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회 미쟝센 단편영화제

OFFICIAL DAILY17

의도치 않았지만 도움을 주고받았던 순간에 관한

글 : 유솜이 / 사진 : 우수연

“잠깐만! 내가 집 비밀번호를 잊어버려가지고… 나 좀 도와줘”
옆집에 사는 두 인물이 ‘도와줘’라는 말을 시작으로 만남을 반복한다. 한 인물은 무언가를 자꾸만 잊어버리고, 또 다른 이는 비어있는 기억을 메꿔준다. 그런데 이렇듯 도움을 주다 보면 어쩐지 내가 도움받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지 않은가. 문득 무언가를 깨닫게 되는 그런 때 말이다. 돌이켜보면 누군가를 도와주는 것이 오히려 내게 도움이 되었던 순간들이 있다. 이런 생각들을 나지막하면서도 또렷하게 보여준 영화<도와줘!>의 김지안 감독을 만나보았다.

Q. <도와줘!>는 어디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게 된 작품인지 궁금하다. 치매를 앓고 있는 할머니와 공시생이라는 캐릭터 설정 또한 특이하다.
– 할머니 캐릭터의 경우는 현재 치매인 할아버지와 같이 살고 있는데 할아버지를 보면서 느낀 것들이 많이 담겼다. 캐릭터의 성별을 할머니로 설정한 건 할머니의 손에서 컸기 때문이다. 할머니에게 더 애틋한 감정이 있어서 그런 기억을 살려서 찍게 되었다. 직접적인 경험에서 우러난 것들이다. 할아버지의 치매 증상이 심해지면서 혼자 두면 안 될 것 같았기 때문에 생활을 같이하기 시작했다. 그래서인지 평소에 노인 문제에 관심이 많기도 했다.

 

작품의 시작은 독거노인의 ‘고독사’에 대해서 검색을 했을 때였다. 그런 문제들이 눈에 들어왔고, 검색하면서 또 한 번 놀랐던 사실은 30대 고독사가 생각보다 많다는 거다. 공시생의 비율이 높았다. 그것도 너무 충격적이었다. 고독사라는 키워드로 노인과 청년이 묶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좀 충격이었다. 그래서 이 이야기를 시작하게 된 것 같다. 공시생 캐릭터는 주변 친구들에게서 영감을 받기도 했다.

 

Q. 영화에서 ‘사탕’이 굉장히 많이 나온다. 냉동실에 얼려가며 소중하게 보관하기도 하는데. 정애가 가장 아끼는 건 아들이 준 달콤한 사탕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 할아버지의 치매가 초기 단계일 때 이모가 돌아가셨는데, 사실 자체가 괴로우니까 그 기억을 잊으셨다. 치매라는 병은 너무 괴로운 기억은 잊게 하는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게 이 사탕 이야기의 계기가 됐다.

 

사탕은 정애의 아들이 오래전에 보내준 것인데, 시간이 흐른 이후 정애는 아들에 관한 기억을 일부 잊어버리게 된다. 정애에게 사탕은 먹으면 달콤하고, 행복하고. 계속 아들을 생각할 수 있고. 그냥 아들 자체인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사탕은 좋은 기억이다. 그 자체가 기쁨인 것 같다. 그래서 그렇게 소중하게 간직하는 거고. 할아버지도 내가 드린 사탕을 개미가 끓을 때까지 서랍에 두신 적이 있다. 너무 아까우니까 오랫동안 먹지 않고 서랍에 보관한 거다. 사탕이라는 소재는 거기서 가져온 거다.

 

Q. 현관문 비밀번호를 시작으로 영화 속에서 종수는 본의 아니게 정애를 계속 돕는다. 정애 자신도 ‘이웃 총각 종수에게 도움받은 게 한둘이 아니다’라고 얘기한다. 인물들이 결핍된 부분들에 자연스럽게 도움을 주는 장면들이 인상적이었다. 시나리오 작업은 어땠는지 궁금하다.
– 할아버지가 조금이라도 오래 기억하고 싶은 마음에 매일 아침 손가락 운동을 열심히 하시는 모습들을 봤을 때. 그걸 보면서 내가 열심히 살지 않는 듯한 느낌이 들었었다. 그런 깨달음을 얻기도 했었고.
당시에는 내가 누구를 돕는다고 생각했는데 그 일이 지나고 나서 보면 내가 배운 게 더 많았다거나, 얻은 게 많았다거나 그랬던 적이 있다. 영화 속에서 종수는 본인이 정애를 도와준다고 생각하고 정애도 종수에게 도움을 받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나중에는 오히려 정애를 보고 종수가 무언갈 깨닫는 지점이 분명히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런 의도치 않았던 도움을 주고받는 이야기들이 그려졌다.

 

Q. 촬영을 진행하시면서 감독님께서 도움이 필요했던 순간도 있었을 것 같다. 현장에서의 에피소드가 있다면 한 말씀 부탁드린다.
– 이번에는 원테이크 촬영이 많았다. 종수가 범행을 구상하는 장면이 있는데, 그 장면이 원래는 원테이크였다. 카메라와 배우, 미술팀이 다 같이 움직이며 벽과 벽을 오갈 때마다 시간이 조금씩 흘러있는. 예를 들면 이런 거다. 이쪽 책상에 원래는 아무것도 없었다가 카메라와 배우가 반대쪽으로 가면 뭐가 많이 생겨있고. 반대쪽에 가 있는 그사이에 미술팀이 이쪽의 연출을 하는 거다. 다시 배우가 왔다 갔다 하면 그사이에 또 많은 것들이 늘어나 있고. 이런 것들을 했는데 가독성이 떨어지고 전달이 안 되는 부분들이 있어서 결과적으로는 컷 편집을 하게 됐다. 어떤 재미난 시도를 해보고 싶었는데. 그때 총 열한 번의 테이크를 갔는데, 배우님이랑 합을 맞춰서 결국 성공하고는 스태프들이랑 다들 엄청나게 기뻐했던 기억이 있다. 일단 정말 감사하고, 저의 미숙했던 부분이었던 것 같다.

 

Q. 이야기를 듣다 보니 원테이크 장면이 궁금해진다.
– 보여드릴 수 있으면 좋을 텐데. 그게 소리녹음은 안 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현장에서 나는 소리가 그야말로 우당탕탕이었다. 그래서 실제 테이크를 보면 엄청나게 웃기다. 급하니까 사탕을 막 집어 던지는 소리도 나고, 사람들이 다 슬라이딩을 해서 숨어서 미끄러지는 소리가 나기도 하고. 책상을 옮겼다가 이랬다가, 난리다. 되게 재밌는데 아쉽다. (웃음)

 

Q. 비하인드를 듣기 전에도 개인적으로 기억에 남는 장면이었다. 명언이 붙어있는 책상에서 무엇보다 열심히 하는 모습이 유쾌했다 (웃음)
– 맞다, 공부를 저렇게 열심히 하지 (웃음)

Q. 추격씬도 기억에 남았다. 생각보다 잘 달리는 정애를 보며 웃음이 나기도 했다. 가장 긴장되면서 시원했던 장면이었다. 그 장면에서 ‘달리기’가 인물들에게 환기해주는 것이 있다면 어떤 것일까
– 종수가 맨날 책상에만 앉아서 달리는 것 자체를 하지도 않았고, 심지어 죽으려고도 했던 인물인데 나중엔 더워서 옷까지 벗고 죽을 둥 살 둥 뛰지 않나. 그런 어떤 모순을 만들어내고 싶었고. 또 자신보다 더 잘 뛰는 할머니의 모습이 종수의 눈에 보이기도 했는데. 그러면서… 너무 직접적으로 말하는 것 같은데… 본인도 달리면서 깨달았을 것 같다. 정말로 자신이 죽고 싶었는가를.

 

순간적인 판단에 의해 욱해서 그런 시도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누군가에게 도와달라고 말을 했으면 오히려 더 쉽게 해결될 수 있었을 텐데, 혼자서 해결하려고 하다가 어느 순간 다 끝내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지 않나. 어떤 좌절감에 휩싸여서. 근데 또 정말 생각지도 못한 사소한 것들로 그런 고민이 별거 아니었다고 느껴지기도 해서, 그런 순간들을 만들어 내고 싶었다. 오히려 열심히 달려버리는.
그리고 사실 영화의 끝에 종수가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것이 보이지는 않지만, 그 인물이 열심히 뛰는 것 자체가 이미 설명을 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그런 것들을 전달하고 싶어서 인물들이 열심히 달리는 모습을 좀 우스꽝스럽게 그려보았다.

 

Q. 그 장면에서 관객들은 어떤 걸 느꼈으면 하는지.
– 일단 그 장면에선 리듬감을 빠르게 가지고 가고 싶었다. 그래서 음악도 경쾌하게 사용하고, 음악과 장면이 잘 맞아떨어졌으면 해서 편집도 그런 식으로 해서 만든 장면인데. 좀 편안하게 웃을 수 있는 장면이었으면 한다. 그 이전까지는 조마조마한 심리가 있었다면 그 장면에서는 조금 더 편안하게 웃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위에 말씀드렸듯이 종수라는 인물이 앞으로 어떻게 살겠구나 하는 것들을 전달하고 싶었던 것 같다. 동일 선상에 놓고 비교할 수는 없지만 어떻게 보면 기억을 잃어가는 정애가 불행하다면 불행할 수도 있는데, 정애는 굉장히 열심히 살지 않나. 함께 달리는 모습을 통해서 삶에 대한 의지 같은 것들이 전달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Q. 오프닝에서 종수는 문을 두드리는 이를 보기 위해 현관문의 렌즈를 통해 밖을 바라본다. 문을 두드렸던 건 아마 정애일 것이다. 과연 정애에게 종수란, 종수에게 정애란 어떤 사람일까.
– 두 사람의 공통점이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인데 도와달라고 말하지 못하는, 혼자인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다. 종수 같은 경우는 자기에 대한 좌절감이나 부모에 대한 미안함 때문에 정신적으로 굉장히 나약해져 있는 상태다. 그래서 도움이 정말 필요한 상황인데도 말하지 못한다고 설정을 했었고. 정애는 말 그대로 도움이 필요한 상황인데, 혼자이고 자신도 자각이 없기 때문에 도와달라고 말하지 못하는 상황인 거다. 그래서 도움이 필요한 두 사람이 만나, 우연히 서로를 도와주게 되는 거다. 그렇기 때문에 두 사람이 나란히 사는 설정으로 쓰게 됐고, 제목도 자연스럽게 <도와줘!>로 붙게 됐다.

 

Q. 정애는 치매지만 종수만은 잊지 않고 찾는다. 종수도 그런 정애를 자꾸만 돕게 된다. 피를 나눈 가족보다 오히려 잘 모르는 타인과 친밀함을 나눌 때가 있지 않나. 둘의 관계가 그렇게 느껴지기도 했다.
– 약간 모자 관계처럼 비칠 수도 있겠다는 부분은 생각하면서 만들었다. 둘 다 외로운 사람들이지 않나. 종수는 돈이 없어서 아마 그 집에 오래 살지는 못하겠지만, 뭔가 저 두 인물이 계속 어떤 인연을 이어가지 않을까 하는 느낌이 들게끔 끝을 내고 싶었다.

 

Q. 위에서 말한 것처럼 많은 사람이 도움이 필요한 상황인데도 도움을 요청해야 하는 것조차 모르는 경우가 정말 많은 것 같다. 그래서 비슷한 환경의 청년들이 이 영화를 보고 종수가 느낀 것과 같은 도움의 손길을 받아 갈 것 같다고 느꼈다. 이와 반대로 <도와줘!>가 감독님에게 도움을 주었다면 어떤 것들이 있을까.
– 심오한 질문인 것 같다. 이 영화를 만들면서 주변의 도움을 엄청 많이 받았다. 아카데미 졸업 작품이었는데 계속 작업을 같이 해줬던 스태프들이 다들 흔쾌히 도와준다고 했다. 정말 열악한 환경임에도 불구하고 도와달라는 한 마디에 다들 도와줘서 너무 든든했고, 감사했다. 만약에 도움을 요청했는데 정말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으면 (앞으로) 영화를 계속할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그런 힘을 얻기도 하고, 내 옆에 이렇게 좋은 사람들이 있구나라는 걸 확인한 계기가 된 것 같다. 말도 안 되는 원테이크 촬영을 같이하자고 할 때도 다들 정말 열심히 해줬다. 그런 것들을 생각해도 정말 좋은 사람들을 많이 두었구나. 감사하다.라는 걸 느끼게 된 작품이다.

Q. 주인공 종수와 정애는 어떻게 보면 참 무거운 상황들에 처해있다. 그런데 극의 진행은 코미디 적으로 흘러간다. 이러한 상황을 웃음으로 풀어내고자 한 계기가 있는지 궁금하다.
– 시작이 너무 무거웠다. 제일 처음에 시나리오를 쓸 때는 공황장애라는 요소도 나오고 이야기가 되게 무거웠다. 그런데 시나리오가 너무 안 풀렸다. 그래서 ‘꼭 무거운 소재라고 무겁게 다룰 필요가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됐고, 무거운 걸 아예 밝게 해보자고 생각했다. 원래도 코미디 영화를 가장 좋아한다. 차라리 밝고 경쾌한 톤으로 가져가 보자고 생각을 바꾸게 되면서부터 시나리오가 갑자기 확 진행됐다. 만들면서도 너무 재밌었고, 코미디로 바뀌고 나니까 아이디어도 많이 떠올랐다. 그래서 거의 순식간에 써 내려갔고 그 뒤부터는 굉장히 작업이 재밌었다. 장르를 바꾸니까 매듭이 탁 풀리더라.

 

Q. 혹시 좋아하는 코미디 장르의 감독이나 작품이 있다면
– 찰스 크릭톤이라는 각본가의 작품을 너무 좋아한다. 대표작은 <완다라는 이름의 물고기>가 있는데 그것보다 더 좋아하는 건 <라벤더 힐 몹>이라는 작품이다. 옛날 영화긴 한데 너무 좋아하는 영화라서. 진짜 소동극으로는 최고인 것 같다.

 

Q. 후반부에 창밖을 보던 종수는 가만히 손가락 접기 체조를 해본다. “그냥 좋은 기억 조금 오래 간직하려고 그래서 이렇게 하는 거야” 라던 정애의 말이 떠오르기도 한다. 과연 종수는 어떤 기억을 간직하고 싶었던 걸까.
– 그 장면에서 생각했던 건 정애가 기억을 매일 잃어버리면서도 손가락 접기를 반복하는 행위 자체가 삶에 대한 의지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한 번 더 확실하게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다. 달리는 것만으로 메시지가 전달될까? 라는 걸 생각했을 때 그렇게 확실하지 않은 것 같았다.
그 당시에 정애가 손가락 접기를 가르쳐 줄 때는 막상 잘 따라 하지도 않지만. 나중에 정애에게 배웠던 걸 다시 생각하고, 손가락 체조를 해보는 것 자체가 삶에 대한 의지를 보여줄 수 있지 않을까 하고 만든 장면이다. 그리고 벨소리가 울렸을 때 문밖에 누가 있을지 안다는 듯 나가지 않나. 처음에는 누군가의 방문을 불쾌해하고, 두려워하던 사람이 바뀌었다는 걸 확실하게 보여주고 싶었다.

Q. 김지안 감독님에게 “미쟝센 단편영화제”는 어떤 기억으로 간직될까.
– 카메라 앞에 서는 걸 굉장히 어려워하는데, 아주 생소한 경험이었다. 그런데 또 앞으로는 이런 형태의 영화제들이 더 많아질 것 같다. 그래서 좀 더 따라가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기도 했다. 그런 것 같다. 정신없이 달려왔는데, 정신 차려보니까 내가 맨 앞에 있는 그런 느낌. 이런 시도들이 다 올해 처음이지 않나. 이런 사태가 처음이니까. 그래서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사실 감이 안 서고. 굉장히 돌다리를 두드려보고 건너는 타입이라 준비되고, 계획된 걸 좋아하는 타입인데 이게 쉽게 잘 삼켜지지 않기도 한다. 하지만 아마 앞으로 계속 이런 시대가 될 것 같아서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새로운 고민을 해야 하지 않을까. 이제는 영화를 전달하는 방식이 꼭 극장이 아니게 된 것 같다. 그래서 어떤 식으로 영화를 새롭게 보여줄 수 있을까에 대해 고민해야 하지 않나 생각하며 참여하고 있다. 아쉬운 점이라면 현장에서 관객들이 웃어줄 때 같이 느끼고 싶었는데, 직접 웃음소리를 못 듣는 게 아쉽다.

 

Q. 마지막으로 “미쟝센 단편영화제”의 공식질문을 드리려고 한다. 감독님에게 단편영화란?
– 엽서에다 편지를 써서 주는 걸 좋아하는데, 단편은 긴 장문의 편지가 아니라 엽서 정도의 편지 같은 느낌이다. 내가 받았던 느낌을 누군가에게 공유하고 싶으니까 여행지에서 엽서들을 사고 편지를 쓰지 않나. 그곳에서 있었던 기억이나 상대와 공유하고 싶은 것들이 있어 전하는 거니까. 단편영화는 딱 그 정도의 느낌인 것 같다.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현관문의 작은 렌즈를 들여다보니 김지안 감독이 내민 손이 보인다. 손을 잡고 문밖으로 나와선 가만히 손가락 접기 체조를 해본다. 하나, 둘, 셋 … 아홉, 열. <도와줘!>와 함께한 기억이 조금 더 오래 간직될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