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회 미쟝센 단편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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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리 드라이버>, 그리고 ‘무비 디렉터’. 백승환 감독을 만나다

글 : 손은 / 사진 : 이혜민

비 내리는 어느 오후, 영화 일을 한 지는 오래 되었지만 처음으로 ‘내’영화를 연출하게 된 백승환 감독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백승환 감독은 희극지왕의 두 번째 섹션에 선정된, 유쾌하고 시원한 영화 <대리 드라이버>로 제17회 미쟝센 단편영화제를 찾았다.

Q: 제17회 미쟝센 단편영화제 경쟁부문에 선정되어 참석하게 된 소감이 어떠신지?

A: 제 영화를 보고 사람들이 웃었으면 좋겠다고 생각 했는데, 희극지왕 섹션에 초대를 해 주셔서 기분이 좋습니다.

Q: 최근에 전주 국제 영화제에서 <삼선의원>이라는 또 다른 작품이 상영되었다. 그러면 두 작품의 제작 시기가 어떻게 되나?

A: 미쟝센 단편영화제에 초청된 <대리 드라이버>는 2017년 3월에 만들었고요, 전주 국제영화제에서 상영한 <삼선의원>이라는 영화는 2018년 1월에 만들었습니다. 사실 미쟝센 단편영화제에 두 편을 다 출품했는데, <삼선의원>은 안 불러주셨어요. (웃음)

Q: 희극지왕 섹션에 초청이 되셨는데, 초반에 라디오에서 나오는 택시살인범 이야기는 섬뜩한 분위기를 연상시키기도 하고, 전개를 보면 한국의 학연이나 지연을 날카롭게 비판하려는 시도도 보이고, 음악도 나온다. <대리 드라이버>를 장르로서 정의 내린다면?

A: 저는 <대리 드라이버>의 장르가 기본적으로는 코미디 영화라고 생각하고요, 추가적으로는 뮤지컬적인 요소가 가미된 코미디 영화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Q: 뮤지컬적인 요소가 가미되었다고 말씀 해 주신대로, 배우들이 직접 참여한 사운드 트랙이 눈에 띈다. 5월에 앨범도 발매가 되었는데, 어떻게 해서 사운드 트랙을 만들게 되었나?

A: 사실 영화라는 게, 특히 독립영화나 단편영화는 만들어서 영화제에 초청이 되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으면 개인 외장하드에만 남아있고, 그냥 같이 만든 사람들끼리 술 한 잔 먹고 끝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요. 그런 게 좀 안타까워서 음악감독이랑 초기부터 아예 기획을 같이 해서 만든 영화이고, 영화제와는 상관없이 우리가 만든 결과물들이 분명하게 공식적으로 남아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서 음원 발매를 진행하고 공식적으로 등록을 해놨습니다. 그리고 사실, 말씀 드린 건 공식적인 답변이고요, (웃음) 우리들끼리 술 한잔 먹을 때, 네이버 뮤직이나 멜론에 들어가서 틀어서 들을 수 있게 만들고 싶었어요.

Q: 타이틀 곡 제목이 ‘스바시바’인데, 가사를 살펴보면 보드카, 차이코프스키, 모스크바 등 러시아와 관련된 요소들이 많다. 특별히 러시아를 연상시키고 싶었던 이유가 있나?

A: 제가 한남동에 술집을 하나 합니다. 실제 영화에 나오는 술집은 제 가게는 아니지만, 동생이랑 저랑 운영하고 있는데, 러시안 컨셉이거든요. 제가 잠깐 러시아에 여행 갔을 때, 러시아에서 독주를 마시는 혁명가 같은 느낌, 일종의 간지, 그런 것들이 이념이나 생각을 떠나서 재미있었어요. 그래서 우리가 술집을 어떻게 설정할까 했을 때, 그런 느낌이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촬영 당시가 겨울이었는데, 겨울에 러시안 무드 안에서 소주 한 병을 먹는 느낌이었으면 좋겠다 싶었고, 제가 러시아어를 할 줄 몰라서 열심히 찾아보다가 단어의 어감이, 말맛이 재미있어서 ‘스바시바’를 제목으로 하게 되었습니다.

Q: 뮤지컬적인 요소를 염두에 두고 제작을 하셨다고 했는데 배우들을 캐스팅 할 때도 그런 지점을 고려했나? 같은 배우들과 여러 번 함께 작업한 것으로 알고 있다.

A: 문종원 배우님 같은 경우는 ‘노트르담 드 파리’나 ‘레미제라블’로 매우 유명한 배우님이시기도 하고 제가 이전에 제작한 영화, <아티스트: 다시 태어나다>에서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해 주셨어요. 사적으로는 너무 좋아하는 형이라서, 처음 시나리오를 쓸 때부터 문종원 배우의 이름을 적어서 썼고, 술자리에 불러서 출력된 대본을 드렸어요. 이걸 거절하면 다시는 안 본다는 마음으로. (웃음) 다행히 문종원 배우님께서 흔쾌히 출연을 해 주셨고, 이지현 배우는 뮤지컬 배우는 아니지만 연극을 주로 했던 배우에요. 한국 무용 전공해서, 해당 역할을 하면 잘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섭외를 했는데 너무 잘 소화 해 주셨습니다.

Q: 제목이 <대리 드라이버>이기도 하고 주인공이 드라이버, 차를 모는 역할인 것이 인상적이다. 아이디어를 착안하게 된 계기가 있나?

A: 이 영화는 90퍼센트 정도는 실화입니다. 제가 대리 기사님과 대화를 나누던 중 그 분이 학교 선배라는 걸 알게 되었고, 선배님께서 ‘언제 한 잔 합시다’라고 하시며 어색하게 내려서 인사를 하고 들어갔는데, 아침에 일어나서 ‘번호가 없는데 어떻게 한 잔을 하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우리나라 사람들이 이름도 모르고 번호도 없는데 “언제 한 잔 하시죠.”라고 많이 하잖아요. 그래서 둘이 한 잔을 정말로 먹었다는 설정을 만들어 볼까 하는 생각에서 써 내려가게 됐습니다.

Q: 평소 좋아하는 영화 장르가 있는지, 인생영화를 두 편만 꼽는다면?

A: 사실 영화는 무서운 영화를 빼고는 다 잘 보는 편이고요, 귀신 나오는 영화는 못 보는 편입니다. 어떤 영화를 좋아한다고 말하는 것 보다는 어떤 영화를 못 본다고 말하는 게 더 정확한 것 같아요. 인생영화는 대단히 어려운 질문이네요. 남들이 잘 말씀 안 하시는 영화를 생각해서 골라보면, 임창정 선배님이 나오시는 <스카우트>와, 전도연, 하정우 선배님이 나오시는 <멋진 하루>를 좋아합니다.

Q: 지금까지 유명한 영화들의 배급이나 투자 총괄을 주로 하셨던 걸로 알고 있다. 직접 각본을 쓰고 영화감독으로 전향하기로 결심한 계기는 무엇인가?

A: 사실 많은 영화 하는 사람들이 배급사 직원이 되는 것을 목표로 영화를 시작하지는 않는 것 같아요. 저는 전공자는 아니지만 대학생 때부터 영화를 너무 좋아해서 영화를 해야겠다고 결심을 했는데요, 여러 가지 정황 상 감독이나 배우, 스태프를 하기 보다는 어떤 직장을 얻는 것이 저의 인생의 진로 상 맞았던 것 같아요. 그래서 투자/배급사에서 일을 10년 정도 오래 했어요. 그런데 결국은 쓰고 찍는 게 더 재미있어서 연출을 하게 되었습니다.

Q: 배급이나 투자, 제작에 참여하실 때와 직접 영화를 연출하거나 배우로 영화에 참여하는 활동에서 느껴지는 가장 큰 차이는 무엇인가?

A: 사실 저는 한 영화를 만드는 데에 있어서 감독, 배우, 현장 스태프들 뿐만 아니라 투자사, 배급사, 마케팅사 등의 회사에서 일하시는 분들의 노력도 많이 투입이 된다고 생각해서 굉장히 존중하는 편이고, 또 제가 해왔던 일들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같은 점은 좋은 영화를 위해서 함께 노력한다는 부분이고요, 다른 점이라고 하면 감독이나 배우는 영화라는 컨텐츠 자체를 만들어 내는 더 직접적인 공간에 놓이게 되는 것 같아요. 예를 들면 투자사나 배급사에서는 영화를 어떻게 대중들에게 잘 소개하고 마케팅 할 지를 고민할 수는 있지만, 이미 만들어진 영화에 손을 댈 방법은 없는 반면에, 감독은 배우가 1초 쉬었다가 말을 하게 할 지, 몸짓을 뒤로 할 지 앞으로 할 지. 이런 세부적인 작업들을 더 근거리에서 하는 작업이라서 창작적인 측면에서 제가 더 재미를 느끼는 것 같습니다.

Q: 본인의 영화를 보고 관객들이 웃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앞으로 만들고 싶은 영화는 어떤 영화인가?

지금 준비하고 있는 작품들은 진지한 시대극이 하나 있고요, 청춘 로맨스 물도 하나 있어요. 그래서 이것도 딱 어떤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이야기하기 보다는 아까처럼 네거티브 방식으로 말씀 드리자면, ‘Why so serious?’라는 생각이 좀 있어요. 물론 청년들의 고민이 많기 때문에 독립영화나 단편영화에 그런 심각한 이야기들이 많이 나오는 것이겠지만요. 이를 테면 독립영화들을 보면 절반이상이 편의점이 나오는 것 같아요. 편의점, 편의점 아르바이트, 편의점 도시락이 나오면서 어려운 이야기들이 나와요. 물론 그런 이야기들은 시대정신을 담고 있기 때문에 동시대에 매우 필요하지만, 저는 그냥 보는 사람이 힘들지 않은 영화를 만들고 싶어요. 그래서 영화를 보면서 힘들었지만 좋은 영화보다는 한 번 더 보고 싶고, 친구랑 또 보고 싶은 영화를 만들고 싶습니다.

Q: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나, 미쟝센 단편영화제를 향한 응원의 한마디 부탁드린다.

A: 일단은 <대리 드라이버>를 초대해 주셔서 감사하다는 식상한 말씀을 먼저 드리고요, 그리고 이 영화는 장편으로, 무대로, 계속 확장되어 이어질 예정입니다. 혹시라도 재미있게 보셨다면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져주시면 감사할 것 같아요. 그리고 무엇보다 제가 지금 영화 일을 하면서 한 가지 후회 되는 점이 있다면 영화제 자원활동을 해보지 않았다는 점이에요. 그래서 자원활동 하시는 V-CREW분들 파이팅이라고 전해주세요.

 

 

마지막 인사까지 전한 백승환 감독에게, 카페의 옆 테이블에 앉아 있던 손님이 말을 걸었다. “<대리 드라이버> 감독님 이시죠? 영화 너무 잘 봤습니다.” 좋은 영화를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는 점은 변함 없지만, 그는 이제 유쾌한 자신만의 이야기를 세상에 내 놓을 준비를 마친 신인 감독이다. 관객에게 웃음과 재미난 볼거리를 선사하고, 귀를 즐겁게 하는 음악까지 준비하는 그는, ‘영화’라는 매체 본연의 가치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지도 모른다. 단편영화를 넘어 장편영화로, 스크린을 넘어 무대로 확장 될 <대리 드라이버>와 백승환 감독을 응원하며 인터뷰를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