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내리는 6월의 마지막 날 오후, 여름비보다 싱그러운 미소를 가진 이주영 배우를 만났다. 이 날 이주영 배우는 ‘절대악몽’ 섹션, 문지원 감독의 <코코코 눈!>이라는 작품으로 제17회 미쟝센 단편영화제를 찾아주었다. 이충현 감독의 <몸 값>으로 혜성처럼 등장하여 관객들에게 충격을 안겨준 이 배우는, 지금까지 누구보다 특이한 배역들을 맡아 소화하며 뜨겁게 대중의 사랑을 받고 있다.
Q: 문지원 감독의 <코코코 눈!>에는 어떻게 참여하게 되었나?
A: 저한테 이 역할을 해줄 수 있겠냐고 시나리오를 보내 주셨어요. 연락을 받고 회사 쪽에서는 ‘엄마’라는 역할이라 고민을 하시더라고요. 그런데 저는 재미있을 것 같아서 좀 해보고 싶었어요. 어려울 것 같기도 했는데 저한테 도움이 많이 될 것 같아서 하고 싶다고 했죠.
Q: 이주영 배우가 생각하는 <코코코 눈!>의 관람포인트와 가장 소름 돋는 장면은?
A: 제가 가장 소름 돋았던 장면은 자영이한테, 엄마가 욕을 하는 장면이었어요. 그 욕하는 장면이 원래 시나리오에서는 없었고, 촬영을 하다가 만들어진 장면으로 기억하는데 찍으면서 너무 마음이 아프더라고요. 엄마가 딸한테 욕을 한다는 게. 가볍게 하는 것도 아니고 너무 무섭고 살벌하게 해서 그 장면이 가장 기억에 남았어요. 관람포인트는 인물들, 잠깐 나오시는 분까지 총 네 명의 인물이 등장하는데 그 인물들을 유심히 보면서 따라가다 보면 재미있게 보실 수 있을 것 같아요.
Q: 데뷔작이 이충현 감독의 <몸 값>인데, 해당 작품은 제 작년, 제15회 미쟝센 단편영화제의 ‘4만번의 구타’ 장르에서 수상한 바 있다. 이번 <코코코 눈!>을 통해 출연작 중 두 번째로 미쟝센 단편영화제에 오게 되었는데, 그 소감이 어떤지?
A: 제가 사실은 <몸 값>을 찍기 전에 아무 필모그래피가 없을 때, 미쟝센 단편영화제에 와서 영화들을 봤는데 영화들이 굉장히 재미있더라고요. <몸 값>이 나오기 바로 전년도였어요. 그래서 ‘나는 언제쯤 이 영화제에 올까’ 라는 생각을 했고, 그 때 여러 영화들을 봤는데 미쟝센 단편영화제의 영화들이 굉장히 매력적이었고 개인적으로 너무 좋았어요. 단편 영화의 매력을 알게 돼서 내 작품으로 꼭 와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데, 정말 운이 좋게도 일 년 만에 <몸 값>으로 오게 됐어요. 그래서 지금 두 번째로 <코코코 눈!>이 경쟁부문에 선정 되었다고 했을 때에도 너무 기뻤고 좋은 마음으로 왔어요. 감독님이 저한테 연락도 안 하셨는데 제가 오고 싶다고 해서 왔어요. (웃음)
Q: <코코코 눈!>을 촬영하면서 출연 배우들이나 스태프들과 있었던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나 공유하고 싶은 일화가 있었나?
A: 에피소드라기 보다는 오정세 선배님이 남편 역할로 출연해주셨는데, 너무 재미있고 유쾌하셔서 항상 촬영장이 즐거웠고요. 원래 제가 알던 모습보다도 더 유머러스 하셔서 즐겁게 촬영했습니다.
Q: 이번에는 절대악몽 섹션에 출품된 작품에 출연했는데, 평소에 공포장르를 좋아하고, 잘 보는지?
A: 저는 귀신이 나오는 공포영화는 잘 못보고요. 근데 이런 <코코코 눈!>이나 <겟 아웃>같은, 사람들끼리의 어떤 사건 같은 것들을 재미있게 즐겨 보는 편인 것 같아요. 뭐 평소에는 드라마 장르를 제일 많이 봐요.
Q: 지금까지 맡았던 역할을 보면, <몸 값>에서는 장기 밀매업자 여고생, <걸스 온 탑>에서는 광대, <코코코 눈!>에서는 사이코패스 엄마, <독전>에서는 마약 제조업자, <나와 봄날의 약속>에서는 외계인 후배 역할까지, 특이한 역할이 많다. 이렇게 특이한 배역을 고집하는 이유가 있나?
A: 고집한다기 보다는 이런 역할을 저한테 많이 주시는 게, 제가 머리도 짧고 키도 커서 이런 외적인 면에서 저의 독특한 면들을 많이 보시는 것 같아요. 사실 제가 고르는 건 아니고요, 이런 시나리오들이 많이 들어오는 것 같아요. 그런데 아무래도 이런 범상치 않은 역할들이 매력적인 건 사실이에요.
Q: 앞서 언급한대로 사실 이미 특이한 역할을 많이 해봤지만, 또 새로운 캐릭터에 도전한다면 꼭 해보고 싶은 배역이 있는지?
A: 사실 그런 게 없었어요. 그냥 좋은 시나리오에 제가 궁금해지는 캐릭터면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인터뷰를 많이 하다 보니 그런걸 생각해보게 됐어요. 내가 뭘 하면 좋을까, 뭘 하고 싶을까 생각을 해봤는데 저를 딱 떠올렸을 때 다들 쎈 역할들을 떠올리시니까 약간 수더분하고 시골에 사는, 소 키우는 시골 처녀 같은 느낌의 역할을 좀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Q: 한국의 장르영화가 발전했으면 좋겠다고, 독특한 영화들이 많이 만들어 졌으면 좋겠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배우로서 한국의 영화 산업에 어떤 식으로 기여해야겠다 하는 생각이 있나?
A: 일단 저를 불러주신다면 너무 영광이고요, 저는 그냥 촬영하고 그럴 때 폐를 안 끼치고 제가 해낼 수 있는 것들을 잘 담당하고, 해내고, 그렇게 일하고 싶어요.
Q: 처음에는 단편 독립영화로 시작했다가 지금은 상업영화, 드라마까지 활동무대가 넓어졌다. 각각 촬영을 하면서 느꼈던 장단점이나 가장 큰 차이점은 어떤 것들이 있었나?
A: 사실 제가 많은 수의 작품을 한 건 아니어서 비교 할 게 많지는 않아요. 드라마도 <라이브>가처음이었고, 상업 장편도 <독전>이 처음이거든요. 그래도 장편에 비해 단편은 확실히 실험적인 무언가를 더 많이 해 볼 수 있는 것 같아요. 그런 게 단편의 장점이고 매력이라고 생각해요.
Q: 모델 출신의 배우이다. 독전에서 호흡을 맞췄던 차승원 배우를 포함하여 훌륭한 배우들이 많고, 이주영 배우도 이제 그 중의 하나가 되었는데, 모델 출신의 배우라는 타이틀이 무겁게 느껴지지는 않는지?
A: 아무래도 그런 선입견이 생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저는 그렇게 유명한 모델이 아니었기 때문에 처음엔 모델이란 말을 안 했어요. 사람들은 제가 키가 크니까 모델이냐고 물어보시긴 하죠. 근데 그런 얘기는 안하고, 그런 선입견을 아무것도 갖지 않고 진짜 저를 배우 이주영으로 처음부터 생각해주시길 바라요.
Q: 연기에 대한 호평이 데뷔작부터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배역을 어떤 식으로 소화할지 어떻게 준비하나?
A: 일단 어떤 직업적으로 뚜렷한 배역이라면 다큐멘터리들을 많이 찾아보고, 관련된 영화나 웹툰을 보는 등 볼 수 있는 건 다 보는 것 같아요.
Q: 영화를 평소에도 굉장히 많이 보시는 것 같다.
A: 네 영화 좋아해요. 영화제 오는 것도 좋아해요.
Q: 연기나 일을 하지 않을 때 혼자만의 취미 생활이나 시간을 보내는 방법이 있나?
A: 일단 첫 번째로 영화 보는 거 제일 많이 하고요, 무조건 쉬는 날에는 제 생각을 정리를 하는 글을 쓰는 것 같아요. 밀린 생각을 정리하는 글을 쓰는 시간이 필요하더라고요. 그냥 막 달리기만 하다 보면 제 생각도 잘 정리가 안되고 급해지는 느낌이 들어서. 쉬는 날에 그런 글을 쓰고 나면 마음이 정화가 되는 느낌이 생겨요.
Q: 글을 쓴다고 하셨는데, 혼자 시나리오를 생각해보거나 나중에 작업을 하고 싶지는 않은지?
A: 쉬는 날에 글을 쓴다는 건 그냥 일기를 쓰고 생각을 정리하는 것인데, 단편 같은 경우는 연기를 위해서 한 번쯤 해 보고 싶어요. 아직은 계획은 없지만. (웃음)
Q: 쉬지 않고 여러 작품에서 좋은 연기를 보여주어 인기몰이 중인데, 인기를 체감하나?
A: 네, 아무래도 많이 인사해주시고 좋아해주시고, SNS에 댓글 남겨주시면 감사하고 좋죠.
Q: 독특한 자신만의 색깔의 연기를 다양한 작품에서 보여주고 있는데, 앞으로 어떤 배우가 되고 싶은지. 혹시 롤모델이 있나?
A: 저는 롤모델은 딱히 없어요. 그런데 아무래도 제가 키가 크다 보니 이런 외적인 부분을 무시할 수는 없을 것 같아서, 롤모델이라기 보다는 샤를리즈 테론이나 케이트 블란쳇, 틸다스윈튼, 이런 멋진 배우들을 보면 키가 별로 문제가 되지 않잖아요. 저도 그런 분들을 보고 용기를 많이 얻어요.
Q: 모델일과 다르게 연기는 내면을 들여다보는 작업이라고 표현한 적이 있다. 어느 순간에 그런 느낌이 가장 강하게 드나?
A: 제가 몰랐던 사람들과 몰랐던 분야들에 대해 알게 되고 아까 말씀 드렸다시피 다큐멘터리를 본다거나 공부를 해나가는 중에 그런 느낌이 들어요. 항상 나의 삶 안에서만 세상을 보다가 조금 시야가 넓어지고, 다른 사람들에 대해 깊이 알아간다는 생각을 하거든요. 그리고 실제로 그런 것들을 바탕으로 연기를 할 때도 내면을 들여다보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요.
Q: 7월에는 독전 확장판 개봉 소식이 있고, 그저께는 신작 <나와 봄날의 약속>이 개봉했다. 축하할 일이 굉장히 많은데, 앞으로의 활동계획은 어떻게 되는지?
A: 아직은 딱히 계획은 없지만 미팅을 많이 하고 있어요. 오디션도 보고 시나리오도 읽는 중이에요.
Q: 상영작 관람을 하러 온 적도 있고, 데뷔작 <몸값>이 미쟝센 단편 영화제에서 수상한 것과 더불어, 올 해 명예심사위원인 천우희 배우와 <걸스 온 탑>이라는 단편영화에서 호흡을 맞추는 등 미쟝센 단편영화제와 인연을 이어오고 있는데, 앞으로 활동 중에 미쟝센 단편영화제에 또 올 계획이 있나?
A: 제가 이제 단편은 찍어 놓은 게 거의 없어서. (웃음) 만약에 있다면, 기회가 온다면 또 오고 싶어요. 아직 나오지 않은 단편이 있긴 있거든요.
Q: 함께 작업해보고 싶은 감독이 있다면?
A: 아니요. (웃음) 한 명을 고르면 안될 것 같네요.
Q: 마지막으로 미쟝센 단편영화제와 한국영화의 미래를 향한 응원의 한마디 부탁 드린다.
A: 어렵네요! 제가 오늘 집에서 <밀리언 달러 베이비>라는 영화를 봤는데, 이 대사를 해도 될까요? 이건데요, 좋아서 적어놨어요. “복싱의 신비함이란 게 어떤 고통이 와도 참고 견디며 갈비뼈가 나가고 망막이 터져도 싸운다는 거지. 자신만 볼 수 있는 꿈 때문에 모든걸 거는 거야.” 라는 대사에요. 배우도, 연기도 이런 면이 있는 것 같아서요. 자기만 볼 수 있는 꿈 때문에 모든걸 걸고 다들 하시는 거잖아요. 다들 열심히 꿈을 향해 가면 좋겠어요.
배우이기 이전에, 영화를 좋아하는 한 사람의 관객으로서 미쟝센 단편영화제를 찾아준 이주영 배우는 이어서 <절대악몽2>를 관람하기 위해 자리를 옮겼다. 연기와 영화에 대한 열정이 남다른 이 배우는, <밀리언 달러 베이비>의 매기와 프랭키처럼 앞으로도 꿈을 향한 도전을 아끼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