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은 영화같지 않다는 말들을 한다. 대부분의 영화에서는 핑크빛 이상을 그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두 다 그렇지는 않다. 미쟝센 단편영화제의 ‘4만번의 구타’ 장르에는 현실같은 영화 네 편이 있다. 진정으로 지켜야 할 것을 위해 싸우는 ‘멋’을 보여준 <가드올리고 BOUNCE!>, 인간의 이기심이 발동하는 순간을 비극적이고 세밀하게 그린 <직무유기>, 중학생의 미성숙한 내면을 통해 인간의 본성을 말하는 <친구>, 그리고 ‘이념 역시 일상적인 감정 위에 지어진 녹슨 건물이 아닐까?’ 하는 의문을 제기한 <꼬리>다. 관객과의 대화를 위해 네 영화의 감독들이 모였다.
<송경원 모더레이터>
송경원 모더레이터: 미쟝센 단편영화제는 국내 명실상부한 감독들의 등용문으로서 관객과의 접점도 높여가고 있고 장르영화에 대한 이해도 굉장히 높여가고 있는 의미 있는 영화제인 것 같아요. 먼저 <직무유기>의 신지훈 감독님께 질문하고 싶은데요. 원씬-원테이크(1scene-1take)로 촬영하신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신지훈 감독: 연출 의도와 맞닿아 있습니다. 사람이 되게 끔찍한 일을 저지를 때 그 변화하는 순간은 찰나의 한순간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런 상황이 온다면 우리는 주인공처럼 이기적인 선택을 하지 않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고요. 사람의 이기심이 극대화되는 찰나의 순간을 표현하고 싶어서 한 번에 쭉 찍게 되었습니다.
<배수민 감독, 신지훈 감독, 곽기봉 감독, 김후중 감독>
송경원 모더레이터: 그리고 <친구>의 곽기봉 감독님께 한 번 여쭤보겠습니다. 이 영화는 특히 굳이 ‘4만번의 구타’ 섹션이 아니더라도 다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아요. ‘비정성시’ 부문에도 어울리고 ‘절대 악몽’에도 어울려요. 마지막 장면은 되게 무서웠어요. 이 소재를 이런 식으로 풀어나간 이유를 설명해 주실 수 있을까요?
곽기봉 감독: 사실 저도 이 영화를 찍으면서 섹션을 고민했는데요. ‘사회에 관한 이야기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봤는데요. 결국 제가 얘기하고 싶었던 것은 우리 어릴 때, 그리고 현재도 만연한, 누구나 겪는 폭력의 경험이에요. 그래서 ‘4만번의 구타’에 넣었습니다.
송경원 모더레이터: 그러면 이어서 <꼬리>의 김후종 감독님께 질문 드려볼게요. 분량도 가장 길고 정통파 드라마에 가까운 영화인 것 같아요. 요즘 워낙 남북 문제가 대두되는 분위기잖아요. 이 이야기를 어떻게 처음에 접근하셨는지 그리고 어떤 장르에 가까운 것 같으세요?
김후종 감독: 제가 시나리오를 쓸 때는 남북 관계가 이슈화되지 않았어요. 쓰고 찍으니까 갑자기 통일될 분위기가 만들어져서 사람들이 “지금 빨리 내라” 했는데… 아무튼 의도를 갖고 북한 관련 이슈에서 시작한 건 아니고요. 은퇴 직전에 불쌍한 50대 60대 아저씨들 보면서 ‘저 짠함이 간첩들 일에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간첩을 인간적으로 다뤄보고 싶어서 시작을 했던 것 같습니다.
송경원 모더레이터: 스릴러를 구축하는 기본적인 문법에 가장 충실했던 작품이 <꼬리> 였던 것 같아요. 혹시 질문 있으신 관객 계신가요? 저기 중간에 남자분께 마이크 드리겠습니다.
관객1: <직무유기> 신지훈 감독님께 질문 있습니다. 소대장이 긴박한 상황에서 막 뛰어가는 장면에서요. 카메라도 같이 움직이면서 가는 장면이 있잖아요. 그게 기술적인 의도로 연출하신 건지 질문 드리고 싶습니다.
신지훈 감독: 현장감을 최대한 살리기 위해 핸드헬드를 썼는데요. 원래 처음에는 픽스 상태로 있다가 나중에 흔들리는 걸 촬영감독님께 주문을 했는데 그런 게 안된다고 해서 처음부터 흔들었습니다.
송경원 모더레이터: 이렇게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나온 연출이 영화에 더 적절한 경우가 있어요. 저도 흔들림 정도가 점점 달라지는 느낌도 들었고 인물의 감정과 연관된 게 아닐까 추측을 했네요. 네. 또 사실 단편영화에서 제일 중요한 것 중 하나가 제목이거든요. 짧은 소설일수록 제목이 담는 의미가 큰 것처럼요. 제목의 의미에 대해 짧게 설명해 주신다면? 먼저 <가드올리고 BOUNCE!>에 ‘BOUNCE!’는 왜 붙였나요?
배수민 감독: 많은 분들이 아시겠지만 가수 바비가 ‘SHOW ME THE MONEY’에서 부른 곡 중에 ‘가드올리고 BOUNCE’라는 제목의 노래가 있어요. 그리고 원래 권투 기본 자세가 바운스하는 것부터 시작하기 때문에 가드 올리면 바운스도 당연히 뒤따라 와야 하는 거에요. 노래 제목으로 충분한 의미 전달과 이목을 끌 만한 제목으로 매력적이다고 생각해서 선정하였습니다.
신지훈 감독: 저는 사실 이 영화의 모티브가 윤일병 폭행 취사사건에서 얻었는데요. 관련된 병사들은 다 사형이나 몇 십년 형 받았는데 정작 관리를 해야 하는 장교들은 다 직무유기나 감봉으로 솜방망이 처벌을 받았더라구요. 그래서 ‘그런 게 어이없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직무유기’라는 게 이름은 되게 무거워 보이는데 이게 행정적인 것들에 대한 얘기라서 그걸 좀 비꼬는 식으로 만들어봤습니다.
송경원 모더레이터: 네. 또 질문을 몇 개 더 받아볼게요.
관객2: 저는 <꼬리>의 김후종 감독님께 질문을 드리고 싶은데요. 사실 폭력이 장면에 드러나지 않았음에도 이념대립이라는 가장 폭력적인 주제를 잡으신 것 같아요. 주인공이 신발을 똑바로 신으라는 장면이나 시계를 차고 깔끔한 셔츠를 입는 모습에서 굉장히 원칙주의자라는 인식을 많이 받았는데. 사실 저는 인물이 집에서 쉬면서 피자를 먹는 장면을 볼 때 인물에 대한 모든 설명을 받는 느낌이었거든요. 어떻게 보면 가장 미제 중에 으뜸이라 할 수 있는 피자를 씹는 장면이… 라면이나 밥을 먹을 수도 있었을 텐데. 굳이 피자를 선택한 이유가 있는지 질문을 드리고 싶습니다.
김후종 감독: 정말 기가 막히게 해석을 하셨어요. 주로 도시락 먹잖아요. 현장에서. 그날은 연출을위해 피자를 하는 게 어떨까? 해서 피자를 선택했습니다. 해석하신 의도가 정확하신 것 같아요.
송경원 모더레이터: 원래 명장면은 이렇게 탄생하는 거죠. 저도 보면서 되게 의미부여 했거든요. 아 피자… 최근에 들었던 PR 중에 가장 인상깊네요. 미제 으뜸…(하하하) 또 다른 질문 있으신가요?
관객3: 저는 <친구> 찍으신 곽기봉 감독님께 질문하겠습니다. 제가 생각한 전개는 ‘형한테 복수를 부탁하고 다음에 삥 뜯은 아이들이 맞으면서 끝날 것이다’ 하는 것이었어요. 그런데 영화에서 그 억울함을 자기 친구들한테 돌리잖아요. 전개가 좀 예상치 못했는데, 이게 혹시 감독님이 친구들한테 뒤통수를 맞은 경험이 투영된 것인가, 아니면 의도를 갖고 비튼 것인가 여쭙고 싶어요
곽기봉 감독: 앞서 제가 경험담이라고 말씀드렸는데, 저는 ‘상규’의 입장에서 경험을 했습니다. 이야기를 비튼 이유 중에 하나는 상규가 돈을 뺏겼을 때 자기는 뺏기고 친구는 안 뺏겼기 때문에, 친구가 안 뺏긴 그 돈이 바로 자기의 돈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아직은 미성숙한 중학생 아이의 생각이지만 어떻게 보면 그게 인간의 본성이라 생각해서 그런 장면을 넣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 장면에서 오락실에서 양아치를 봤던 것도 큰 반전을 주고 싶어서 그런 식으로 연출했습니다.
송경원 모더레이터: 네. 호러영화를 보는 느낌도 들었어요. 잘 만든 영화는 그런 식으로 다른 색깔이 꼭 들어가는 것 같아요. 이제 시간이 다되어서요. 앞으로 더 계속 영화 작업 하시고 단편영화도 만드실 텐데 감독으로서 짧은 포부 한 말씀씩 여쭙고 마무리하겠습니다.
배수민 감독: 전역을 하고 훨씬 성장된 영화로 다시 찾아 뵙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신지훈 감독: 영화제 올 때마다 다른 감독님들 영화 보면서 엄청 자극 받는 것 같아요. 안주하지 않고 새롭고 좋은 영화 많이 만들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송경원 모더레이터: 네. 단편은 장편의 예비 과정이 아니라 단편 자체로 재미를 주는 장르라고 생각해요. 네 작품 모두 몰입도 높은 단편 영화였습니다. 비 오는 날씨에 함께 해주신 여러분들께 다시 한번 감사합니다.
짧지만 긴 시간이었다. 감독들의 가치관과 고찰은 물론 한 부의 신문을 본 것 같았다. 신문의 진지한 흑백 종이에 불과하지만 네 감독의 영화는 고유한 색깔과 감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이미 새로운 액션ᆞ스릴러 장르를 개척한 영화 예술인들. 수묵담채화 같은 이 작품들을 자주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