단편영화제를 다시 찾게 됐습니다. <피부와 마음>은 이번 미쟝센 단편영화제에서 처음으로 상영하는 것이기도 해서, 상영해 주셔서 정말로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웃음)
Q : 네이버 프로필 소개를 보면, “우체국에서 근무하다 어느 날 그만두고 서울로 올라와, 애니메이션 제작에 뛰어들었다”고 되어있는데요, 갑자기 애니메이션 제작에 뛰어든 특별한 계기가 궁금합니다.
A : 사실 그 이야기는 한 인터뷰 기사에서 발췌된 내용이고, 제가 직접적으로 한 말은 아닙니다. (웃음) 원래는 그림 그리는 것이 너무 좋아서 만화가 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우체국에 다니고 있었기에 잠시 꿈을 접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진주에 애니메이션 하청업체가 생겨서 직장을 다니면서 조금씩 꿈을 펼쳐 나가다가 아예 이쪽으로 이직을 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리고 서울로 올라와 만화를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이상하게 만화 쪽 일은 잘 풀리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창작에도 관심이 있었기에 애니메이션 쪽으로 넘어가게 됐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로 애니메이션 제작을 하게 됐던 것 같습니다. (웃음)

Q : 출품작 <피부와 마음>에서, 윤희의 남편 성계는 ‘닭’ 으로, 윤희 친구의 남편은 ‘바퀴벌레’ 로, 윤희의 아버지는 ‘뿔이 큰 사슴’ 으로 변화했습니다. 저는 다원화된 사회를 표현하기 위해, 여러 종의 동물로 시각화 시켰다고 생각했습니다만, 혹시 닭, 바퀴벌레, 뿔이 큰 사슴 등 각각의 동물이 특정 인간군상을 상징하고 있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A : 특별히 누구는 무엇으로 변화시키겠다고 의도한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어떤 캐릭터들은 형상화된 동물이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것이 맞습니다.
윤희의 아버지는 과거 가정폭력의 전적이 있으나 현재는 과거에 마치 그렇지 않았던 듯, 멋있는 노신사인척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착안해 ‘뿔이 큰 사슴’ 의 모습으로 형상화 했습니다. 남편은 집에서 많이 볼 수 있는 모습에서 착안해, 집에서 흔히 보기 쉬운 ‘닭’ 으로 형상화 했습니다. (웃음)
하지만 바퀴벌레나 다른 동물들은 의도나 상징이 들어갔다는 것보다는 ‘변했다’ 는 그 자체를 강조하고 싶어서 저렇게 형상화 한 것입니다. 특별히 바퀴벌레로 표현했다고 해서 그 인물에 대해 부정적인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Q : 전작 <낙타들>에서의 남자친구는 앵무새 얼굴로, <도시에서 그녀가 피할 수 없는 것들>에서의 남자친구는 고양이 얼굴로 형상화됩니다. 이번 작품에서도 마찬가지로, 남편 성계가 ‘닭’ 으로 변합니다. 혹시 남성들을 유독 동물로 표현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A : 사실 제가 <도시에서 그녀가 피할 수 없는 것들>을 만들 때, 남자는 작화가 원하는 만큼의 퀄리티가 나오지 않아서 고민을 하다가, 그의 특성을 살려 고양이로 표현을 했습니다. <낙타들>에서도 비슷한 상황이어서, 앵무새처럼 같은 말을 반복하는 남자의 특성을 살려 앵무새로 표현을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게 아니라, 그냥 남자를 잘 못 그려서 동물로 표현하게 되었습니다. (웃음)
하지만 이번 작품은 전작들과는 달리, 인물의 이미지에 초점을 맞추어 형상화 했습니다. 윤희아버지는 멋있는 이미지로 표현하고 싶었고, 윤희 남편은 집에서 촐랑대면서 돌아다니는 이미지로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Q : 전작들에서는 여성들은 동물로 변화하지 않는데, 이번 작품에서는 윤희도 마지막에 잠깐이기는 하지만, 동물로 형상화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윤희가 변한 동물이 내포하고 있는 의미는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A : 딱히 크게 의미를 준 것은 없습니다. 사실 원래는 이번에도 여자는 변하는 부분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음악감독님과 논의 중에 너무 남자만 나쁘게 그리는 것이 아니냐는, 남자에게 억하심정이라도 있냐는 말이 나와서 여자도 변하는 것으로 그려보았습니다.
그리고 여자, 남자를 떠나서 사람은 누구나 변한다는 것 또한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Q : <도시에서 그녀가 피할 수 없는 것들>, <낙타들>, <피부와 마음>
모두 남녀간의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사랑의 달콤함과 아름다움보다는 모두 씁씁한 감정과 현실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여러가지 감정과 이야기 중에서 유독 씁쓸한 사랑과 다소 우울한 현실에 대해서 그려 내시는 이유가 궁금합니다.
A : 사실 저도 젊었을 때는 이별 후의 감정을 잘 몰랐습니다. 하지만 제가 애니메이션을 막 시작했을 당시에, 많은 헤어짐을 경험하면서 이별 후의 감정에 대해 더 강렬한 느낌을 받았던 것 같습니다. 또 그 당시에 서울에 갓 올라와 혼자만의 공간에서 생활했기에, 유독 외로움과 씁쓸한 감정을 많이 느꼈습니다. 이런 감정들이 밑바탕이 되다 보니, 작품들이 다소 어두운 느낌을 띄고 있는 것 같습니다.
Q : 이번 출품작의 장르가 ‘사랑에 관한 짧은 필름’ 즉, 사랑과 관련된 이야기들인데, 혹시 사랑에 관한 감독님 본인만의 가치관을 가지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A : “사랑은 순식간이다. 사랑에 관한 짧은 이야기”
나이가 들다 보니, 뜨겁게 사랑했던 시간도 있지만, 살아가는 시간이 더 길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사랑이 순식간이고 짧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Q : 개인적으로 애니메이션 작업 중 가장 중요하게 여기시는 점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A : 애니메이션에서는 시나리오, 그림, 음악, 감독 본인만의 스타일 등 모두 종합적으로 다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것들이 다 종합적으로 아우러져야 좋은 작품이 나오기 때문이죠. 그러나 제일 중요한 것을 뽑으라 한다면, 그림과 상상력이 가장 중요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Q : 애니메이션도 다양한 장르가 있습니다. 감독님께서는 주로 드라마 장르를 하셨는데, 차후에 도전하고 싶으신 색다른 장르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A : 당연히 있습니다. 저는 지금 긴 스토리를 쓰고 있는데, 그건 액션 스릴러에 가깝습니다. 제가원래 스릴러 장르의 영화를 좋아해서, 이번에는 사랑과 관련된 장르가 아닌 스릴러물에 도전해보고 싶었습니다.

Q : 이제 드릴 질문은 다소 깊은 질문이 될 것이라 생각하는데, 한국 애니메이션 산업에 관한 질문을 드려보고자 합니다.
2014년 개봉된 디즈니의 <겨울왕국> 은 국내에서 1020만 관객을 동원했습니다. 또 2017년 개봉된 디즈니의 <코코>는 350만의 관객을 동원했습니다. 하지만 국산 애니메이션은 2011년에 개봉된 <마당을 나온 암탉>이 국산 애니메이션 역사상 가장 많은 관객인 220만을 동원한 이후에는 100만 이상의 성적을 낸 작품은 2012년 개봉한 <점박이 : 한반도의 공룡 3D> 가 유일합니다.
하지만 외국 애니메이션에 비해, 국산애니메이션의 작화나 퀄리티가 떨어지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더 좋은 경우가 더 많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산 애니메이션이 한국에서 흥행을 하지 못하는 원인이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또한 국산애니메이션의 흥행률을 높이는 방안에는 무엇이 있다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A : 원인은 여러가지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가장 큰 원인은 투자 문제입니다. 국산 애니메이션에 대한 투자가 잘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에, 저예산으로 운용하다 보니, 디즈니와 같이, 많은 비용을 투자한 작품과 비교했을 때 상대적 퀄리티가 떨어지게 되어, 흥행성적이 좋지 못하다고 생각합니다.
뿐만 아니라, 원래 애니메이션에 대해 관객들이 큰 관심을 갖는 편도 아니고, 애니메이션은 아동용이라는 편견도 한 몫을 하는 듯 합니다.
또한, 아직 한국만의 뚜렷한 스타일이 없다는 점도 눈여겨봐야 합니다. 미국은 미국대로의 중국은 중국대로의, 일본은 일본대로의 애니메이션의 뚜렷한 스타일이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까지 한국은 뚜렷한 자신만의 스타일이 없이, 약간의 따라가기 식이라는 점이 문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도 투자가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점이 국산 애니메이션 산업에서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라고 봅니다. 투자가 안 이루어지다 보니, 작품도 많이 못 나오고, 나오더라도 저예산으로 운용되기에 매우 뛰어난 퀄리티를 기대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다 보니 흥행에 실패하고, 애니메이션 산업 인력들이 많이 빠져나갑니다. 이런 악순환이 계속되기에 더 큰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구체적인 해결책을 제시하기는 어렵습니다만, 국산애니메이션의 흥행을 높이는 방안으로, 현재로서는 인프라의 개선이 가장 시급하다고 생각합니다.
Q : 아까 액션 스릴러물을 계획하고 계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혹시 장편 애니메이션 계획은 따로 없으신 건지 궁금합니다.
A : 네, 아예 생각하고 있지 않습니다. 사실 저희 스튜디오에서 2번정도 장편 애니메이션을 한 경험이 있습니다. 그 때의 경험이 너무 고되기도 하고, 하고 난 후 무언가 빚만 지는 느낌에 장편 애니메이션은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Q : 연상호 감독님은 원래 애니메이션을 하시다가 <부산행>이라는 실사 영화를 찍으셨는데, 감독님도 혹시 실사 영화를 찍을 계획이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A : 기회가 되면 하겠습니다. (웃음)

끝으로, 매번 아름다운 작화와 독특한 세계관을 보여주시는 박지연 감독님께 인터뷰에 응해 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을 전한다. 또한 박지연 감독과 같이 한국 애니메이션계를 이끌어 갈 만한 인재가 충분히 재능을 발휘할 수 있게끔, 한국 애니메이션 산업에 변화의 바람이 불기를 기대해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