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온한 일요일 저녁. 끝나가는 주말을 이대로 보내기 아쉬웠던 우리는 절대악몽 섹션 3을 보기 위해 한자리에 모였다. 긴장과 공포는 따분한 일상 속 생기를 주기에 충분했다. 남성의 각성을 위한 여성의 희생을 뒤집은 정인혁 감독의 <냉장고 속의 아빠>, 익명성에 감춰진 마녀사냥의 문제를 드러낸 장준엽 감독의 <프라사드>, 장애인 성봉사 소재를 다룬 변성빈 감독의 <손과 날개>, 삶의 부조리를 공허충으로 나타낸 정재용 감독의 <공허충>. 우리는 이 4가지 악몽을 가지고 이야기해보려 한다.
모더레이터: 이야기를 어떻게 아이디어를 얻어서 만들게 되었는지, 제작과정에 대해 듣고 싶습니다.
정인혁 감독: 저는 제목에서 시작을 했는데 냉장고 속의 여자라는 슈퍼히어로 영화에 나오는 클리셰가 있어요. 남성히어로가 각성하기 위해서 주변에 있는 여성인물이 살해 당하고, 부상당한다는 클리셰인데 그걸 뒤져보면 어떨까 하는 마음에서 시작했습니다.
장준엽 감독: 저는 먼저 장편을 계획 했었는데요. 마녀사냥이 마녀를 만든다는 모티브로 단편영화로 현대적으로 만든 것이 <프라사드>입니다.
변성빈 감독: 대학교 1학년 때 장애인 성 봉사제도에 대한 찬반 수업이 있었는데, 그때 그 수업을 준비하면서 자료조사를 했었어요. 그에 관한 기사를 보고 잠을 한숨도 못 자고 울었던 기억이 나요. 마음도 어려웠고 화도 나고 복잡한 감정이 찾아오더라고요. 이 이야기를 꼭 한번 영화로 만들고 싶다고 생각했고 거의 10년이 지난 뒤에 영화를 만들게 되었습니다.
정재용 감독: 기억을 뒤져보니 왜 살까 라는 고민을 치열하게 했었던 적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때 남은 생각들이 생각보다 큰 에너지가 되었더라고요. 그 고민을 계기로 <공허충>을 만들었습니다.
모더레이터: <냉장고 속의 아빠> 같은 경우 제목이 주는 느낌이 있어요. 제목은 어떤 배경으로 지으셨는지 듣고 싶습니다.
정인혁 감독: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냉장고 속의 여자라는 것의 클리셰를 얘기해보고 싶었고요. 그것을 접목시켜 여성이 본인이 각성하게 되는 계기가 남성성의 죽음이 되면 어떨까 했어요. 영화를 보고 나면 왜 <냉장고 속의 아빠>지 하는 의문이 들 거예요. 냉장고 속의 아빠 혹은 여자라는 키워드가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두고 싶었습니다.
모더레이터: <프라사드>의 경우 장편의 작품을 단편으로 제작했다고 하셨는데, 이야기가 바뀌었는지 아니면 장편의 이야기 일부가 떨어진 건지 궁금합니다.
장준엽 감독: 장편의 이야기는 <프라사드>와 전혀 다른 이야기예요. 장편에서 모티브만 가져왔고, 그건 시대적 배경이 1940년대인 오컬트(occult: 과학적으로 해명할 수 없는 신비적ㆍ초자연적 현상.) 영화를 작업 중입니다. <프라사드>는 마녀사냥에 있어서 현대에 문제되는 게 뭘까 고민했을 때, 익명성이라고 생각했어요. SNS라는 소재가 현대에는 적절한 것 같아 만들게 되었습니다.
모더레이터: <손과 날개>의 경우 아무래도 캐스팅 과정에서 많은 고려사항이 있었을 것 같아요. 캐스팅 관련해서 어떻게 배우를 섭외하셨는지 궁금합니다.
변성빈 감독: 홍성훈 배우는 대학교 후배예요. 교양 때 만났는데, 홍성훈 배우는 실제로 지체장애와 언어장애가 있는 친구예요. 국문학과를 다니는 글을 쓰는 친구여서 장애 당사자이기도 하고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평론을 부탁했어요. 그런데 연기를 해보고 싶다고 하셔서 같이 하게 됐습니다. 엄마 역의 경우 많은 배우님들께서 머뭇거리셨어요. 캐스팅 하는데 어려움이 있었죠. 김금순 배우님과 3-4시간을 함께 대화하면서 배우님께서 이 작품에 사명감을 가지고 해야겠다는 말씀에 하시더라고요. 김우겸 배우는 친한 사이라서 조연출과 연기를 같이 해주셨습니다.
모더레이터: 장재용 감독님께 질문드리겠습니다. 영화 속 공허충은 어떻게 제작하신 건가요?
장재용 감독: 사실 특수랩을 하고 싶었는데 제가 가진 예산으로는 파주에 있는 모든 업체들이 만들 수 없다고 하더라고요. 한 업체에 찾아가서 사장님께 빌었습니다. (웃음) 다행히 사장님께서 잘 만들어 주셨어요.
관객: 정재용 감독님께 질문 드리겠습니다. 영화에 나오는 정육점 장면은 어떤 의미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정재용 감독: 정육점 장면은 남준이 일상의 공간에서 곤란해지는 장면들은 보여준 거예요. 생활에 다양한 방면 속에서 그 부조리한 상황을 만들고 싶었어요. 남준이 잘못해서 벌을 받은 것도 아닌데, 사람들도 일부러 벌을 주는 건 아닌데 계속 곤란해지는 상황. 그런 상황의 연장이라고 생각합니다.
관객: 변성빈 감독님과 정재용 감독님께 질문 드리겠습니다. 변성빈 감독님께는 <손과 날개>에서 우성이 성적 쾌락을 느끼면서 천사의 이미지로 나온 한 인물과 본인이 결국 천사로 승격화 되는 내용이 궁금하고요. 정재용 감독님께는 <공허충> 마지막 장면에 버스에서 왼쪽 아주머니 어깨에 공허충이 생긴 걸 봤는데 그 부분이 궁금합니다.
변성빈 감독: 처음 부분에 우성이가 혁태에게 카톡을 할 때 나도 형처럼 날개를 가지고 싶다고 해요. 우성이는 날개를 욕망하는데 손과 날개를 상징화한 것에 대해서는 관객분들의 해석이 각각 있겠지만, 기본적인 어떤 신화적 메타포 안에서 유추할 수 있는 해석이라고 생각합니다. 크레딧에도 혁태가 아닌 천사라고 명시한 이유는 모습은 혁태의 모습이지만 그것은 실존한 존재가 아니라 결국 자기 안의 또 다른 모습, 우성 자신이 갈망했던 모습이라고 생각했어요. 천사라는 이미지 또는 성서 안에서 천사가 가지고 있는 의미가 인간을 돕는 존재이기 때문에 천사가 성욕을 해결하는 이미지로 나타냈습니다. 사실 성욕을 해결하는 것이 부정적인 의미가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 사이에서 나타나는 아름다운 것이잖아요. 그래서 아름답게 표현하고 싶었어요. 결국 거북이가 없어지고 변화를 통해 깨달음을 얻고 날개가 돋았다는 걸로 마무리 지었습니다.
정재용: 마지막에 짧게 지나가는데 잘 보셨습니다. 아주머니 어깨에 공허충이 생겨요. 사실은 뒤에 탄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 공허충이 생겨요. 우리가 살고 죽고 태어나고 하는데 어떤 기대했던 이유가 딱히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사는데 부조리한 상황이 끝나진 않거든요. 그것을 표현하고 싶었고 남준의 입장에서 계속 어떤 부조리와 싸워 나가야 하는 상황을 만들고 영화를 닫고 싶었어요.
모더레이터: <냉장고 속의 아빠>에서 재미있었던 게 대걸레를 얼굴에 쓰고 나오는 부분이 독특했는데요. 그 부분은 어떻게 아이디어를 얻게 되었나요?
정인혁: 제가 일하는 곳에 초반 장면처럼 손 씻는 곳 옆에 저를 바라보는 것 같이 서있는 대걸레의 모습이 보였어요. 그걸 가면처럼 만들어서 쓸 수 있는 이야기가 있을까 고민했어요. 클리셰에서 시작된 이야기이기 때문에 전반적인 영화가 클리셰로 흘러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깜짝 놀라는 장면도 그런 의도에서 나온 것이고, 주인공들에게도 아이코닉한 것이 주어져야 할 것 같았습니다. 걸레라는 텍스트와 이야기에서 나오는 내러티브 적인 것들이 맞물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모더레이터: 프라사드라는 주문은 다른 의미가 있는 건가요? 원래 있는 주문인지, 어떻게 나온 건지 궁금합니다.
장준엽 감독: 주문이 나오고 그 주문이 제목이 되어야 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주문을 어떤 걸 하면 좋을까 여러 개를 찾아보다가 인도 만트라에 어떤 단어에서 따왔어요. 특별한 뜻이 있는 건 아니고 어감이 제일 좋아서 가져왔습니다.
관객: <손과 날개> 변성빈 감독님께 질문 드립니다. 제가 알기론 성생활 봉사활동이 교회에서 나가는 건 처음 들어봤는데 교회로 설정하신 이유가 궁금합니다. 그리고 교회에서는 동성애를 금하는데 남자로 설정한 이유가 있는지 궁금하고 어떤 종교적 의미가 있는건지 궁금합니다.
변성빈 감독: 제가 교회로 설정한 이유는 실질적으로 우성이와 혁태가 만날 수 있는 접점이 무엇일까 생각했을 때 교회 안의 장애인봉사단을 떠올렸어요. 그래서 교회에서 둘이 만났다는 설정을 했고요. 보통 교회에서 동성애를 반대하죠. 제가 동성애를 끌어온 이유는 어찌되었든 장애인의 성적자기결정권에 대해서 이야기를 한다면 더 변두리에 있는 사람이 누군가 생각했어요. 그 당시에 자료조사를 하면서 읽었던 기사가 있었는데, 한 장애인 남성이 다른 장애인 남성을 성추행한 기사였어요. 그 기사의 내용이 동성을 성추행 했기 때문에 문제이고 더 변태짓이다 라는 기사였거든요. 저는 그게 굉장히 문제가 있는 기사라고 생각해요. 그 부분은 교육이 필요한 것이고 동성에게 성적욕망을 느끼는 것이 잘못된 것이 아닌데, 우리 사회에서 그런 기사를 대하는 걸 보면서 안타까웠습니다. 이성이 아니라 그 변두리로 가고 싶다는 생각에 설정하게 되었고요. 궁극적으로 교회를 비판하는 내용은 아닙니다.
관객: <손과 날개>에서 궁금한 점이 거북의 의미가 궁금해요. 그리고 흑백으로 영화를 표현하셨는데, 흑백으로 주인공의 색채나 감정도 느껴진 것 같아요. 흑백을 선택하면서 고민도 많으셨을 것 같은데 어떤 이유로 이렇게 연출하신 건가요?
변성빈 감독: 거북이 같은 경우는 우성이와 혁태가 만나는 사진에서 바다에서 거북이를 들고 있어요. 그때 처음 혁태에게 거북을 받고 지금까지 키웠다는 설정에서 우성이가 계속 혁태를 그리워하고 있었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뿐만 아니라 거북이가 느리고, 갇혀 있고, 어디론가 혼자 나갈 수 없는 존재잖아요. 우성이와 겹치는 부분이 있다고 느껴 그렇게 설정했습니다.
흑백인 이유는 영화의 타이틀 디자인도 클래식한 느낌으로 디자인을 했는데, 이것이 한 시대에만 일어나는 유행 같은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수많은 시대에서 있었던 클래식한 문제라는 것을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물론 흑백이라고 클래식한 건 아니지만 클래식한 건 흑백이 많으니까요.
모더레이터: 마지막 인사말씀 또는 앞으로 차기작 계획이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정인혁 감독: 미쟝센 단편영화제 처음 왔는데 너무 좋은 자리 만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장준엽 감독: 주말 밤에 이렇게 시간 내서 영화보러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변성빈 감독: 이렇게 영화 상영할 수 있어서 너무 영광이고요. 사실 많은 분들이 좋아할 수 없는 영화라고 생각했는데, 관심 많이 주셔서 놀랐고요.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정재용 감독: 헷갈리네요. 영화에서 의미 없다고 말씀드린 것들이 지금은 또 의미가 있는 것 같고. 항상 헷갈리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감사드립니다.
4개의 영화가 가진 메시지의 힘은 단순하지 않았다. 공포 그 이상을 넘어 심오한 문제의식을 드러내며 다른 의미로 관객의 잠을 깨우고 있었다. 단순한 일시적 긴장감은 아니기를.
살아감에 있어 한번씩 고민하는 계기가 되었기를 바라며, 누군가의 악몽이 되지 않길 소망하는 마음으로 인터뷰를 마친다.
K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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