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회 미쟝센 단편영화제

OFFICIAL DAILY13

차가운 화장터에서 출발한 따뜻한 로드무비, <장례난민> 한가람 감독 인터뷰

글 : 박현우 / 사진 : 김지영

현실 속 부정(不定)을 소재로 삼다 보면 아무래도 그 기운이 영화 전체에 스며들기 마련이다. 영화는 그 기운을 고스란히 전할 때도 있고, 나름의 분위기로 포장해 전할 때도 있다. 미쟝센 단편영화제의 ‘비정성시(사회적 관점을 다룬 영화)’ 부문은 짧은 시간 안에 다양한 사회적 이슈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전달되는 곳이다. 이번 제16회 미쟝센 단편영화제에서는 따뜻한 분위기로 우리 주변의 슬픔을 전달한 영화들이 유독 눈에 띄었다. 오늘은 그 중에서 사람의 죽음을 다루는 장례에서 현실의 차가움을 발견한 <장례난민>의 한가람 감독을 만나 보았다.

 

연출의도가 ‘죽을 때 조차도 돈이 필요한 현실 속에서 남아있는 삶의 온기를 찾고 싶었다.’ 라고 하셨어요.

의도를 구체적으로 어떤 계기에서 생각하게 되셨나요?

한가람 감독: 일본에서 죽은 사람에 비해 자리가 모자라서 화장을 못 하는 유족들이 많다는 기사를 봤어요. 그 때 관이 외롭게 있는 사진을 보고 구상을 시작하게 됐는데요. 그 후에 우리나라를 찾아봤는데, 화장터가 많이 부족하고 장례비가 많이 드는 바람에 복지의 사각지대에 있는 사람들이 많더라고요.  이것을 영화로 어떻게 표현할까 생각을 하면서, 무거운 영화보다는 따뜻하게 보이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어요. 그리고 사실은 가난이란 게 벗어나기 어려운 문제지만 그래도 그 사람들도 나름의 사연이 있고, 가족애가 있고, 살아가는 데 힘이 되는 게 있단 말이에요. 저는 그 중에서 삶의 온기라고 할 수 있는 게 가족애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사회적인 문제를 다루지만 따뜻한 분위기라고 하셨는데요. 영화의 주된 화자가 다빈이와 한솔이, 아이들입니다.

그렇다면 아이들을 주인공으로 설정한 특별한 이유가 분위기와 관련이 있을까요?

한가람 감독: ‘따뜻함’ 보다는 처음부터 주인공은 아이였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했어요. 영화를 기획할 때 제일 만들고 싶었던 장면이 관 속에서 엄마가 일어나는 장면이었어요. 그 장면을 처음부터 생각했는데, 관 속에서 일어나는 엄마의 환상을 볼 수 있는 사람이라면 아이들이 적합하지 않을까. 그래서 아이들을 화자로 했습니다.

 

영화 제목이 <장례난민>입니다. 독특하다면 독특한 제목인데, 제목은 어떻게 구상을 하셨나요?

한가람 감독: 처음에 봤던 기사에서 유족들이 난민같이 떠돌고 있다는 말을 보고 바로 지었어요. 크게 고민하지 않고요.

 

전작 <봄이 오는 동안>의 경우 성인배우들과 작업한 반면, 이번 <장례난민>에서는 아역배우들하고 일을 하셨어요.

촬영장에서 다른 점이 있었다면 무엇이었나요?

한가람 감독: 가장 고민을 많이 했던 부분이었던 것 같아요. 일단은 아이들 시점에서 설명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시나리오를 보여주는데 저는 어른의 입장인데 영화는 애들의 이야기니까 제 생각과 아역배우들의 생각이 다를 것 같은 거에요. 그래서 ‘내가 생각했던 내용들을 다 설명해줘야 하나?’ 생각하다가 안 하는 게 좋을 거라 판단했어요. 아이들 수준에서 이해해야 진짜 애들 이야기가 되는 거니까요. 그랬는데 마침 아역배우들이 이해한 게 제가 봐도 괜찮더라고요. 충분히 감정 표현이 될 수 있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아역배우들 눈높이에 맞춰서 촬영했던 것 같아요.

 

영화의 전체적인 내용이 다빈이와 가족들이 엄마의 장례를 값싸게 치루기 위해 여정을 떠나는 모습입니다.

여기서 로드무비같이 느껴졌는데요. 로드무비라는 형식을 택한 이유가 있을까요?

한가람 감독: 자료 조사를 했는데, 우리나라에서 장례식 리무진 차량이 비싸서 승합차를 가지고 와서 관을 싣고 가는 사람들이 실제로 있더라고요. 그 중에서 승합차를 버리고 도망간 사람의 이야기가 있었는데, 일단 그 부분에서 관을 가지고 떠돌아 다니는 이야기를 생각했던 것 같아요. 실제로 뉴스에도 나왔던 사례인데 아들이 엄마 장례비가 없어서 돈을 꾸고 다니다가 결국 장례비를 마련하지 못 해서 관을 실은 승합차를 세워 두고 도망을 갔더라고요.

 

아빠가 경찰에 잡혀가고 다빈이와 한솔이 둘이서 여정을 계속하는데, 죽은 엄마의 부활이나 환상속의 만두 같은

비현실적인 장면이 나와요. 아까 말씀하셨듯이 처음에 이 장면들을 잡고 나머지를 만들었다고 봐도 될까요?

한가람 감독: 만두 장면은 후반부에 가서 생각했어요. 처음엔 현실적인 일들이 벌어지는 가운데 어린 동생이 엄마가 있는 관에 갔을 때, 엄마가 아무렇지 않게 일어나서 동생을 안아주는 정도로 해서 현실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이미지였거든요. 그런데 시나리오를 쓰다 보니까 판타지를 크게 해서 영향을 미쳐도 좋지 않을까 라는 생각에 비현실적인 장면들을 더 넣었어요.

 

개인적으로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이라 생각했던 게 다빈이와 한솔이가 강가에서 화장을 준비하고 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새벽녁에 강가에서 화장 촬영을 하는데 가장 중점을 두었던 부분은 무엇일까요?

한가람 감독: 제일 힘들었던 장면이기도 했어요. 사실은 애들이 화장터에 못 가고 실패를 했잖아요. 하지만 엔딩 장면에서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이 아이들의 선택이 절망적으로 보이지 않았으면 했어요. 그래서 나름의 해피엔딩처럼 보여주고 싶어서 강가를 일부러 아름다운 곳으로, 비현실적인 분위기로 찾았고요. 그리고 정말로 물안개나 새벽 분위기를 담기 위해서 새벽에 찍자 생각했어요. 그래서 이틀동안 두 번에 걸쳐서 새벽 시간에만 찍었어요. 그 때문에 아역배우들이 고생을 많이 했죠. 한솔이 역할의 배우 분은 아침형 인간이라 그나마 괜찮았는데, 다빈이 역할의 배우 분이 야간형이라 고생을 좀 했어요.

 

감독님도 그 때 고생을 많이 하셨나요?

한가람 감독: 그 때는 어떻게든 찍어야 된다는 생각이었어요. (웃음)

 

<장례난민>에서 감독님이 개인적으로 가장 아끼는 또는 집중했던 장면은 무슨 장면일까요?

한가람 감독: 가장 고민을 많이 했던 건 역시 엔딩 장면인 것 같아요. 왜냐하면 영화의 느낌을 결정하는 건 엔딩이라 생각하기 때문인데. 어떻게 표현하는냐에 따라서 관객들이 가져가는 느낌이 다르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이게 졸업 작품이었는데, 중간에 시나리오를 편집하는 과정에서도 엔딩이 절망적으로 느껴진다는 사람들이 많았거든요. ‘애들이 실패한 것처럼 보인다’, ‘불을 지른 게 제대로 치루지 못 한 장례처럼 보이면 어떡하냐’ 는 질문을 받아서 그렇게 보이지 않기 위해 애를 썼어요.

 

<장례난민> 다음으로 진행 중이거나 준비 중인 차후 계획이 있다면?

한가람 감독: <장례난민>이 아카데미 정규 과정의 졸업작품 이었고요. 다음에 아카데미 장편 과정도 있는데, 거기에 지원을 해서 장편 영화를 준비하고 있어요. 제가 이번에는 ‘어른들을 위한 영화를 찍겠다.’, ‘19금 영화를 만들겠다.’ 강력하게 이야기를 했어요. 굉장히 야한 장면도 많고 청춘 이야기를 담은 장편 영화를 만들까 합니다. 시나리오도 거의 다 나왔고요. 캐스팅 준비해서 9월에 촬영을 들어갈 예정입니다.

 

단편도 만들고 또 다른 장편도 만드실 예정인데, 영화를 제작함에 있어 감독님에게 가장 영향을 준 인물이 있다면 누굴까요?

한가람 감독: 지금 딱 떠오르는 사람은 엄마에요. 왜냐하면 저희 어머니가 저 어릴 때부터 영화를 많이 좋아하셨어요. 비디오도 되게 많이 보여주셨는데, 그 때 특이했던 게 애들이 보는 수준이 아니라 자기가 보는 걸 같이 봤어요. 영화의 관람등급에 상관없이 보여주셨는데, 거기서 영향을 많이 받았던 것 같아요. 지금도 아카데미 다니면서 저희 어머니가 좋은 영화를 보고 나면 ‘너도 이렇게 좋은 영화를 만들었으면 좋겠다.’ 란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그럴 때마다 좋은 영화를 만들고 싶다 란 생각을 했어요.

한가람 감독님께 ‘단편 영화’란 무엇일까요?

한가람 감독: 어려운 질문을. (웃음) 저에게 단편 영화는 제가 마음껏 해볼 수 있는 유일한 기회라고 생각을 해요. 왜냐하면 영화라는 게 결국에는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공감을 얻어야 한다고 보거든요. 그런데 그런 단계로 넘어가기 전에 내가 생각하는 것을 마음대로 해볼 수 있는 마지막이 단편이지 않을까. 그래서 단편은 좀 단편다운 게 좋다고 생각해요. 죽은 사람도 막 살아나고, 제 마음대로 하면서 말이죠. (웃음)

 

감독의 성격이 영화에 반영됐던 걸까. 인터뷰 내내 한가람 감독은 따뜻한 어조로 질문에 대답해 주었다. 덕분에 훈훈한 분위기에서 인터뷰를 마무리할 수 있어 감사하다. 동시에 평소 눈치채지 못 했던 현실에 다가갈 기회를 마련해 준 것에도 감사함을 표한다. 죽음에도 돈이 필요한 나머지 화장터 앞에서 차갑게 돌아서야만 했던 이들을 감독은 놓치지 않았다. 나아가 따뜻한 시선으로 그들을 조명했다. 작은 새싹은 햇빛 아래서 결실을 맺는다. 마찬가지로 한 편의 신문 기사가 한가람 감독만의 시선 아래서 <장례난민>이란 결실을 맺었다. 앞으로도 한가람 감독만의 시선 아래서 다양한 영화가 나오길 진심으로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