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특하다, 신선하다” <치파오 돌려입기>를 처음 봤을 때 에디터의 감상이다. 이런 영화를 찍을 수 있는 감독이 궁금했다. 솔직하고 거침없이 감독 자신을 표출하고 있는 노풀잎 감독을 2일 3시 엔젤리너스 카페에서 만나보았다.
Q : 지난 42회 서울독립영화제에 출품한 <Useless story> 라는 단편 애니메이션 이후, 17회 미쟝센 단편영화제에서 <치파오 돌려입기> 라는 작품으로 나오셨습니다. 먼저 미쟝센 단편영화제에 참가하시게 된 소감이 어떠하신지 궁금합니다.
A : 미쟝센 단편영화제는 제가 1학년 때부터 오고 싶어하던 곳입니다. 그래서 지금 꿈을 이룬 것 같습니다. 사실, 서울독립영화제 때는 제가 필리핀에서 어학연수를 하던 중이었는데요, 그 때는 영화 찍는것과 영화감독 하는 것에 대해 두려움과 고민이 많았던 시기였습니다. 그리고 졸업 후에도 사실, 영화를 계속 할지, 취업을 할지 고민이 많았습니다. 그러던 중 미쟝센 단편영화제에 참가하게 된 것은 저에게 영화를 계속 해도 되겠다는 자신감을 불어넣어주었습니다.
Q : 영화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A : 어린 시절부터 막연하게 창작하는 일을 하고 싶었습니다. 고등학교 때는 문예창작학과를 준비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영화과에 오게 되었는데, 영화과에 들어온 이후부터 더 영화를 좋아하게 된 것 같습니다.
Q : 출품작이 17년도 국민대학교 영화과 졸업작품 이라고 알고있습니다. 그런데 연출의도가 굉장히 독특한데요, ‘쓸모 없는 영화들의 반란’ 이라고 하셨는데, 그렇게 명명하신 이유가 궁금합니다.
A : 그 문구는 저희 동아리의 표어 같은 것입니다. 솔직히 말해서, 아무리 열심히 만들어도 결과가 좋지 않은 경우도 있잖아요? 그러나 쓸모 없는 영화들도 결과적으로는 실패했지만, 그 나름대로의 의미가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 그렇게 연출의도를 정했습니다.
Q : 이번 출품작 <치파오 돌려입기>의 오프닝이 신선했다고 느꼈습니다. 수미가 쓴 시나리오가 바탕이 된 종이 인형극으로 오프닝이 시작되는데, 특별히 오프닝을 이렇게 시작한 이유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A : 초반에는 오프닝을 애니메이션으로 할 생각은 없었습니다. 오히려 재미있고, 좀 더 웃기게 진행할까 하는 생각을 했는데요. 그런데 수미가 진지하게 쓴 작품이고, 그녀의 내면세계가 담겨 있는 작품인데, 너무 웃기게만 진행한다면 안될 거 같아서 어떻게 해야 될지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그러던 중, 저희 조연출 하시는 분이 한 인디밴드의 뮤직비디오를 보여주시면서 종이인형극이라는 소재도 있다고 알려주셔서, 오프닝을 이렇게 연출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제가 사실 그림을 잘 못 그리는데, 그림 잘 그리시는 스텝분들이 많이 도와 주셔서 운이 좋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Q : 오프닝 외에도 수미의 속마음을 표출해내는데 종이 인형극이 자주 등장합니다. 속마음을 표출해내는 시퀀스들을 굳이 종이 인형극으로 연출한 특별한 의미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A : 종이인형을 쓴 것은 큰 연출적 의도가 있기보다는, 오히려 저희가 연출해 내려고 한 노력들이 더 잘 반영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쓴 것입니다. 보시면 알겠지만, 큰 산맥들 같은 건 잘 찍어내는 게 어렵기도 해서, 종이인형을 택했던 것 같습니다.
Q : 작품 속 ‘수미’와 ‘의건’은 자신만의 세계가 강한 인물들로, 타인의 비난과 비판에도 불구하고 본인이 연출해 내고자 하는 것을 찍고 싶어합니다. 두 인물은 감독님 본인을 대변하는 인물이라고 볼 수 있을까요?
A : 솔직히 말하면, ‘의건’ 이라는 인물과 저는 성격이 많이 다릅니다. 저는 제 작품에 ‘의건’ 처럼굳은 확신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의건’ 캐릭터의 모티브가 되었던 친구가 있는데요, 그 친구는 작품 속 ‘의건’ 처럼 그만둘 상황에 처해도 포기하지 않는 면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는 그런 면을 대단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수미’ 는 저랑 매우 비슷한 인물입니다. 저도 재학 시절, ‘수미’ 처럼 제가 쓴 시나리오로 남들에게 비웃음을 사 본적도 있고, 작은 말에도 상처를 잘 받는 편이어서 더 그런 것 같습니다.
그런데 사실 제가 제일 비슷한 건, ‘의건’ 의 영화를 찍다가 도망갔던 스텝인 것 같습니다. 저도 남들 영화에 대해 이런 저런 평을 내리기도 하고, 그런 영화를 찍는 것을 이해를 못한 적도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의건’ 이 더 대단해 보였던 것 같습니다.
Q : 이어서 추가 질문을 하나 더 드리려고 합니다. 전작 <Useless story> 도 ‘영화로 결코 못 찍을 거창하고 말도 안되는 것들을 골라서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었다’ 고 하셨는데, 감독님의 영화 철학이 어떠한지 궁금합니다.
A : 제가 학생이다 보니까, 돈이 많이 없어서 현실적인 것을 써야 하는데, 자꾸 거창한 시나리오가 나오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제 상상력을 동원해, 거창한 소재라도 형식에 구애 받지 않고 실현해내고자 합니다. 그래서 항상 <치파오 돌려입기>에서의 애니메이션 장면들처럼 머리를 짜내서 제가 연출하고자 하는 것들을 연출해 낼 방법을 찾아보고자 합니다.
Q : 극 중에서 ‘의건’ 이 연출해내려고 했던 부분은 왕가위 감독의 <화양연화> 였습니다. 사실 ‘의건’이라는 인물이 자신만의 세계관이 강한 인물로 표현될 수 있는 방법에는 다양한 방법이 있고, <화양연화>의 장면보다 오히려 수미의 시나리오, <아르메니아 후손들> 이야기가 더 영상으로 구현해내기 어려웠을 것이며, 그 외에도 영상으로 표현해내기 어려운 주제들이 훨씬 많았을 텐데, ‘왕가위’ 감독의 <화양연화>를 선택한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A : 저는 대학교 1학년에 들어와서 처음 ‘왕가위’ 감독을 알게 되었는데요, 그 때부터 그 감독을 좋아하게 된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 감독의 영화를 차용해서 한 번 연출해 보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많은 ‘왕가위’ 감독 영화들 중에 <화양연화>를 선택한 이유는 아무래도 <화양연화>가 남녀 간의 사랑이 가장 잘 표현이 됐다고 생각했고, 제가 연출하고 싶었던 치파오나 밤거리 느낌이 잘 드러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Q : 마지막 시퀀스에서 수미는 모두에게 외면 받았던 <아르메니아의 후손들>이라는 시나리오를 다시 들고 강의실에 들어갑니다. 이 장면은 감독님 본인 스스로, 어떤 비난을 받더라도 자신의 의도대로 영화를 찍겠다는 강한 의지를 표출하는 것으로 해석해도 되는지 궁금합니다.
A : 네. 사실, 피드백을 받은 후에 듣지 않는 태도가 좋다고는 할 수 없지만, 피드백을 받았다고 해서 작품에 대해 확신이 사라지고, 아예 엎어버리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아직 학생이기 때문에, 못 만들어도 만든다는 것 자체에 의미와 가치가 있다고 생각을 하고, 학생인 사람들은 더 자유롭게 자기 고집대로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을 종종 합니다.
Q : 그렇다면 영화를 만들 때, 다른 건 다 포기해도, 이것만은 포기할 수 없는, 감독님 만의 고집스러운 면은 어떤 것이 있나요?
A : 저는 독특하고 튀는 영화를 만들고 싶습니다. 하지만 제일 중요한 것은 ‘감독과 관객 간의 감정적 소통’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가장 기억에 남았던 작품도 감독과 소통이 잘 이루어졌던 작품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이번 작품도 그랬지만, 영화를 만들 때는 이 부분만은 결코 놓치지 않으려고 합니다.
Q : <치파오 돌려입기> 라는 제목은 수미와 의건이 돌려 입었던 ‘치파오’라는 소재를 통해 그 둘이 영화에 관해 같은 생각을 공유한다는 의미를 암시한다고 여겨지는데, 그 외에 다른 의미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A : 사실 제목은 스텝들이 끝까지 반대했던 것 중에 하나입니다. 지금 말씀하신 의미 외에, 특별한 의미는 없지만, 개인적으로 어감도 좋고, 제가 좋다고 생각해서 제목을 이렇게 정했습니다. (웃음)
Q : 작품 속 인물들의 연기를 보면, 감정의 표출이 생각보다 단조로운 느낌이 있었는데, 오히려 이런 연기가 작품에서 감독님 본인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영화철학에 대해 더 집중하게 했습니다. 이는 감독님께서 그런 식으로 의도를 하고 연출을 하신 건지 궁금합니다.
A : 네, 일부러 그렇게 의도한 것도 있었고, 감정이 과하지 않게, 담백하게 표현하고 싶었던 것도있었습니다. 그래서 사실 수미 역할을 연기한 분도 전문 배우가 아니셔서 더 본인대로 자연스럽게 표현이 된 것 같습니다. 물론 웃긴 장면이지만, 너무 연기가 밋밋해서 웃기지 않다는 피드백도 많이 받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웃음을 택할 것인지, 수미의 속마음과 수미와 의건의 감정적 공유에 좀 더 포커스를 맞출 것인지 중에 선택을 했다고 생각을 합니다.
또, 의건을 연기하신 손용범 배우님의 대본 리딩을 들으면서, 의건이라는 역할이 우스꽝스러운 행동을 해도, 사실상 진지한 인물이기 때문에 좀 더 담백하게 연기하는 게 맞다는 확신을 가졌습니다.
Q : 향후에 어떤 작품을 찍고 싶으신지, 현재 차기작 계획이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또, 다음에 미쟝센 단편영화제를 찾는다면 어떤 장르로 나오고 싶으신지도 궁금합니다.
A : 올해는 계획된 작품이 딱히 없고, 제 작품을 조연출 해준 친구의 작품을 조연출 해주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향후에 대학원에 진학할 생각입니다. 대학원에 진학한다면, 단편을 찍을 예정인데요, 그 때는 좀 더 입체적인 영화를 찍고 싶습니다. 이번 미쟝센 단편영화제에 참가하게 되어, 영화제 출품작들을 쭉 보면서 많은 것들을 느꼈고, 배웠습니다.
그리고 다음에 또 미쟝센 단편영화제에 나오게 된다면, 그 때는 ‘희극지왕’이나 ‘절대악몽’ 장르로 나오고 싶습니다.
노풀잎 감독과의 인터뷰 중 뇌리에 꽂히는 발언이 있었다.
‘쓸모 없는 영화도 그 나름의 가치가 있다. 그러니 배우는 학생이라면, 영화에 자신만의 고집을 좀 더 부려봐도 좋다.’
비단 학생만 해당되는 말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영화를 만드는 데 있어, 자본은 필수불가결한 요소이나, 자본에 작품이 휘둘려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많은 한국 영화들은 자본의 지배를 받고 있다.
‘상업적인 가치를 제쳐 두고, 영화에 감독 자신만의 고집을 한번 부려보자’는
노풀잎 감독의 발언은, 예술과 상업사이에서 아슬아슬 줄타기를 하고 있는 한국영화의 현주소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다.
끝으로, 오늘 인터뷰에 응해주신 노풀잎 감독님께 감사하다는 말씀을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