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회 미쟝센 단편영화제

OFFICIAL DAILY26

몸에 담고 있는 물리적 시간을 최대한 섬세하게 보여주려고 했어요

글 : 이현주 / 사진 : 홍서윤

창신동에 위치한 명선의 작업장. 명선은 그곳에서 ‘오다 받아서’ 옷 만드는 일을 하고 있다. 그 공간 안으로 많은 사람들이 들고 난다. 디자이너, 딸, 같이 봉제 일을 하는 동료들, 외국인 유튜버까지. 우리가 보지 못한 시간 동안에도 명선의 작업장엔 계속 사람이, 옷이 들고 났을 것이다. 그 시간의 겹들을 우리는 명선의 움직임과 공간 속에서 만날 수 있다. 그렇게 <실>은 역사 속 멈춰진 봉제노동이 아닌 지금도 생생하게 흐르는 명선의 일과 일상을 담아낸다. 실제 봉제노동자들이, 실제 공간에서 연기했기에 시나리오 사이사이엔 꾸며낼 수 없는 일상적 순간들이 스며 있다. <실>을 통해 그 순간들과 우리를 이어준 조민재 감독과 이나연 감독과 이야기 나누어보았다.

Q. <실>을 보며 주인공 명선도, 명선의 작업장도 너무나 매력적이라고 느꼈는데요. 어떻게 창신동이란 공간에서 명선님의 삶을 통해 봉제 노동에 관한 이야기를 하게 되셨는지, 그 시작이 궁금합니다.

조민재 감독 : 이 이야기는 2016년에 시작을 했습니다. 제가 창신동에 살았어요. 명선이란 인물은 제 어머니고요. 그 당시에 서울시에서 도시재생 사업이라고 창신동을 재개발하는 게 아니라, 문화공간으로 탈바꿈하자는 사업들이 일어났어요. 외부의 예술가 아니면 사업가들이 서울시 지원을 통해서 물밀 듯이 들어와요. 공간의 언어를 모르는 사람들이 그 공간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없어요, 사실은. 가장 쉬운 게 영상 만드는 거예요. 근데 저는 이게 되게 모순적이라고 생각을 했거든요. 이들이 만든 영상물에서 역사가 우선시 되고 개인은 역사를 표현하는 부속품처럼 계속 쓰이고 있는 거예요. ‘과연 나라면 똑같은 상황에서 무엇을 중점적으로 영화를 만들 수 있을까’하는 고민에서 시작을 했고요. 2019년에 영화를 첫 촬영하게 되었습니다.
 
Q. 명선님의 작업실은 영화 속 “없는 게 없다”는 말이 적절할 만큼 시간이 겹겹이 쌓여 있는 공간이었는데요. 연출된 장소인가요 아니면 실제 그런 모습을 가진 공간인가요?

조민재 감독 : 실제로 어머니가 굉장히 오랫동안 켜켜이 쌓아 올린 결들, 겹들입니다. 영화에 총 3개의 공장이 나와요. 세 공장마다 일하는 방식도 다르고, 공장의 형태도 굉장히 달라요. 현이 공장은 대량생산 목적이 크거든요. 조금 차가운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현이 공장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아이들이 어렸을 때 낙서를 한 흔적 같은 것들이 있었고요. 흐엉님의 공장 같은 경우, 온 지 얼마 안 되어서 작업장이 조금 작지만 현이한테 배운 작업환경을 그대로 가져온 형상들이 있거든요. ‘아, 이런 세 개의 공간을 보여주는 것이 영화에 꼭 필요하겠다’는 생각으로 공간을 담아냈습니다.
이나연 감독 : 네팔 식당도 실제로 오랫동안 봉제 노동으로 번 돈을 모아서 차린 식당이었는데, 인물도 실제 인물들이 나오고요. 자신들의 실제 이야기를 하고, 실제 공간이 나오는 것이 저희한테 되게 중요했어요.
 
조민재 감독 : 디아스포라라고 하잖아요. 되게 중요한 맥락 같아요. 동대문이랑 창신동은 사실 이주민들이 만든 공간이에요. ‘이 공간의 로컬이 누굴까?’라고 하면 저는 이 공간 안에서 문화를 계속 만들어내고 그 공간의 언어를 알고 있는 사람들이 로컬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러니까 흔히 ‘이 공간의 주인은 한국 사람이다’라고 생각하잖아요. 그런데 외국인도 그 공간에서 자기 공간을 일구고, 그 공간의 언어로 소통할 수 있는 것이 존재한다면 사실 디아스포라의 의미들이 확장되는 것 같아요.
이나연 감독 : 그리고 영화 안에서 이주 노동자를 보는 시선들이 되게 배타적이라고 느꼈거든요. 외부인. 잠시 머물다 가는 사람들. 실제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렇지 않거든요. 오랫동안 이 공간에서 살고 있었고. 그래서 캐스팅할 때도 그런 게 중요했어요. 기존의 미디어에서 나왔던 ‘이주노동자스럽다’고 여겨지는 외형이나 말투를 갖고 있지 않은 사람들. 정말 이 공간의 주인으로서 오랜 시간 일하고 있는 사람들을 그대로 보여주는 거.

Q. 이나연, 조민재 두 감독님께서 실을 함께 연출하셨는데요. 어떤 계기에서 공동 연출을 하게 되셨나요?

조민재 감독 : 사실은 이 영화만큼은 제가 찍고 싶었어요. 제가 시나리오를 썼고, 되게 오랜 시간 가지고 있었던 거예요. 근데 이 영화는 여성 스탭들이 만들었고, 여성 배우들이 많이 나오는데 제가 정말 감수성이 너무 부족한 거예요. 그래서 그런 면에서 부탁을 했어요. ‘내가 만약 이 영화를 찍으면 많은 언어들이 사라질 것 같다’고 판단을 했고. 이나연 감독이 너무 훌륭하게 여성 배우나, 스탭들과 소통을 잘해주는 거예요. 저도 현장에서 많이 배웠어요.
 
이나연 감독 : 잘했어. 나의 훌륭한 점을 자꾸 말해 줘야 돼. 자꾸 뒤에서만 칭찬하니까. “영화를 좋게 봤다” 이런 얘기도 계속 뒤에서만 하니까. 그런 얘기는 나한테 말고 인스타그램 이런 데 올려서 공개적으로 하라고 하거든요. (웃음)
 
Q. 저는 처음에 다큐멘터리인 줄 알고 보고 있었는데, 연출된 듯한 장면들이 등장해서 계속 궁금해하면서 봤는데요. 명선님과 동료분들이 대화하는 장면들은 정말 그들의 일상 같았는데요. 이렇게 사실적으로 연출하신 이유는 무엇인고 <실>이 사실성 짙은 영화가 될 수 있었던 요인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조민재 감독 : 영화감독마다 태도들이 있어요. 저는 이미지를 하나 항상 그리는데, 제 영화는 거의 저 스스로 카메라를 컨트롤하거든요. 카메라 위치를 잡을 때나, 카메라의 시선을 만들어 나갈 때, 이 사람들이 제 카메라 공간에 들어와서 왜곡이 덜 생겼으면 하는 생각을 해요. 왜냐하면 잠깐 스쳐 지나가는 거잖아요. 저는 제 카메라 공간에 잠깐 들어왔을 때 왜곡진 모습을 보여주기보다 편하게 머물렀다가 나갔으면 하는 상상을 항상 하거든요. 물론 이 영화적 태도는 언제든지 바뀔 수 있다고 생각을 해요. 근데 이 영화에서 제 카메라에 인물들이 들어왔을 때 왜곡시키는 거는 정말 큰 오만이죠. 조금 서운한 거는 다 연출했는데, 상영하고 “야, 그냥 다큐멘터리 찍어왔네?” 이런 말들. 이나연 감독이 하나하나 다 투닥투닥 했는데. 서운했었어요.
 
이나연 감독 : 저의 연출력이라는 거. (웃음) 근데 비슷한 상상에서 이야기하자면, 극영화를 찍을 때 저는 배우들이 편한 게 가장 중요하거든요. 제가 의도한 장면을 위해서 인물의 감정을 억지로 끌어내거나 몰아붙이는 방식을 좋아하지 않아요. 그래서 저희가 만들었던 이전 작품들도 그런 것들을 많이 추구했어서 ‘다큐 같다’는 말을 일면 들었어요. 앞으로도 이런 작업 방식을 유지하지 않을까. 지금 가장 좋아하는 취향 이어서요, 이런 방식이.

Q. 명선님이 자신의 휜 원피스를 만들 때, 새하얀 원단 위로 봉제 노동의 역사적인 장면들이 흘러가는 장면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이 장면에서 명선님의 개인적 삶이 봉제 노동의 역사적 맥락과 얽히는 느낌을 받았는데, 이렇게 연출하신 이유가 궁금합니다.

조민재 감독 : 사실 이 영화가 미디어에 관련된 영화라고 말씀드렸는데요. 그래서 몇 가지 구성들을 만들어 나갔던 게 있어요. 드라마 장면과 사무엘의 유튜브가 그러한데요. 그 안에서 명선이 가꿔나간 역사들이 굉장히 많이 왜곡되거든요. 저는 그렇게 생각을 해요. 예를 들어 처음 명선이 드라마에 들어가는 옷을 만들 때 만드는 과정 중에 수많은 사람들이 공간을 왔다 갔다 하잖아요. 저는 옷에 그 사람들의 오감이 쌓여 있을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하지만 평면 TV에는 그 역사들이 다 제거된 상태로 나오잖아요. 명선의 육성은 그 위를 미끄러질 수밖에 없는 거예요. 단절된 채. 이런 구조가 우리 노동이 과연 미래에 어떻게 소진되고 있을지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을 했고요. 노동이 만들어 낸 상품이 어떻게 미디어에서 미끄러지고 있는지, 하나 가져가는 거고요.
 
두 번째는 사무엘이 명선을 찍어요. 그런데 전태일 얘기로 바로 넘어가잖아요. 저는 이런 게 굉장히 문제라고 생각을 해요. 창신동을 대상화할 때 아직도 60년대에 머물러있어요. 역사가 단절되어 있어요. 사실 영화라는 기능은, 그러니까 다큐멘터리, 영화, 이걸 통칭해서 기능은 단절된, 대상화된 공간의 역사를 다시 세밀하게 재정립하는 것, 다시 역사를 미끄러지게끔 만드는 게 중요하거든요. 현실의 공간들을 담아내는 과정을 통해서 과거 단절된 역사에 미디어로 다시금 운동성을 만들어 나가는 거예요. 그런데 너무 쉽게 미디어에서 이미 우리가 모두 공유했다는 식으로. 전태일 다들 아시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미디어에서 쉽게 사용하는 거잖아요. 저는 이런 걸 언어를 단순화한다고 생각해요. 사무엘과 명선의 관계에서도 복잡한 언어로 이야기할 수 없잖아요. 휴대폰이라는 특정한 기계를 왔다 갔다 하며 언어를 굉장히 단순화한다는 거죠. 이 공간의 언어를. 그래서 공간의 언어를 모르는 사람이 공간에 대한 이미지를 만들어 나간다는 것은 굉장한 오류라고 봅니다.
 
장면들을 잘못 받아들이면 마치 전태일의 영광에 대한 영화로 볼 수 있다고도 생각을 하는데, 오히려 한 번 더 꼬집어주고 싶었어요. 지금 창신동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들은 전태일 영향권에서 많이 벗어난 사람들이 존재하거든요. 삶의 가치도 많이 다르고. 그런 것들은 굉장히 조심해야 하는 거예요.
 
그럼 결과적으로 어머니의 역사가 담긴 것은 과연 무엇일까. 미디어로 계속 소진된 것도 아니고, 어떻게 해야 가장 정확하게 어머니의 역사를 보여줄 수 있을까 생각을 했었고, 그것이 미디어의 상태, 네거티브로 보여주는 것이 사실은 이 앞의 맥락들과 이어지죠. 아까 말한 공간에 대한 것은 은연중에 보여주는 거고, 이건 좀 더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거예요. 이 이미지들이 충돌하면서, 과연 역사는 어디 쌓일까? 사실 역사는 되게 간단해요. 어머니가 이 일을 하면서 습득한 몸의 기술, 언어들이 있잖아요. 만들어진 상품에 역사가 껴들어 가는 거거든요. 다 삽입이 되는 거죠. 어머니가 만들어낸 옷에 역사가 프린트된다는 것이 되게 중요하다고 봤어요. 물론 이것이 완전히 성공적이면 안 된다고 판단을 했어요. 왜냐하면 이것은 단순히 미디어의 한계예요. 미디어 자체는 절대 물리적인 공간, 물리적인 움직임들을 온전히 표현할 수 없어요. 한계라는 것이 존재해요. 저는 미디어를 비난하지만 사실 제가 만든 미디어에서도 한계를 드러내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마치 그 이미지들이 토해내듯 나오는 거죠.
 
이나연 감독 : 아까 GV 때도 그런 얘기를 했거든요. 영화가 나아갈 수 있는 지점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질문을 받아 가지고. 이걸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 생각을 했었는데, 어쨌든 저희가 느끼는 미디어에서의 한계, 그러니까 여성의 삶, 그리고 노동과 역사에 있어 누가 주류의 스피커가 되어 왔는가 그리고 어떻게 삭제해 왔는가 하는 고민이 있었어요. 어머니도 마찬가지고 조민재 감독님도 건설노동직을 오래 하고 저는 일련의 프리랜서 형식의 아르바이트를 여러 개 병행하면서 제 삶이나 제 노동이 미디어 안에서 온전하게 재현된 적이 없었다는 생각을 많이 했거든요. 거기에 대한 소외감도 되게 많았고. 그리고 <우먼 인 할리우드>란 영화에 그런 대사가 나오는데 “미디어에서 자기의 삶이 재현되지 않으면 자기 삶에 대한 수치심을 갖게 된다.” 그 말이 저한테 굉장히 핵심적인 말이었어요. 작년에 저한테 가장 중요했던 문장이에요. 그런 문제의식들을 가지고 영화를 만든 것 같아요.
 
질문의 장면은 사실 작가적 의도가 굉장히 직접적으로 개입해서 들어간 장면이라 어떻게 보셨는지도 궁금하거든요. 관객들이 봤을 때 어떨까, 편하게 영화를 보다가 저희의 의도가 확 들어간 이런 장면을 보게 되니까. 그게 저희의 한계를 인정하면서도 우리가 그들의 현실과 역사를 엮을 수 있는 어떤 최선의 방식이 아니었을까.
 
조민재 감독 : 아까 GV 질문받았을 때, 이런 얘기를 했어요. “이런 형식의 영화라면 물리적인 시간을 영화 안에서 충분히 쌓아야 하는 거 아니냐.”
이나연 감독 : 그러니까 장편의 형식이면 더 좋았지 않았을까 하는 얘기를 종종 듣거든요.
 
조민재 감독 : 오히려 그거는 저희에게 좀 오만한 얘기예요. 2000년 이전의 다큐멘터리는 뭔가 프로파간다적인 성격, 기록적인 성격이 강했다면, 2000년 이후에는 작가들을 조금 지우기 시작해요. 객관적인 시선, 절제된 시선이라고 많이 얘기해요. 그러면서 태도로서 가져가는 것은 그 인물과 공간의 물리적인 시간을 함께 한다까지 나아갔거든요. 사실은 이게 아직 유효해요. 그런데 문제가 하나 생기기 시작해요. 이 작가들이 카메라 뒤에만 숨어있어요. 그 카메라에 담기는 사람들과 어떠한 소통도 하지 않는. 소통도 말로 하는 소통 말고 물리적인 소통도 존재하잖아요. 저는 이 영화 만들려고 어머니께 옷도 배워보고 다른 공장들도 다녀보고 꽤 오랜 시간 조사를 했거든요. 제가 그냥 카메라 뒤에서 카메라로 이것을 응시했다라고 끝났으면 오히려 더 오만하고 위험한 거죠.
 
이나연 감독 : 어쨌든 감독은 뭔가를 만들 때 자기의 의도를 가지고 만들게 되잖아요. 그 의도에 의해서 인물들의 삶 등이 단편적으로 축약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아예 그런 저희의 한계를 가시적으로 드러냈던 거예요.
 
조민재 감독 : 어느 순간 그런 경향성이 태도 면에서 죄책감을 지워나간다는 생각을 해요. 내가 이 사람과 오랜 시간 함께했기 때문에 이 사람을 대상화하는 데 아무런 죄책감이 없고 혹은 본인 스스로가 어떤 것이 잘못된 것인지 고민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아마 이렇게 제가 과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건 그런 형식을 좋아하기 때문이에요. 많이 보았고, 많이 보았기 때문에 제 영화 안에서는 그런 형식들을 잘 안 쓰려고 하는 것 같아요. 왜냐하면 충분히 일그러짐을 많이 봤기 때문에.
 
이나연 감독 : 오래 보여준다고 해서 더 잘 보여주는 건 아닌 것 같아요.
조민재 감독 : 그래서 단편영화로 설정한 거거든요.

Q. 마지막 장면에 명선님의 작업장에 있던 당근마켓에서 산 커피메이커가 당 티 흐엉님의 봉제 공장에 놓여 있는 모습이 나오는데요. 그 사이에 어떤 이야기를 품고 있는 건지 궁금했습니다.

조민재 감독 : 아까 말한 공간이 이동한다는 거잖아요. 만약 우리나라에서 아무도 컵 만드는 일을 안 하게 됐어요. 그러면 컵을 만드는 노동력은 사라지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한테로 옮겨가는 거잖아요. 공간으로서. 저는 몸의 노동은 절대 사라지지 않고 다른 타인에게 넘어가는 거라 생각해요. 사실 자본주의 논리에서 그건 당연한 거예요. “야 이제 옷 만드는 사람 없잖아.” 우리 이제 봉제 산업 잘 안 하지만 방글라데시나 베트남으로 다 옮겨간 거잖아요. 저는 이 공간의 옮겨감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자본주의 시장에서 선진국, 유럽 이런 쪽에서 넘어온 노동들이 밑으로 내려가거든요. 그럴 때 뭐가 같이 내려가냐면 처음 만들었던 문화들이 내려가요. 방식들이. 물론 그 장소의 문화와 뒤섞이는 방식으로 작동을 해요.
당근마켓에서 산 커피 내리는 기계와 함께, 당 티 흐엉님의 공장에 있는 기계들이 현이가 준 거예요. 대사를 치거든요. 현이 언니가 갈 때 주고 갔다고. 이게 사실 당 티 흐엉님이 공간을 새로 만들었잖아요. 이 공간에는 현이가 준 기계도 있고, 명선의 커피 메이커도 있는 거예요.
 
이나연 감독 : 그리고 명선으로부터 배운 기술도 있고. 노동의 기술.
조민재 감독 : 몸의 기술도 습득했지만 사실 그 공간의 문화도 같이 습득해 나간다고 생각을 해요. 그럼 이제 이야기가 나뉘는 게, 그럼 왜 기계하고 커피머신이냐. 명선이 일하는 방식 하고, 현이가 일하는 방식은 동대문에서 좀 달라요. 명선이 일하는 방식은 샘플링이라고 해서 샘플 작업하는 작은 작업실이에요. 여기서는 양치기를 하지 않아요. 물량으로 하지 않고 샘플을 만들어서 수입이 생기는 방식이고. 현이 공장 같은 경우는 양치기라 해서 물량으로 많이 제작해서 수입이 생기는 거예요. 그러니까 물량이 많은 쪽으로 계속 이동을 해야 하는 거죠. 그러다 보니까 어머니가 주는 커피머신이 쉼, 휴식과 비슷한 그런 것들? 그런 것들이 좀 중요했었고. 현이 같은 경우 일과 관련된, 일을 좀 더 잘할 수 있는 기계. 미싱이 필요했던 거죠. 문화들이 어떻게 뒤섞이고 있는지. 사실 우리가 일에 있어서 일만 하는 것이 아니라 휴식도 굉장히 중요하거든요. 일과 휴식은 누군가 정해주면 좋겠지만 문화적으로 계속 내려오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가 투쟁해야 할 것은 일과 휴식 사이의 구조를 우리가 바꿔나가면 다음 세대는 그걸 그대로 가져간단 말이에요. 이게 굉장히 중요한 맥락이에요.
이나연 감독 : 그래서 제목도 실이거든요.
조민재 감독 : 네. 계속 뭔가 이어지는.
 
Q.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 명선님과 이나연 감독님, 음악감독님이 함께 부르신 사랑의 듀엣의 노래가 흘러나오는데요, 이 노래를 세분이 부르게 된 이유, 그리고 같이 노래를 한 소감이 궁금합니다.

이나연 감독 : 엄마가 좋아하는 노래 중에 하나를 골라서 엔딩 곡으로 하고 싶다는 마음에서 엄마가 어떤 노래들을 좋아하는지를 물어봤고, 사랑의 듀엣의 ‘영상’은 듣자마자 바로 이걸로 해야겠다 하고 바로 불렀거든요. 가사들이 약간 노동가처럼 느껴졌어요, 저는. 그래서 그 음악을 골랐고. 셋이 같이 노래를 부르게 된 거는 이민희 음악감독님이 음악 작업을 해주셨는데, 이걸 여러 명이 같이 부르면 더 좋은 느낌이 날 것 같다고 해주셔서. 영상 마무리하는 단계에서 급하게 내려가서 셋이서 노래를 불렀죠.

Q. 사실을 바탕으로 실제 봉제 노동을 하고 계시는 분들과 함께 영화를 찍어야 했는데, 연출하실 때 신경 쓰셨던, 가장 중요하게 여기셨던 부분이 있다면?

이나연 감독 : 앞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실제 이분들이 갖고 있는 언어 그리고 성격들을 내가 말하고 싶은 방향 때문에 왜곡하거나 단면적으로 그리지 말아야겠다는 부분이 가장 컸고. 조민재 감독님이 시나리오를 섬세하게 잘 써주셨는데 그 안에서 어떻게 편하게 놀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가장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자기의 말투를 가져오고 자기의 성격적인 부분들을 드러내서 극 자체에 좀 활기를 불어넣을 수 있도록 하는 그런 것들? 그냥 배우들이 편한 거.
 
조민재 감독 : 저는 실제 봉제 노동을 하고 있는 사람들과 왜 하고 싶었냐면 우리가 흔히 착각하는 게 아까도 얘기했지만, 물리적 시간을 같이 하는 것만으로는 당연히 부족해요. 뭐가 중요하냐면 저는 어머니 몸에 쌓인 역사의 시간은 어머니가 일을 할 때 움직이는 수많은 동작, 몸의 움직임에서 나온다고 생각해요. 저는 그걸 몸의 언어라고 하거든요. 몸의 언어로 흐엉과 명선이 같이 일을 할 때 두 사람이 계속 몸으로 교류를 하고 있거든요. 물론 잘 보이지 않을 거예요. 우리는 실제 경험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저도 건설노동자인데, 정말 건설 노동할 때 말하지 않아도 그냥 툭 교감이 될 때가 있어요. 실제로 본인이 하지 않고는 절대로 알 수 없는. 다른 배우들이 하면 당연히 흉내 내겠죠. 물리적 시간을 영화에서 당연히 담는 데 그 방식이 카메라만 오래 세웠다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몸에 담고 있는 물리적 시간을 최대한 섬세하게 보여주려고 했어요. 그게 이 영화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겠죠.
이나연 감독 : 실제 봉제 노동자들이 봐도 짜치는 부분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흉내 냈다, 이런 게.
 
Q. 마지막으로, 감독님들께 단편영화란?
조민재 감독 : 저는 시간의 한계를 갖는다는 것이 창작의 자유를 억압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오히려 한계 안에서 조금 더 자유로웠던 것 같아요. 단편의 매력은 시간의 제약 안에서 할 수 있는 것에 최선을 다하고 규칙들이 있기 때문에 보는 사람들도 이 규칙 안에서 얼마나 완성도 있게 만들었느냐,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는가를 살피고요. 저는 시간의 한계가 모든 창작자에게 좀 공평하다고 생각했어요. 모두에게 공평한 조건이 주어졌고 그 안에서 본인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최선을 다해서 하는.
 
이나연 감독 : 저도 비슷한 의견인데 사실은 저는 그동안 단편영화만 만들어왔거든요. 근데 이것에 자부심을 가지기 어려운 순간들이 있었어요. 뭔가 장편영화를 만들기 위한 준비과정으로 보는 시선들이 아직도 있고. 나는 내가 원하는 언어로 내가 가장 잘 말할 수 있는 방식을 선택한 건데 계속 왜 이런 이야기를 들을까 고민도 있고. 물론 장편영화도 할 거예요. 근데 전 제가 만들고 싶을 때 단편영화도 언제든지 만들 거거든요. 단편영화란 저한테는 하나의 언어.
 
인터뷰 후, 오래 보여준다고 해서 더 잘 보여주는 건 아닌 것 같다는 말이 머릿속에 오래 남았다. 그리고 그만큼 치열한 고민이 느껴졌다. 카메라 뒤에서 오만하지 않으려는, 왜곡하지 않으려는, 쥐고 있는 카메라의 한계를 인정하려는 그 마음이 멋지고 부러웠다. 덕분에 지워지지 않은 몸의 언어를, 일과 쉼의 문화가 이어지고 뒤섞이는 공간을, 같은 일을 하는 사람들 사이의 애정과 웃음을 만날 수 있었다. 영화 안에서 잘리거나 구부러지지 않은 채로 생생히 움직이는 노동을 계속해서 만날 수 있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