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회 미쟝센 단편영화제

OFFICIAL DAILY02

“봉준호 감독은 계획이 다 있었구나.” (2)

글 : 유소은 / 사진 : 김정은

<지리멸렬>(1994)

 

주성철 평론가 : 이젠 감독님의 현재를 만든, 단편 중에서 가장 유명한 작품 <지리멸렬> 이야기를 해볼 수 있을 거 같은데요. <지리멸렬>은 총 4개의 에피소드로 이루어진 작품인데 앞서 3편에 나온 인물들이 마지막 4번째 에피소드에서 만나는 구조로 되어 있어요. 이 작품은 봉준호 감독님의 현재와 연결되기도 하는 작품이고 그 당시의 트렌드였던 타란티노식의 화법, 챕터 구조가 있는 작품이라 트렌드와 감독님의 색깔을 녹여낸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봉준호 감독 : 맞아요. 90년대 초중반에 챕터 별로 나뉘고 또 묘하게 연결되는 방식이 한때 붐을 일으켰던 기억이 나고 최고봉에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이 있었죠. 제가 한국 영화 아카데미를 다닌 해가 1994년인데 <펄프 픽션>이 개봉한 해에요. 보고 되게 쇼킹했어요. 지금은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과 친한 사이지만, 그때는 그럴 줄 몰랐고 <저수지의 개들>을 보지 못한 상태에서 <펄프 픽션>을 보고 되게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있어요. 이런 기억이 <지리멸렬>에도 영향을 끼친 것 같아요. 사실 더 직접적인 영향은 TV 심야 토론 때문에 그런 구조를 구상하게 된 거에요. 심야 토론 프로그램에서 다들 근엄하게 이야기를 나누잖아요. 계속 보면서 웃음이 나는 거에요. ‘저분들이 과연 현실에서도 저러실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권위 있는 사람들은 권위 있는 모습으로만 스스로를 노출한다. 그러나 실제 그들의 생활에 현미경을 들이댔을 때 어떻게 됐을까’라는 것이 연출을 더한 것 같아요. 그래서 제목이 <지리멸렬>이 된 거죠.

 

주성철 평론가 : 유연수 배우가 교수로 출연했던 첫 번째 에피소드를 보면, 자기 방에서 보고 있던 포르노 잡지가 있다는 걸 모르고 심부름을 보내잖아요. 그걸 순간적으로 깨닫고 막으려고 뛰어가는 장면은 <기생충>의 유명한 명장면이죠. 믿음의 벨트 장면 있잖아요. 아버지가 3분 뒤에 도착한다는 걸 알고, 식구들이 문광한테 복숭아 알레르기를 일으키게 해서 마지막에 쓰레기통에서 피 묻은 화장지를 꺼내는 장면이 있잖아요. 그 장면이 떠오르더라고요. 감독님께서 서스펜스를 만들어내는 방식이 <지리멸렬>에서도 보이는 것 같아서 저는 굉장히 재밌더라고요. 제가 너무 억지로 붙였나요? (웃음)

 

봉준호 감독 : 그걸 또 어떻게 그렇게 연결했어요? (웃음) <지리멸렬>의 대학교수 에피소드는 뭔가 감추려는  거고, <기생충> 믿음의 벨트도 어떻게 보면 감추고 속이는 거니까. 한 스폿이 있죠. 모든 서스펜스가 모여서 마침내 풍선에 바늘을 뚫듯이 팡 터지는 그게 말씀하신 휴지통에서 휴지 드는 거랑 <지리멸렬>에서 더 극적으로 뭘 던졌죠. 그게 은사님이신 연세대 사회학과 조한혜정 교수님 방에서 찍은 거였는데요. 어쨌든 휙 던져서 책을 딱 덮는, 정말 ‘지리멸렬’하잖아요. 점잖은 교수님이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조잡한 순간을 보여주는 거니까. 그 당시 단편 중에는 괴이한 순간이었을 것 같아요. 그 당시 단편은 그런 식의 서스펜스를 굳이 만들려는 것과 장르적인 접근을 한 게 별로 없었거든요. <지리멸렬>은 이미 장르적인 색채가 어쩔 수 없이 좀 있는 것 같아요. 본능적으로.

 

주성철 평론가 : 앞선 세 인물이 등장하는 에피소드가 다채롭게 치밀하게 매 에피소드 잘 짜셨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첫 번째 대학교수는 학교라는 공간 안에서 펼쳐지는 거고, 논설위원은 조깅하면서 골목골목을 계속 다니는 이야기고, 검사가 등장하는 세 번째 에피소드는 밤을 무대로 해서 한 인물의 여정, 로드무비 같은 구조를 가지는데요. 저는 논설위원이 등장하는 에피소드도 뭔가 핵심적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는 감독님의 모든 영화를 통틀어 보면 결국에는 범인이 잡히지 않는 이야기라는 생각을 좀 해본 적이 있는데요. 논설위원이 등장한 에피소드가 그렇더라고요. 사실 소년이 억울한 누명을 썼는데, 이 아이의 억울한 누명은 해소되지 않잖아요. 그런 점이 저는 두 번째 에피소드에서 범인은 잡히지 않는다는 핵심적인 감독님의 전체 주제가 압축된 것 같아서.

 

봉준호 감독 : 이제는 안 그러려고요. (웃음) 남은 인생에서 만드는 영화는 해소하고 행복한 마음을 가지고 극장을 나설 수 있게. 더는 지쳐서 저도 못 하겠어요. 어쨌든 듣고 보니 그러네요. 되게 성철 님의 통찰력인 것 같네요. 그때부터 그런 게 있었네요. 논설위원이라는 걸 에피소드를 볼 땐 모르잖아요. 끝에 가야 알게 되잖아요. 교수는 처음부터 강의하니까 노출이 되지만. 그 신분이 밝혀지는 재미도 있는 건데요. 어쨌든 논설위원인 걸 모르고 보지만, 뭔가 점잖아 보이는 할아버지와 소탈하게 생긴 신문 배달 청년이 추격전을 하는데, 추격전이 아닌 척하면서 하잖아요. ‘나는 당신 쫓아가는 게 아니야. 나는 계속 신문 배달하는 거야.’ 논설위원도 ‘나 지금 꼴사납게 도망가는 게 아니야. 나는 하던 조깅을 하는 거야.’ 하면서 둘이 의식하면서 계속. 그게 어떻게 보면 불쌍한 신문 배달 소년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응징이었던 것 같아요. 쫓아가면서 묘하게 압박을 주잖아요. 그렇다고 잡아서 때리는 것도 아니고, 붙잡아서 집으로 다시 끌고 가서 해명하라고 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게 모진 일을 할 수 있는 친구도 아니고. 순하게 생겼잖아요. 신동환이라는 친군데요. 그 친구가 제 친구에요. 영화 아카데미 12기이기도 하고, <살인의 추억>에서 송강호 배우가 연기한 형사가 처음 경운기 타고 도착할 때, 그 경운기를 운전하는 게 그 친구에요. 내려가서 시체 장소 알려주는 그 사람과 같은 배우에요. 원래는 배우가 아니라 연출 전공했던 친구고요. 그래서 그 두 번째 에피소드는 말씀하신 것처럼 억울한 게 해소가 안 되는, 그나마 했던 게 애매하고 이상한 추격전. 그 추격전을 서울시 중구 필동에서 찍었어요. 대한극장 뒤쪽에서. 그 로케이션 찍을 때 제가 가장 즐거웠던 게 여기 나와요. 정말 찍고 싶었던. <지리멸렬>이 참 이래저래 조악하고 엉망진창인데, 필동 로케이션 중에 일부 샷은 제가 자부심을 느끼는 게 있어요. 두 번째 에피소드 첫 번째 롱 테이크 샷이라든가. 나뭇잎 지나갔다가 논설위원 내려오고 김선화 배우 나오셔서 뺨 딱 때리고 하는 게 롱 테이크잖아요. 되게 긴 롱 테이크였는데, 그 롱 테이크의 무브먼트와 여러 개에 대해서 약간의 자부심이 있었죠.

 

주성철 평론가 : 그리고 여기에선 신문 배달 소년의 형으로 카메오 출연을 하셨잖아요. 크레딧 상으로만 확인이 되지만.

 

봉준호 감독 : 네. 자고 있는. 그 장면은 잠실나루 옆에 있었던 송파구에 있는 시영 아파트, 친구 집에서 찍은 건데요. 그런 작은 역은 잠깐 나오는 것 때문에 배우분을 섭외하는 것도 실례고 힘들어서 동기생들이 많이 출연했죠. <포도 씨앗의 사랑>이라는 영화 아카데미 실습작품이 있어요. 유명한 소설을 각색한. 제 동기가 저랑 장준환 감독, 최익환 감독, 손태웅 감독 등이 있는데요. <포도 씨앗의 사랑>이라는 작품에서는 제가 삭발하고 시골 마을 동네 바보 청년으로 나와요. 그 영화를 볼 수 있는 방법이 있는데, 가르쳐드리면 안 되겠다. (웃음)

 

주성철 평론가 : 그리고 여기에 논설위원으로 윤일주 배우가 나오시는데요. 저는 그 배우가 <지리멸렬>이라고 하는 단편에 나온 게 놀랍고 의외여서 봉준호라는 젊은 감독이 그 당시에 뭔가 업계 혹은 영화계에서 촉망받는 젊은이였나?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하더라고요.

 

봉준호 감독 : 역시 주성철 평론가님은 그 배우를 알아보셨구나. 그분이 장선우 감독님의 걸작 <경마장 가는 길>을 보시면 주인공인 문성근 선배님의 아버지 역할로 나오시거든요. 대단한 분인데요. 그분이 어떻게 캐스팅됐냐면, 실습작품 시절에 젊은 배우들 캐스팅은 근처 다른 대학교 연극영화과 사무실에 가서 부탁도 하고, 연영과 연기 전공 학생들과 만나기도 하고, <백색인>의 김뢰하 선배 처음 만났을 때처럼 극단에 찾아가서 단편영화를 하고 싶다고 설명해 드리거나 이런 식으로 젊은 배우분들 캐스팅할 방법은 많았는데, 그렇게 중장년층이나 연세가 있으신 분들은 어떻게 할 도리가 없었거든요.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하나 했더니 아카데미 지도 교수하시는 분이 배우 협회에 가보라고 협회 사무실 주소를 알려주시는 거에요. 협회 가서 물어보면 거기 이런 연령대 분들이 많이 있다는 거에요. 제가 가서 문을 열었더니 오래된 부동산이나 고리대금업 사무실에 있는 검은색 소파 같은 게 있고, 오래된 어항이 있고 그런 늙수그레하면서 훈훈한 분위기가 있어요. 장기를 두고 계시고 나른한 분위기가 있는데요. 배우 협회를 갔더니 들어가는 길목 입구에 사무국장님이 계신 거에요. “안녕하세요” 인사했더니 “자네 뭐야?” 하셔서 “영화 아카데미 연출 전공 학생입니다. 캐스팅 때문에” 그랬더니 “시나리오 줘 봐. 내가 사무국장이야.” 그러시는 거에요. 시나리오 보시더니 “여기 논설위원이 있군” 하시더니 “이건 내가 하겠어.” 하시더라고요. 그게 윤일주 선생님이에요. 저쪽 방을 향해서 “박광진이 오라 그래” 하시는 거에요. 박광진 선생님도 여기저기 단역을 많이 하셨던 분이라서 “이거는 광진이가 딱이야” 그러셔서 그걸로 캐스팅이 끝난 거에요. 그냥 가서 전혀 자료를 본다거나 말씀을 나눠보는 게 아니라 사무국장님이 시나리오를 보시더니 그 자리에서 다 끝났어요. 근데 되게 윤일주 선생님이 되게 좋으셨어요. “미래의 감독인데, 우리가 잘해줘야지” 하시고, 계속 뛰는 역할이니까 체력적으로 만만치 않은데 계속 열심히 해주시고 “한 테이크 더 가보자” 이런 말씀도 하시고, 이동차 쓸 때는 본인이 트랙도 같이 깔아주시고, 되게 열정적이시고 많이 도와주셨어요. 제가 감독이 된 이후에 연락을 잘 못 드려서 건강하신지 모르겠네요.

 

 

주성철 평론가 : 그 당시 최신 단편영화에서 한국영화계 과거와 현재가 만나는 풍경 같은 느낌이 들어서 저는 굉장히 의미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런 에피소드가 숨어있군요.

 

봉준호 감독 : 제가 <지리멸렬>에서 윤일주 선생님과 했었고, <괴물>에서는 괴물이 처음 공격할 때 한강 다리 위 시내버스에서 보고 놀라는 할머니 샷이 나오는데, 그게 손명순 선생님이에요. 그분이 김기영 감독님 영화 두세 편에 나오셨죠. 저의 멘토이신 김기영 감독님과 저의 유일한 연결고리 같은 건데요. 윤일주 선생님도 엄청 숱하게 많은 작품에 나오셨죠. 그분이 나온 모든 한국 영화의 주요한 순간을 다 편집해보고 싶은 생각도 들어요.

 

 

<인플루엔자>(2004)

 

주성철 평론가 : 네 번째 마지막 작품은 <인플루엔자>인데요. <인플루엔자>는 2004년 5회 전주국제영화제 ‘디지털 삼인삼색’ 프로젝트로 만들어진 작품인데요. 그때 디지털 삼인삼색은 편당 5천만 원의 제작비, 30분의 러닝타임, 그리고 중요한 조건으로 디지털카메라로 작업해야 한다는 게 있었는데요. 서로 다른 세 나라의 감독이 참여하는 작품이죠. 이때는 봉준호 감독님과 중국의 유릭와이, 일본의 이시이 소고 감독이 참여했었는데요.

 

봉준호 감독 : 유릭와이는 원래 촬영 감독이었는데. 아름다운 샷을 찍은 놀라운 촬영감독이죠.

 

주성철 평론가 : <인플루엔자>라는 제목부터 독특한 면이 있고, 이 작품을 다시 보고 이 작품 자체에 왜 감독님이 끌리셨을까 생각해보니까 CCTV라는 걸 통해서 뭔가 무성영화 느낌도 나고 흑백영화 느낌도 나서 그런 점에 매혹됐던 것은 아닐까 생각해봤거든요. 어떠신가요?

 

봉준호 감독 : 일단은 디지털이라는 과제를 주니까. 요즘은 다 디지털로 하지만, 그때만 해도. 그때가 <살인의 추억>하고 <괴물> 사이인데, 저는 <살인의 추억>, <괴물>, <마더>, <설국열차>까지 다 35mm 필름으로 작업했잖아요. 영화 아카데미 때도 필름으로 했고. 그래서 오히려 디지털이 엄청 낯선 느낌이었어요. 디지털이다 보니까 오히려 극단적으로 CCTV를 생각한 측면이 있는 것 같고요. 핵심적 발단은 어떤 싱가포르 국민의 인터뷰를 본 거에요. 싱가포르가 엄청난 통제사회잖아요. 물론 부유하고 매끈하고 화려하지만, 동시에 통제가 심한 나라인데요. 싱가포르 국민 인터뷰에서 ‘우리 싱가포르 국민들은 CCTV 영화 주인공이에요’라고 하는 자조적인 멘트를 했어요. 인구 대비 CCTV 카메라 숫자가 제일 많은 나라였나? 그런 통계자료가 그 당시에 나왔거든요. 그 얘기를 듣고 싱가포르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전날 온 도시에 흩어져있는 CCTV 화면만 잘 긁어모아도 나의 어제 하루가 순서대로 잘 구성되겠다고 하는 아이디어에서 출발했고요. 그게 2004년이니까 17년 전인데요. 돌이켜보면 실제로 그런 사회가 됐잖아요. TV를 보면 범인의 도주 경로 같은 게 재구성돼서 뉴스에 나오잖아요. 특히나 스마트폰 때문에 전 인류가 다 하나씩 동영상 카메라를 가지고 있는 사회잖아요. 그래서 동영상 범람의 시대에 살고 있고, 어떤 식으로 보면 포착되는 사회에 살고 있으니까 오히려 지금 와서는 <인플루엔자>가 별 대수롭지 않은 느낌이 들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근데 2004년도에는 그렇게 시도해볼 만한 의미가 있다고 여겨졌던 것 같아요.

 

주성철 평론가 : 저는 감독님의 이전 작품을 보면서 현재의 봉준호와 연결되는 지점이 많아서 흥미로웠고요. 이번에 상영되진 않지만, 감독님이 뮤직비디오도 두 편 만드셨잖아요.

 

봉준호 감독 : (웃음) 그거 얘기하지 말아요. 그걸 얘기하고 그래. 가뜩이나 창피한데. 그 두 곡 다 음악은 훌륭한데, 뮤직비디오를 제가 잘 못 찍어서.

 

주성철 평론가 : 그중 김돈규 씨라는 가수분이 최근에 한 예능 프로그램에 나오셔서 예전에 봉준호 감독과 뮤직비디오를 찍은 적이 있다고 얘기하시면서 화제가 되고 많은 사람이 보셨더라고요. 그 작품만 봐도 지하철 칸을 옮겨 다닐 때마다 계속 컨셉이 바뀌는 게 <설국열차> 느낌도 나고 그렇더라고요.

 

봉준호 감독 : 그게 기차를 관통하면서 계속 앞으로 가고 그래요. 그때 도시철도공사 협조를 받아서 했는데, 거기 독특한 컨셉의 관광열차처럼 칸마다 다르게 내부를 꾸민 게 있어서 우연히 그렇게 된 거죠, 뭐. 그때는 <설국열차>라는 만화책을 보기 전이에요.

 

주성철 평론가 : 제가 뮤직비디오까지 말씀드린 이유는 뭔가 이전 감독님의 모든 작품이 제가 서두에 말씀드렸다시피 ‘봉준호 감독은 다 계획이 있었구나’라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현재와 긴밀하게 연결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지금 미쟝센 단편영화제를 찾는 젊은 영화인들이 매 작품 하나하나 나중에 과거의 인생을 통째로 복습하듯이 다 불려 나올 수 있기 때문에 진짜 매 순간 열심히 영화를 만들어야 한다는 메시지를 던진다고 생각해봤습니다.

 

봉준호 감독 : 근사한 결론을 도출해주신 건 감사한데요. 모르겠어요. 그때부터 나의 시그니처나 스타일이나 집착하는 뭔가 있었다는 것으로 해석된다면 기쁜 일이고요. 근데 안 좋게 해석해서 창작의 고인물 상태가 되지 않았나. (웃음) 그래서 앞으로 더 치고 나가야 하지 않느냐, 새로운 단계로 접어들어야 하지 않느냐 하는 관점에서 본다면 비판받을 지점이기도 한 거니까 양쪽 측면을 다 놓고 보면서 저는 계속 더 치고 나가고 싶어요. 계속 앞의 작품을 지우고 싶은 마음이에요.

 

주성철 평론가 : 그럼 마지막 인사 말씀 부탁드립니다.

 

봉준호 감독 : 기본 핵심 정서는 창피함인데요. 과거가 보인다는 게. 그렇지만 미쟝센 단편영화제라는 좋은, 많은 사람이 사랑한 단편영화제가 20주년을 맞이했고, 변화의 기로에 있는 것 같더라고요. 이현승 감독님과도 대화를 나눠본 적이 있는데요. 그런 중요한 시기에 20주년이라는 좋은 이벤트의 한 부분이 될 수 있었던 건 되게 기쁩니다.

 

주성철 평론가 : 그럼 이번 ‘봉준호 감독 특별전’을 맞이해서 총 4편의 작품에 대해 좋은 말씀 들려주신 봉준호 감독님께 인사드리면서 이 자리 마무리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봉준호 감독 : 네, 고마워요.

 

 

‘봉준호 감독 단편 특별전’에서 상영한 네 편의 영화를 통해 관객들은 과거의 촉망받는 젊은 감독 봉준호를 만날 수 있었다. 종영 후 이어진 GV는 비록 사전에 온라인으로 이뤄져 현장에서 감독과 관객이 직접 소통하지는 못했지만, 봉준호 감독이 들려주는 풍성하고 흥미로운 이야기와 주성철 평론가의 매끄러운 진행으로 관객에게 즐거움을 선사했다. 이날 ‘봉준호 감독 단편 특별전’은 그의 영화에서 과거와 현재가 만나는 지점을 발견하며 ‘봉준호 감독은 계획이 다 있었구나’ 느끼고, 앞으로의 작품에서도 꾸준히 발전하고자 하는 감독의 포부를 통해 미래의 봉준호 감독에게도 계속해서 기대감을 품어보게 만드는 자리였다. 20주년을 맞아 마련된, 한국 영화계와 미쟝센 단편영화제의 든든한 기둥이 되어주는 봉준호 감독과의 특별한 시간은 영화를 사랑하는 많은 이에게 하나의 추억을 선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