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보다 더 강렬한 영화가 있을까. <몸값>으로 미쟝센 단편 영화제에서 수상했던 이충현 감독이 영화가 세상에 나온 지 6년 만에 다시 관객들과 소통하는 자리를 가졌다. 단편영화를 만든 시간이 길기에 애정이 깊다고 밝힌 감독과의 인터뷰를 통해 단편영화가 주는 힘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 우연의 체험으로 시작된 <몸값>으로 이충현 감독은 영화를 계속 찍을 수 있었다. 기회가 되면 언제든 단편을 찍고 싶다는 이충현 감독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Q. <몸값>으로 관객과 만나게 되었다. 감독님의 소감이 궁금하다.
오랜만에 단편영화 GV를 한 것이라 그런지 옛날 생각도 많이 난다. <몸값>을 만들고 장편 영화에 들어가다 보니 단편영화에 대한 기억이 사라졌었다. GV를 하니 다시 그때 기억이 떠오른다.
Q. <몸값>은 영화제에서 수상을 많이 한 작품이다. 15회 미쟝센 단편 영화제와 Btv 관객상을 수상 했다. 6년이 지난 오늘 ‘Inside the 20′ 섹션에서 관객과 다시 만나게 되었다. 자본주의의 논리 아래에 인간의 육체, 성을 파는 인신매매와 성매매를 동시에 견인하는 <몸값>의 시작점이 궁금해진다.
말씀한 것처럼 자본주의 아래에서 교환을 원칙으로 한다. 이야기의 시작점은 개인적 체험에서 시작된다. 당시, 친구가 중고로 오토바이를 산다고 해서 따라간 적이 있다. 직거래를 하기로 한 상대방이 거짓말이나 말을 바꾸는 상황이 연속적으로 생겼다. 그 상황이 불안하고 서스펜스 적으로 느껴졌다. 친구가 샀던 오토바이도 가서 보니까 고장 나 있었고, 그런 체험이 오랫동안 있다가, 단편영화를 만들어보자 했을 때, 발현돼서 만들게 되었다.
Q. 제목에 관해 이야기해 보고 싶다. <몸값>이라는 제목 자체가 강렬하다. 처음에는 흰색으로 시작했다가, 끝에는 빨간색이 되는데.
제목은 정말 고민하지 않았다. 원래 제목이 먼저 나오고 스토리가 나오지 않나. 그 정도로 직감적으로 바로 떠올렸던 제목이었다.
Q. 14분이라는 러닝타임에서 대사가 굉장히 인상 깊다. 대사 구성에 대해서 질문드리고 싶다. 예를 들어 “피가 났으면 좋겠거든요.”라고 박형수 배우님이 말씀하신다거나 피에 관해 물어보는 질문 “아저씨 AB형이죠?”이나, “난관에 부딪혔는데 이거?”, 등 대사의 말맛이 잘 드러난다. 이런 대사 구상이 어떻게 나오게 되었나.
처음 시나리오를 썼을 때는 지금보다 짧고, 대사의 길이도 적었다. 주연배우 두 분이서 연극 연습하듯 두 달 동안 리허설을 했다. 그 과정에서 배우분들에게 아이디어도 얻고 배우분들에게 뭐가 더 어울리는지 아이디어를 주면서 최고의 선택을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두 달 동안 거의 매일매일 보다 보니 자연스럽게 만들어졌다. 배우분들의 공이 컸던 것 같다.
Q. 혹시 대사뿐만 아니라 배우의 역할에서도 따로 디렉션을 주신 것이 있는지 궁금하다.
배우분들에게 뭔가 디렉팅을 하기보단, 배우분들의 성향이나 이미 가지고 있는 것에 제가 맞추려고 노력했다. 여자배우의 캐릭터 같은 경우에는 처음 구상과 달랐다. 초기에 생각한 것은 작고, 귀여운 고등학생이었다. 우연히 주영 배우님을 어떻게 만나게 되고 그분이 연기하시는 것이 영화에 들어갔을 때, 너무 좋은 그림을 만들어낼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배우님에 따라 캐릭터도 바꾼 것이다. 영화도 영화지만 배우 중심의 영화이기 때문에 많이 맞췄던 것 같다.
Q. 이번에는 배우에 관한 이야기로 좁혀 들어가고 싶다. 이주영 배우님이 이 작품이 데뷔작이시다. 앞에서 말한 초반에 구상했다고 밝힌 귀엽고, 작은 이미지와 이주영 배우의 이미지가 거리가 있다. 이주영 배우님을 섭외하게 된 계기가 있나?
배우 구인 사이트에서 프로필 공모를 받았다. 많은 배우의 프로필 중에서 이주영 배우는 연기 영상이랑 같이 보내주셨다. 그 당시에 모델 활동은 하셨지만, 연기 경력은 없었던 상황이었다. 연기 실습이나 학원에서 찍었던 영상이었는데 연기를 하지 않는 모습이 너무 좋았고, 남자 배우님(배우 박형수)은 이미 캐스팅이 되어 있는 상황에 어울리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직접 만나 보니 의지도 있으셔서 인연이 되었다.
Q. <몸값>의 가장 중요한 특징 중 하나가 원테이크라는 점이다. 원 테이크 방식을 선택한 이유가 따로 있나?
처음부터 원테이크는 아니었다. 시나리오를 쓰고 연기를 연극처럼 연습을 한 기간이 있었다. 장소도 로케이션 헌팅을 해보고 나니까, 그 당시 피디를 했었던 형이 원테이크로 해보면 어떠냐고 제안했다. 그 말이 듣는 순간 그게 맞는 옷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테이크를 하면서 많은 효과를 경험한 것 같다. 하나의 흐름 안에서 조금씩 반전을 흘리고 이야기를 뒤집는 것인데 한 테이크의 흐름에 담아내니까 그게 마법처럼 벌어지는 효과를 만든 것 같아서 좋았다.
Q. 영화 촬영지가 찾아보니까 가평 지역이더라. <몸값>이라는 원테이크를 구현하는데 장소가 큰 역할을 한 것 같다. 가평이라는 지역을 어떻게 선정하셨는지 궁금하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처음에는 원테이크를 할 생각이 없었는데, 장소가 정해지고 나서 원테이크를 한 것으로 들린다.
일단, 독립영화는 상업영화와 다르게 장소 협찬이 쉽지 않다. 서울은 이미 할 수 없었고, 지방 쪽으로 무작정 돌기 시작했다. 가평에는 비교적 여행객들이 많이 오는 숙소라, 평일에는 한산하다. 우연히 가서 봤는데, 이미 다 뭘 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미술이 꾸며져 있던 상황이었다. 되게 특이했다. 구조라던지. 우연 하게 만났던 장소 같다.
Q. 다시 영화 이야기로 넘어가 보려고 한다. 오프닝이 여고생 주영의 뒷모습으로 시작한다. 이 뒷모습에 따로 생각해두신 의도가 있는지 궁금하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일동 웃음)
Q. 원래 영화 도입부가 사람들을 확 잡아끄는 역할이지 않나. 저는 개인적으로 영화 뒷모습을 보면서 호기심을 느꼈다. 대체 무슨 이야기인지 기대되기도 했다.
현장에서 결정되었던 것 같다. 현장에서 첫 프레임을 어떻게 하는 게 좋은지 타이틀이 뜨는 것과 어울리고 궁금증을 자아낼 수 있을까 하고 만들었던 그림이다. 현장에서 카메라 감독님과 이야기 하면서 결정한 것 같다.
Q. 이주영 배우가 숏 컷에서 가발을 벗어 던지는 반전이나 박형수 배우님의 빨간색 양말과 핑크색 팬티가 영화의 미쟝센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세부적인 스타일도 생각하고 디렉팅을 한 건가.
그 부분은 의도했던 부분이다. 남자 캐릭터가 피에 집착하는 것도 있고, AB형이라고 말하는 부분도 있고, 피에 대해 이야기를 많이 하지만, 정작 영화에서는 피가 나오지 않는다. 그런 소품적인 색으로 빨간색을 고의적으로 노출을 하려고 했다. 은연중에 그런 느낌을 받을 수 있도록 의도한 것이다. 그때 마트같은 데 가서 빨간 양말을 샀던 기억이 있다.
Q. 짧은 러닝 타임에 시각적 효과도 좋았지만, 음악적 효과도 빼놓을 수 없다. 다른 인터뷰에 의하면 예술고등학교 재학 시절 뮤지컬 ‘페임’을 보고 예술 하는 사람을 꿈꾸게 되었다고 밝혔다. <몸값>이 어떻게 보면 성인이 되고 난 뒤 첫 단편 영화다. 음악 구성은 어떻게 하셨는지 궁금하다.
사실, 정말 영역 외의 부분이라 어떻게 설명하기 어렵다. (웃음) 그 당시 롱테이크 영화로 <버드맨>이 있었다. 촬영 당시에는 <버드맨>의 음악을 넣었었다. 음악 감독님께 신경 쓰지 말고 해달라고 부탁했었는데, 음악 감독님도 이 <버드맨>에 이미 너무 꽂히셨는지 비슷하게 해주셨다. 음악이 어떻게 어울리긴 했다. 나는 다만 새로운 것을 원하긴 했지만, 음악 감독님도 힘들게 만드셨기 때문에 많이 따라간 것 같다.
Q. 한 인터뷰에 따르면 <몸값>이 많은 기대를 받아서 오히려 부담감이 생기셨다고 말씀하셨다. <몸값>이 사비를 들여서 찍은 것으로 알고 있다. 감독님에게 <몸값>이란 영화는 어떤 의미인지 궁금하다.
부담 느끼진 않았다. (일동 웃음) <몸값>을 많은 사람이 봐주실 것이라고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오히려 최선을 다했고, 하고 싶은 거 다 했던 영화였다. <몸값>에 크게 의미를 두고 작업한 것은 아니었다. 어쨌든 <몸값>을 통해 그 이후에도 영화감독이라는 직업을 가질 수 있도록 만들어준 영화다. 그런 면에서 많은 부분에서 나에게 선물을 줬던 작품이다.
Q. 기존의 시스템이나 편견을 비트는 이야기에 관심을 가지고 계시다고 들었다. <몸값>을 찍을 때, 영향을 받았던 작품이나 감독이 따로 있나?
<몸값>을 찍을 당시에 홍상수 감독님을 좋아했었다. 박찬욱 감독님도 좋아했었고, 그런 부분이 영향을 주었을 것이라 생각 된다.
Q. <몸값> 이외에도 <콜>로 장편 데뷔를 치르셨고, <하트 어택>이라는 다른 OTT 플랫폼에서도 활동했다. 영화들에는 대부분 여성 캐릭터가 등장한다.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캐릭터라고 들었다. 앞으로 만들어보고 싶은 여성 캐릭터가 있는지 궁금하다.
여성 캐릭터들이 훨씬 더 장르적인 영화 안에서 활동했으면 좋겠다. 쿠엔틴 타란티노의 <킬 빌> 같은 영화를 만들어보고 싶다.
Q. 마지막으로 공식질문을 드리고 끝내겠다. 감독님에게 단편영화란?
단편영화는 언제나 다시 하고 싶은 영화다. 기회만 된다면 하고 싶은 영화다. <하트 어택>도 단편영화였다. 단편영화는 매력적이다. 틀이라는 것이 없기도 하고 훨씬 자유로운 부분도 있다. 상업영화를 하고자 공모했었던 시간보다 단편영화를 하고자 했었던 시간이 더 길기 때문에 애정이 많은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