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누구나 ‘아이’였던 시절이 있다. 걱정 없이 행복만 가득했던 시기일 수도 있지만, 아이일 때도 남모를 결핍은 각자 존재했을 것이다. 가족에 대한 결핍, 친구 사이의 결핍 등. 영화 <나만 없는 집>의 주인공 ‘세영’ 역시 이러한 결핍을 가진 한 아이다. 오늘은 1998년을 배경으로 한 11살 소녀의 성장을 담은 작품 <나만 없는 집>의 김현정 감독을 만나보았다.
Q. 미쟝센 단편영화제가 20주년을 맞이하여 20주년 특별부문인 Inside the 20에 초청되셨다. 2017년에 미쟝센 단편영화제에서 대상을 수상하기도 하셨는데, 다시 돌아온 소감이 어떤지 궁금하다.
<나만 없는 집>이 영화 연출에 대한 경험이 적을 때 찍었던 작품이라 지금 보면 어설픈 부분도 많아서 부끄럽긴 했다. 그래도 그 당시 추억도 생각나서 특별한 자리였던 것 같다.
Q. 그동안 꾸준히 작품 활동을 이어오셨는데 최근에도 작품 활동을 하고 계신지 궁금하다.
첫 장편을 작년에 촬영했고 지금은 막바지 작업 중이다. 운이 닿는다면 올해 하반기에 작품을 공개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다.
Q. 영화 자체가 현실 반영이 잘 되어 있어서 놀랐다. 특히 자매 관계를 그린 장면은 대한민국의 모든 자매들이 공감할 것 같다. 첫 장면에 자매가 똑같은 옷을 입고, 같이 등교를 하는데 언니는 그걸 싫어한다. 실제 경험담인지?
실제 경험과 캐릭터 구성이 섞여있다. 세영은 늘 언니에 대한 동경이 있고 사춘기가 막 온 언니는 그런 세영이 귀찮고 부끄러운 마음이 있다. 이런 상반된 관계를 영화에 담겠다는 생각을 했다.
Q. 주인공 세영은 언니를 포함한 모든 가족 구성원들에게 무시를 당한다. 실제로 언니가 있는 동생의 역할을 맡고 있는지 궁금하다.
맞다, 나도 자매 중 동생이어서 그런 감정을 느꼈었던 것 같다. 그걸 최대한 떠올리면서 작품을 만들려고 했었다. 아무래도 영화라는 게 주제나 방향을 잡으면 그런 것만 뽑아서 작품에 배치를 시킨다. 사실 언니도 마음 아픈 점이 있을 거고, 엄마와 아빠 역시 각자의 사정이 있겠지만 이 영화는 철저히 세영의 입장에서 이야기된 작품이어서 그녀가 느끼는 소외와 타인들의 행동 위주로 담으려 했다. 그때 나의 감정과 경험을 많이 생각했다.
Q. ‘언니 니는 하고 싶은 거 다 하잖아’ 이 대사를 듣고 동생보다 우대받는 입장인 나 자신이 떠올랐다. 평소 동생의 입장으로서 자주 들었던 말인지 캐릭터 구상을 하면서 넣은 대사인지 궁금하다.
섞여있는 것 같다. 경험도 반영되었고 과장된 점도 있는 것 같다. 영화적 목표가 있기 때문에 과장된 부분도 있을 것이다.
Q. 영화 속에서 세영과 선영 자매는 ‘걸스카우트’에 욕심이 많다. 동생 세영이 걸스카우트를 하고 싶은 이유가 막연히 언니를 향한 동경으로 인해 그런 건지 또 다른 이유가 있는 건지 궁금하다.
보통 어린 나이에 또래 집단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는 것 같다. 물론 세영이는 언니로 인해 일찍 걸스카우트 단복을 보면서 바라게 된 것도 있지만 또래 집단 사이에서 단복은 부의 상징이기 때문에 아마 얘기를 했을 것 같다. 그런 게 좀 더 작용하지 않았을까 싶다. 서브플롯에 친구들끼리 대화 장면을 넣은 이유도 세영이가 걸스카우트를 하고 싶은 욕망이 어디서부터 비롯됐는지를 배치하고 싶었다. 언니에 의한 것도 있고 친구들끼리 하는 이야기를 영화에 녹여내려고 했다.
Q. <나만 없는 집>은 아이의 시선이 많이 비친 영화다. 아이들의 마음을 어떻게 이렇게 잘 아는지 궁금하다. 평소 아이들과 대화를 많이 했는지, 아니면 어렸을 때의 본인 경험을 살려 영화를 만든 건지 궁금하다.
누구나 아이였던 경험이 있으니 그때의 기억을 많이 떠올리려고 했던 것 같다. 어른들은 각자의 사정이나 체면으로 인해 솔직하지 못한 면도 있는데 아이이기 때문에 목적이 생기면 솔직하게 표현하고 끝까지 밀고 나가는 힘이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Q. 영화를 계속 보면서 동생 세영의 상황이 매우 안타까웠다. 실제로 내 동생이 저런 일을 많이 겪었을 것 같기도 하고 언니의 행동이 많이 공감돼서 반성하기도 했다. 영화를 만든 후 다시 보면서 감독님은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 궁금하다.
영화의 호흡이 이렇게 느렸나..? (웃음) 사실은 영화를 만들면 진짜 많이 보게 된다. 편집할 때도 백 번 이상 반복해서 보는데 또 시간이 지나면 잊어버린다. 그래서 오늘 새로운 기분으로 보려고 극장에 들어갔었는데 약간 어설펐던 것도 있었고 호흡도 내 생각보단 더 느리더라. ‘그래도 저 당시에는 최선을 다했지’ 하는 마음으로 봤다.
Q. 영화에서 ‘세영’은 가족과 함께 있는 장면보다 친구들과 함께 있는 장면이 더 많다. 초등학교, 중학교 시절에는 친구들이 세상의 전부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감독님도 그런 경험이 있는지 궁금하다.
굉장히 어릴 때는 부모님이 나의 세상이었고 학교를 다니게 되면서 또래 집단이 절대적으로 작용했던 것 같다. 힘이 있던 친구들이 하는 행동을 따라 하고 싶게 되고, 집단에 들어가지 못하면 위축되는 것 같고. 그런 생각이 크지 않았나 싶다.
Q. ‘세영’이 언니를 ‘너’라고 부르고 욕을 하는 장면이 기억에 남는다. 이 장면의 비하인드가 궁금하다. 왠지 아역배우가 욕 대사를 하기 힘들어했을 것 같다.
애들이 원래 욕을 하는 친구들이 아니어서 되게 어렵다고 말은 했었다. 이 친구들이 욕을 하는 환경에 대해 설명했던 것 같다. ‘세영’과 ‘선영’의 부모가 노동자고 거친 말과 다툼이 익숙한 중산층이라는 것과 엄청 원했던 것을 뺏겨서 본능적으로 욕이 나오는 거지 네가 나빠서가 아니라는 얘기를 했던 것 같다. 욕을 해서 나쁜 사람이 되는 게 아니라 상황에 의해 나오는 자연스러운 반응이라고 말해줬다. 김민서 배우와 박지후 배우도 서로 얘기를 많이 했다. 몸싸움도 있어서 힘들었을 텐데 우리가 케어도 해줬지만 그들끼리 얘기를 나눈 것도 촬영에 도움이 됐을 것 같다.
Q. 장면 하나하나가 시나리오의 필수적인 장면으로 느껴진다. 어떻게 시나리오를 쓰게 되었는지 궁금하다.
영화를 처음 공부하고 개성 강한 친구들 사이에서 살아남고 싶어서 무리수를 두었던 시기가 있었는데 결과는 좋지 않았다. 쓸 때는 재밌었지만 막상 보고 나면 자극적인 면만 가득했다. 영화를 하고 싶었던 이유 중 살풀이 같은 게 있었던 것 같다. 내 감정에 대한 얘기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관객이 될 수도 있었지만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었던 것은 결핍이 많았던 내가 힘든 상황을 표현하고 싶어서 이야기는 소소하고 작아도 내가 잘 이해할 수 있는 감정을 써보고 싶어서 출발하게 된 시나리오였다. 그 당시에 큰 욕심을 내진 않았다. 다만 시나리오 안에서 이야기가 잘 엮일 수 있도록 고민을 많이 했다.
Q. 큰 욕심을 안 내고 만든 작품인데 미쟝센 단편영화제에서 대상까지 받았다. 정말 놀라운 결과다.
그게 오히려 좋게 작용한 것 같다. 그 당시 많이 들었던 이야기가 ‘내 얘기 같았다’는 말이었다. 영화를 너무 잘 만들어서 범접할 수 없는 경우도 있지만 나 같은 경우는 소소하게 공감할 수 있는 요소를 고민하다 보니 그런 것들이 좋은 방향으로 작용하지 않았었나 생각한다.
Q. 동생이 자신의 마음속 이야기를 엄마에게 다 털어놓는 장면을 보며 가슴이 아팠다. 반대로 엄마 입장에선 더 마음이 아팠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감독으로서 엄마의 입장을 생각해 본 적이 있는지, 어떤 생각을 하셨는지 궁금하다.
그 당시에 엄마 역할을 해주신 이미정 선배님하고 얘기를 했었다. 선배님께서 해주신 말이 세영이가 걸스카우트 단복을 입고 오는 순간, 자세한 사정을 알진 못해도 걸스카우트에 대해 가졌던 욕심과 외로움의 감정이 설명하지 않아도 엄마로서 느껴진다는 것이었다. 부모님들이 가지는 사정과 미안함에 대해서도 얘기했다. 그런 것들이 머리를 묶는 행위, 등을 두드려주는 행위로 표현이 됐던 것 같다. 이미정 선배님이 그 상황 속에서 느꼈던 애틋함을 자연스럽게 느끼고 연기를 해주셨다. 굳이 ‘미안하다’는 대사가 없어도 감정이 충분히 느껴졌다.
Q. 제목 <나만 없는 집>이 영화 내용과 잘 맞는다. 어떻게 제목을 짓게 되었는지 궁금하다.
주제를 너무 직접적으로 표현한 것 같아서 고민도 많이 했다. 보통은 영화를 빗댄 사물이나 인물의 이름을 제목으로 쓰는 반면, <나만 없는 집>은 ‘집’이라는 단어가 있지만 직접적인 면이 더 크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가장 함축적이고 정확했기 때문에 최종 제목으로 결정한 것 같다.
Q. 만약 영화를 감독할 당시의 과거로 돌아간다면, 바꾸고 싶거나 추가하고 싶은 장면은 없는지 궁금하다.
추가할 장면은 확실히 없다 (웃음). 그 안에서 할 만큼 다 한 것 같다. 그때 몰라서 헤맸던 게 많다. 몰라서 헤매고 시간도 많이 소요하고. 그런 것들이 좀 더 영리하게 풀어낼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반면에 너무 몰라서 끝까지 할 수 있었다는 생각도 든다. 그 정도로 고생할 걸 알았다면 아마 시작할 엄두도 못 냈을 것이다. 그 당시에는 ‘이 정도면 해볼 만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가짐으로 시작했고 매 회차마다 계속 난관을 넘으면서 영화를 만들었다. 그 당시에는 최선의 노력이었다. 다시 찍는다고 더 잘할 것 같진 않다.
Q. 지금까지 했던 GV 중 기억에 남는 질문이 있는지?
질문보단 ‘내 얘기인 것 같다’라는 반응이 진짜 신기했다. 이 작품이 사적인 얘기에서 출발한 거라 누군가 자기의 일이라고 여길 줄은 몰랐다. 오히려 <나만 없는 집> 이후에 영화에 대한 책임감이 생겼다.
Q. 앞으로 어떤 작품 활동을 하고 싶으신지?
여성이 주인공인 이야기가 앞으로도 나올 것 같다. 무의식적으로 느껴지는 여성에 대한 차별이나 소외나 어려움 같은 것들을 다룬 작품이 계속될 것 같다.
Q. 장편영화에 대한 계획은 없는지 궁금하다. <나만 없는 집>을 좀 더 구체화해서 장편영화로 만들어도 너무 재밌고 공감될 것 같다.
이제 막 장편에 첫 발을 내디뎠기 때문에 앞으로의 작품은 장편 형식이 될 것 같다. 나는 짧게 이야기하는 타입은 아니다. 그동안 만들었던 단편 영화도 축약되지 못한 서사들이어서 오히려 짧게 쓰는 것에 대한 어려움을 느꼈다. 그런 의미에서 앞으로는 장편 영화를 만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Q. 감독님에게 ‘단편영화’란?
어려운 질문이다 (웃음). 나라는 사람을 알리게 만들어 준 기회라고 생각한다. 영화를 만든 사람으로서 영화를 사랑하게 만든 매체가 단편영화인 것 같다. 사실 영화가 마냥 어렵게 느껴지기도 했는데 많은 기회를 준 존재라고 생각한다.
김현정 감독은 <나만 없는 집>을 소소하고 작은 이야기라고 표현했다. 영화는 극적인 전개도, 소름 돋는 반전도 없지만 저마다의 어린 시절을 기억하는 이들에게 <나만 없는 집>은 그 어떤 영화보다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이다. 살면서 가끔씩 꺼내보고 싶은 앨범 같은 존재, <나만 없는 집>은 바로 그런 영화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