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회 미쟝센 단편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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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시작한다는 것의 설렘과 두려움, <시시콜콜한 이야기> 엄태구 배우 인터뷰

글 : 김서영 / 사진 : <시시콜콜한 이야기> 공식 스틸컷

제16회 미쟝센 단편 영화제의 <사랑에 관한 짧은 필름> 경쟁 부문 본선작 <시시콜콜한 이야기>는 같은 부문에 진출한 영화들 중에서는 상대적으로 보기 드문 밝은 분위기를 자랑하고 있는 영화일 것이다. 하지만 무조건 밝고 가볍지만은 않다. 조용익 감독의 위트 있는 연출과 구본춘 음악감독의 아름다운 음악, 그리고 배우들의 열연이 만나 전체적인 밸런스를 잡았다. <용순>의 이수경 배우가 수수께끼 같은 여주인공 ‘은하’를, <잉투기>의 엄태구 배우가 슬럼프로 고통 받고 있는 감독 지망생 ‘도환’으로 분한 이 영화는 이미 배우들의 출연만으로도 독립영화 팬분들에게는 선물과도 같은 영화일 터. 특히 그 동안 <밀정>, <차이나타운> 등 주로 무겁고 남성적인 연기를 보여줬던 엄태구 배우의 멜로 연기로도 기대감을 자아내기 충분하다. 데일리팀이 <시시콜콜한 이야기>의 도환 역할을 맡아 때로는 진지하고, 때로는 어리숙한 인상 깊은 연기를 보여준 엄태구 배우를 만나, 영화에 대한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눠 보았다.

이미 <잉투기> 등으로 관객들에게 눈도장을 확실히 찍은 엄태구 배우가 주연으로 등장한다는 것만으로도 독립영화를 좋아하는 팬분들에게는 마치 선물과도 같은 영화다.

 

  1. <시시콜콜한 이야기>는 <사랑에 관한 짧은 필름> 섹션에서는 상대적으로 밝고 싱그러운 분위기를 가진 작품에 속한다. 시나리오의 어떤 부분에 끌렸는가. 출연을 결심하게 된 계기가 있다면?

엄태구 배우: 제가 지금까지 맡았던 캐릭터와 많이 다르다는 점? (웃음) 이 영화는 <밀정> 바로 다음에 맡은 작품이었어요. 아무래도 전작에 무거운 캐릭터를 연기했다 보니까, <시시콜콜한 이야기> 같은 영화도 한 번 찍어보고 싶었습니다. 이 영화가 독립영화, 그리고 단편영화였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라고 생각해요.

 

  1. <기담(2007)>을 시작으로, 햇수로 따지자면 벌써 10년 째 연기를 하고 있다. 특히 <밀정>을 통해서 관객들에게 이름을 많이 알리기도 했다. 처음 연기를 시작했던 때에 비추어 본다면, 어떤 점들이 변화했는가.

엄태구 배우: 달라진 게 정말 많은데, 가장 좋은 건 예전에는 대중교통을 타고 촬영을 하러 이동했는데, 지금은 차를 타고 이동한다는 거요. 너무 좋아요.

 

  1. 최근 <용순>에 출연하여 주목을 받은 바 있는 이수경 배우와의 연기 합은 어땠나.

엄태구 배우: 이수경이라는 배우 자체가 워낙 매력적인 분이잖아요. 연기할 때 감정적인 측면에서 많은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도환의 마음을 연기해야 하는 저로서는, 굳이 크게 노력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은하라는 캐릭터의 좋은 면을 보게 되더라고요.

 

  1. <시시콜콜한 이야기>는 캐릭터들이 소통하는 방식에 있어 독특하게도 전화나 영상통화를 많이 활용하는 영화다. 직접적인 소통을 어려워하는 도환의 캐릭터가 반영된 것 같기도 하다. 대면 연기가 아니기 때문에 다소 까다로웠을 법도 한데, 일반적인 연기와 어떤 점이 달랐나.

엄태구 배우: 사실 큰 차이를 못 느꼈던 게, 영상통화를 하는 장면에서는 서로 바로 옆방에서 촬영을 했고, 또 전화하는 장면에서도 상대 배우가 바로 앞에 있었어요. 카메라에 잡히지 않는 곳에서 실시간으로 진짜 통화를 하는 방식이었죠. 다만 관객 분들이 전화통화하는 걸 재밌게 봐줄까, 자칫하면 영화가 루즈해지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조금 들었어요.

 

  1. <차이나타운>의 우곤이나 <밀정>의 하시모토 같은 피 한 방울 안 날 것 같은 배역도 많이 연기했지만, 때로는 <잉투기>의 태식이나 이번 영화의 도환처럼 외롭고 어딘가 결핍된 캐릭터들도 연기해왔다. 이러한 인물들에 관객들이 유독 끌리는 이유가 있다면 무엇일까.

엄태구 배우: 아프고, 외롭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보편적인 감정이라고 생각해요. 누구나 살면서 상처받았던 부분들이 있을 테니까요. 예컨대 ‘엄마’라는 단어를 말하기만 해도, 사람들한테서 이미 예상할 수 있는 반응들이 있잖아요. 도환이나 태식 같은 인물을 바라보면서 나만 그런 건 아니었구나 하면서 위로 받을 수도 있고, 때로는 그의 바보 같은 모습을 보면서 웃을 수도 있겠죠. 그래서 연기를 할 때는 제가 받았던 상처를 떠올리기도 하고, 극중 인물은 어땠을까 상상하기도 하면서 이 두 개를 자연스럽게 섞으려고 노력하는 편이에요.

 

  1. <시시콜콜한 이야기>에서는 주인공 도환이 가장 좋아하는 영화, 허진호 감독의 <8월의 크리스마스>가 중요한 소재로 쓰였다. 본인도 특별히 좋아하는 사랑 영화가 있는가? 혹은 사랑 영화가 갖춰야 할 어떤 포인트가 있다면 무엇이 있다고 생각하는가.

엄태구 배우: 최근에는 <라라랜드> 재밌게 봤어요. 그리고 저는 영화 상에서 진짜 사랑이 느껴지기만 한다면 다 끌리는 것 같아요. 배우의 표정이나, 눈에서 자연스럽게 알 수 있잖아요. 그래서 영화가 그리는 사랑이 친구들끼리의 우정이든, 부모님, 가족, 연인, 아니면 한번도 안 봤던 관계의 것이라고 해도 상관 없어요. 영화 속 인물들이 보여주는 감정이 정말 진짜구나라는 생각이 들면, 그 순간들만큼은 다 좋게 와 닿아요.

 

  1. 이번 영화제의 부집행위원장을 맡고 있는 엄태화 감독과 형제 사이다. 아무래도 배우와 감독으로서 서로 긍정적인 영향을 많이 주고 받을 것 같은데, 어떤 부분들이 있나?

엄태구 배우: 존재 자체만으로도 힘이 돼요. 제가 동생이다 보니까 아무래도 많이 물어보는 편인데,  모르는 거 있을 때 물어보기 제일 편한 사람이 아닐까 싶어요. 대답도 항상 현명하게 잘 해주시고요. 제가 배우고, 형이 감독인 지금 위치나 상황이 되게 좋은 것 같아요. 동생이 감독인 것보다요.(웃음)

 

  1. 차기작 계획이 있다면 소개해달라.

엄태구 배우: <나쁜녀석들2>라는 드라마랑, 영화 <안시성> 준비하고 있습니다.

 

  1. 마지막으로 엄태구 배우에게 단편영화란?

엄태구 배우: 처음으로 돌아가는 느낌? 마치 마음의 고향 같은 느낌이에요. 저 같은 경우는 처음으로 접한 분야가 독립영화니까요. 예전에 연극하던 선배 배우님들이 영화를 오래 찍다가, 다시 연극을 하는 모습이랑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고향에 가면 편안하잖아요, 단편을 촬영할 때 아무래도 더 자유로운 마음을 느껴요. 또 단편영화에는 다양한 캐릭터들이 많으니까 이것저것 시도해볼 수도 있고요. 말이 길어졌는데, 그냥 단편영화를 생각하면 신나는 기분이에요.

 

단편영화를 생각만 하면 신난다는 엄태구 배우의 말 한 마디 한 마디에서는 진심이 묻어났다. 차기작 준비 등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있는 와중에도, 미쟝센 단편 영화제를 위해 기꺼이 시간을 내어준 엄태구 배우는 영화 속 도환이라는 캐릭터 만큼이나 언제나 진솔하게 묵묵히 노력하는 사람인 것 같았다. 이번 여름에는 여름과 잘 어울리는 싱그러운 영화,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만나 다시 시작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지닌 두려움, 또 설렘을 함께 경험 해 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