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회 미쟝센 단편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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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이 설레야 힘 있는 이야기가 나온다

글 : 유솜이 / 사진 : 우수연

전교 회장 선거가 열릴 때면 학교는 늘 소란했다. 때밀이 수건을 끼고 팍팍 밀어달라는 아이부터 신고 있던 실내화를 벗어 보여주곤 직접 여러분의 실내화가 되겠다는 아이까지. 소리쳐 외치는 것뿐만이랴.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선 추잡하더라도 덮어두고 다투기 마련이다. 삶의 경쟁은 생존이 되니까. 그렇게 말랑해진 양심을 이 영화는 가볍게 꼬집는다. 오늘날 아이들의 눈을 빌려 우리의 어제를 되돌아본 영화, 김경윤 감독의 <농경사회>다.

Q. 제17회 <스포주의>에 이어 <농경사회>로 미쟝센 단편영화제를 다시 한번 찾게 되었다. <스포주의>에서는 하나의 사진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만화 ‘소년 탐정 김전일’에 등장하는 인물의 이마에 적힌 ‘범인’이라는 글자에서 출발한 작품이었는데, ‘농경사회’는 어떻게 영감을 받았는지 궁금하다.
– 도서관을 방황하다가 하나의 작은 책을 발견했다. 에센스 부정선거 도감이라는 작은 출판사에서 나온 작은 책이었는데, 후루룩 재밌게 읽혔다. 다 큰 어른들이 표를 얻기 위해 이렇게까지 치졸하고 비겁하게 노력했구나 했다. 가상하면서도 웃겼는데, 이걸 그냥 웃어넘기면 안 되지 않나. 우리가 한 번쯤 곱씹어볼 만한 주제고. 그대로 아이들이 답습하는 모습을 보면 반성까지는 아니어도 어른들이 한 번쯤 자신의 역사를 되돌아보는 기회를 얻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출발한 영화다.

 

Q. 학생회장 선거라는 소재와 농업 특성화 학교라는 배경 등이 특이한데 <농경사회>의 소재와 배경을 정하게 된 계기가 있는지. 영화에 등장하는 배경에 굉장히 눈길이 가기도 했다.
– 새로운 공간에서 찍으면 같은 이야기도 좀 더 호소력 있게 들릴 수 있어서였다. 일반적인 학원물보다 색다른 배경에서, 색다르게 찍으면 공간만 바뀌어도 분위기가 많이 달라진다. 그래서 농업특성화학교로 가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영화를 찍으면서 느낀 건 관객들은 영화를 보며 공감하면서도 일상과는 다른 걸 보고 싶어 하는 것 같다는 거다. 그래서 같은 이야기를 할 거면 좀 더 비주얼적으로 만족감이 있는 영화를 보여드리고 싶어서 촬영지를 열심히 찾아다녔다. 여기저기 다녀본 결과, 여주에 있는 농업 고등학교를 발견했다. 학교의 부지가 정말 컸고, 내가 원하는 모든 게 학교 안에 있었다. 그래서 덜덜 떨면서 교장 선생님, 교감 선생님께 “영화를 찍어도 되겠습니까”하고 물어봤는데 흔쾌히 괜찮다고 하셨다. 허락해주셔서 감사하게 찍고 돌아왔다.

 

Q. 등장씬에서 주하와 철이 각자 부모의 차에서 내려 학교로 들어간다. 어른이 아닌 아이들의 시각과 아이들의 사회로 <농경사회>를 풀어내기로 한 계기가 궁금하다.
– 원래는 장편 시나리오로 써진 이야기였고, 그때는 공간을 농업 ‘고등학교’로 설정했었다. 그런데 오늘날에 와보니 그 (부정선거) 수법들이 고등학생들이 하기에도 너무 유치했다. 말도 안 되는 수법들이라 (나이대를) 좀 더 어린아이들로 설정하면 애교 있으면서도 귀여운 이야기로 재탄생하고, 또 거부감도 사라지지 않을까 했다. 그래서 나이대를 아이들로 낮췄고, 농업특성화중학교라는 신기한 공간이 탄생했다.

 

Q. 학생회장 선거의 경쟁이 치열하다 못해 급기야는 온갖 비리가 난무하게 된다. 흡사 범죄 현장 같기도 하다. ‘피아노 표, 샌드위치’ 등 기발한 견제 방식들이 눈길을 끌었는데, 이러한 방식들을 고안해내기가 정말 쉽지 않았을 것 같다.
– 전부 새로 고안해낸 게 아니라 다 우리 어른들이 했던 것들이었다. 주하의 대사 중에 “넌 역사책도 안보냐”는 말이 있다. 철은 경쟁하다 보니까 이렇게 저렇게 하게 된 케이스인데, 주하는 헤르미온느적 특징을 가진 아이기 때문에 정확히 역사를 보고 답습을 한 거다. 위에 말했던 책에 (비리) 방식들이 적혀있었다. (역사를) 답습한 거다. 주안점이라면 좀 더 그럴듯하게 방식들을 표현하는 것에 목표를 두었다.

 

Q. <스포주의>에서 끊임없는 스포일러들이 계속 이어졌던 것처럼 <농경사회>에서는 끝없는 비리들이 계속 이어진다. 여러 가지 사건들이 이어지면서도 긴박감이 넘쳤는데, 각본을 집필하면서 어떤 고민을 했나. 가장 중점을 둔 부분이 있다면 어떤 것인지.
– 서스펜스에 중점을 두고 싶어 했다. 아주 많은 단편을 만들어 본 게 아니라서 그때마다 도전하고 싶은 씬들이 생긴다. 이번에는 관객들을 쫄깃하게 만들 수 있는, 잡고 끌고 갈 수 있는 작품을 만들고 싶었다. 연출자의 안내에 따라 착착 진행되는 영화를 해보고 싶었기 때문에 그런 고민을 했던 것 같다.

 

조금 우려됐던 건 아이들만 쓰는 아이들만의 언어가 있지 않나. 고등학교 졸업을 하고 텀이 있다 보니 각본을 쓰다가도 문득 ‘학주’라는 말을 계속 쓰나? 이런 의문들이 들었다. 그래서 학교 학생들이나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 얼마 안 된 사촌 동생에게 물어보기도 했다. 사용한다고 하면 그제야 (각본에) 썼다. 물론 관객들은 내 나이 또래겠지만, 영화를 보는 아이들도 “뭐 저런 게 다 있어?” 하는 생각이 들면 안 되니까. 그래서 최대한 아이들에게 고증을 부탁했다.

 

Q. 배경의 여러 디테일들이 눈에 들어왔다. 투표용지를 트랙터로 운반한다거나 하우스의 온도를 조절해주어야 한다거나 하는. 현장성이 리얼했다. 관련 자료 수집이나 조언은 어떻게 받아 진행했나.
– 장편을 쓸 때는 팩트들이 좀 더 제대로 (체크)되어야 하니까. 농부들도 보는 영화가 될 수 있기 때문에. 그래서 책을 굉장히 많이 봤다. 농사짓는 법도 많이 봤고, 농사에서 얻을 수 있는 지식도 얻으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농사를 짓는 과정에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교훈들이 되게 많더라. 그래서 그런 것들도 넣으려고 노력했다. 머릿속에 집어넣고 나서 촬영지를 보러 갔을 때, 장소들이 이미 다 마련을 해주고 있었다. 트랙터도 농기계보관창고에 꽉 차 있었고.

 

하우스 온도 조절 같은 경우는 학교 안에 하우스가 있어서 바로 떠올랐다. 촬영지를 여러 번 답사했는데, 보면서 자연스럽게 떠오른 장면들이다. 그래서 좀 더 살아있는 대사를 떠올릴 수 있었던 것 같다.

 

Q. 답사는 여름에 간 건가. 여름 배경이 정말 잘 담긴 것 같다.
– 그렇다. 찍을 때도 여름이었고, 정말 더웠다.

 

Q. 주연을 맡은 두 배우는 물론이고 주하와 철의 선거캠프, 선관위, JBS 방송반 등 학교 학생들이 다들 돋보였다. 디렉팅할 때 신경 쓴 부분이 있다면.
– 사실 아이들이 너무 잘해줬다. 아무래도 단편영화는 배우의 개인기에 많이 기대는 면이 있지 않나. 그래서 캐스팅 단계에서 고심해서 오디션을 보려고 노력했다. 주하는 영화에서 보고 연락을 한 경우다. <시체들의 아침>이라는 영화에서 처음 봤는데, 영화를 좋아하는 중학생 아이로 나온다. 발랄하게 연기를 잘해줬다. 아직 중학생이겠거니 생각을 하고 만났는데, 고등학생이었다. 아직 앳된 얼굴이 많이 남아 있었다. 철은 캐스팅으로 만났다. 그때 봤던 좋은 모습들이 철이 배역과 너무 어울렸다. 실제로 주하는 고1이었고, 철은 중1이었다. 그 나이대에서는 나이 차이가 크게 나는 거였는데도 친해져서 장난도 많이 치고, 그래서 더 재미있게 찍었던 것 같다.

 

그리고 오디션을 봤던 많은 아이가 자기의 배역을 잘 찾아갔다. 물론 주하와 철이로 오디션을 본 거지만 ‘이 친구는 이 역할에 너무 어울리는데?’라는 생각이 들어 부탁하기도 했었다. 그리고 여주에 여주여자중학교가 있는데, 학교에 연극반이 있다. 선관위 친구들은 연극반 아이들이 많이 나온다. 연극이 좋아서 연기하는 아이들이기 때문에 그 모습이 정말 예뻐 보였다. 같이 오디션도 보고, 와서 대본도 나눠주고 하다 보니 애들끼리도 아주 친해졌다. 애들은 금방 친해지니까 그 모습들도 너무 보기 좋았고. 대부분 아이들이 만들어준 영화라고 생각하고 있다.

 

Q. 현장에서 아이들과 궁합이 좋았을 것 같다. 촬영 현장은 어땠나
– 촬영 기간은 8일 정도 걸렸다. 준비 기간은 한 달 반에서 두 달 정도. 시나리오까지 생각하면 길어지지만, 촬영지 답사를 시작한 건 딱 두 달 정도 전부터다. 장소가 걱정했던 것보다 비교적 쉽게 구해져서 괜찮았는데, 아무래도 인물들이 정말 많이 나오다 보니까 인물 조감독을 따로 모셨다. 아이들과 소통하면서 관리하는 걸 부탁드렸었는데, 인물 조감독님이 많이 고생했다. 사람이 그렇게 많은데… 인물이 웬만한 장편 영화만큼 있었다. 혹은 더 많을 수도. 욕도 많이 먹었다. “누나는 왜 이렇게 사람 많이 나오는 걸 써서, 다음엔 한 명으로 찍어” 라고도 했다. (웃음)

 

돌아다니는 아이들도 다 캐스팅을 해야 했는데 옆 학교 학생들이 많이 와줬다. ‘농경사회를 도와주세요’라는 오픈채팅방을 만들어서 오고 싶은 친구들이랑 모여 찍었다. 선생님역은 내 친구들이다. 그중에 한 분은 클라이밍 하는 곳에서 알게 됐다. 배우라고 하셔서 도와주셨다.

 

Q. 흥미로운 스토리에 배경음악, 카메라 연출까지 어우러져 전반적인 작품의 분위기가 굉장히 톡톡 튀었다. 요소요소들에 디테일하게 신경을 많이 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연출에 관한 비하인드라던지 아끼는 장면 등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다.
– 다 너무 아끼는 장면들이다. 되게 재밌게 찍은 장면이 있는데, 복사실에서 애들이 헤드라이트를 쓰고 무언가를 하는 장면이 있다. 그때 (소품으로 쓴) 작두를 내리는 타이밍을 딱 맞춰야 했다. 배경음악이랑 맞추려는 설정이어서, 애들이 다칠까 봐 조마조마하면서도 타이밍을 맞춰야 하니까 너무 떨렸다. 그래서 “하나, 둘” 이렇게 옆에서 소리 내서 말하고 나중에 사운드를 지우고, 입히고 그런 식으로 찍었다. 애들이랑 촬영하면서 미안하기도 했지만, 너무 귀엽다는 생각을 많이 하면서 찍었다.


Q. 비닐하우스 대치 장면에서 주하와 철은 서로의 약점들을 찌르며 한방씩 주고받는다. 보면서 상처받는 기분이 덩달아 들기도 했다. 많은 사람이 그 장면에서 그렇게 느끼지 않을까 생각했다. 혹시 누군가에게 날리고 싶었던 펀치였는지.
– 그 장면은 사실 서로가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장면이라서, 가장 상처를 줄 수 있는 대사를 찾았다. 사실 내가 상처받을 것 같은 말을 쓴 거다. 사실은 무언가를 열심히 한다는 게 내가 하고 싶어서도 있겠지만 특히 청소년기에는 다른 사람의 입김에 휘말려서, 하라고 해서 하는 아이들이 정말 많지 않나. 나도 그랬었고. 그랬나? 잘 모르겠다. (웃음) 아무튼 이 영화에서 가장 큰 감정신이라 좀 더 뜨끔한 말들을 썼었다. 그 씬은 사실 나한테 하는 말이다.

 

Q. 반전의 결말이 굉장히 흥미로웠다. 윤수가 가장 마지막에 등장하는 이유가 있다면 어떤 것일까.
– 윤수의 등장은 나름의 반전의 재미를 주기 위한 거였고, 결말을 고민했었다. 주하는 ‘너는 완벽해야 해’라는 기대에 맞춰서 살아왔고, 학생회장이 되고 싶었던 이유도 결국 엄마의 등쌀에 떠밀려서였다. 사실 원래는 좀 더 감정적으로 끝나는 영화였다. 사건들이 밝혀졌을 때 학주가 크게 혼을 내고, 주하가 엄마를 보지만, 엄마는 “내가 그렇게 가르쳤니?”라며 발뺌하는 씬이 있었다. 근데 그 씬을 넣으니까 영화가 가지고 있는 매력이 반감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제나 좀 더 감동을 주는 영화를 하려 하지만 <농경사회>는 아이들이 재기발랄하게 만들어가는 영화인데 내 욕심인 것 같았다. 그래서 결국 그 씬을 빼는 게 낫지 않을까 해서 결말이 툭 그걸로 나오게 됐다.

 

또 조금 다른 얘긴데 “국민은 자신들의 수준에 맞는 지도자를 갖는다”라는 말이 있다. 어쨌든 그 학생들이 부정선거에 동참한 것이지 않나. 돈을 받고 표를 거래하고. 그런가 하면 어떤 아이들은 선거에 큰 관심도 없었을 테고. “너희들의 미래를 너희 손으로 망친 거야” 이런 메시지를 주고 싶었던 것 같다. 그게 학교에만 국한되는 얘기가 아니라, 아이들의 시선으로 어른들의 사회를 비꼬고 싶었던 것이기 때문에 “표를 행사하려면 제대로 하시고, 당신들의 한표 한표가 좋은 나라를 만듭니다. 여러분” 하는. 너무 선민 의식적인 것 같지만 하고 싶었던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결말이 나온 것 같다.

 

Q. 자식은 부모의 거울이다는 말이 있다. 연출 의도에 아이들의 사회는 기성 사회의 과오를 무섭도록 투명하게 반영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런데 어떻게 보면 아이들의 사회는 오히려 더 날 것의, 더 적나라한 동물의 왕국 같기도 하다. 경쟁이 끊임없이 이어지는데, 주하와 철이 귀여우면서도 안쓰럽다는 생각도 들었다. 경쟁이라면 개인의 양심은 아랑곳하지 않는, 위태로워진 이런 요즘인데 작품 속 영월중학교 학생들에게 혹은 다른 인물들에게 건네고 싶은 말이 있다면.
– 영화의 표면이 아니라 밑에 깔아두었던 생각이 있다. 양심을 지켜내기 힘든 부당한 때가 너무 많다. 그런데 그런 때에 개인이 양심을 저버리는 걸 개인의 탓만 할 수도 없다. 물론 잘못을 했지만, 그 사람을 만들어온 사회가 있고, 잘못된 시스템이 있을 거다. 좀 더 많은 사람이 큰 그림을 볼 수 있다면, 개인 혼자만이 아니라 개인들이 모여서 만들어낸 사회가 잘못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면 좋지 않을까. 그래서 잘못된 시스템 안에서 어른들과 아이들이 얼마나 양심을 지켜내기가 힘든지를 보여주고 싶었다.

 

얼마 전엔 오죽헌을 다녀왔는데 이이 선생님 말씀 중에 “견득사의”라는 말이 와닿았다. “이득을 볼 때는 그것이 옳은 것인가를 생각하라”는 말이다. 평소엔 어르신들이 사자성어로 말씀하실 때 잘 안 듣는 편이었는데 많이 와닿았다. 내가 이득을 본다고 해서 다 옳은 일은 아니지 않나. 내가 이득을 보는 것으로 인해 누군가는 피해를 받을 수도 있고. 사실 결국 좋은 세상을 만들려면 그런 부분들까지 다 생각을 해야 하고, 그게 아이들에게 보여줘야 하는 태도가 아닌가 싶었다. 다들 “견득사의”의 마음으로 살면 좋은 세상이 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아이들에겐 즐겁게 작업한 기억이 있어서 고맙다는 말을 너무 하고 싶다. 고맙다는 말이 닳고 닳아서 없어질 것 같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다. 고마운 건 고마운 거니까. 또 안 좋은 세상에서도 자기의 양심을 지키는 분들, 그런 분들에게 화이팅 해드리고도 싶고. 올바르고 좋은 사람이 되겠다는 약속을 스스로 매일 하고 있다. 좋은 세상이 왔으면 좋겠다.

Q. 이전 작들에 이어 <농경사회>까지 전부 굉장히 재기발랄한 작품들이다. 평소 감독님에게 영감을 주는 요소들이 있다면.
– 소재는 사실 주변에 널려있다. 근데 그 소재들을 이야기로 직조해나갈 수 있는 건 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어야 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스스로 하고 싶은 얘기가 있으면 글을 빨리 쓰는 편이다. 목표는 정해져 있고, 이야기를 향해서 가면 되는 거니까. 좀 돌아간다고 할지라도 그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성공하면 하나의 이야기가 나오더라. 그래서 그런 식으로 아이디어를 얻는 편이다.
소재는 어디에나 널려있는 것 같다. 사실 학교 다니면서 듣는 얘기가 “아이템은 잘못이 없다. 그냥 너희가 못 쓰는 거지. 아이템 탓하지 마라”다. (웃음) 어쨌든 하고 싶은 얘기를 끝까지 쓰는 게 중요한 것 같다. 그리고 결국 하고싶은 얘기가 있다는 게 동력이 된다. 가슴이 설레야 힘 있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 같다.

 

Q. 위에도 말했지만, 굉장히 유쾌한 작품들을 그려내고 있다. 감독님에게 ‘웃음’이란 어떤 것일까.
– GV에서 받은 질문에 <스포주의>랑 <농경사회>에 병맛코드가 있다는 말씀을 하셨는데 사실 병맛이 아니라 진짜 웃기려고 한 거였다. (웃음) 근데 사람들이 병맛이라고들 해서 ‘정통 코미디인데 왜 병맛이라고 하지?’ 하는 생각을 항상 했다. 뭐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그냥 나의 DNA엔 남을 웃기고 싶다고 쓰여 있기 때문에 습관이자 버릇이자 운명인 것 같다.

 

Q. <농경사회>를 감상하면서 앞으로의 이야기들이 더 기대되고, 궁금해졌다. 앞으로 다루고 싶은 이야기들이 있다면 한 말씀 부탁드린다.
– 요즘 고치고 있는 시나리오는 장편 시나리오다. <총파업>이라는 시나리오가 있다. 만들어 주실 분을 찾고 있다. 혼자 찾기 쉽지는 않지만. 그리고 또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아서 다른 이야기도 쓰고 있다. 마음을 많이 열어두고 다음 작품을 준비하려고 한다. ‘나는 꼭 이거 아니면 안 돼’라는 생각은 안 하고, 그냥 내가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이야기가 있다면 언제든지 현장에 있고 싶다. 현장을 좋아하는데… 빨리 현장에 가고 싶다.

Q. 감독님에게 단편영화란?
– 자꾸 웃기려고 하지 말고. (웃음) 집 앞에 즙 만드는 건강원이 있다. 거기서 닭발 즙을 항상 팔고 있다. 그냥 먹기에도 힘든 닭발을 즙까지 내어 먹는 걸 보고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단편영화는 하고 싶은 이야기의 정수를 모아 엑기스로 만들어서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게 아닌가. 그래서 결국에는 단편영화는 닭발 즙이라는 말이 나오지만. (웃음) 닭발 즙이다. 누군가는 진절머리를 내고 싫어할 수도 있겠지만 누군가에게는 삶에 정말 큰 영양분이 되는 이야기들이 숨어있는 즙이라고 볼 수 있다. 아, 내가 그걸 즐겨 먹는다는 건 아니다.

 

푸른 여름 햇살을 뒤로하고, 어두운 농기계 창고에서 앙큼한 전투를 벌이는 아이들을 보고 있자니 절로 입이 쌜룩댄다. 스크롤까지 전부 맛본 뒤, 문득 등을 돌리고 바라보면 애써 외면했던 우리들의 그림자가 나를 직시하고 있다. 좋은 세상이 왔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김경윤 감독은 <농경사회>라는 힘 있는 이야기를 우리에게 그저 ‘툭’하고 던져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