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회 미쟝센 단편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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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공간에는 의미가 있죠, <어라운드맨> 최진 감독

글 : 조수경 / 사진 : 이가영

360도 카메라를 뒤집어쓰고 우스꽝스럽게 걷는 남자가 관객의 웃음을 유발한다. 로드뷰 촬영팀 ‘원경’이 실수로 뒤집어쓴 360도 카메라는 모든 공간을 기록하고 있다. 원경의 360도 카메라에는 어떤 공간이 담겼을까? 보는 내내 우리를 미소짓게 만드는 영화, <어라운드맨>의 최진 감독을 만나봤다.

 

 

<어라운드맨>을 보는 내내 미소가 떠나지 않았습니다. 웃음과 감동을 동시에 잡은 영화인만큼 희극지왕 장르에 제격인 영화였다고 생각해요. 미쟝센 단편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된 소감이 어떠신지 궁금합니다.

미쟝센 단편영화제는 저도 관객으로 많이 왔던 영화제인데요. 희극지왕 장르는 제가 가장 많이 보기도 했고, 좋아하는 장르예요. 미쟝센 단편영화제에 참가하게 돼서 너무 영광입니다.

 

‘어라운드 뷰’는 공간을 기록하고 지도를 만드는 어떻게 보면 단순한 작업을 하는 업체에 불과하지만, 누군가의 추억을 지켜주는 역할도 하는데요. 이러한 시선이 신선하게 느껴졌습니다. <어라운드맨>을 기획하시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이전부터 360도 카메라, 로드뷰 카메라, 블랙박스 카메라 등 자동으로 기록되는 카메라에 관심이 있었어요. 제가 논문을 준비할 당시 보행발화라는 개념을 알게 됐는데, 이는 ‘걷기’ 자체로 공간의 이야기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을 말해요. 관련 개념을 이야기하신 사회학자의 이야기를 너무 재미있게 읽어서 이와 관련해서 논문을 써야겠다고 생각한 찰나에 카메라와도 연결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감독님의 필모그래피를 봤을 때, 아이들이 등장하는 영화가 많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본인의 작품에 아이를 등장시키는 이유가 있나요?

<어라운드맨> 바로 전 작품이 <별찌>인데 그 영화는 남북한 문제를, <어라운드맨>은 재개발 지역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어요. 남북한 문제든지 재개발 문제든지 많은 이해관계가 얽혀있고 정치·사회적으로 굉장히 복잡한 문제잖아요. 어렵고 말하기 힘든 문제도 아이들의 시선으로 보면 조금 더 쉽고 명확해지는 것 같아요. 특히 <어라운드맨>에서 이야기하는 재개발 문제의 경우 지역을 떠난 거주민들이 재정착하기 어려운 현실, 공동체 파괴가 아이의 시선을 통해 더 명확해지죠. 같이 놀던 친구들이랑 어쩔 수 없이 헤어지고 다시 돌아올 수 없다는 것에 아쉬워하는 아이들의 모습은 위와 같은 어려운 문제를 조금 더 직관적으로 보여줘요. 그게 아이들의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라운드맨>을 촬영하며 아역 배우에게서 특별히 끌어내고 싶었던 것이 있었나요?

아역 배우의 자연스러운 모습을 담고자 했어요. ‘상기’ 역을 맡았던 감소현 배우의 경우 오디션 때부터 본 밝은 모습을 그대로 넣었어요. 대사가 있는 특정 부분은 어쩔 수 없이 연기가 필요했지만, 인서트 장면이나 ‘원경’과 함께 걷는 장면은 아역 배우의 자연스러운 모습을 담는 방식으로 진행됐습니다.

 

‘사람들은 도시를 걸으며 그 공간을 기억하고 기록한다.’ 라는 연출 의도가 인상적이었어요. 수많은 공간 중 재개발 예정 지구를 선택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도시라는 공간은 자본이라는 지배 권력에 의해 구획되고 상품이 돼버려요. 이처럼 지배 권력이 가장 활발하게 작동하고 있는 공간이 재개발 지역이라고 생각해요. 이렇게 곧 사라질 공간을 어떻게 기억하고 발현해야 할지에 대한 생각에서 출발해, 재개발 예정 지구를 촬영 장소로 선택하게 됐습니다.

 

감독님이 기억 또는 기록하고 싶은 공간이 있다면 어디인가요?

어릴 적 살았던 공간이요. 로드뷰, 지도, 내비게이션에는 항상 출발지와 목적지만 존재하고 그사이에 놓인 수많은 풍경은 배제되는 것 같아요. 도시 공간에서는 출발지와 목적지만 기억하게 되는데 어릴 적 생각을 해보면 모든 공간에 의미가 있더라고요. 단순히 목적지로 이동하기 위한 도로일 수도 있지만 친구들이랑 달리기 시합을 하고, 넘어지고, 떡꼬치를 사 먹기도 한, 여러 가지 공간적 기억들이 남아있는 도로이기도 하죠. 그래서 어릴 적 살았던 공간들을 기록하고 싶어요.

어렸을 때 공간이랑 관계를 맺었던 것처럼 어른이 된 지금도 공간을 그냥 지나치는 것이 아니라 추억하고 관계 맺어야 일상이 회복되지 않을까 싶어요. 그래서 걷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차를 통해서 이동하면 어쩔 수 없이 지나치게 되는 풍경이 생기잖아요. 하지만 걷기는 공간이랑 밀접하게 관계를 맺는 행위인 것 같아요.

 

재개발 지역에 관련한 영상을 보여주는 장면에서 종이로 접은 형형색색의 잠자리가 화면에 뿌려진 듯한 연출이 환상적이면서도 감동적이었다고 생각하는데요. 이 장면을 연출하게 된 계기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원경이 360도 카메라로 기록한 영상을 어떻게 이용할 수 있을까 많이 고민했어요. 지도는 지배 권력에 의해서 만들어지고 이용되는 수단이기도 해요. 로드뷰도 항상 한 방향으로만 방향성을 가지잖아요. 하지만 이 장면에서는 마우스로 클릭할 때마다 새로운 공간이 계속 나오거든요. 이를 본 일반인 또는 어른들은 연속성이 없다고 느끼기 때문에 그냥 넘어가겠지만, 아이들은 이 속에 담긴 의미들을 모두 기억하고 있어요.

원경은 아이들을 위한 로드뷰를 만들고 싶었던 것 같아요. 잠자리를 영상에 삽입하는 것을 통해 찾아오는 것이 목적이 아닌, 아이들만 이해할 수 있는 지도를 선물한 것이죠. 아이들의 기억에도 오랫동안 남지 않을까요.

영화를 촬영하면서 힘들었던 점이나 인상 깊었던 제작 에피소드가 있을까요?

360도 카메라는 주변에 아무도 있으면 안 되거든요. 그래서 스태프들도 다 숨은 상태로 촬영이 진행됐어요. 배우랑 카메라를 든 사람 둘만 촬영을 하는 상황이라 특별했어요. 힘들다기보단 재밌었던 것 같아요. 어려웠던 점은 날씨였어요. 저희가 촬영을 5회차로 잡았는데 2회차까지 찍고 함박눈이 와서 촬영하던 동네가 전부 눈으로 덮였거든요. 같이 촬영했던 스태프들이 새벽부터 제설 작업을 해줘서, 정말 미안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감독님만의 영화 철학이 있다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제가 걸리버 여행기를 굉장히 좋아해요. 세상은 그대로인데 한 사람이 커졌다, 작아졌다 함으로써 많은 것이 바뀌거든요. 저도 그런 영화감독이 되고 싶어요. 이 세상은 그대로인데 시선만 조금 비틀어서 다른 지점을 보여주는 것이죠. 그런 시선을 통해 좋은 영화를 만들고 싶습니다.

 

감독님께 단편영화란?

단편영화는 어떤 문제에 대해서 발제하는 것과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세상이 텍스트면, 단편영화는 그걸 놓고 발제를 하는 것을 통해 서로 모여 토론할 수 있게 해주는 역할이죠. 단편영화는 자유도가 굉장히 높아서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자유롭게 할 수 있어요. 특히 미쟝센 단편영화제와 같이 영화제에 오면 같이 논의할 수 있는 부분이 더욱더 많아지는 것 같아요. 그래서 단편영화는 발제하는 것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판타지적 요소가 담긴 영화에 꾸준히 도전하고 싶다는 최진 감독. 소소한 웃음과 감동을 동시에 잡는 최진 감독만의 이야기를 앞으로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