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회 미쟝센 단편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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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발보다는 공감을 하고 싶었죠, 정해일 감독

글 : 이석희 / 사진 : 이혜민

<정해일 감독>

 

배우만큼 인기 좋은 감독이 비정성시 GV 현장에 떴다. 바로 ‘사람들의 이야기’를 진솔하게 풀어내는 <인사 3팀의 캡슐 커피>의 정해일 감독의 이야기다. 그의 영화에 디테일이 살아있는 이유는 주변을 챙기는 세심함과 인간적인 성품 때문이 아닐까, 유쾌하고 진솔했던 정해일 감독과 함께 나눈 영화 속 이야기 지금부터 시작한다.

 

영화를 처음 시작하게 되신 계기는?

  • 저는 상명대 영화과를 나왔는데, 원래 영화를 좋아해서 영화과를 진학하게 되었습니다. 고등학교 때 막연하게 감독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영화를 보는 것은 너무 쉽지만 만드는 것은 너무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영화’라는 단어를 쓰니까 예술의 느낌이 들어서 고급스러운 인상을 받았는데 실제 해보니 아니구나, 이거 막노동이구나, 싶더라구요.

영화를 만드는 데 있어서 소재를 떠올리는 방식?

  • 저는 두 명의 사람이 끈적한 교감을 만드는 영화를 좋아하는데…… 어릴 때 가장 처음에 찍었던 영화는 첫 사랑에게 하고 싶은 말이었어요. 나이 들면서는 주변의 친구들이나 친척이나 지인, 사회, 뉴스 같은 데서 이런 사람들도 있구나 느끼면서 이 사람들은 어떻게 지낼까 하면서 소재를 생각했던 것 같아요. 자전적인 이야기는 따로 없어요.

과거 본인의 필모그래피 가운데 어떤 작품이 개인적으로는 인상 깊게 남는지?
<아침이 오기 전에>, <엔틱 카메라>, <듣고 있어?>, <오늘 밤이 지나가면>, <인사 3팀의 캡슐 커피>

  • 저요? 다 기억에 남지만 특히, 이번 영화가 가장 기억에 남아요. 가장 최근에 했던 것이기도 하고, 제가 사실 사회 이야기를 하는 것을 꺼려했는데, 너무 있는 척 하는 것 같아서. (웃음) 사실은 이번에 해보고 나니까, 이런 거랑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섞어서 해도 충분히 재미있게 할 수 있고, 소재를 그런 사회에서 찾아왔다고 해서 너무 무겁게 표현해야만 하는 것도 아니구나 느꼈던 것 같아요.
  • 두 사람의 사람 이야기요. 우리가 이렇게 인터뷰를 하더라도 관계가 이렇게 생기는 거고, 무엇보다도 사람들 이야기가 재미있더라구요. 소재는 그런 데서(사회에서)찾아 오되, 풀어내는 방식을 ‘아, 얘네들은 이런 애들이구나’ 하고 사람이야기로 귀결시키는 거죠.

필모그래피를 봤을 때, 로맨스, 특히 이별에 관한 주제가 많다. 이번에 이런 장르를 그려 내시게 된 이유가 특별히 있는지? 향후 작품 성향이 바뀔 것으로 예상해도 되는 부분인지?

  • 네, 앞으로도 이런 장르 해보고 싶어요. 사실 아까도 말씀 드렸다시피, 소재나 장르를 한 쪽에 치우쳐야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더라구요. 사람들 얘기, 뭐든지 사람들이 하는 것 이다 보니까. 이번 영화 찍고 느낀 건데, 사회 이야기를 하면서도 그 안에서 사람 이야기 할 수 있는 거고, 흔히들 사람 이야기라고 하면 멜로나 드라마만 생각할 수 있는데 그건 아니더라구요. 공포영화 찍으면서도 할 수도 있는 것 같고. 재미있더라구요. 사회적으로 뚜렷한 사건들이 있다 보니까 시나리오 소재로 쓰기도 좋구요.

비정성시 장르에 가장 잘 들어맞는 영화였다고 생각을 했다. 왜 이런 주제로 영화를 만들게 됐는지 궁금하다.

  • 제 주변에 사실 제가 나이가 서른 셋인데, 일반 친구들이 많은데, 친구들이 딱 수아 정도의 위치, 나이더라구요. 저는 그 친구들이 연봉도 많이 받고 좋은 기업에 다니는 게 부러웠는데, 저랑 술자리를 가지거나 하면, 한 편으로는 위에서는 치이고 밑으로는 갓 들어온 신입사원들과 갈등이 있고, 열심히 일 해야하는 나이에 힘든 일이 많더라구요. 그래서 일반인들이 부러워하는 대기업에 다니는 친구들도 고충이 있구나. 저는 사실 그 친구들이 부러웠 거든요. 그래서 어? 얘네들 이야기를 해볼까 했어요. 또 회사는 우리 사회를 대변할 수 있는 작은 집단으로 표현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안에서 정규직, 비정규직 사실 요즘 이런 문제들이 많더라구요. 24개월이면 비정규직이 정규직으로 전환이 되어야 하는 법망을 피해서 처음부터 24개월 미만으로 고용 조건을 내건다 던지, ‘이런 모습이 조금 웃기다’고 생각했어요.

영화에서 디테일에 관심이 갔다. 인사고과 자료가 없는 것부터 시작해서, 추천서를 써주며 권고 사직을 이야기하는 것, 회사 법무 팀으로 보내졌던 투고가 다시금 인사 팀으로 돌아 오는 등 회사 생활이 구체적으로 묘사된 것이 인상적이었다. 어떻게 이런 설정을 작품에 담아낼 생각을 했는지?

  • 누나와 매형에게 시나리오 감수를 받았어요(웃음). 법무 팀에 대한 이야기도 지인 통해서 들을 수 있었구요. 주변에 회사 다니는 분들께 여쭤봤던 것 같아요. (웃음)

영화에서 고발하고 있는 ‘비정규직 고용 실태’에 대한 문제가 누구의 문제라고 생각하시는지? 사회의 문제 혹은 개인의 이기심?

  • 저는 사람들 문제는 아닌 것 같구요. 저는 성선설을 믿거든요. 처음부터 나쁜 사람은 없구, 전부 시스템 때문에 그렇게 된 것 같아요.

영화에서 가장 현실적인 캐릭터라고 생각되는 인물은?

  • ‘수아’라고 생각해요. 그 사람이 행동하는 게 딱 요즘 우리 사람들이 행동하는 것 같지 않나요? 다들 아니라고 생각하고, 자기 나름대로의 사회적 문제나 행동들에 대한 기준이 있겠지만 겉으로 표현을 못하는 것 같아요 다들. 어디 다서 물론 열심히 하는 분들도 계시지만, 튀어 보이면 짓밟히고 그런 것 같아서. 모난 가지 되면 잘려버리잖아요. 세상이 빡빡한 것 같아요. ‘민주’도 그런 것 같아요. 볼 때마다 눈물이 납니다. 참, 누가 만들었는지…….(웃음)

믹스 커피를 캡슐 커피가 대체했다. 계약직 사원이 상사의 커피를 챙기는 구세대적인 모습이 거슬렸던 수아에게는 어찌 보면 마지막의 ‘해소’, 카타르시스와 같다는 생각을 했을 것 같다. 하지만 결국 마지막에 캡슐 커피의 유통 기한이 2년이라는 대사를 넣음으로써 자신이 조직을 위해 그래도 바꾸려던 하나의 행동 조차 무기력하고 말았다는 결론이 나지 않았나 싶었는데, 커피라는 소재를 제목에 그리고 영화적인 장치로 선택하신 이유가 있는지?

  • 커피는 직장인에게 떼어 낼 래야 뗄 수 없는 존재잖아요. 그리고 캡슐 커피, 누나 집에 있는데 먹었는데 맛있더라구요.

수아는 거슬리는 민주를 보며 연민을 느끼고 인간적인 공감을 하기도 하는데,
‘회사 생활하다 보면 하고 싶은 일을 못할 때도 있고 하기 싫은 일을 해야 할 때도 있어’ 라며 옥상에서 민주 씨에게 말하는 대목에서 이 대리는 자신에게 이야기 하는 것일까? 아니면 민주를 통해 과거의 자신을 본 것일까? 단순히 사직을 권고하는 어투로 느끼기에는 쓸쓸함이 묻어났던 것 같다.

  • 하고 싶은 일을 회사 생활뿐 아니라, 사회 생활을 하더라도 항상 할 수는 없잖아요. 사실 그 대목이 나오는 즈음부터 수아가 인간적으로 민주를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생길 때인데, ‘아, 내가 이렇게 널 도와주고 싶어도 도와줄 수 없다’ 이렇게 혼자 넋두리처럼 나온다고 해야 하나, 민주가 이렇게 열심히 하는 걸 보며 자신의 예전 모습을 본거 같기도 하구요. (웃음) 너무 어려운 것 같아요.

회사에 서류를 넣었던 민주 씨가 합격을 하고, 면접에서도 전무에게 좋은 점수를 받자, 부장은 2년 계약직을 채우고 회사에서 내보내려던 상황 등과 맞물려 찝찝한 마음에 부장 선에서 채용의 기회를 박탈하려는 모습을 보인다. 그리고 그 인사보고에 대해 이 대리로 하여금 전무에 직접 보고하게 한다. 전반적으로 기업 내에서 이루어지는 계약직에 불공정한 채용 처우를 고발하고자 한 부분도 있었다고 생각했고, 그런 부조리한 기업 내 문화에서 무기력한 개인을 그리고 싶었던 것도 있다고 생각했다. 어느 쪽에 실제로는 비중을 두고 영화를 그려낸 것인지?

  • 아무래도 후자에 비중을 더 둔 것 같아요. 부조리한 부분을 고발하고 싶었던 것도 물론 있어요. 하지만 제가 이 영화로 사회를 뒤집겠다 뭐 이런 것에 대해서는 저는 어색하게 생각을 하거든요. 이런 사람들에 놓인 이런 시스템 속의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에 그렇죠. 부장도 사실상 채용이 확정된 바나 다름 없는 민주를 떨어트리잖아요. 자기가 그러고 싶은 게 아니지만 중간관리자로서 애매한 위치다 보니까.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 깊게 남은 장면은 마지막 옥상 scene이다. 어느 순간 자기가 싫어하는 위 세대의 모습을 닮아가는 주인공의 심정은 어땠을까? 감독 스스로도 그런 자신을 느낄 때가 있는지?

  • 영화의 처음 시나리오는 사무적인 수아가 꼰대가 되어가는 과정이거든요. 초고 때는 민주와 수아의 인간적인 교감 이런 부분이 전혀 없었어요. 회상처럼 맨 마지막에 나오기는 하지만 옥상 scene은 중간에 민주를 해고하기 전의 상황이잖아요. 자기도 모르게 그렇게 된 거겠죠? 그때쯤부터. 나도 결국 이런 사람밖에 안되는 구나 하고 느꼈을 것 같아요 그 때. 민주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기는 하지만, 자신도 승진하고 싶고 먹고 살아야 하고. 씁쓸했던 것 같아요.
  • 저 옛날에 영화 찍을 때 선배들이 꼰대 같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혹시나 요즘 제가 후배들이랑 영화 만들 때, 그런 모습을 보이는 것 같기도 하고. 도와주러 왔던 후배들이나 친구들한테 우리 때는 안 그랬는데 하면서. (웃음) 씁쓸해요. 다들 자기의 과거는 미화해서 생각한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자기가 아니라고 생각했던 일들을 그 다음 세대는 답습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기대감도 있기 때문에 그런 생각들을 하고 그런 이야기들을 하는 게 아닐까요?

조금 지나친 의미부여 일 수 있다. 민주 퇴사 후, 수아가 커피 머신 구매를 요청하러 갔을 때 구매팀에서는 예산은 있지만 사후 관리가 힘들다는 이유로 구매를 거절한다. 이것은 비정규직 채용을 유지하며 정규직 전환 형태를 거부하는 기업의 현 고용 실태를 비유적으로 이야기한 것인지?

  • 맞아요, 약간 돈이 있다 없다 문제가 아니라 충분히 일을 시키고 이들에 바라는 바가 있다면 충분히 맞는 대우를 해주고, 정규직으로 전환을 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왜 요즘에는 젊은 친구들에게 열정 페이니 뭐니 하면서 착취하고 버려 버리잖아요. 그런 게 약간 보여졌다고 생각을 해요. 왜 회사들 기사 보면 분기 별 이익이 몇 조다 하면서 ‘왜 나는 취직이 안되며, 왜 이렇게 힘든가.’ 이런 생각을 해요.

배우를 캐스팅 하게 된 계기는? 류선영 배우의 캐스팅이 정말 인상 깊었다.

  • 배우 분과 인연이 아예 없었어요. 영화 <연애담>을 보고 되게 좋은 배우라는 생각을 했었어요. 사실 이번 작품의 배우분들 나이 대를 높게 생각 했었거든요. 그래서 만약에 선영 배우님 정도 나이의 배우를 캐스팅하게 되면 그 아래 민주 역할은 더 어린 나이가 될 것인데, 당찬 역할을 소화해야하는 부분을 고려할 때 주변에서는 ‘좀 더 나이 많은 배우를 캐스팅 해야 한다, 너무 애들 이야기 처럼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있었어요. 그렇지만 내가 해보고 싶은 배우 분들이랑 해보자 하는 생각에, 그때쯤 예영 배우님도 만나게 될 계기가 있었고 해서 맞춰서 하게 됐어요. 캐스팅을 하고 싶어서 네이버에 ‘류선영’이라고 쳐보니, 회사 이름이 나오더라구요. 회사에 전화해서 배우 분과 만나게 되었습니다.

영화를 촬영하면서 힘들었던 점이나 인상 깊었던 제작 에피소드가 있다면?

  • 마지막에 캡슐 커피를 설치하던 scene에서 밤 촬영인데, 스케줄에 착오가 있어서 거의 23시간 가까이 촬영을 했어야 했어요. 너무 미안했어요. 배우 분들, 스텝 분들께.
  • 그리고 옥상 scene이 두 번 나오는데, 두 번 모두 추가 촬영을 했어요. 찍다가 눈이 오고, 하늘이 우중충 해졌어요 갑자기. 바람도 많이 불어서 배우 분들 헤어도 봉두난발, 망가지고 (웃음) 도저히 찍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서, 마지막 날이었지만 포기하고 추가 촬영을 했어요. 그래서 힘들었죠.

미쟝센 단편영화제에 대해서 갖는 생각?

  • 미쟝센 단편영화제는 너무 좋은 영화제 인 것 같아요. 유명한 감독님들도 뵙고, 대학교 때부터 원하던 영화제였는데, 참가할 수 있어서 좋았어요. 제가 좀 더 활발한 성격이라 즐길 수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아쉬운 마음도 있어요. (웃음)

영화란 감독님께 어떤 존재일까?

  • 저는 감독이다 보니까, 제가 시나리오 쓰고 처음부터 끝까지 손을 대지만, 그걸 도와주는 친구들이 있기 때문에 지금까지 할 수 있었던 것 같고, 그 친구들에게 고마워요. 이번 영화뿐만이 아니라 지금까지 제 모든 영화 찍어주었던 스텝들, 배우들 하면 생각나요. 영화 하면…….

오늘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