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회 미쟝센 단편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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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린을 때리는 극악한 울림, 4만번의 구타가 뱉어 놓은 짜릿한 탄성

글 : 김민비 / 사진 : 이가영

우리가 딛고 서 있는 현실은 운 좋게 갠 몇 날을 제외하면, 자주 추저분하다. 구타를 유발하는 순간은 우연히 찾아와 무탈했던 주먹을 간악하게 말아 놓는다. 익숙함과 낯섦의 의뭉스러운 충돌을 이야기한 한지수 감독의 <캠핑>, 어른들이 만든 위험한 세상을 꼬집은 신지훈 감독의 <미래의 밤>, 십 분 간의 암투를 그린 최병권 감독의 <데드라인>, 단절 속에서 안녕하지 못한 사람들을 보여 준 신기헌 감독의 <포상휴가>, 폭력에 타당한 이유는 없다는 한정아 감독의 <덫>은 내밀한 본성을 파헤치는 각기 다른 한 방을 날렸다. 오늘은 관객과의 대화를 위해 다섯 감독을 한자리에 모았다.

모더레이터: 관객분들의 질문을 받아보기에 앞서 감독님들께 공통 질문 하나 드리겠습니다. 어떻게 영화를 구성하게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한정아 감독: 한동안 착한 아이 콤플렉스에 시달렸어요. 오랫동안 회사 생활을 하다 보니 싫은 소리를 잘 못하게 된 거죠. 영화로 들어서면서 그런 것들을 한번 깨 보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그래서 이런 장르 영화에 도전하게 된 것 같습니다.

 

 

모더레이터: 이야기는 장르를 위해서 생각해내신 거고요?

 

 

한정아 감독: 아무래도 말을 착하게만 하다 보니까 제가 그런 감성을 가지고 있는지 몰랐는데, 조금 있었나 봐요. 시나리오를 쓰면서 자연스럽게 폭력적인 이야기를 다루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신기헌 감독: 처음에는 코미디로 접근했어요. 군대 가면 피자를 못 먹잖아요. 그 당시에는 피자를 못 먹는 게 당연했는데, 전역하고 나니까 ‘왜 피자를 못 먹었지, 왜 그렇게 못 먹게 했지’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렇게 억압받던 기억을 자주 떠올리고는 했었는데, 아는 후배가 군인 신분으로 이별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 거예요. 두 가지가 어떻게 맞물려서 이 영화가 탄생하게 된 것 같습니다.

 

 

모더레이터: 본인의 개인적인 경험과 아이디어를 내는 동안 있었던 후배의 경험이 맞물려서 이런 이야기가 나오게 되었군요.

 

 

최병권 감독: 우선 저는 야구를 엄청 좋아해요. 한화 이글스 팬이거든요. 같은 팬분들 있으면 너무 반갑습니다. 한 3년 전인가, 김태균 선수가 FA시장에 나왔어요. 그때 마감까지 끌다가 직전에 발표를 했어요. 오프닝에 나왔던 댓글 속 사람들처럼 여기저기 지인에게 들었다는 주장이 난무하는데, 거기에 막 휘둘리면서 초조해했던 기억이 있어서 만들게 되었습니다.

 

 

신지훈 감독: 워크숍 졸업영화로 찍게 되었는데요. 그전까지는 짧다면 짧은 영화를 찍어 왔어요. 이번에는 내러티브가 긴 영화를 한번 찍어 보고 싶었고, 전보다는 스릴러 성향을 조금 더 넣어서 장르적으로 접근해 봤어요. 추운 날, 참 고생했는데 오늘 이렇게 트니까 감회가 새롭네요.

 

 

한지수 감독: 한적한 길을 여행하다가 누군가에게 납치를 당하고, 탈출하는 과정의 이야기면 재미있지 않을까. 그냥 그렇게 처음 생각을 했었고, 구체적으로 이야기를 확장해 나갔습니다.

 

 

모더레이터: 공간과 분위기를 먼저 생각하고, 이야기를 만들게 되신 거네요. 그럼 본격적으로 관객분들의 질문을 받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관객 1: <포상휴가>의 신기헌 감독님께 질문을 드리고 싶습니다. 보통 군부대는 산속이나 외딴 데 있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KTX 소리를 일부러 넣으신 것 같더라고요. 낯설게 느껴졌어요. 그렇게 설정하신 이유가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신기헌 감독: 순전히 제 개인적인 경험이었는데요. 제가 도시와 가까운 곳에서 군 생활을 했어요. 부대 안인데 철조망 너머로 불빛이 보이고, 아파트들이 보이는 곳이었어요. 그런데 나갈 수 없었던 경험을 빌려 영화 속에서도 도시와 멀지 않은 군부대로 설정했습니다.

 

 

관객 2: <덫>을 만드신 한정아 감독님께 여쭤보고 싶습니다. 주인공이 총을 던져 준 다음에 뒤돌아나가고, 새엄마가 아버지를 쏘는 장면이 나오잖아요. 새엄마라면 충분히 주인공을 쏠 수 있었을 것 같은데, 왜 그렇게 하지 않았는지 궁금했습니다.

 

 

한정아 감독: 주인공 슬기가 새엄마에게 악행을 저질렀던 이유는 자신의 엄마가 험한 일을 겪었기 때문이에요. 어떻게 보면 슬기는 피해자였던 거죠. 저는 그래서 비슷한 고통을 주고 싶었던 것 같아요. 슬기의 엄마를 해했던 모든 행동들을 새엄마가 직접 행하게 해 주고 싶었던 것 같아요.

 

 

모더레이터: 새엄마를 통해서 아버지에게 복수를 하도록 이끌어내고 싶었던 심정도 있었던 것 같죠. 아마 그래서 슬기가 나가기 전에 당신의 남편을 믿지 말라는 말을 넌지시 던져 주면서 혼란을 주지 않았나, 그런 생각이 듭니다.

 

 

관객 3: <포상휴가> 찍으신 신기헌 감독님께 질문이 있습니다. 저도 군대에서 연애를 한 경험이 있어서 인상깊게 봤어요. 신 일병이 탈영을 하고, 최 상병이 포상 휴가 10일을 더 주면 해결하겠다고 말하는 열린 결말로 끝이 났는데 그 뒤는 어떻게 됐을지 궁금합니다.

 

 

신기헌 감독: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그 뒤는 고민하지 않고, 닫아 버렸습니다. (웃음)

 

 

관객 4: <캠핑>의 한지수 감독님께 질문드리고 싶어요. 감독님께서는 어떤 분위기나 사람들의 생각 때문에 이 영화를 만들게 되었다고 하셨는데, 열린 결말이었잖아요. 저 같으면 남편을 살해하는 극단적인 방향을 택했을 것 같아요. 감독님의 생각과 결론이 듣고 싶습니다.

 

 

한지수 감독: 남편을 죽이는 것까지는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어느 정도 남편이 이 일에 관여했다는 뉘앙스로 영화가 끝이 나긴 하지만, 일부분은 아닐 수도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불확실한 상황 속에서 아내는 나름대로의 결단을 내리고, 떠났으면 했어요. 이전까지 끌려다니던 아내가 조금이나마 자신의 의지대로 행동하기 시작한다는 느낌을 주고 싶었습니다.

 

모더레이터: 정확한 진실을 두고 영화를 만드신 건 아니네요. 진실이 조금 모호할 수도 있겠어요.

 

 

관객 5: <데드라인> 최병권 감독님께 질문드리고 싶은데요. 저도 매년 FA 시즌마다 충격을 받는 야구팬의 입장으로서 재미있게 잘 봤습니다. 실제로 저렇게 이뤄지겠다 싶은 현실감이 느껴졌어요. 이야기를 구성하면서 특별히 조사하신 것들이 있었는지 궁금했습니다.

 

 

최병권 감독: 자료 조사를 위해 여러 노력을 했는데, 그쪽 세계로 진입하기가 쉽지는 않았어요. 저희의 영원한 친구인 ‘엠엘비파크’라는 야구 관련 사이트의 도움을 받았죠. 그러다 우연히 프런트에서 일하셨던 분을 소개받게 되었어요. 그분께 여쭤보면서 재미있는 소스들을 얻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모더레이터: 러닝타임과 영화 속 시간이 10분으로 같잖아요. 맞춰서 만드는 데 애로 사항은 없으셨나요?

 

 

최병권 감독: 10분이라는 시간이 현실적으로 와닿았으면 해서 웬만하면 컷을 하지 않고, 시간이 같이 흘러가는 방식으로 연출했어요. 편집을 하다 보니 자신이 없어져서 컷으로 빨리 넘기고 싶은 부분도 있었어요. 첫 기획부터 생각했던 방향이라 걷어내지는 못했고, 마음이 힘들었던 것 같습니다.

 

 

관객 6: 저는 <미래의 밤> 신지훈 감독님께 질문이 있습니다. 제목도 그렇고, 주인공 미래의 이름이 영화 안에서 여러 번 강조된다는 느

 

낌을 받았어요. ‘미래’가 이름으로 쓰이긴 했지만, 앞날이라는 의미도 있잖아요. 이름을 그렇게 설정하신 이유가 궁금합니다.

 

 

신지훈 감독: 보시면 미래를 제외하고는 다 제정신이 아니거든요. (웃음) 제가 요즘 느끼고 있는 한국 사회의 요소들을 안타고니스트들로 배치해 봤어요. 이런 인물들이 겪는 밤이 계속되면 우리의 미래가 될 수도 있겠다는 말장난식으로 접근해 봤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이름을 설정하게 된 것 같아요.

 

 

관객 7: <덫>의 한정아 감독님께 질문이 있습니다. 슬기가 거울을 보면서 머리를 빗는 행위로 영화가 끝나는데,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 장면인지 알고 싶습니다.

 

 

한정아 감독: 첫 신에서 슬기가 머리를 묶고, 자신이 마음먹었던 일을 행하러 가잖아요. 근데 결국, 슬기가 했던 행동도 올바른 행동은 아니었어요. 그렇기 때문에 머리를 풀고, 다시 빗으면서 생각을 정리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고 난 다음에 슬기가 웃잖아요. 피해자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다시 가해자가 된 거거든요. 그들과 별반 다르지 않은 모습을 보여 주고 싶어서 넣게 된 장면이었습니다.

 

 

관객 8: <캠핑> 한지수 감독님께 질문하고 싶습니다. 오리고기와 사슴 고기에 관해 묻는 장면이 있었어요. 왜 하필 사슴 고기였나요? 흔하지 않은 소재라 궁금합니다.

 

 

한지수 감독: 일단 특이한 먹거리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도시에서 쉽게 먹을 수 없는 거였으면 했고요. 어떤 지역에서는 사슴 고기를 먹을 수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거든요. 그때의 경험을 빌려 오게 되었습니다.

 

 

모더레이터: 범죄 행위를 저지르면서도 먹는 이야기를 계속하는데, 그런 대화를 넣은 이유도 알 수 있을까요?

 

 

한지수 감독: 캠핑남이 캠핑녀에게 의견을 물어보는 척하지만, 결국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하는 모습을 보여 주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모더레이터: 캐릭터를 설명하기 위해 그런 대화를 넣으셨던 거군요.

 

 

관객 9: 저는 <미래의 밤> 신지훈 감독님께 질문을 드리고자 합니다. 영화의 초반부에 미래가 지원을 의심하는 장면이 있었잖아요. 제가 미래였다면 모텔에서 일이 벌어지고 나서는 지원을 의심하고 도망가려고 했을 것 같은데, 다시 만나러 갔던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신지훈 감독: 의심을 시작하긴 했는데, 확정하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어쨌든 둘은 사귀는 사이고, 어떠한 확신도 없는 상황에서 미래는 지원을 믿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역시나 뒤통수를 맞고, 학을 떼게 된다고 설정하게 되었습니다.

 

 

모더레이터: 가출 청소년이고, 아직 십 대다 보니까 누군가를 의지해야 하는 상황이었죠. 극 중에서는 아무래도 지원이 유일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저도 질문을 하나 드리고 싶어요. 결말에서 녹취 파일을 지우는 쪽으로 미래의 손이 향하는 것 같은데, 진짜 지운 건가요?

 

 

신지훈 감독: 원래는 경찰에게 전달하는 결말을 찍었다가 미래가 너무 의존적인 사람이 되는 게 아닌가 싶어서 편집하게 되었어요. 그걸 지우는 건 아니고요. 가지고 있고, 이걸 바탕으로 미래 스스로 어떤 선택을 하게 될 거라고 저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남자들 쪽을 조금 등지고, 창밖을 보게 연출했던 것 같아요.

 

 

모더레이터: 저는 미래를 보면서 미래의 미래가 너무 암담하게 보여서 무서웠는데, 감독님께서 조금은 희망적인 단서를 남기고 끝내 주셨던 거네요. 감사합니다.

 

관객 10: 최병권 감독님의 ‘무빙 셀프 포트레이트’에 대해 질문하고 싶습니다. 영화 <기생충>을 보고, 다시 희망이 보인다는 말씀을 하신 게 인상적이었어요. 저는 영화에 몸담고 있는 사람이 아닌데도 보면서 많이 고취되었거든요. 다섯 감독님들께 짧게 <기생충>이 어땠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영화를 하는 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셨는지 듣고 싶습니다.

 

 

최병권 감독: 봉준호 감독님의 영향력은 엄청난 것 같습니다. 한국인으로서 가슴이 뜨거웠고요. 저는 원래 <플란다스의 개>를 제일 좋아하는데, 비슷한 맥락의 작품인 것 같아서 개인적으로 너무 재미있게 봤습니다.

 

 

한지수 감독: 영화를 보고 자리에서 오랫동안 못 일어났거든요. 집에 돌아오면서 ‘저런 걸 하시는데, 나는 이런 걸 하고 있구나. 참 그렇다.’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모더레이터: 고취가 된 거죠?

 

 

한지수 감독: 될 것 같습니다만, 당시에는 많은 자괴감을 느꼈습니다. (웃음)

 

 

신지훈 감독: 저는 사실 극장을 잘 안 가요. 영화관에서 영화에 압도된 기억이 언제였는지 잘 몰랐는데, 찔릴 때 저도 찔리는 느낌이었습니다. 너무 충격이었고, 아직 배울 게 많다고 느꼈습니다.

 

 

신기헌 감독: 갈 길이 멀었지만, ‘나라고 못 하리라는 법이 있나’라는 생각을 하면서 의지를 불태웠습니다.

 

 

한정아 감독: 저는 보고 나서 어떤 감정을 가지고 싶다는 생각으로 영화를 선택하는데, 기생충은 조금 달랐던 것 같아요. 매 순간 예상하지 못했던 것들이 튀어나오면서 새로운 도전 과제를 만들어나가다 보니 마지막에는 이게 무슨 감정이지, 하는 생각도 들었고요. 짜릿했던 것 같아요.

 

 

모더레이터: 관객분들께 감사드리고요. 떨리셨을 텐데 성심성의껏 답변해 주신 우리 다섯 분의 감독님들께도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말씀 드립니다.

 

 

 

 

어제가 오늘 같고, 오늘이 어제 같은 일상이 계속되고 있다. 이제는 이런 흐름을 거스르지 않고, 순응하는 게 미덕인 듯하다. 그러나 여기 모인 영화인들은 약삭빠름이 주는 편안함을 포기했다. 차라리 잽을 날리겠다고 선언했다. 이 스릴 넘치는 선제공격이 묵은 세상에 드리워 있던 그늘을 조금 걷어냈다. 비좁은 땅덩어리에 차 있던 한숨이 탄성으로 바뀌는 짜릿한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