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잠해 보이는 도시의 일상 속에 머무르는 삶의 그림자. 모두가 알고 있지만 쉽게 짚어내기 힘든 그것을 비정성시 감독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포착했다. 6월 28일 밤 10시에 진행된 제18회 미쟝센 단편영화제의 첫 비정성시 GV에서 그 포착의 순간들을 살펴볼 수 있었다. <밀크>의 장유진 감독, <기대주>의 김선경 감독, <너무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게>의 조윤선 감독, <생일>의 김율희 감독이 미쟝센 단편영화제의 비정성시를 찾아준 만석의 관객들과 함께 했다. 개성 있는 감독들이 말하는 삶의 ‘순간’ 속으로 함께 들어가 보자.
모더레이터 : 네 편의 각기 다른 매력을 지닌 영화를 보셨는데요, 아마 관객분들도 궁금하신 게 많으시리라 생각합니다. 관객분들께 마이크를 넘기기 전에, 우선 제가 네분의 감독님들께 이 영화를 어떻게 연출하게 되었는지, 간단하게 제작의도를 여쭤보겠습니다.
<밀크> 장유진 감독 : 해외 촬영이 쉽지는 않았습니다. 제가 이 영화를 통해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모성애’였어요. 태국인들의 가난한 실정이든지, 인종에 관한 문제들을 다루려고 한 건 절대 아니고요, 엄마의 위대함을 보여주고자 영화를 만들게 되었습니다.
<기대주> 김선경 감독 : 저는 어렸을 때 실제로 새벽 수영반을 다닌 적이 있는데요. 그때 수영장의 어떤 풍경이 일상생활하고 많이 다르다는 것 느꼈습니다. 그곳에서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는 연령대는 아주머니, 할머니 위주인데, 그 분들을 지켜보면서 후일 저도 나이가 든다면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해 고민했던 것 같아요. 그때의 경험을 살려 <기대주>를 만들게 되었습니다.
<너무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게> 조윤선 : 우리는 서로 겉으로 보이는 모습만으로 쉽게 ‘저 사람은 저런 상태야’라고 판단을 하게 되는 경우가 파다하잖아요. 그 오해에서 비롯된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영화를 만들게 되었습니다.
<생일> 김율희 감독 : 저는 어렸을 때 부모님이 많이 바쁘셨는데, 그걸 이해하면서도 외로웠던 주인공 동이 같은 아이였어요. 고등학생 때, 아침 뉴스를 보고 학교 가는 길에 버려진 수거함을 봤던 적이 있어요. 저 안에 아기가 들어있든 뭐가 들어있든 누가 관심을 가질까, 싶은 생각이 들더라고요. 동이 같은 아이가 그 안에 아기가 들어있다고 믿게 된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그 아이가 어떻게 성장을 할까, 이런 고민에서 비롯된 영화입니다.
모더레이터 : 미쟝센 단편영화제가 다른 영화제와 차이가 있는 게, 관객분들의 질문이 굉장히 많다는 겁니다. 아마도 지금도 관객분들께서 궁금한 점이 많으실 거라 생각합니다. 관객분들께 마이크를 넘기도록 하겠습니다.
관객 : <밀크> 감독님과 <생일> 감독님께 질문 있습니다. <밀크> 감독님께 먼저 질문드리자면, 배우들이 전부 태국분들이시더라고요. 연기를 되게 인상 깊게 봤는데, 그 캐스팅 과정이 궁금합니다. 다음으로 <생일> 감독님께 질문드리겠습니다. 결말 부분에서 아기의 얼굴을 보여주지 않고 끝이 나더라고요. 그게 실제로 아기인 건지 혹은 동이의 상상인지 궁금합니다.
<밀크> 장유진 감독 : 실은 지금 이 자리에 태국에서 피디를 해준 친구가 와 있어요. 그 친구가 배우 캐스팅을 도와줬어요. 태국은 에이전시 같은 인프라가 정확하게 잡혀 있지 않아요. 저 친구가 프로필 사진 같은 기본 자료를 보내주고, 제가 이미지 캐스팅을 한 뒤, 장소를 마련해서 오디션을 봤습니다. 모든 배우가 이런 과정을 통해서 캐스팅되었어요.
<생일> 김율희 감독 : 결말부에 아기의 얼굴이 등장하지 않은 이유는, 보여줄 필요가 없다고 느꼈기 때문이에요. 아기가 그곳에 들어있는지 없는지는 아무도 모르잖아요. 엄마 배 속에 아기가 있더라도 심장 박동 소리는 들을 수 없거든요. 수거함에서 엄마 뱃속에 있는 것처럼 심장박동 소리를 듣는 것도 동희의 상상이기 때문에, 그곳에 아이가 있는지 없는지에 집중한다기보다는 수거함 속에 있는 친구로 여기길 바랐어요. 동이는 상자를 머리에 쓰며 놀던 자신의 상자를 벗기거나, 상자에 작은 문을 달아 문을 열며 자신을 봐주었던 엄마와의 추억을 안고 있잖아요. 그렇게 자란 동이가 직접 문을 열고 마주한 게 무엇인지에 대해서 초점을 맞추고 싶었습니다. 외롭지만 외롭다고 말하지 못했기 때문에 쌓여 있던 동이의 부정적인 감정을 마주함으로써 동이가 성장하게 되었다는 의미를 부여하고 싶기도 했고요.
모더레이터 : 네. 저도 <밀크>를 보면서 궁금했던 점이 있는데요. 감독님이 저는 태국분인 줄 알았어요. (웃음) 한국분인 걸 알고 깜짝 놀랐는데, 연출을 하며 어려운 점은 없으셨나요?
<밀크> 장유진 감독 : 어려움을 얘기하자면 소설을 써야 하는데요. (웃음) 실은 제가 태국말을 한 마디도 몰라요. 모든 의사소통은 영어로 했어요. 시나리오 단계에서부터 태국 친구들한테 검사를 받았어요. 이게 과연 자연스러운 말인지, 또는 이분들이 생활하는 게 맞는지. 시나리오를 다지는 작업을 좀 오래 한 편이고, 리허설도 굉장히 많이 했습니다. 거의 두세 달 정도 한 것 같아요. 언어적인 장벽이 분명 있었으나 보람찬 나날들이었습니다.
관객 : <밀크>의 장유진 감독님과 <너무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게>의 조윤선 감독님께 질문드리고 싶습니다. <밀크> 감독님께는 영화의 장소가 왜 굳이 태국이었는지 궁금하고요. <너무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게> 감독님께는 영화의 사건이 단편영화치고 구체적인 데다 장소도 많이 바뀌는 부분이 있는데, 이 이야기가 전부 창작인지 혹은 실제 있었던 일인지 궁금합니다.
<밀크> 장유진 감독 : 태국이라는 나라에 원대한 목적이 있던 아니고요, 이 이야기를 떠올렸던 곳이 태국 여행 중일 때였어요. 제 이야기를 하고 연출을 함으로써 이 장소가 가장 효과적이라고 생각했어요. 다른 로케이션은 눈에 들어오지 않더라고요. 자연스럽게 느낌과 영감이 이끄는 대로 택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앞서 말씀드렸듯 어떤 관광국의 실태를 말하고자 한 것은 아닙니다.
<너무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게> 조윤선 감독 : 다 창작된 내용이고요. 모든 사람이 제 나이 또래 정도되면 어떤 종류의 상실을 경험하면서 살잖아요. 꼭 죽음이 아니더라도요. 여러가지 살면서 느꼈던 상실들을 각색처럼 조금씩 변형하면서 넣어봤습니다.
관객 : 영화 너무 잘 봤습니다. <기대주>의 김선경 감독과 <너무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게>의 조윤선 감독님께 질문드리려 합니다. 우선 <기대주>의 경우 주인공 어머니께서 집에서 혼자 요리하시고 혼자 수영 연습하시는 게 눈에 띄었어요. 집 안에 가족 모습이 보이지 않아서, 왜 혼자 사시는 거로 연출을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너무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게>에서는 짹짹이 학생에게 본명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왜 본명으로 불리지 않는지 궁금합니다.
<기대주> 김선경 감독 : 가족을 넣지 않은 이유는 제가 나이가 들었을 때의 모습을 생각하면서 영화와 캐릭터를 만들었기 때문인데요. 제가 생각했을 때, 왠지 저는 나이가 들어도 혼자 살 것 같았다는 생각이 들었고. (웃음) 또 명자라는 캐릭터가 자신에게 집중하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무엇을 하든 나를 위해 행하고, 욕망을 가져도 자신을 향한 욕망을 가지고. 다른 것에 휩쓸리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가족이나 주변 사람을 많이 지우고, 명자 본인에게 집중하는 이야기를 만들었습니다.
<너무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게> 조윤선 감독 : 제목이랑 주제가 연결되는 부분의 질문인 것 같아요. 앞서 말씀드렸듯 우리는 서로를 겉모습으로만 무게를 재고 또 판단하지만, 사실 모두 각자가 가진 슬픔의 무게를 견디고 있잖아요. 하지만 또 서로를 통해 작은 위로를 받으면서 남은 시간을 살아갔으면 좋겠다는 게 주제였습니다. 짹짹이라는 이름은 사실 친구들 사이의 이름이죠. 우리 모두 어떤 그룹에 속해 있을 때마다의 모습이 다르지 않나요. 짹짹이는 친구들 모습이고, 아버지를 만나면서 친구들이 아버지를 조금은 이해를 하고, 아버지는 친구들을 통해서 위로를 받는 그런 과정인데, 그 두 그룹의 만남을 그런 식으로 표현을 하면 어떨까, 라는 마음이었습니다.
관객 : <기대주>의 김선경 감독께 질문드리고 싶습니다. 주인공분께서 혼자 짬뽕을 먹을 때 어떤 생각을 하셨을까요?
<기대주> 김선경 감독 : 일단은 대비를 보여주고 싶었어요. 그전에는 잔치상을 혼자 차려 먹다가 후에는 배달음식 짬뽕 한 그릇을 시켜서 먹는 거로요. 어쩌면 자기가 선택한 결말이긴 하지만, 어쨌든 그 명자라는 사람이 하고 싶었던 건데 결국 못하게 된 거니까요. 상벌 같은 개념이 있었던 것 같아요. 배고프니까 보상하는 거로 먹지만, 먹으면서 맵고, 콧물 눈물 좀 나고… 이런 느낌과 어울리는 음식이 아닐까, 하는 마음에 짬뽕을 먹는 장면을 넣었습니다. 해물도 많이 있고요. (웃음)
관객 : <밀크>의 장유진 감독님께 질문드리고 싶습니다. 주인공이 두 번째로 분유를 훔쳤을 때, 독일인 부인이랑 마주치잖아요. 그때 그 독일인 부인이 팁을 줬는데, 부인이 주인공이 분유를 훔친 걸 과연 알고 그런 건지 궁금했습니다. 독일인 부인이 다 파악을 하고도 주인공을 이해하고 연민해서 팁을 준 걸까요? 그 연민이라는 감정을 통해서 위급한 상황에서 아이를 맡길 정도의 유대 관계가 생긴 건가요?
<밀크> 장유진 감독 : 사실 독일인 부인이 모르는 설정이었어요. 그 시점은 마치 아는 것처럼 보이는 싸이(주인공)의 시점이고, 실제로는 모르는 거로 연출을 하기는 했는데요.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웃음)
관객 : <생일>의 조윤선 감독님께 질문드리고 싶습니다. 사소한 것일 수도 있지만, 초반 부분에 동이를 거의 클로즈업하고 뒷배경을 전부 날리셨더라고요. 약간 답답하다는 느낌까지 들었는데요, 왜 이렇게 연출한 것인지 궁금합니다.
<생일> 조윤선 감독 : 같은 프레임 안에 많은 인물을 담고 싶지 않았어요. 아빠와 같이 나와도 둘을 한 장면에 담고 싶지 않더라고요. 결국 받아들이는 건 동이잖아요. 이 영화 자체가 동이 위주로 흘러가기 때문에, 아빠와 동이의 대화라기보다는 아빠의 말을 받아들이는 동이의 입장을 보여주는 느낌을 주고 싶어서 답답하더라도 타이트하게 촬영을 했습니다.
관객 : <기대주>의 김선경 감독님과 <너무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게>의 조윤선 감독님께 질문 있습니다. <기대주>의 경우 경기 도중 학생이 실수를 하고, 명자가 탈의실에서 학생이 우는 걸 지켜보는 장면이 있었는데, 이 부분에서 주인공은 어떤 생각을 했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그 장면에서 아주머님께서 ‘내가 약간 져줘야 하지 않을까’라고 생각한 거로 나름 해석을 해보았는데요. 그 생각 때문에 결과적으로 살짝 져 주신 건지 궁금합니다. <너무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게>는 제목 자체에서 관객에게 화두를 던져주시는 것 같았어요. 혹시 감독이 생각하시는 너무 무겁지 않게 봐야 하는 장면과 너무 가볍지 않게 봐야 하는 장면은 있다면 무엇인가요?
<기대주> 김선경 감독 : 실은 지금보다 더 명자를 좀 더 키치한 캐릭터로 만들고 싶은 마음이 좀 있었어요. 그러진 못 했지만요. ‘왜 저렇게까지 하지?’라고 보일 만큼, 자신의 욕망을 드러내는데 솔직하고 거침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러나 막상 영화를 찍기 위해 준비를 하다 보니, 사실 그게 전부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도 명자가 어른이고 상대는 어쨌든 아이니까, 명자라는 사람이 상대가 아이라는 것을 분명히 인지하고 있어야 이 사람의 존엄을 지켜줄 수 있겠다, 싶더라고요. 완벽하게 ‘내가 져줘야겠다’라는 마음을 먹었다기보다는, 이런 흔들리는 마음이 있기 때문에 이런 결과가 나온 게 아닌가, 하는 생각입니다.
<너무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게> 조윤선 감독 : 사실 지금 질문해 주신 분이 영화에 출연한 유한결 배우분의 어머니세요. (웃음) 사실 죽음이라는 게 너무 무거운 주제잖아요. 처음에 이 영화를 찍으려고 생각했을 때부터 편집할 때까지 쭉 무거운 마음이었어요. 특히 짹짹이 아버지께 죄스러운 마음을 갖고 작업을 진행했습니다. 어떤 장면을 어떤 마음으로 봐야할 지는 관객분들이 느끼시는 대로 보면 맞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모더레이터 : 오늘도 열화와 같은 질문 감사드립니다. 마지막으로, 네분의 감독님들께서 관객분들께 하고 싶은 한 마디나 차기 계획에 대해 간단하게 말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밀크> 장유진 감독 : 이 자리에 해외에서 함께 고생해준 스텝들이 와주었는데요, 정말 고맙다는 말 전하고 싶습니다. 또 이렇게 훌륭한 영화들과 나란히 상영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겨 행복하네요. 늦은 시간까지 질문도 주시고 관람도 해 주신 관객분들 정말 감사합니다. 앞으로의 계획은… 글쎄, 입봉을 하고 싶은… (웃음) 그런 마음은 있습니다.
<기대주> 김선경 감독 : 저는 찍어야 영화고 봐야 영화라 생각하기 때문에, 이 자리를 찾아 주신 관객분들께 감사한 마음이 크네요. 차기 계획에 대해 말씀드리자면, 지금 <킹메이커>라는 영화 연출부로 일하고 있답니다. 이 영화 촬영이 7월 말이면 끝이 나는데요, 그 뒤로는 쉬면서 여행도 좀 다니고 시나리오도 슬슬 써야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큰 계획은 딱히 없습니다.
<너무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게> 조윤선 감독 : 미쟝센 단편영화제에서 이렇게 많은 분들이 제 영화 보러 와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다음 계획은… 열심히 쓰는 것밖에 없습니다. (웃음)
<생일> 김율희 감독 : 실은 되게 많이 부족한 영화라서, 미쟝센 단편영화제 본선에 진출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기쁨도 있었지만 부끄러움이 굉장히 컸어요. 편집하는 과정에서도 똑같은 마음이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텝들이 격려를 많이 해줘서 편집을 마무리 짓고 영화를 보여드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저희 스텝들에게 칭찬하는 마음을 가져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영화 봐주신 관객분들 정말 감사합니다. 현재 좋은 기회로 지원을 받아서 촬영을 진행하게 되었는데요, 시나리오를 좀 더 수정해야 할 것 같아요. 이번보다 나은 영화를 찍어서 다시 한번 찾아뵙는 게 저의 목표입니다.
모더레이터 : 네분의 ‘기대주’ 감독님들을 만나보았습니다. 늦은 시간까지 자리를 지켜주신 많은 관객분들께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이 자리를 빛내주신 감독님들께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큰 박수 부탁드리겠습니다.
짧지만 영화에 대한 애정은 길었던 시간이었다. 영화관을 나옴과 동시에 또 다른 영화가 펼쳐지는 기분이 들 정도였다. 네분의 감독님들이 말하는 삶의 ‘순간’이란 각기 다른 색채를 뿜어내고 있지만, 실은 조금만 주위를 둘러보면 우리 모두 어딘가에서 겪을 수 있을 법한, 사적인 동시에 보편적인 얘기이지 않은가. 익숙하지만 낯선 순간, 이를 계속해서 포착할 감독님들의 행보를 사심 듬뿍 담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