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산나

HOSANNA

  • 절대악몽 2
  • 나영길 / NA Young-kil
  • 2014
  • HD / Color
  • 25min
  • English Subtitle
시놉시스
소년은 아프거나 다친 마을사람들을 치유하고, 죽은 자들을 되살리며 살아간다. 치유 받거나 되살아난 사람들은 또 다시 되풀이되는 그들의 삶에 고통스러워하며 소년에게 저주와 욕설을 퍼붓고 침을 뱉지만, 소년은 아무 말 없이 그들을 치유하고 살려내며 자신의 피와 살을 먹인다.
연출의도
구원의 윤리와 가치에 관한 어떤 질문.
상영 및 수상
2014 전주국제영화제 심사위원 특별상
리뷰
‘섭’의 주위에는 이상한 일들이 일어난다. 사람들은 목을 맨다든가, 칼로 자신을 찌른다든가, 성기를 자른다든가 하면서 끊임없이 자신의 몸에 해를 가하고, 신비한 능력을 지닌 소년 섭은 이들의 상처를 없애주는 초능력을 통해 이들을 계속해서 되살려낸다. 다시 목숨을 갖게 되지만 그들은 시체나 다름없는 무기력한 삶을 영위한다.
교회, 피아노학원, 치과, 슈퍼마켓, 어린이집…. 각 동네마다 흔하게 찾아볼 수 있는 몇몇 간판 속에 어김없이 ‘호산나’라는 말이 들어 있다. ‘구하옵나니, 이제 구원 하소서’라는 뜻을 가진 신약 성경에 나오는 말로, 예수가 예루살렘에 마지막으로 입성할 때에 군중이 환영하는 뜻으로 외쳤다고 전해진다. ‘호산나’라는 뜻은 이렇게 오늘날 현실 세계에서만큼은 매우 흔하게 들어볼 수 있는 단어이지만, 흔해진 만큼 그 본연의 뜻에 대해서는 잘 환기되지 않고 있기도 하다. 영화 속에서 섭의 능력 역시 마찬가지로 전혀 초능력스럽지가 않다. 이미 죽은 사람을 살려내는 섭의 초능력보다, 차라리, 밥 먹듯이 자살을 시도하는 사람들이 더 많다고 하는 것이 더 문제적이다. 살아도 죽어 있고, 죽었다가도 다시 살아나는 이들에게 생명이란 너무나 손쉬운 것이다.
『죽음에 이르는 병』에서 철학자 키에르케고르는 육체의 생사가 궁극의 것이 아니고, 그것을 넘어선 가치 있는 존재를 믿으면서, 그 희망에서 ‘육체의 죽음을 걸고 육체의 삶을 산다는 것’이야말로 인간적이라고 쓴 바 있다. 여기서 키에르케고르가 말한 ‘희망’이란 기독교에서 말하는 ‘영원한 생명’에 대한 희망을 뜻한다. 희망을 갖지 않는 것은 육체적인 생명을 사는 삶이라 할지라도 그것 자체가 이른바 살아있는 시체이자 비참한 죽음이다. 섭의 도움에 의해 영원한 생명을 살아가는 남자 어른들이 유희하듯 섭의 공간을 오가는 동안, 소년의 의식불명 어머니는 실제로 생사에 기로에 놓여 있다. 어머니에게는 섭이 손쉽게 치유할 수 있는, 스스로를 가해하여 만들어낸 상처가 없다. 섭은 어머니를 구하기 위해 자신의 몸에 상처를 내야만 한다. 죽은 것도 아닌, 그렇다고 산 것도 아닌, 생사의 기로에서 사투를 벌이고 있는 어머니의 생명 없는 육체적 삶은 섭에게 있어서도 넘기 힘든 숙제이다.
누군가가 또 자신의 몸에 해를 가하여 죽어가는 어느 날 밤, 고조되는 소년의 고단한 숨소리 위로 로마서의 한 구절이 떠오른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이는 사도바울이 이미 기독교인이 된 후 사방에 자신의 이름을 드높이던 시기에 쓰여진 글이다. 이런 사도바울 역시 자기고뇌로부터 자유롭지 못했음을 나타낸다.
박진희 (영화칼럼니스트)
감독정보

나영길

NA Young-kil

bloodhate@naver.com

2008 <염>
2008 뉴욕한국영화제
2006 <ΙΧΘΥΣ>
2005 <겟세마네의 개>
2005 <분열>
스탭
  • 제작최수진
  • 시나리오나영길
  • 촬영김지현
  • 편집조대균, 나영길
  • 미술감독김현아
  • 녹음조민경
  • 믹싱나영길
  • 출연지혜찬, 박지환, 형영선, 조영도, 정종열, 김은경, 박삼순

호산나

HOSANNA

  • 절대악몽 2
  • 나영길 / NA Young-kil
  • 2014
  • HD / Color
  • 25min
  • English Subtitle