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회 미쟝센 단편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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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두려워 말고 꿈을 향해 나아가요, 괜찮아요. <유월> BEFF 감독

글 : 조수경 / 사진 : 이가영

꿈을 가진 사람들은 빛이 난다. 하지만 자유로이 꿈을 펼친다는 것은 쉽지 않다. 그래서일까, 자신이 가진 꿈조차 무엇이었는지 잊은 채 살아가는 어른들이 많다. 리듬 따라 한 스텝만 밟아도 이렇게 신이 나는 것처럼 꿈을 향한 발걸음도 딱 한 걸음이면 되는데, 그 한 걸음이 참 어렵다. 이에 <유월>은 괜찮다고, 할 수 있다고 손을 건넨다. 꿈을 향해 나아가고 싶은 사람들을 격려하는 영화, <유월>의 BEFF 감독를 만나봤다.

유일하게 예명을 사용하고 계시는데 BEFF의 뜻은 무엇인가요? 예명을 사용하는 이유가 궁금합니다.
BEFF는 친구라는 뜻이에요. 베스트 프렌드 같은. (웃음) 예명을 사용하는 특별한 이유는 없고요. 실제 쓰고 있는 영어 이름이기도 하고, 창작할 때는 이 이름을 사용하고 싶어서 예명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냥 BEFF라는 창작자의 이름으로 저를 기억해주시면 감사할 것 같아요.

 

‘댄스 바이러스’라는 상상이 무척 재미있었어요. 이러한 소재를 떠올리게 된 계기가 있나요?
제가 휴학하고 3년 동안 춤과 사랑에 빠져버려서, 춤과 관련한 영화를 찍을 수밖에 없었어요. 춤이 끝없이 펼쳐지는 영화를 찍고 싶었는데 보편화 된 방식으로 이야기를 진행하면 춤이 들어갈 부분이 적어지더라고요. 어떻게 하면 한없이 춤만 출 수 있을지 고민하다가, 예전에 스크랩해놨던 기사가 떠올랐어요. 실제로 헌팅턴병(Huntington’s disease)이라는 병이 있는데 이는 자신의 몸을 통제하지 못하는 일종의 신경계 질환이에요. 이를 차용해 ‘집단 무용증(댄스 바이러스)’이라는 것을 만들게 됐어요. 그렇게 하니까 제가 원하는 대로 영화에 춤을 마음껏 채울 수 있더라고요.

 

<유월>의 초반부에서 아이들은 억압적인 분위기 속에 ‘학생다움’을 강요받아요. 감독님 본인의 경험이 녹아든 장면인가요? <유월>을 기획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어떤 삶의 형태든 영화는 감독 자신의 어린 시절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생각해요. 유월의 캐릭터에 저 자신이 많이 투영된 것처럼요. 실제로 저도 자기 세계가 강했기 때문에 그런 부분에 있어 억압을 받은 적이 많았어요. 억압적인 환경이 없었다면 저의 창의력을 다른 방식으로도 꽃피울 수 있지 않았을까 아쉬운 마음도 있어요. 하지만 억압받던 시절도 모두 저의 소소한 자산이고 성장할 수 있는 동력이 되었다고 생각해요. 선생님들도 마냥 비판하거나 비난할 수 없어요. 그분들도 영화의 혜림처럼 꿈이 있었을 텐데 어쩔 수 없는 여건 때문에 포기한 사람들일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그들도 위로할 수 있는 영화를 찍고 싶었어요. 다 같이 꿈에서라도 꿈을 찾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에 <유월>을 기획하게 됐습니다.

개인적으로 ‘유월’ 역의 심현서 배우 눈빛과 연기가 좋았습니다. 심현서 배우는 2018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의 주인공 ‘빌리’ 역을 맡기도 했기 때문에 <유월>의 주인공으로 제격이었다고 생각해요. 이 배우를 캐스팅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빌리 엘리어트 뮤지컬을 좋아해서 공연을 여러 번 봤어요. 첫 캐스트 때 심현서 배우가 출연했는데, 공연을 보면서 원석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현서는 순수하고 강해요, 뮤지컬에서도 현서가 빌리가 되는 것이 아닌, 빌리를 현서 자체로 만들어버리더라고요. 이 친구 약간 고집도 있고, 자기 세계가 확실하구나 싶었죠. 유월이 그렇듯, 저도 자라날 때 저의 세계가 강해서 많이 혼나기도 했거든요. 유월을 연기할 필요 없이 그 자체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직접 오디션을 제안했어요. 그렇게 현서가 공개 오디션에 참여하게 됐고 최종적으로 유월 역을 맡게 되었습니다.

 

댄스 바이러스에 감염돼 우스꽝스러운 춤을 추는 어른들의 모습이 웃음을 유발하는데요. 한편으로는 사소한 기쁨도 표출하기 어려운 사회에 씁쓸한 생각이 들기도 했어요. 삶의 기쁨을 찾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질문이 되게 흥미로운데요. <유월>은 춤을 통해 기쁨의 상태에 도달하는 영화거든요. 저는 춤을 만나서 삶의 기쁨을 찾았는데, 아무래도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향해 움직이는 것이 필요한 것 같아요. 여러 환경 때문에 하고 싶은 것을 못 하는 경우가 때로는 우리를 불행하게 만들잖아요. 하고 싶은 것에 도전하는 무모한 용기, 하고 싶은 것을 향해 움직였을 때 느껴지는 카타르시스. 이런 것이 우리의 삶을 조금이라도 기쁘게 만들지 않나, 라는 낭만적인 생각을 하게 되네요. (웃음)

 

유월이 학교에서 탈출한 후 돌아가는 길에 가게 속 텔레비전을 보게 되는데요. 화면 속 아나운서는 댄스 바이러스에 감염된 채 슬픈 눈빛으로 춤을 춰요. 유월은 그 눈빛을 통해 무엇을 읽었나요?
유월 자신에게는 마냥 기쁨이 되는 춤이 누군가에게는 꿈을 위한 성장통이 될 수 있다는, 새로운 시각을 발견하게 된 계기라고 생각해요. 슬픔과 아픔의 표현조차도 기쁨을 향한 춤의 행위가 될 수 있다는 인식의 전환을 겪은 거죠. 유월은 이를 인지하고 춤의 본연인 ‘위로’를 완수하러 혜림 선생님에게 돌아가요. 가게 속 텔레비전을 보게 되는 장면은 이를 위해 거쳐 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혜림 선생님! 뭐 어때요, 괜찮아요.” 유월의 대사는 이것이 전부지만 감동적이면서도 굉장히 의미 있게 다가왔어요. 이 대사를 누구에게 가장 하고 싶었는지 궁금합니다.
저를 포함한 모두에게 하고 싶은 말이었어요. 꼭 하고 싶은 것이었더라도 이를 망설이고, 포기하면 그것이 당연한 게 돼요. 나중에는 하고 싶었던 것이 있었다는 것조차 잊어버리죠. 그럴 때는 누군가 유월의 대사처럼 “뭐 어때요, 괜찮아요.”라는 말을 해주기를 기다리는 것 같기도 해요. 이 장면이 그 역할을 대신해 주는 거죠. 저도 지금 제가 꿈꾸던 길을 향해서 달려가고 있듯, 어린 시절에 가졌던 무궁무진한 꿈을 잊지 말라는 것을 모두에게 전하고 싶었습니다.

 

 

사람들은 플래시몹을 통해 자신의 의견을 전달하기도 하죠. 마지막 군무 씬도 아이들의 천진난만함을 표현함과 동시에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감독님이 이 부분에서 전달하고 싶었던 메시지는 무엇인가요?
그 장면의 핵심은 위축돼있던 것들이 터져 나온다는 것이에요. 우리는 모두 각자의 개성이 있잖아요. 그 개성이 통일감 안에서도 드러나길 바랐어요. 건강한 질서 속에서 개개인이 빛을 발할 수 있는 것이 건강한 사회의 모습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듀엣 이후 군무 씬으로 들어가면서부터는 주인공인 유월과 혜림이 군중 속에 파묻히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물론 유월이가 주인공이고 꿈을 전달하는 매개 역할을 하지만, 다음 세대가 모두 꿈을 표출하고 자유를 찾기를 희망한다는 핵심 메시지를 부각하고 싶었거든요. 그래서 오히려 유월이 군중 속에 묻히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연출을 했습니다.

 

처음과 다르게 마지막 장면에서 혜림은 졸면서 꿈을 꾼, 또는 꿈을 꾸고 있는 아이들을 윽박지르지 않고 지켜봐 주는데요.

어른의 역할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영화를 찍은 지 거의 1년이 다 되어가지만, 심현서 배우랑 계속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데요. 아직도 일주일에 한 번씩 같이 춤을 추고 있어요. 굉장히 아끼고, 고마운 친구이기 때문에 나는 현서에게 어떤 사람이 되어줘야 할까, 항상 고민해요.

그런 시가 있어요. 신동집 작가의 ‘오렌지’라는 시인데,

 

그러나 오렌지에 아무도 손을 댈 순 없다
대면 순간
오렌지는 오렌지가 아니 되고 만다
내가 보는 오렌지가 나를 보고 있다

 

시 자체는 본질에 관한 이야기지만, 저는 위 질문에 가장 적합한 답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자라나는 다음 세대에 함부로 개입하거나 끼어드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고 봐요. 개입하는 순간 훼손이 되거든요. 물론 훼손 자체도 성장통이 될 수 있고 변화를 일으킬 수 있지만, 최대한 덜 만지는 것이 필요한 것 같아요. 옆에서 격려해주고 방향성만 제시해주는 것이 어른의 역할 아닐까요? 어렵네요. (웃음)

 

앞으로 만들고 싶은 영화는 어떤 영화인가요?
지금 당장 착수한 작품은 없고요. 한동안은 댄스영화를 하게 될 것 같아요. 또는 뮤지컬영화. 아직 화면 속에서 배우들이 한국말로 노래하는 것이 잘 상상이 안 돼서 어려울 것 같지만 그래도 도전해보고 싶습니다.

 

감독님께 단편영화란?
감독의 영혼을 담아내기에 가장 적합한, 실질적이고도 예술적인 것. 단편영화는 감독의 정신세계와 사고방식을 담아내는 그릇이라고 생각해요. 어느 예술 형태든 마찬가지겠지만 단편영화는 특히 저의 세계를 담는 집약적인 예술 형태인 것 같습니다.

 

꿈을 잊은 채 살아가는 우리에게 당장 필요한 것은 그저 리듬에 몸을 맡기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유월의 손을 잡고 용기 있게 한 스텝 밟아보자. 뭐 어떤가. 다 괜찮다. <유월>을 통해 누군가는 서랍 속에 고이 넣어놨던 꿈을 다시 열어볼 수 있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